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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업계의 연예인들 2

서평꾼들이 활개를 치고 서평이 책으로 나오는 걸 보면서 책이 상품이 되어버린 자본주의 체제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현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대부분 알튀세르와 그의 제자들(발리바르, 랑시에르, 바디우)이나 아감벤, 라깡, 지젝, 들뢰즈, 네그리를 근거로 자신의 주장을 늘어놓는다. 그들보다 앞서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주장을 팔아먹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이제 프랑크푸르트학파는 유행이 한참 지난 모양이다.

스스로를 '좌파'나 '진보'라고 부르는 그들은 예전에 '좌파'나 '진보'라고 불리던 사람들이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혹은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에 공장에 뛰어들었던 반면에, 대부분 대학원에 진학한다. 그들은 대부분 국내에서 석사과정을 마치고 박사가 되기 위해 프랑스, 영국, 미국, 독일 등으로 유학을 간다. 박사가 되어 돌아오는 그들은 강사를 하며 번역을 하고 논문을 쓰고 비평을 한다. 그들의 논문이나 비평에서 근거가 되는 것은 알튀세르와 그의 제자들(발리바르, 랑시에르, 바디우)이나 아감벤, 라깡, 지젝, 들뢰즈, 네그리의 말이다.

그들은 자신의 블로그에 서평이나 논문을 올리고 다른 사람과 논쟁을 벌이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추종자들이 생긴다. 추종자들은 대부분 그들처럼 되기를 바라는 '인문학도'(?)이거나 '인문학도'(?)의 꿈을 접은 직장인들이다. 그들은 댓글로 칭송을 하거나 논쟁에 뛰어든다. 그리고 그들의 대중 강연회에 열심히 참석한다. 좀 더 적극적인 추종자들은 학술대회 따위에도 찾아가는 열정을 보이기도 한다.

문제는 그들이 스스로를 '좌파' 혹은 '진보'라고 부르지만 현실의 '좌파' 혹은 '진보' 운동에 별로 기여를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장기투쟁 농성장에 찾아가 연대투쟁을 하거나 집회에 참석하는 모습은 보기 어렵다. 그들은 자신들이 이론적 실천을 벌이고 있다거나 학문 영역에서의 투쟁 중이기 때문에 그런 곳까지 방문할 시간은 없다고 한다. 심지어는 근엄하게 이론과 실천의 분리를 주장하기도 한다.

더 큰 문제는 그들이 하는 말을 대중들이 거의 알아듣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그들은 대중과 '실천하는 지식인'이라고 불리는 자신들을 구분한다. 그런데도 그들은 계속 대중이 주체가 되는 새로운 혁명을 주장한다. 투쟁하는 노동자들보다 편해 보이고 고상해 보이는 그들의 모습은 일부 대학생들의 환심을 산다. 그래서 일부 대학생들은 투쟁의 현장으로 찾아가기보다 그들의 대중 강연회에 찾아간다. 그들은 자신들의 추종자들을 '인문좌파'라 부르기도 하며 그들을 위한 가이드북을 내기도 한다.

그들을 뭐라 부르는 게 좋을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뽀삼님의 글을 읽고 나도 그들을 '잉문학도'라 부르는 것에 동참하기로 했다. 뽀삼님은 잉문학을 '인문+잉여'학 혹은 '인문+과잉'학이라는 뜻으로 정의한다. 잉여들의 인문학 과잉놀음은 이제 그만두자. 중요한 것은 세계를 다양하게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라는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말을 기억하자.

 

'잉문학도'에 대한 추천글들

잉문학도란?

<레즈>(실천문학사)의 제3부 '논쟁 안내'의 다섯번째 논제 '1백년 50년 후에도 반복되는 오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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