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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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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대학생씩이나 된 아이들에게 자란다는 표현은 격에 맞지 않은 줄 알면서도,
그래서 아이들이 우리들을 초등학생쯤으로 보는 것 아니냐고 티박을 놓을 줄 알면서도,
그냥 자란다는 표현을 쓰고 싶다.
굳이 이 표현을 쓰고자 하는 것은
누구나 죽을 때까지 자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들이 조금씩 웃기 시작하고 자신의 말을 하기 시작했다.
이건 다른 때 비하면 엄청나게 빨리 일어난 것이라 할 수 있다.
보통 한 달 반 정도 지나야 입을 열기 시작하는데...
이런 것은 아이들의 이름을 잘 외워서 그 이름을 불러주기 때문이리라.
사실 이름을 빨리 외울 수 있었던 것은 학생 수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역사철학 수업은 4명, 법대 지정교양 수업인 논리와 작문 수업은 2반인데,
한 반은 29명, 다른 한 반은 6명이다) 고맙게도 아이들이 처음 자신이 앉았던
그 자리에 계속 앉았기 때문이다(내가 그렇게 시킨 게 절대 아니다).
그렇게 자신의 이름을 불러 주고 말을 시킬 때 처음에는 수줍어 하다가
지금은 목소리에 힘도 들어가고 자신감이 있어 보이더라.
그러면서 눈망울이 또록또록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노래도 있지만, 그거 정말 사실이다.
그 눈망울을 안 본 사람은 사실 잘 모른다.
보는 사람을 얼마나 설레이게 하는지...
이건 행인 님도 마찬가지일 게다*^^*...(맞지요, 행인 님?^^)
이럴 때 선생이란 직업이 얼마나 축복 받은 직업인지...
수업 시간에 아이들과의 대화라는 게 질문하고 대답하는 것이 거의 대부분이지만,
질문에 대답하는 아이들에게 똑바로 쳐다보면서 <잘 했다, 오케이, 굿>을 하면,
아이는 수줍어하면서도 어깨를 으쓱거린다.
(요게 또 점수와 연관되기도 하지만서도 말이다*^^*...>
그런 후에 아이들은 내가 하는 말 중에서 무의식적으로 실수로 한 말들은 칼 같이 잡아낸다.
오늘도 한 건 당하고 왔다!!
(칠판에 뭔가 잘못 썼다가 바로 지적을 당했다!!)
그런데 하나도 기분 나쁘지 않고 오히려 기분이 좋아서 어깨를 으쓱거릴 정도다.
(선생이 지가 틀려 놓고서도 어깨를 으쓱거리다니, 참으로 한심하지 않은가^^...)
그러면서 교실은 웃음이 넘쳐난다.
得天下英才而敎育之 三樂也라.(孟子 盡心 章 上)
(천하의 영재를 얻어서 교육함이 세 번째 즐거움이다.)
이 기세에 기름을 부어야 할 것이다.
그 기름은 이른바 야자!!!
(야자란 야간자율보충학습의 준말이다^^)
야자가 무엇인지 감비 님은 경험을 하셨다.
궁금하신 분은 감비 님께 여쭈어 보세용^^...
다음 주 야자가 기대된다.
아이들은 훨씬 더 신랄하고도 비판적으로 나를 교육할 것이다.
아기다리고기다리... 야자...
혹시 참여하시고 싶은 분은 덧글 다시라.
아이들에게 허락을 받도록 최선을 다해 보죠...ㅋ~~~...
오늘 비가 오고 바람도 좀 불고, 날씨가 쌀쌀해지니까 뭐 마음이 좀 거시기하다.
그러다보니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며칠 전에 선배와 함께 한 술자리에서 불혹에 관해 이야기한 것이 떠올랐다.
불혹이란 어떠한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40대를 이르는 말이다.
그렇지만 불혹에 관한 이러한 뜻이 적절한 것이 아닐 것 같다는 것이 그 선배와 내가 얻은 공통의 결론이었다.
그 결론인즉슨, 불혹이란 어느 누구도 유혹(?)해 주지 않는다는 의미로 써야 한다는 것이었다.
어느 누구도 유혹해 주지 않는다는 것, 참으로 무서운 것이다.
