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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버타리아트 5

@ 5장 상품화에 맞서기 @

- 공장 밖에서의 유용성 창출 -

 

 

““이윤이 아니라 사용을 위한 생산”은 오랫동안 사회주의자들이 집중하던 슬로건이다.” (93쪽)

 

“그러나 … 이 요구는 당황스럽게 만드는 내적 모순을 감추고 있다. 이 모순은 대안적 경제, 산업전략이 취해야 할 방향에 관한 좌파들의 요즘 혼란 상당 부분을 잘 보여주는 예이다. 이 요구는, 이윤이 변화를 이끄는 최우선적인 힘이라고 인정하지 않고 이윤이 일자리를 제공할 것인지 말지를 결정하는 절대적 기준이라고 받아들이지도 않지만, 가장 효율적으로 이윤을 얻을 수 있다는 이유로 자본주의가 선호하는 산업활동인 상품 문제는 건드리지 않기 때문이다.” (93~94쪽)

 

“자본주의 제품 생산과정 그 자체에는, 모든 요소를 이윤에 종속시키는 개념이 자리 잡고 있다. 자본주의는 오직 교환을 위해 상품을 제조함으로써만 노동계급한테서 잉여가치를 착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94쪽)

 

 

“사회주의자들이 미래를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구상하는 작업에 나서게 되면, 강조점은 대안 생산물에 확고히 두어진다. 공장의 일거리가 단조로운 단순 노동이며, 저급하며 위험한 것으로 널리 인식되고 있지만, 공장 폐쇄에 대응한 해법은 공장을 다시 열거나 새 공장을 짓는 것이다. 공장 체제 자체에 대한 총체적인 대안은 생각하지 않는다. 왜 좌파는 자본주의의 상품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기를 꺼려하는 것일까? 이윤을 최우선시하는 것에 대한 사회주의적 도전이 왜 열의가 약하고 모호할까?” (94~95쪽)

 

“서로 다르지만 연관성이 있는 일련의 요소들이 관련되는 것 같다. 여성을 ‘서비스’ 업종으로 내몰면서 공장 일은 남성의 일이라는 관념을 유발하는 노동의 성별 구분, 작업 내용을 합리적으로 분석하기보다는 ‘숙련기능’에 대한 임금 우대를 유지하기 위한 방어적 투쟁의 산물인 숙련기술의 왜곡된 정의, 과학과 기술이 모든 이에게 궁극적으로 이로운 진보의 중립적인 전령이라고 생각하는 맹신, 노동자 의식과 전투성은 상품 제조 과정에 직접 관여하는 노동자들의 전유물이라는 믿음이 이 요소들이다.” (95쪽)

 

 

“화폐경제의 이 3개 산업 외에 꼭 필요한 기능을 하지만 임금노동과는 상관이 없는 네 번째 활동이 있다. 이를 부르는 이름은 여러 가지인데, 어떤 것도 완전히 만족스럽지 않다. 재생산, 소비, 가사노동이라고 하는 영역이다. 이는 가정과 공동체에서 이뤄지는 상품 및 재화의 소비, 어린이와 노인과 장애인 돌보기, 임금 노동자에 대한 봉사와 관련되는 일들로 구성된다. 이런 일들은 거의 여성들이 맡는데, 이 장의 취지에 맞춰 ‘사회화하지 않은 노동’이라고 부를 것이다.” (95~96쪽)

 

 

“가정이라는 사적인 영역과 화폐경제라는 공적인 영역 간 왕래는 이제 쌍방향적인 것으로 볼 수 있다. 집안에서 일어나던 활동을 야금야금 밖으로 가져가 사회화할수록, 생산성을 높이려는 욕구와 이윤이 나지 않는 일을 가능하면 외부 경제로 전가하려는 욕망이 소비자들에게 또 다른 일거리를 떠넘기고, 그래서 소비자들이 대가도 없는 일을 떠안는다.” (103쪽)

 

 

“많은 서비스 산업은 노동자들이 상사에 종속되지 않고 일을 해나갈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면서 일정한 진보를 제시하기도 한다. 아주 특화된 지식을 갖춘데다가 자동화 정도는 낮은 상태여서, 대부분의 업무 관련 위험을 잘 이해할 수 있고 그래서 위험을 피하는 것도 상대적으로 쉽다.” (105쪽)

 

