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싸이버타리아트 7

@ 7장 재택근무 @

- 전망들 -

 

 

“대중적 미래학 분야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책들의 저자가 보통 남자라는 것과 직접 관련되겠지만, 이런 탈중앙화한 노동 시나리오 중에서 중심인물은 역시 절대적으로 남성이다. 이들은 전통적인 ‘통근자’보다는 판에 박은 ‘창조적’ 노동자와 더 공통점이 많은 모습이다. ‘원격 통근자’와 비교해 이들 ‘원격지 근무자’들은 훨씬 개인주의적이고 덜 전통적이며, 자영업자일 가능성이 높다. 좀더 따져보면 이 남성은 정장보다는 청바지를 입고 도시 교외보다는 전원에 살 것이라고 상상할 수 있다.” (136쪽)

 

“하지만 이 두 가지 생각은 많은 공통점도 지니고 있다. 주인공은 두 쪽 모두 중산층 남성이고, 노동자들이 어디서 일할지와 일을 하지 말지 자체를 결정할 자유가 있다는 걸 전제하고 있다. (이는 또한 완전 고용을 전제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두 쪽은 모두 기술이 상서로우며 각 개인 사용자가 통제할 수 있는 것으로 여긴다. 70년대 말에 이 두 가지 생각은 어느 정도 서로 결합해서 앨빈 토플러의 ‘전자적 전원주택’이라는 개념을 만드는 데 이르렀다.” (136~137쪽)

 

“하지만 그 와중에 기술에 대한 대중의 태도에 급격한 변화가 나타났다. 1978년에는, 서방세계가 대규모 실업을 동반한 대형 산업구조조정에 들어섰다는 것이 분명해졌을 뿐만 아니라 이런 구조조정의 중심 도수는 ‘실리콘 칩’이 상징하는 정보기술이 되리라는 것도 분명했다. 적어도 영국에서는 갑자기 신문들이 “모든 것에 칩을”이라는 제목으로 가득 찼고, 텔레비전 화면은 불길한 예언과 소년 같은 쾌활한 흥분이 묘하게 뒤섞인 분위기로 ‘새로운 산업 혁명’을 설명하는 일련의 프로그램들이 휩쓸기 시작했다.” (137쪽)

 

 

“이렇게 날카롭게 모순되는 시각을 접하면서 기술은 기본적으로 부드럽고 상서로운 것이라는 대중들이 그동안 공유하던 생각이 깨어지기 시작했다. 기술적 진보를 피할 수 없는 건가라고 의문을 제기하는 건 여전히 러다이트운동과 같은 것으로 여겨졌지만, 기술이 ‘위협인지 약속인지’를 묻는 건 정당한 일이 됐다. 이 단계에서 집에서 일할 수 있는 가능성은 ‘약속’ 쪽에 해당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아직은 위협이 아닌 듯했지만 이런 상황이 오래 지속되지는 않았다.” (138쪽)

 

“컴퓨터를 ‘작동’하거나 통제하는 이들로 표현되는 흰색 옷을 입은 기술자나 고위 경영진과 연관되는 대신 컴퓨터는 수동적인 여성 조작자들이 이용하는 도구로 표현되기 시작했다. 게다가 컴퓨터는 조작하는 이 여성들 자신을 통제하는 수단이 될 수 있는 것으로 표현됐다. …… 컴퓨터는 이제 멍청한 금발머리도 조작법을 배울 수 있을 정도로 쓰기 쉬운 기계로 표현된다.” (138~139쪽)

 

“애초에 이런 생각은 가정에서 일하는 것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것이 여성주의자들이 관심을 끌기 시작했는데 이는 특히 당시에 사무직 여성 노동자의 노조회가 급속히 진행되는 것과 맞물려 나타났다. …… 노동자들을 서로 분리시키는 그 어떤 것도 반대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가내노동이 아직은 즉각적인 현실이라기보다 이론적 가능성으로 여겨지기는 했지만, 노동자를 분리시키는 것으로 분명히 분류했다.” (139쪽)

 

 

“가정은 남성들의 경우와 달리 여가의 장소가 아니라 억압의 장소라는 인식이 널리 퍼졌다. 여성주의 문건 속에서 가정은 여성들이 24시간 내내 돈 한푼 받지 못하고 남편과 아이와 환자와 어른들에게 봉사하는 곳이며 여성의 사적인 공간이라고는 없는 곳이다. 또 결혼하게 되면 처벌 없는 강간의 희생자가 될 수 있는 곳이다. 여기서 탈출할 길이 없는 여성들은 우울, 자존심과 자신감 상실로 고통 받을 여지가 있었다. 종종 감옥과 비교됐다.” (140쪽)

 

“80년대에 접어들면서, 새 기술의 영향에 대한 대중적 논의에 전혀 새로운 분위기가 나타났다. 당시는 노동당 의원이었다가 나중에 사민주의당원이 된 셜리 윌리엄스(Shirley Williams)가 말한 “미세전자공학은 가족 재결합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개념이 나타난 것이다. 이 개념은 여성의 우려 일부를 반영하기는 했지만 일반적으로는 여성주의자들이 내세우는 건 아니었다. 반대로 명백히 반여성주의적 논쟁을 제기하는 이들이 가장 많이 내세우는 것이었다. 마가렛 대처 수상, 당시 정보기술 장관인 케니스 베이커(Kenneth Baker), 주교, 산업자본가 등이 그런 이들이다.” (140~141쪽)

 