유혹해 주지 않는다는 것은 유혹해 줄 사람과 별로 인간관계를 맺고 싶지 않다는 말과 같다.
지금 이 시간에도 그 선배는 혼자서 산을 갔다온 후에 혼자서 어디에선가 술을 먹고 있을 것이며, 나는 여기서 이렇게 불질을 하고 있다.
40대에는 왜 서로서로가 유혹을 하지 않는 것일까...
아니 40대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유혹을 하지 않는 것일까...
너무 일찍 늙어 버려서 쉰 내가 풀풀 나서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어서일까^^...
얼핏 생각하기에 그 이유는 이런 것이 아니지 않을까...
오늘날 자본주의 시대에 사는 사람들은 무한한 적대적 경쟁 시대에 살고 있다.
여기서 살아 남기 위해서는 강해야 한다.
1등이 되어야 한다.
남을 죽이지 않으면 자신이 죽는다.
약육강식의 생존 양식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은 무의식적으로 이러한 생존 양식을 체화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지...
그러니까 남에게 어쨌거나 약점을 잡히지 말아야 한다. 약하게 보여서는 안 된다.
유혹해 달라고 하는 것은 자신의 나약함을 드러내는 일이다.
특히 가부장적 조직에서는 이 정도가 더 심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 놓고 말한다는 것이 점점 힘들지 않는가 생각해 본다.
나이가 들어서도 젊었을 때와 같이 아프다고 말하게 되면, 겉으로야 네가 많이 아프구나
하겠지만 돌아서서는 나잇살 먹어서도 아직 철딱서니가 없다고 소문나기 십상이다.
그러면 은근하게 사람들에게 따 당하게 된다.
왜냐하면 그 아픔이라는 것이 남의 것이 아니라 곧 자신의 것이고, 자신의 아픔을 잊고자 하는데 그 아픔을 기억하도록 만들어 주는 사람이 싫어서일 것이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이 그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 그 아픔은 배가 되어 돌아오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러니 자꾸 외로워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
특히 권력을 가졌다고, 어느 정도의 사회적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더욱...
불혹이란 참으로 외로운 일이다.
이 외로움을 어떻게 해소해야 할까...
내 생각엔 수다를 떨어야 외로움이 해소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침묵은 금이 아니다!!!
침묵은 외로움, 우울증을 낳는 병원균이라 생각한다.
지금 그 선배에게 전화해서 수다를 떨어보자.
난 권력을 가지고 있지도, 일정한 사회적 지위도 가지고 있지 않은 소시민이지 않는가*^^*..
지금 책가방을 싼다.
불혹은 각성하라! 각성하라! 각성하라!
불혹에 대한 투쟁 승리!
반 불혹 집회로!
흐~~~
개강을 한 지도 열흘이 지났다.
가을하늘처럼 아이들의 모습도 싱그럽기 그지없다.
아이들 없는 학교는 앙코 없는 찐빵이요, 오아시스 없는 사막이고,
실 없는 바늘이다.
아이들의 싱그러움은 학교를 싱그럽게 만들고 선생을 싱그럽게 만든다.
또한 한 학기 동안 아이들이 푸르고 싱그러워야
선생도 한 학기 동안 싱그러워질 수 있다.
교육이란 아이들과 선생 모두 서로에게 싱그러운 존재로 만드는 일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아이들과 선생 모두 서로에게 싱그러운 존재가 될 수 있을까?
누가 누구에게 먼저 말을 걸어야 하는 것일까?
그것은 아무래도 사회적으로 권력을 쥔 선생이 먼저 말을 건네야 하는 것이지 싶다.
말을 건넨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말을 건네기 위해서는 선생은 끊임없이 수신(修身)해야 한다.
수신이란 말 그대로 끊임없이 자신을 갈고 닦는 것이다.
즉 자신을 잘 통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선생은 아이들을 만나기 전에 몸과 마음의 상태가 최상의 상태로 만들어야 한다.
이 상태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수업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아이들은 점쟁이보다도 더 잘 선생의 상태를 잘 안다.
그리고 개코보다도 더 정확하게 선생의 냄새를 잘 맡는다.
아이들은 선생의 눈빛이나 옷 입은 상태를 보고서
선생의 몸 상태나 마음의 상태가 어떤지를 직감적으로 알아낸다.
