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서양 미술사 - 14장 전통과 혁신 2

14장. 전통과 혁신Ⅱ(15세기 : 북유럽)

 

▲ 북유럽과 이탈리아 미술의 차이점 ▼

- 이탈리아 : 천상의 세계와 지상 세계의 조화와 통일성에 바탕

- 북유럽 : <단순성>(건축)과 <범신론 성격에 따른 구체적이고 세세한 묘사>(회화)에 바탕

- 이 둘은 모두 신플라톤주의 또는 헤르메티시즘의 두 측면을 각각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 “북유럽과 이탈리아의 차이점이 가장 분명하게 보이는 분야는 건축이었다. …… 이탈리아 이외의” “나라에서는 15세기 내내 전 세기의 고딕 양식을 계속 발전시켜 갔다. 이러한 건물들의 형태는 뾰족한 아치나 공중부벽과 같은 고딕 건축의 전형적인 요소들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었”지만, “15세기에는 복잡한 트레이서리와 환상적인 장식에 대한 14세기의 취향이 더욱 강해졌다.” (269쪽)

 

 

▲ 15세기 북유럽 건축의 특징 ▼

- “도판 174(<루앙의 법원성의 안뜰>)의 루앙의 법원 건축물은 ‘플랑부아양(Flamboyant : 타오르는 불꽃 모양) 양식’이라고도 불리는 프랑스 고딕 양식의 최후를 보여 주고 있다.” “우리는 이런 건축물들에서 고딕 건축의 마지막 가능성까지 다 소진해 버렸으므로 그 반작용이 조만간 뒤이어 일어날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사실 이탈리아의 직접적인 영향이 없었어도 북유럽의 건축가들이 보다 더 큰 단순미를 갖는 새로운 양식을 발전시켰으리라는 징후가 보이기도 한다.” (269쪽)

- 이러한 특징은 영국에서 이른바 “‘수직 양식(Perpendicular style)’으로 알려진 고딕 양식의 마지막 단계에서 나타나고 있다.” (269쪽) 도판 175(<케임브리지 킹스 칼리지 예배당>)을 보자. “측랑이 없기 때문에 기둥과 가파른 아치도 없다.” “일반적인 구조가 대단히 소박하고 어찌 보면 이전의 대성당들보다 더 세속적인 인상을” 준다. (270쪽)

- 이러한 세속성은 회화에서의 구체적이고 세세한 묘사와 연결된다. 다른 한편 부채 모양의 궁륭(fan-vault)(천장 부분을 뜻함)은 천상계와 지상계의 결합이 자유로운 상상의 ‘규칙’에 따라 자유롭게 조화되고 있음을 볼 때 이탈리아 건축 양식의 영향을 엿볼 수 있다.

 

 

▲ 15세기 중엽 독일 화가 슈테판 로흐너(Stefan Lochner : 1410?-51) ▼

- 로흐너는 “반 에이크의 혁신을 보다 더 전통적인 주제(종교적인 이야기)에 활용한 미술가”였으며 “어느 정도 북유럽의 프라 안젤리코라고 말할 수 있다.” (273쪽)

- 도판 176(<장미 그늘 아래의 성모>)을 살펴보자. 먼저 이 그림을 고딕 양식의 <윌튼 두폭화>(pp.216-7, 도판 143)와 비교해 보면, “두폭화의 인물들은 다소 평면적으로 보인다”고 할 수 있는 데 반해, 이 그림의 인물들은 입체적이며 따라서 현실적이다.

- 로흐너는 얀 반 에이크의 신플라톤적인 경향을 받아들여서 이 그림의 인물 배치를 플라톤의 이데아 구조에 따라 하고 있다. The One과 두 천사가 삼각형의 구도로 배치되어 있고,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를 중심으로 둘씩, 셋씩 쌍을 지어서 원 형태의 구조로 배치되어 있다.

- 그러나 이 인물들의 표정은 두폭화의 인물들의 표정처럼 거의 아무런 표정 변화가 없다. 이는 여전히 중세 고딕 양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 북유럽의 다른 화가들 ▼

- “북유럽의 다른 화가들은 오히려 베노초 고촐리와 비견된다.” (273쪽)

- 도판 177(<사를마뉴 대제의 정복> 중 헌정 페이지>)을 살펴보자. 이 그림은 “당시의 중세 도시의 광경을 생생하게 그린 그림이다.” (274쪽) 이 그림의 특징은 정확성, 유쾌함과 유머, 익살의 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 이탈리아 미술과 북유럽 미술의 혼합1 - 장 푸케(Jean Fouquet : 1420?-80?) ▼

- 그는 “젊은 시절에 이탈리아 방문했다.” (274쪽)

- 도판 178(<성 스테파누스와 함께 있는 프랑스 샤를 7세의 재무대신 에티엔 슈발리에>)를 살펴보자. 이 그림의 인물 표정은 <장미 그늘 아래의 성모>나 <윌튼 두폭화>의 인물 표정처럼 거의 무표정하다. 그러나 장 푸케는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가 했던 것처럼(p.261, 도판 170) 빛을 사용하고 있다.” (274쪽) 그리하여 명암을 통해 인물들을 “마치 조각처럼 다듬어진 것처럼” (274쪽) 묘사하였다. 그런데 “모피, 돌, 옷감, 대리석 등 사물의 질감과 표면에 그가 갖는 관심을 보면 그의 미술이 얀 반 에이크의 북유럽 전통의 영향 아래 있었음을 보여 준다.” (274쪽)

