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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아들의 회사

복잡한 회사에 다니는 아들

 

 

“요즘 다니는 회사가 많이 복잡하니? 그래 알았다.” 수화기에 묻어오는 어머니의 목소리는 아쉬움이 담긴 듯 하기도 하고, 이해심이 섞인 목소리이기도 하다. 주변의 소음 탓과 나 역시 취기가 오른 탓에 다시 전화해야지 생각하고 수화기를 닫았다.

어머니에게 전화가 온 건 술자리가 한참 무르익었을 때다. 건배 속도가 빨라질수록 주변은 어수선하고, 절로 목소리들이 커져가기 마련이다. 한참 일대일 시답지 않은 술자리 논쟁을 하던 터라 자리에서 일어나기도 어려워 앉은 채로 전화를 받았다. 어머니는 아내의 연락처를 알고 싶다고 했다. 전화를 받은 김에 술기운을 빌려 말해버렸다. 어차피 내일 전화를 다시 하느니 그냥 말하는 게 편할 것 같아서...

“어머니, 이번 설에 집에 못가거든요. 대신 이번 주말에 갈께요.” 수화기 너머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오는데 주변의 소음에 묻혀 잘 들리지 않는다. 어머니도 주변의 어수선함을 알았던지 한 마디 하시더니 끊으신다. “요즘 회사가 많이 복잡하니? 그래 알았다.”라면서...

울 처갓집은 딸만 셋인 딸부자집이다. 그나마도 장녀인 안사람만 한국에서 생활한다. 그러니 명절 때면 장인장모 둘만 적적하게 보낸다. 결혼하면서 이런 사정을 감안해 한번은 처갓집에서 한번은 고향집에서 보내기로 했다. 지난 추석 때 고향집에 갔으니 이번 설은 처갓집에 갈 차례다.
벌써 결혼한 지 햇수로 5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눈치가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다. 부모님도 그렇지만 형들의 눈치도 보인다. 막내둥인지라 버티고 있지만, 그래도 여간 힘든 게 아니다.

부모님한테 이런 말하기도 미안해서 아예 못 간다고 이야기를 하고 그 속내는 이야기를 안했다. 헌데, 다음날 생각해보니 엊저녁 어머니의 말엔 뭔가가 있다. ‘복잡한 회사’라니... 선왕의 유지가 담겨 있는 승지원이 털린 회사도 아니고, 창고에 꼭꼭 숨겨놓은 수억 원대의 물감칠이 들통 난 회사도 아닌데 ‘복잡한 회사’라니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물론 한 가지 집히는 부분이 있기는 했지만...

주말에 집에 다녀오니 어림짐작했던 생각이 맞아 떨어졌다. 부모 자식 간의 핏줄로 통하는 ‘직감’은 빗나갈리 없다. ‘이 박사’ 때문에 ‘회사’가 복잡할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직설보다는 돌려 말하기를 좋아하는 충청도 ‘촌로(村老)’들이다. 대통령 때문이라고 쏘아붙이기 보다는 ‘이 박사’ 때문으로, 맨날 데모질이나 하는 민주노총보다는 ‘회사’로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하긴 초대 대통령을 박사라 불렀고, 같은 성씨를 쓰는 사람이 대통령에 당선됐으니 이박사라 칭하는 것도 무리는 없을 듯 했다. 밥값을 하는 곳을 회사라 부르는 것도 무방하다.

하지만, 늙스레한 이 촌로에게도 ‘노동정세’를 빼꼼하도록 만든 건 나다. 자식걱정으로 뉴스에 귀를 쫑끗 기울이게 만들고 대규모 집회를 촬영한 뉴스화면에 아들 얼굴이 나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을 나도 잘 알고 있다.

이 촌로들이 걱정하는 ‘이 박사’의 대노동 정책. 하지만, 촌로들보다 정작 우리 노동자들의 긴장감이 크게 느껴지지 않는 게 문제인 듯 싶다. 얼마 안 있으면 ‘이 박사’가 취임을 한다. 촌로들이 걱정하는 싸움의 시작도 얼마 남지 않은 듯하다. 우리 부모님의 걱정도 날로 커가겠지만, 응원도 커질 것으로 믿는다.

당신들은 세월을 타고 넘은 예리한 시각이 있다. 험난한 ‘노동정세’를 걱정하던 당신들의 시선은 ‘이 박사’의 만행으로 옮겨질 거라 믿는다. 그리고 이에 맞서는 ‘복잡한 회사’를 다니는 아들에 대한 응원도 커질 것이다. 이미 당신들은 세상이 점점 팍팍해지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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