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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버타리아트 8

@ 8장 집단적 꿈의 쇠락 @

- 여성과 기술에 관한 연구 20년 -

 

 

“여성주의가 무언가를 이뤘다면 그건 분명 연구 의제의 핵심에 주체적 자아를 위치 지은 것이다. 한편으로 여성주의는 사회학적 연구의 전통적인 대상 곧 빈민층‧여성‧어린이‧노인 등등의 말을 경청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그들에게 주체성을 부여하며 연구자는 그들의 세계관의 정당성을 입증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또 다른 한편으로 여성주의는, 제3자적 객관성이라는 실증주의적 이상이 실현 가능하다는 생각에 맞서 연구자의 주체성에 관심을 기울이는 동시에 연구자의 성병‧인종‧계급이 그의 연구에 영향을 끼친다고 주장했다.” (154~155쪽)

 

 

“당시 내가 알던 사회주의적 여성주의자들 사이에서는, 여성 해방의 전제조건으로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요구’가 경제적 독립과 가사노동의 사회화였다. 경제적 독립은 초점을 임금노동에 두게 만들었고, 가사노동 사회화는 초점을 무보수 노동에 두게 하는 것이다. 당시 나는 많은 맑스주의적 여성주의 문건의 도움을 받아서 (그 가운데서도 진 가드너가 특히 많은 도움을 주었다) 사적인 무보수 가사노동과 화폐경제의 관계를 놓고 많은 시간 고민에 빠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162쪽)

 

 

“내가 브레이버먼의 비숙련화 개념을 이용해 가내노동의 숙련기술 개념 변화를 분석하려고 시도한 논문을 썼을 때, <사회주의 경제학자 회의>의 미세공학 워킹그룹 내 남성들의 반응은 적대적인 것이었다. 그들의 관심 범위 안에서 가사업무의 자동화란 아무런 문제가 없는 ‘좋은 일’이었으며 추가적인 분석이 필요 없었다. 그것은 생산의 영역이 아니라 ‘소비의 영역’에서 벌어지는 것이었기에, 그들의 논의에는 그 어떤 관련성도 없었다.” (167쪽)

 

 

“당시 우리가 만들었던 문건들은 보통 이런 문제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주된 내용은 ‘이중의 업무’ 곧 임금노동과 무보수 가사노동의 결합이라는 부담에 대한 것이었다. 하지만 세 번째 업무 곧 노도 업무에 대해서는 공개적으로 별로 거론하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이 업무가 훨씬 힘들면서도 다른 두 가지 업무에 비해 보상도 적었다. 최아의 상황은, (어디고 참석할 집회가 없어서 사회적으로는 완전히 혼란에 빠져 있는 이가 대부분인) 입 사납고 말만 많은 남성들 무리 속에서 환풍도 잘 안 되는 담배연기 자욱한 회의실에서 녹초가 될 때까지 일하고는 지저분한 집으로 돌아가 보면 냉장고는 텅 비어 있고 가게는 이미 모두 문을 닫은 상화이며, 우파들로부터는 투사들이라는 소리를 듣고 좌파들한테는 반동적이라는 소리나 들으며 결코 고맙다는 말 한마디 듣지 못하고 비난만 당하는 그런 상황이다. 그 와중에 눈앞에서 많은 관계가 깨어지는 걸 봐야 한다. 1970년대가 그렇게 흘러가면서 행복감에 젖는 승리의 순간은 점점 더 드물어졌다.” (169쪽)

 

 

“우리 가운데 다수는 여전히 우리가 익힌 것이 암시라는 바를 세밀히 따져 다른 데 적용하려고 폭넓은 이론적 및 정치적 문제와 씨름했다. 예컨대, 나는 노동자와 생산수단의 관계가 주부와 재생산수단(가정 그 자체와 살림살이용 기술)의 관계와 유사한 점을 찾아냄으로써 맑스의 소외 이론을 가사노동에 적용하려 시도한 글을 쓰던 때를 기억한다. 노동자는 날로 재생산수단을 직접 소유할 것을 요구 받기 때문에, 이런 수단의 구입비 마련을 위해 화폐경제의 노예가 되어가는 게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재생산수단에 대한 분노를 표시하고 공장노동자들이 하듯이 반대 투쟁을 조직할 수 없다는 게 내 주장이었다. 나는 이런 관계에서 비롯되는 자학증상과 노이로제가 어떤 것인지 따져보는 것으로 이 주장을 발전시키고 싶었지만 그럴 용기가 부족했다. 나는 그동안 학계의 맑스주의자들에 의해 ‘잘못된 추상화 단계’에서 주장을 펼친다는 이유로 종종 저지당해왔는데, 또 다시 이런 위험을 감수할 용기가 없었다. 그래서 대신 가장 먼저 내가 청탁받았던 주제인 첨단기술을 이용한 재택근무 문제로 돌아갔다.” (180쪽)

