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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하나

지난 주

내일신문 기자로 일하는 후배를 만났을 때

단호하게 거절하지 못한 죄로

끄적거려본 부끄런 글 하나...^^



 

미국이 유연하게 화답하라!


영화 ‘밀양’에서 하나 뿐인 아들을 유괴범에게 살해당한 전도연이 열연한 ‘신애’의 슬픔에 그만 전염되고 말았다. 영화 속 그 슬픔은 비록 허구라지만 내내 가슴을 아리게 했다. 그 즈음 지하철로 출퇴근할 때 김훈의 ‘남한산성’을 읽었다. 치욕의 병자호란을 자초한 주전파와 주화파의 대안없는 말싸움에 정작 전쟁에 내몰린 민초들의 생사를 넘나드는 전투와 눈물겨운 삶에 가슴 저렸다. ‘신애’의 깊은 슬픔과 민초들의 비극적인 죽음이 채 잊혀지기도 전에 벌어진 아프간 인질사태는 현실 속에서 그 아픔이 몇 배로 증폭되어 다가왔다.


우리 국민들은 지금 피말리는 인질사태를 지켜보며 가슴 졸이며 안타까워하고 있다. 아프간 인질사태 발생 후 일부 논자들은 "아프간에 대한 사전 입국금지 조치가 없었다"거나 "아프간, 미국 등과의 외교관계를 강화해야 했다"고 정부를 질타하고 있다. 한 보수언론은 “원칙대로 하자면 탈레반에 대한 ‘개전(開戰) 사유’”라며 섬뜩한 적의까지 드러냈다. 그러나 인질 석방에 대한 해법과 성찰에 근거한 외교안보정책의 대전환이란 근본대책에는 눈감고 만다.


주지하듯 미국은 아프간에서 텔레반을 지원하여 소련군을 철수시키고 텔레반은 정권을 장악한 바 있다. 9.11 직후 미국은 빈 라덴과 알카에다를 비호했다며 탈레반정권을 전복시키고 다시 카르자이정권을 세웠다. 현재 아프간평화유지군도 미군 주도 아래 텔레반 소탕작전을 전개한다. 결국 인질 석방이란 대반전의 열쇠는 미국이 쥐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인질 석방을 위한 한국정부의 노력을 지지하며, 텔레반은 인질들을 무사히 석방해야 한다”는 원론적인 입장만을 밝힐뿐 “테러조직과의 협상은 있을 수 없다”는 강경입장을 고수한다. 자유와 인권을 최고 가치로 추구한다는 미국은 존엄한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는 악마와도 타협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고, 모든 평화적 구출노력에 현명하고도 유연하게 화답해야 한다.


노무현정부는 ‘자주’의 레토릭을 구사해왔다. 그러나 미국의 요구대로 6자회담의 반 발짝 뒤를 따르며 남북관계를 파행시켰고, 아프간과 이라크전쟁에 파병하는 등 수직적 한미동맹과 근시안적 국익론의 달콤함에 안주했다. 이번 인질사태는 미국에 편승한 낡은 외교안보 패러다임의 위험성과 실패를 입증하고 있고, 김선일-윤장호-배형규 님에 이어, 한국인들이 증오와 테러의 표적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화하기 시작하였음을 증거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비전투부대로 아프간과 이라크의 재건을 위해 노력해 왔다.”고 변명할 뿐 인질석방과 대한민국의 안전을 위해 파병정책 재검토 등의 메시지를 명확히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제 대한민국은 전쟁-가난-독재가 없는 민주공화국에서 자란 새세대가 투표권을 행사하는 시대로 이행하고 있다. 우리 헌법은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전문에 명시하고 있다. 헌법정신과 경제규모 세계 11위 중견국가의 위상에 걸맞는 ‘새로운 외교안보 패러다임’을 국민적 합의로 성안할 때다. 첫째, 영구적 한반도평화체제를 위해 방어충분성에 입각한 외교안보전략을 근간으로 국가발전전략을 재정립해야 한다. 둘째, 수직적 한미동맹을 수평적으로 전환하고 동북아다자안보협력체제 구축에 집중해야 한다. 셋째, 한반도의 비핵․평화통일 달성, 공적개발원조의 증대, 유엔의 평화유지활동에만 선택적 파병 등 평화협력외교를 일관되게 전개하여야 한다. 비로소, 대한민국은 새로운 외교안보패러다임을 정립해야 할 때다.

김경순(코리아연구원 사무처장)

***내일신문 NGO칼럼(2007/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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