“제조업의 상황은 아주 다르다. …… 숙련기술과 관련해서는 두 가지 과정이 진행된다. 한편에서는 아주 고도의 숙련기술을 갖춘 통제 및 설계 담당 일자리를 극히 일부 창출하고 다른 한편으론 각 개인이 전체 생산 과정에서 파편화한 일부만을 수행하는 단순 반복적인 일거리를 대거 만드는 것이다. 이 둘의 간격은 결코 이을 수 없다. 대부분의 노동자는 이제 전체 노동과정에 대한 시각을 지니지 못하며 오직 자신이 맡은 부분에 대해서만 완전히 이해한다.” (105쪽)

 

“그들이 다루는 화학약품, 컴퓨터가 제어하는 통제 시스템과 기타 신비화한 ‘과학’의 산물들은 이제 이들에게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됐으며, 이는 자신들이 직면할 수 있는 위험들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105쪽)

 

“일의 속도는 기계가 결정하기 때문에, 개별 노동자는 자신의 업무 속도를 조절할 힘을 잃어버릴 뿐만 아니라 관리자에게 업무 속도에 대해 항의할 수도 없게 되는 상황도 아주 흔하다.” (105~106쪽)

 

 

“가정의 소비 노동은 바로 위에서 언급한 제조업의 노동과정과 아주 유사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소비 노동은 가공식품, 가정용 화학제품, 가정용 기기, 기성복과 같은 상품의 구매와 가족들에 대한 제공 및 사용에 전적으로 바탕을 둔 활동이다. 이 제품들 대부분의 설계와 작동 방식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주부들은 사용법과 사용에 따르는 위험성에 관한 정보를 ‘전문가’로부터 얻을 수밖에 없다. (보통 이 도움이란 끌끔하게 인쇄된 설명서의 형태다.) 망가지거나 사고가 나면 다른 전문가(수리공이나 의사)에게 연락하라고 되어 있고, 그래서 주부들은 그들이 문제를 해결해 줄 때까지 별 수 없이 마냥 기다려야 한다(이것도 물론 그들이 해결할 수 있을 때에 한하지만).” (106쪽)

 

“주부는 학교, 일자리, 상점 여는 시간 등 외부의 시간표에 맞춰 돌아갈 수밖에 없는 빡빡한 일정 속에서도 일처리 순서를 스스로 결정할 여지가 전혀 없지는 않지만, 주부가 해야 하는 일거리와 그 일의 마무리 수준은 날로 외부적인 것들에 의해 좌우된다. 이런 외적인 요소들은, 기계와 집의 구조, 음식이나 옷감의 화학적 구성, (아이들을 언제 남들에게 맡겨도 되는지, 또는 학교는 언제 보내야 하는지 등을 정하는 법률 같은) 법적인 제약, 강력한 이데올로기적 압력 같은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주부가 노동과정을 실질적으로 통제하는 능력을 약화시킨다. 이런 과정은 또 공장 노동자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가사노동에서 모든 숙련기술을 박탈해 기계구조 속에 포함시킨다.” (106~107쪽)

 

“가정일과 서비스업 활동의 상품화가 진행될수록, 여성이 가사노동에서 해방되기는커녕 가사노동이 스트레스 쌓이는 고된 일로 바뀌는 정반대의 결과가 나타나는 걸 볼 수 있다. 공장노동에도 마찬가지 결과가 나타난다. 자동화의 물결이 몰아칠 때마다 숙련기술이 줄어들고 일의 만족도는 떨어진다.” (107쪽)

 

 

“상품생산 우선주의에 도전할 전략개발 측면에서 사회주의적 사고방식엔 몇 가지 장벽이 있는 것 같다.” (108쪽)

 

“그 첫 번째는 노동의 성적 분화다. 사회화하지 않은 노동 영역을 보면, 소비 노동을 처리하고 집을 유지하며 가족을 돌보는 일은 압도적으로 여성이 맡는다. 화폐 경제에서는, …… 여성들이 가정에서 무보수 노동을 책임지고 있다는 바로 그 점 때문에, 여성의 시간은 소중한 것으로 취급받지 못한다. 여성들이 일하는 차별받는 영역은 일반적으로 임금이 낮은 ‘노동의 빈민가’이기도 하다. (108쪽)

 

“이런 현상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이 바로 여성의 숙련기술에 대한 평가절하다. 청소, 요리, 아이 보살핌, 옷 만들기 같은 숙련기술은 모든 여성들이 당연히 갖춰야 하는 것으로 여겨지고, 게다가 이런 기술은 가정에서 가족들을 위해 아무 대가 없이 발휘하는 것으로 취급된다. 그래서 이런 기술들은 그 어떤 희소가치도 없으며, 시장에서 임금과 교환되는 상황이 되면 값이 바닥까지 떨어진다. 사실은 왕왕 숙련 기술로 인정받지도 못하며 이런 기술로 벌어먹고 사는 이들은 보통 비숙련 노동자‘로 낙인찍힌다.” (108~109쪽)