 

 

“내 생각에, 사회주의 사회의 전 단계로 여겨지는 그 어떤 대안 노동의 전망에서든 미심쩍은 대목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상품생산에 대한 강조(와 오직 상품생산에 참여하는 이들만을 ‘진짜 노동자’로 보는 생각)였다. 사회주의자들이 서비스 분야 일자리를 싫어하는 건 단지 이 분야가 대체로 여성의 노동으로 인식되기 때문인가, 아니면 좀더 복잡한 문제가 있나? 나는 무보수 가사노동, 서비스 업종, 상품생산의 관계는 역동적인 것이어서 그 경계가 계속 바뀌며 이런 변화는 부분적으로 신기술의 도입과 연결되어 있다는 깨달았다. 자본주의 역사는, 과거 집에서 부수 없이 이뤄지던 활동들을 점진적으로 화폐경제 속에 흡수하는 역사로 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필수적인 부분이 상품화 과정이며, 새로운 기술의 물결은 꼭 새로운 상품을 만들어냈다. 이런 상품의 도입은 상품을 생산하는 노동자와 Tm는 노동자 모두의 노동과정(과 그와 관련된 숙련기술)에 변화를 불러왔다. 특정 숙련기술과 노동과정을 고정시켜 놓고 거기에 ‘대안’ 상품의 개발을 적요시키려는 건 실패할 운명인 것으로 보였다. 성공하더라도, 그것의 영향은 반여성적일 가능성이 아주 높다. 왜냐하면 고정된 그 시기의 특정 노동 분업 형태(와 그에 따른 사회적 관계)를 고정화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글들은 점점 더 반행을 일으키기 어려워 보인다.” (181~182쪽)

 

 

“날로 우리가 스트레스 더해지는 삶을 살면서 스트레스 관련 질환의 위험성에 대해 글을 쓴다. 우리는 스스로 비참하리만치 적은 사례를 받거나 거저 일해주면서 저임금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싸운다. 우리 가운데 몇몇은 집에서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고정수입이 없는 재택근무 노동자들의 소외와 그들에 대한 착취에 대해 쓴다. 우리는 공공의 선을 위해 자신을 가장 희생하는 처지가 되면서도 다른 여성들에게 이기심에서 탈피해 집단적으로 행동하라고 권하고 자기희생에 빠지지 말라고 한다. 우리의 목표는 단지 표현하지 못한 욕구의 반영일 뿐인가? 이런 질문을 놓고 고민하면서 나는 자꾸 내가 개인주의와 집단주의 사이의 갈등으로 돌아가는 걸 깨닫는다. 되돌아보면 지난 20년 동안 나타난 모든 변화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집단적 행동의 힘에 대한 믿음이 시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 우리가 직접 나서서 하지 않으면 그 누구도 대신 해주지 않는다는 우울한 깨달음이 우리 안에서 서서히 고개를 들고 있다는 것도 중요한 변화다.” (187쪽)

 

“내가 보기에 이런 변화는, 일하는 여성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정치적으로 헌신한 사람들의 도덕적 타락만 유발한 것이 아니라 수많은 노동 대중 개인들로 하여금 (조금이라도 덜 공포스런 시절이었다면 선택하지 않았을 것을) 선택하게 만들었다. 그 선택은 고용의 성격과 노동자로서의 삶의 모습 여러 가지를 바꾸어 놓았다. 공공 탁아시설에서 아이들이 제대로 보살핌을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잃음으로써, 그들은 집에서 일하면서 직접 아이들을 돌보는 걸 선택했다. 노조가 지신의 미래를 보장해 줄 가능성을 믿지 못해, 개인연금에 돈을 넣기로 선택했다. 이 모든 개인적인 선택이 합쳐지면서 새로운 공동체가 만들어질 기반인 공공 기반시설이 거의 붕괴됐다. 동유럽에서 들여오는 소식은 영국과 유사한 양상이 거기에도 나타나고 있음을 암시하지만, 영국이 그동안 겪은 것들이 세상 그 어디에 반영되고 있는지 난 알지 못한다.” (187~188쪽)

“나에게 분명해 보이는 것은, 우리가 제시하고 싶은 그 어떤 해법도, 우리가 제시하고픈 그 어떤 미래를 위한 요구도 이런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는 점이다. 사람들이 다시 서로 신뢰할 수 있게 할 어떤 원대하고 집단적인 희망의 행동을 창출할 가능성은 여전히 있다. 이걸 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자아(그리고 개인적 안위)와 타인(그리고 손해의 가능성) 가운데 하나를 골라야 하는 험한 상황을 강요하지 않는 조건을 찾는 노력이라도 해야 한다. 이타주의를 요구할 수는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사람들을 신뢰하고, 그들이 최선의 이익이 어디에 있는지 직접 보고 그것을 추구하게 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정보기술의 도움을 받을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1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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