 

 

▲ 이탈리아 미술과 북유럽 미술의 혼합2 - 로지에르 반 데르 웨이든(Rogier van der Weyden : 1400?-64) ▼

- “이 거장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것이 없다.” (275쪽)

- 도판 179(<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를 살펴보자. “우리는 로지에르가 반 에이크와 같이 머리카락 하나하나, 바느질 솔기 하나하나 등 모든 세부를 충실하게 재현할 수 있었음을 본다.” (275쪽)

- 그런데 이 그림에서의 인물들의 배치를 보면, “폴라이우올로가 직면했던 문제들(p.273, 도판 171)을” “현명”하게 해결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예수의 몸을 중심으로 여러 사람들이 제각각의 포즈와 표정을 다양하게 나타내고 있다. 이는 근대 부르주아 시대의 서막을 알렸던 중세 도시 사회의 인간관계가 ‘어떤 규칙성’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을 나름대로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사람들의 포즈와 표정들은 제각각이지만, 그 포즈와 표정들은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의 몸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 이탈리아 미술과 북유럽 미술의 혼합3 - 후고 반 데르 후스(Hugo van der Goes : 1482년 사망) ▼

- 그는 “15세기 후반에 가장 위대한 플랑드르의 화가 중의 한 사람”이었다. (276쪽)

- 도판 180(<성모의 임종>)을 살펴보자. “무엇보다 우리를 감동시키는 것은 성모의 임종을 지켜보고 있는 12사도들의 다양한 반응(조용하게 생각에 잠겨 있는 사람, 격렬하게 슬퍼하는 사람과 경솔하게 하품을 하는 사람의 표정)을 묘사한 그 훌륭한 솜씨다.” (276쪽) 이는 로지에르와 같은 업적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 그런데 로지에르의 그림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그림에서도 여전히 <여백 또는 빈 공간>을 찾아보기 힘들다. 왜냐하면 이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우주(세계)는 꽉 차 있는, 즉 빈 공간이 없는 세계였고, 따라서 빈 공간(여백)을 남겨 두는 것은 현실(세계)이 정확한 사실 묘사가 아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 독일의 목각사 바이트 슈토스(Veit Stoss : 1533년에 사망) ▼

- “조각가들과 목각사들에게는 고딕 양식을 새로운 형식 속에 잔존케 한 로시에르의 업적이 특히 중요한 것으로 판명되었다.” (279쪽)

- 도판 182(<성모 마리아 교회당 제단>)를 살펴보자. 이 목각 제단의 각 장면은 “별 어려움 없이” 그 “의미를” “읽을 수 있”도록 배치되어 있다. 그리고 그 의미를 알아볼 수 있도록 목판에 새겨진 각 인물들의 표정(도판 183(<사도의 머리 부분>)을 참조)과 배경의 특징들이 세심하고 현실감 있도록 처리되어 있다.

 

 

▲ 중세 미술과의 단절 과정1 - 목판화와 인쇄술의 발전 ▼

- “15세기 중엽 독일에서는” “대단히 중요한 미술 기법이 발명되었”는데, 이 기법이 바로 목판 인쇄이다. “이로써 그림을 인쇄하는 것이 책을 인쇄하는 것보다 수십 년 앞서게 되었다.” (281쪽)

- 그런데 목판화는 그 특성상 “그림을 인쇄하는 데는 조잡한 방법이었다. 이러한 조잡함 그 자체가 사실 효과적일 때도 있었다. 즉” “윤곽이 단순하고 수법에 있어서는 경제적인 것이었다.” (282쪽)

- “그러나 그들은 세부를 완벽하게 묘사할 수 있는 그들의 능력과 관찰력을 보여 주고 싶어 했다.” 그렇지만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목판화가 적합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나무 대신 동판을 사용했다.” (282쪽)

 

 

▲ 중세 미술과의 단절 과정2 - 마르틴 숀가우어(Martin Schongauer : 1453?-91) ▼

- 숀가우어는 “15세기의 가장 위대하고 유명한 동판화가이다.” (283쪽 참조)

- 도판 185(<거룩한 밤>)를 살펴보자. “네덜란드의 대가들과 마찬가지로 숀가우어는 그 장면에 있는 모든 작은 일상적인 세부를 표현하고자 하였”다. (283쪽)

- 또한 이 그림에서도 빈 공간 또는 여백이 보이지 않는다. 숀가우어는 이러한 빈 공간 여백을 남기지 않기 위해 “폐가를 그림의 무대로 선택” (284쪽)하였다. 다른 한편으로 폐가의 무너진 돌담을 통해 기독교를 주제로 한 이 그림을 입체적이며 보다 현실감 있게 볼 수 있다.

- 그러나 “이 두 대각선은 성모의 머리에서 교차하는데 그 부분이야말로 이 판화의 진정한 중심”이 되는데, 이러한 중심은 기하학적이고 수학적이며 평면적이다. 이런 점에서 보자면 중세 전통의 미술 관념이 아직도 남아 있음을 볼 수 있다.

 

 

▲ 중세 미술과의 단절 과정3 - 동판화와 인쇄술의 발전 ▼

- 동판화를 통한 “그림의 인쇄는 유럽의 다른 지역에서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의 승리를 보장해” 주었으며, “북유럽의 중세 미술에 종지부를 찍게 만든 여러 가지 원동력 중의 하나”가 되었다. (285쪽)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