 

 

“종종, 일자리에 ‘숙련’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은 그 일의 어려움을 반영하기보다는 그 일을 맡고 있는 이들의 조직력과 교섭력 정도를 반영한다. 공장노동의 질 저하와 파편화에 저항하는 노동자들의 핵심 원칙은, ‘숙련’이라는 이름표를 붙임으로써 과거의 관행을 지키고, 견습 기간 제도 같은 것을 도입함으로써 그 일자리 접근 기회를 자신들이 통제하는 것이었다. 이런 숙련기술 집단화의 분명한 목적 한 가지는, 여성과 이주 노동자들처럼 그들의 존재 자체가 자신들의 교섭력과 단결을 약하게 하는 자신들보다 취약한 노동자들의 유입을 막고, 이를 통해 위에서 언급한 분업을 영구화하고 더 강화하는 것이었다. 이런 행태는 여성이 하는 일을 저급한 것으로 취급하게 한다. 대부분의 ‘서비스’ 일거리는 사내답지 않은 일로 여겨지지 않으면 비천하고 격이 떨어지는 것으로 취급된다. 이런 대접을 받는 건, 그 일 자체의 성격 때문이 아니라 보통 그 일을 하는 이들이 지녔다고 평가되는 속성 때문이다.” (109쪽)

 

“서로 다른 일거리의 상대가치를 왜곡되게 평가하는 현상과 함께, 노동자의 전투성에 대한 좌파의 틀에 박힌 시각이 존재한다. 계급의식을 지닌 프롤레타리아를 형성하는 게 공장 시스템이기 때문에, 자본주의를 무릎 꿇릴 강력한 노동자 조직이 등장할 곳도 바로 그곳이라는 생각을 깨뜨리기는 아주 어렵다. 혁명을 경험한 러시아‧중국‧쿠바 등등의 나라에서 농민이 맡았던 구실은 차치하고, 영국의 역사만 봐도 이런 전제가 얼마나 의심스러운지 알 수 있다.” (109~110쪽)

 

“1978년 ‘불만의 겨울’(1976년 여름 영국 경제가 침체에 빠져 국제통화기금의 긴급 자금지원을 받았고, 이와 함께 공공 예산을 급격히 줄였다. 77년 8월 실업자가 160만 명을 넘어서는 등 노동 상황이 극도로 악화되자 주요 노조들이 78년 말부터 79년 초까지 대규모 파업을 벌였다. 당시 노동당의 제임스 캘러헌 총리는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못했고, 이 때문에 그는 79년 5월 총선에서 패배했다)에 영국 정부를 무너뜨린 이들 또한 공장 노동자가 아니긴 마찬가지다. 대부분은 공공 부문 여성 서비스 노동자들이었다. 제조업 노동자들이 어떤 서비스 노동자들에 비해서 목표를 쟁취하기 위해 훨씬 강력한 전투성을 보여 준 것은 분명 사실이지만, 1978년에 버금가는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한 제조업 노동자 집단을 집어내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 문제는 자본에 대한 관계 설정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라기보다는 젠더(사회적 성별)의 산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110쪽)

 

“여성 서비스 노동자들은 조직화의 어려움을 깨닫는데, 이 어려움은 서비스 노동자여서가 아니라 여성이기 때문이다. 가정일 때문에 집회에 참석할 수 없고, 가정 때문에 집 근처 중소기업에서 일하거나 시간제로 일해야 한다. 또 남성들이 그들을 배제하고 바보 취급하거나 학대한다. 또는 경제적 어려움이 너무나 커서, 높은 임금이자 좋은 조건을 위해 쉽게 타협하지 않고 버티는 게 힘들다. 이 세 가지 요소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이 모두가 합쳐지면서 부정적인 고정관념이 생긴다. 이 관념에 반대되는 긍정적인 인상이 다소간 고상한 일을 하는 백인, 남성 공장 노동자의 노동계급 전투성이다. 유일한 ‘진정한 부의 생산자’로 여겨지는 이들 남성의 노동은 중요하고 고귀한 것으로 평가될 뿐 아니라 숙련 노동으로 받아들여진다. 게다가 미래 사회주의 사회에서 노동이 어때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일종의 모델로 여겨진다. 대조적으로, 보통 서비스 업종에 속하는 다른 종류의 노동은 기생적이라고 노골적으로 평가 받지 않을지언정 노예적이고 고귀하지 못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게다가 그것은 비숙련 노동이며 여성적인 데다가 진짜 남자가 할 만한 것이 아니라고 평가된다.” (110~111쪽)

