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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도 '밝은 세상'을 맞이할 수 있을까요?

 

그들도 '밝은 세상'을 맞이할 수 있을까요?

 

“신발 아저씨는 요즘 뭐하세요?”

‘더 늦기 전에’라는 생각으로 결심했다. 이번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에... 큰 맘 먹고 거금을 들여 파마를 하기로 한 것이다.

꽤 오랜 기간 머리를 다듬지 않았더니만 이리삐죽 저리삐죽 정리불가 수준인데다 착 가라앉는 머리가 신경을 자극했다. 망설임도 있었다. 파마를 할지 커트만 할지 며칠간 고민했다. 처음 하는 파마는 아니지만 자칫 따가워질 주변의 시선도 의식해야 해야 한다. 여기에 내 딴에 파마를 하기엔 나이가 좀 많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맘 먹은 김에 질러보기로 했다. 파마를 하기로 작정한 것이다. 더 나이를 먹기 전에...

지짐머리로 둘둘 말려 피식 웃음이 나올 정도의 우스꽝스런 모습을 하고 있는데 낯익은 남자가 미용실에 들어온다. 남자는 미용실 사장님에게 반갑게 인사를 하고, 내게도 살갑게 고개를 숙인다. 낯익은 남자의 인사에 나도 답인사를 나누고 기억을 떠올려봤지만, 도통 누군지 긴가민가해서 그 남자의 정체를 알 길이 없었다.

미용실 사장님은 그 남자에게 “신발하구 샤시는 요즘 어떻게 지내요?” 묻는다. 남자는 “대다수가 놀고 있어요.”라며 말끝을 흐린다.

그들의 대화 속에서 나는 그 남자가 누군지 어림짐작 할 수 있었다. 내가 왜 그의 얼굴이 낯이 익었는지, 그가 내게 살갑게 인사를 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그가 2년 4개월간 전국을 뛰어다니며 투쟁했던 하이닉스-매그나칩 사내하청지회 조합원이라는 것을.

미용실은 우리 민주노총 사무실이 있는 복지관 1층에 자리잡고 있다. 때문에 대다수 지회 조합원들이 2년 4개월의 투쟁기간 동안 이 곳 ‘전용미용실’을 이용해 왔다. 그 인연을 투쟁이 마무리된 지금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 남자의 얼굴은 밝았지만, 나는 그를 제대로 쳐다볼 수 없었다. 아직 대다수가 취업을 하지 못했다는 그의 답변이 아리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신발아저씨’와 “샤시아저씨‘는 투쟁 과정 틈틈이 아르바이트로 신발을 팔고, 샤시공사에 참여했던 사람들을 지칭하는 별칭이다. 사장님과 친했던 이들 신발과 샤시는 아직 취업을 못했다고 한다. 투쟁이 마무리되면서 미용실로의 발길이 끊긴 사람들에 대해 간혹 소식을 묻지만, 그닥 좋은 소식을 들은 적이 없다고 한다. 그들은 아직도 ’거리‘를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는 처지라고 한다.

‘소모품과 생수 우선 납품기회’를 부여받은 사람들의 처지도 매한가지다. 2007년 4월 합의 이후 ‘우선 납품권’을 받은 이들은 ‘(주)밝은 세상’이라는 회사를 설립하고 자판기 임대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당시 조합원 86명 중에 21명이 의기투합하여 회사를 설립하기로 했지만, 수익성의 문제로 이중 10명은 사업참여를 포기하고 11명만이 함께 하기로 했다. 위로금을 딱딱 털어 십시일반으로 회사 설립자금을 모았다. 어렵긴 하지만, 적어도 이들만큼은 똘똘 뭉쳐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 꿈을 포기하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사업의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11명 중 3명이 ‘자신의 회사’에서 중도하차해야 했다. 그들 스스로 만든 기업에서 ‘경영합리화 작업’을 위해 뜻을 함께 한 사람이 떠나야 한 것이다. 3명에 대해 ‘경영상의 어려움으로 인한 불기피한 무급 휴직’을 해야 했던 이들이나, '밝은 세상‘의 생존자들 마음 또한 밝을 리 없다. 자신의 회사를 등지고 공사판 막노동을 선택한 먹먹한 이들의 심정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정상화가 되면 다시 복귀하기로 했다지만 설립 6개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적자 행진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월급도 제대로 지급할 수 있는 형편도 아니다. 그저 악착같이 ‘버틸 뿐’이라고 했다. 오는 4월경에 예정된 자판기 추가 계약이 성사되면 숨통이 트일 것으로 고대하면서 말이다. 그 날이 되면 정말 이들의 바람대로 환하게 웃을 수 있는 ‘밝은 세상’이 될 수 있을까? 스스로 발길을 끊어야만 했던 3명이 다시 ‘밝은 세상’에 합류할 수 있을까?

밝은 세상은 그들 스스로 밝히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도 함께 밝혀줘야 할 무거운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닌가. 사회적 약자를 위해 ‘연대의 불’을 늘 밝혀야 하는 것이 ‘노동운동’을 말하는 사람들이 늘 가슴에 품어야 할 영원한 과제일 것이다. 그들은 ‘동지’들의 온기있는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 현재 (주)밝은 세상은 커피자판기 임대 사업을 주로 하고 있다. 민주노총 충북본부를 방문하면 이들이 설치한 커피자판기의 달콤한 카페인을 맛 볼 수 있다. (문의 : (주) 밝은세상 043-238-2900)

 

 

 

                                                                                                                        2008.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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