만일 선생이 몸과 마음의 상태가 최고조가 아닐 경우
아이들은 선생 말이나 수업에 집중하지 않는다.
그러면 그날 수업은 그걸로 끝이다.
이런 상태가 두서너 번 되풀이되면 한 학기 수업은 말 그대로 망한 것이다.
아이들은 선생이 자신들에게 집중해 주길 바란다.
그런데 선생이 몸과 마음을 최상의 상태로 만들지 못하면
아이들에게 집중을 하지 못하게 된다.
선생의 몸과 마음이 콩밭에 가 있으면 아이들의 몸과 마음도 콩밭에 가기 마련이다.
선생이 몸과 마음의 상태를 최상의 상태로 만들어서 자신들에게 집중해 나갈 때
아이들은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게 된다.
그러면서 선생과 아이들 사이에는 믿음이 쌓여가게 된다.
믿음이 쌓여갈 때 아이들은 공부에 집중하게 되고 자신의 삶에 대한 의식을
가지게 되고 자신의 삶에 대해 집중한다.
그러면 아이들은 푸르고 싱그러워지면서 아주 활발해진다.
그러면 이러한 아이들의 상태가 선생의 몸과 마음의 상태를 더욱더
최선의 상태로 끌어올리는 원동력이 된다.
맑스가 말한 대로 교육자가 교육을 받게 되는 것이다.
또한 이것이 민주주의이며 이 민주주의를 아이들과 선생 모두 일상화시키게 되는 것이다.
선생의 현장 활동이란 다름 아닌 학교에서 아이들과 이러한 민주적 관계를
지속적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런데 지난 1학기에는 나의 마음이 콩밭에 가 있음으로 해서 아이들의 마음도
콩밭으로 갔고, 그래서 수업은 거의 엉망의 상태가 되었다.
이는 아이들의 강의 평가에 고대로 나타나게 되었다.
거의 꼴찌에 가까운 평가를 받았다.
이것은 고통이었고 슬픔이었으며 나의 삶에 많은 생채기를 남기는 것이었다.
이제 이번 학기에는 내 삶에 상처를 남기지 말아야 할 것이다.
내 삶에 상처를 남기는 것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내 아이들과
나를 알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상처를 남기는 일이 된다.
자신의 고통을 아이들에게 그리고 나를 아는 모든 사람에게
떠넘기는 어리석고 사악한 짓은 하지 말아야 한다.
가을하늘처럼 푸르고 가을햇살처럼 청명한 2학기를 만들어야지.
예전에 끄적였던 것이 생각나네요.
그래서 그냥 올려 봅니다,
아이들을 위해, 나를 위해 나를 장작으로 만드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기 위해서^^...
# 박남준 시인의 <흰 부추꽃> 노래를 듣고 # - 2001. 3. 13. 화 -
그래도 그때
푸르던 때 있었습니다
해와 달 별 서슬 푸르게 차갑던 시절
서툴던 우리 삶 어쩔 줄 몰라
상처 주고 상처 받고 고통 받고 고통 주며
슬픔으로 얼룩지던 밤
그렇지만
그 상처 고통 슬픔 옹글옹글 모아
소주 막걸리로 빚어
서로에게 힘과 양식되어
삼십촉 희미한 백열등 희망과 사랑으로
서로 어깨 맞대고 보듬으며
서러운 노래
시리도록 푸르게 불렀던 때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
서투른 삶 더 서툴어지고
옹글옹글 모여 희망과 사랑을 빚었던
그 상처와 고통과 슬픔은
휘황찬란한 네온사인 밤거리에서
쓰레기되어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다
무심한 발길에 걷어 채이고
행여 묻을세라 청소부가 쓰레기통에 처박고
이 상처 고통 슬픔 모아
도끼 만들어
세상을 도끼질하고
나를 베어내어
아궁이 장작불에 던져져
세상 상처 고통 슬픔 빚어
화롯불 따스함 전해 줄 수 있을지
희디흰 재로 뿌려져
푸른 숲이 될 수 있을지
그래도
이 세상 도끼질하여
나를 베어 장작 만드는 일
게을리하지 말아야겠습니다
그때
푸르던 때 있었습니다
좀전에 연구실에서 강의 준비하면서 책을 읽다가
연구실 밖에 나가 담배 한 대 피우던 참이었다.