 

“통계를 보면 실제 노동계급 구성은 이런 이미지와 배치된다. 영국에서는 노동자의 40% 이상이 여성이며, 전체 노동자 가운데 서비스업 종사자의 비중은 이보다도 높다. 그런데도 이런 이미지가 좀더 추상적인 수준에서는 사회주의 이념과 어색하게 공존한다. 우리는 과녕 보살핌이 사회화된다면 그 형태는 결국 서비스 형태가 아닌가? 작업복 입은 남성 공장 노동자를 이런 전망에 어떻게 꿰맞춰야 하는가? 이런 모순의 해결은 단순한 문제가 아닌데, 좌파 진영에서 최근 몇 년 동안 이 문제를 꽤 고민했음이 명백하다. 그들의 딜레마는 다름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 사회적으로 유용한 대안 생산물을 얻을 때 느끼는 즐거움을 설명해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만약 이런 ‘대안’ 생산물을 적시할 수 있다면, 이 노동자들을 다시 공장으로 보내 자신들의 숙련 기술을 이용해 필요한 사용가치를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남성 노동자들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처지로 전락함으로써 자신들의 남성성을 망치는 걸 피하면서도 자신들도 보살핌을 베푼다는 것을 과시할 수 있다.” (111~112쪽)

 

“이런 해법은, 상품생산을 더욱 늘리는 것이 사회주의적 미래로 나아가는 것이라는 생각(생산력주의)을 강화시켜주는 생각이자 맑스주의자들이 공동적으로 갖고 있는 생각과도 충돌하지 않고 어울리는 생각이다. 그 생각이란, 과학과 기술은 가치중립적인 진보의 추진력이며 힘닿는 한 빨리 개발해서 언제인가 무르익으면 노동계급이 완전히 쟁취해서 모든 이들에게 여가와 풍요를 제공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관념이다.” (112쪽)

 

“이 관점에서 보면 기술은 건설이 아니라 파괴를 위해 개발됐다. 개념과 구상 자체가 반여성적, 반노동자적이며 현재의 형태를 그대로 이어받아서는 생명과 건강과 일상의 삶에 엄청난 위협을 주는 걸 피할 수 없다. 과학은 신비화됐고 타당하지 못하다. 또 과학의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건 개발비용을 대는 계급이며 그들은 개발 방향을 지시한다. 이런 비판은, 상품을 더 생산하면 필연적으로 우리가 사회주의를 향해 한 발자국 나아가게 된다는 생각에 반대해 우려를 제기할 근거를 넓혀 준다.” (112~113쪽)

“그렇다면 우리가 나아갈 길은 어딘가?” (113쪽)

 

“일자리 창출과 사회적 수요 충족을 동시에 추구하는 미래 전략을 마련하려고 할 때, 생산물이 필연적인 답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해서는 안 된다. 만약 이 전제가 맞는다면 십중팔구 현재 자본주의 안에서 작동하고 있는 세력들이 답을 찾을 것이다. 반대로 우리는 아직 충족되지 않은 욕구를 분석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이는 욕구를 충족하지 못한 이들이 자신들의 조직을 통해서 스스로 제시하는 생각에 귀 기울이는 걸 뜻한다. 임신한 여성이 태아 검사를 더 자주 하길 원하는가? 중증 장애인들이 새로운 장비를 원하는가, 아니면 돈, 혹은 재가(在家) 도우미를 선호하는가, 그것도 아니면 다르게 설계된 집을 원하는가? 살림살이에는 실제로 어떤 노동이 요구되며 그 노동을 가장 잘 사회화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서비스 산업이 날로 자본 집약화하고 셀프서비스 경제화하는 경향을 뒤집을 수 있나? 그리고 어떻게 하면 노동과정을 더 만족스럽고 안전하게 바꿀 수 있는가?” (113~114쪽)

 

“열악한 환경의 저임 노동이 존재하는 새로운 게토를 만들어내지 않고 이런 욕구를 충족시키는 해법을 찾아내려면, 소중하게 간직한 상당수의 생각에 도전하고 새로운 조직화 방식을 개발해야 한다. 특히 사회주의자들은 성적, 인종적 노동 분화에 대해 문제를 제기해야 하며 이를 극복할 방법을 찾아나서야 한다. 또 지역 공동체와 서비스 분야 노조 내부에서 전통적으로 침묵해 왔고 소외됐던 이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조직화를 돕는 걸 최우선 과제로 삼기 시작해야 한다.” (1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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