“가족과 사무 노동은 여성노동의 특정한 표현으로 제시되는 대신에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는 추상적인 개념으로 표현된다. 하지만 물론 저자(Mike Aldrich)가 말하는 것은 여성의 변화하는 기능이다. 저자는 여성들이 집에 있으면서 어린이와 노인과 환자를 돌보던 날이 사라졌음을 애석해 한다. 또 여성의 가정 밖 경제 활동과 그 결과로, 원할 경우 혼자 아이들을 키우며 살 수 있는 자유를 얻게 되는 남성으로부터의 독립을 한탄한다. 그는 또 암암리에 화이트칼라 노동력에 포함되는 여성의 노동이 필요함을 인정한다. 정보기술을 이렇게 탐내는 것은, 집 밖의 여성 임금노동과 집안의 무보수 노동이 사회적으로 동시에 필요하다는 명백한 모순의 해법 차원에서다. 재택 노동자가 되면 여성은 두 가지를 동시에 할 수 있다.” (142~143쪽)

 

“원격 노동의 기능은 변화해 왔다. 통근 문제 또는 거대 관료조직의 거추장스럽고 이상한 특성의 해결책이 아니라 가족 붕괴의 해법이 됐다. 기능의 변화와 함께 원격 노동자의 이미지 또한 바뀌었다. 변화는 성별과 지위에서 모두 나타났다. 더 이상 통근을 하던 남성이나 자율적인 예술가가 아니라 여성에서다. 그리고 “가족을 우선시한다”고 암시됨으로써, 이런 여성의 일은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으며 할머니의 요강을 비우고 아이의 기저귀를 빠는 사이에 짬을 내서 할 수 있는 정도의 일이라고 추론할 수 있게 된다.” (143쪽)

 

 

“재택근무가 노조 조직을 파괴하는 수단이 될 수 있을 것을 걱정하는 이들은 여기서 착취의 증거를 찾고, (9시에 출근해 5시에 퇴근하는 미국의 노동자들 같은) 사무직 노동자를 대변하는 노조와 기타 조직들은 전자적 기술을 이용해 가정에서 일하는 노동자 규모를 억제하거나 이 제도 자체를 없애버릴 것을 요구했다. 독일의 거대 산별 노조인 금속노조(아이지 메탈) 같은 세력들이 이랬다. 이들과 다름없는 강도로 또 다른 이들은 재택근무가 여성을 해방시키는 도구라고 주장했다.” (145쪽)

 

 

“관리자들에게는 이런 (노동) 유연성을 확보하기 위한 몇 가지 방법 가운데서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졌다. 그들에게 주어진 것은, 새로운 교대근무 형태, 연 단위 시간 계약, 복합 업무 협약, 임시 또는 고정조건 계약, 시간제 노동, 하청(공공 영역에서 하청은 민영화와 강제 경쟁 입찰의 수단으로 권장됐다), 시간제 노동자 사용 확대, 재택근무자 활용 등이다. 재택근무는 단지 이 많은 선택지 가운데 하나로만 여겨졌다.” (147쪽)

 

“이런 관점에서 표피를 보면, 재택근무라는 개념은 그동안 담겨 있던 감정적인 내용물 상당 부분이 사라지고 남녀 차별적 성격이 많이 탈색된 것처럼 보인다. 사실, 일터의 유연성에 관한 많은 문헌은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여성에게는 가족들의 요구에 대처하기 위해서 시간을 분배하는 데 유연성이 필요하다고 언급한다. 하지만 (일터의 유연성과 개인적 유연성이라는) 서로 아주 다르고 일반적으로 공존하기 어려운 이 두 가지의 필요성이 실제로는 같은 것이라는 사실 곧 고용주의 유연성은 노동자의 우연성을 뜻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거론하지 않는다. 현실에서 맞아떨어진다는 증거는 놀라우리만치 적은데도, ‘핵심’ 노동자는 남성이고 ‘주변부’ 노동자는 여성이라는 일반적인 전제가 있는 듯하다. 이런 각본에서 재택근무자는 여전히 여성이지만, 이런 형태의 노동은 더 이상 가족 붕괴의 해법으로 제시되지는 않는다. 단순히 고용주의 간접 비용을 줄이고 조직적 적응력을 높이는 데 이용할 수 있는 한 가지 수단일 뿐이다.” (147~148쪽)

 

“재택근무가 찬조 출연하는 또 다른 논의가 이 논의와 교차하는데, 그건 기업 경제 문제에 관한 논쟁이다. 여기서 재택근무는 사업가로 가는 과정의 중간 단계로 간주된다.” (148쪽)

 

“이때 이후, 재택근무의 일부 정의에는 집을 근거지로 하면서 업무 도중 컴퓨터를 쓸 일이 생기는 자영업자도 포함했다. …… 늘어나는 자영업자 인구를 다시 집 밖으로 나가 중소기업을 세우게 될 예비 기업가군이 늘어나는 것으로 볼지 여부는 각자의 선택 문제로 열려 있는 것이다.” (148쪽)

 

“이런 관점을 통해 재택근무자는 다시 이미지를 바꾼다. 이들은 이제 다시 한번 남성일 여지가 높아지며(랭크 제록스의 ‘네트워크’들은 거의 모두 남성이었다), 가사 일에 묶여 있는 이들로 인식되지 않으며 대신 자유 경쟁 시장에서 자리를 잡기 위해 자발적으로 장시간 일하는 자유로운 행위자로 받아들여진다. 이들이 대표하는 것은 ‘의존 문화’에 대한 해법이다. 곧 그들의 기능은 경제의 활력을 되살리고, 복지 예산을 줄이고, 자립과 자유시장의 전통적인 가치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것이다.” (148~149쪽)

 

 

“재택근무가 너무나 모호하고 잘못 정의된 개념이어서 분명히 규정되고 계량화할 수 있는 방식으로 존재한다고 말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또 이는 현실로서보다는 이데올로기적 구성물로서 훨씬 강력하게 존재한다는 것이다.” (149쪽)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