(연구실은 내 이름으로 된 연구실이 아니다. 한국학술진흥재단 프로젝트에
선정된 여러 선배들이 학교로부터 배정받은 연구실인데,
이 선배들이 학교에 거의 나오지 않아서 자리 지킴이로 나와서
공부하는 곳이다.)
그런데 초등학교 1학년 쯤 되어 보이는 아이들이 재잘거리면서 엄청 모여드는 것이었다.
왜 그런가 봤더니 연구실이 속해 있는 문과대 건물에서 아이들의 한자 능력 검정 시험이 있는 것이었다. 교회 차량에서 내린 아이들은 교회 선생님(?, 요즘은 교회에서도 아이들을 모으기 위해 한자도 가르치는 모양인가?)이 나눠 주는 수험표를 들고 고사장 안으로 하나둘씩 들어가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1학년 아이가 한자의 뜻을 알면 얼마나 안다고 그 능력을 측정한다고 저 난리들인지... 학부모의 교육열(?)이 눈물겹기까지 하다.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좀더 좋은 곳에 취직을 해서 생존경쟁에 밀리지 않고 먹고살 수 있기를 바라는 부모의 심정이란 오죽할까...
그런데도 한 사람의 교육자로서 안타깝고 씁쓸한 느낌은 어쩔 수가 없다.
이건 사교육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문제를 넘어서서(그렇다고 사교육 문제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저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학교와 집이라는 사회의 모든 영역(아이들에게는 학교와 집은 거의 대부분의 인간 관계를 맺는 곳이 아닌가 한다)에서 자본주의의 세례를 받는다는 것, 그래서 아이들의 미래뿐만 아니라 현재 인간해방, 여성해방, 노동해방 등의 해방을 꿈꾸는 사람들의 미래도 불투명해 보인다는 것이 너무 서글프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또한 서글프고 자괴감이 생기게 만드는 것은 그 아이들이 앞으로 나의 밥줄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11월에 고3 수능이 끝나면 빛을 갚기 위해 돈을 벌러 이러한 사교육 시장으로 가야 하는 처지다. 사실상 대부분의 시간 강사들이 적게는 기백만 원에서 기천만 원의 빛을 지고 살아서 어쩔 수 없이 사교육 시장으로 나가고 있는 실정이다.
만일 사교육 시장으로 안 나가려면 정규직 교수가 되는 길밖엔 없는데, 이게 낙타 바늘구멍 통과하기보다도 더 어렵다는 것이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정규직 노동자가 되는 것만큼이나 말이다.
이것이 자본주의 체제 아래 먹고사는 것과 관련해서 나타나는 내 존재의 실존적(?) 모순이 나타나는 형태이다. 비단 나뿐만이 그러랴.
이 모순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이디서부터 이 모순의 매듭을 풀어야 할 것인가?
이 모순을 풀어야 하는 과제가 나의 업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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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 주 금요일(9월 29일, 늦은 6시 30분) 건대 구정문(어린이회관 쪽 문) 앞 반달집에서 있습니다. 감비 님은 아실 걸요*^^*...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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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겁게 웃게 됩니다. 역시 그런 맛을 느끼는 분과 그렇지 않은 사람과의 차이가 나오는군요.저는 제 수업에 참여하는 학생들을 친구 내지는 동료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다 한 번 튀어나오는 그들의 말에 영감을 얻기도 하고 제가 모르는 것을 배워가기도 하니까요. 사실 제가 학생들보다 알아야 얼마를 더 알겠습니까? ㅎㅎ
금요일 시간이 되시면 1시쯤 점심을 같이 하시는 것은 어떨까요? 시간만 괜찮으시면 1시까지 학교로 가도록 하겠습니다. '야자'에 대한 궁금증이 불타오르지만 하필 그 시간에 스터디가 있어서 궁금증을 좀 더 간직하고 있어야 하겠군요.
그럼 답글은 제 집으로 오셔서 남겨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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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금요일 1시에 법대 앞에서 뵙겠습니다. ^^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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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칭찬 좋아해요-칭찬만큼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좋은 동력은 없다고 생각됩니다.
곰탱이님은 진짜 사랑스러운 선생님이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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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고> 과찬의 말씀이십니다^^(아~ 쑥스러워라...)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