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2016/07

5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16/07/09
    학익진 그리고 코기토
    곰탱이
  2. 2016/07/07
    결정된 공포 그리고 우리의 삶
    곰탱이
  3. 2016/07/06
    수(守)와 공(攻), 그리고 그 매개로서의 죽음
    곰탱이
  4. 2016/07/04
    성실(誠實), 물(水), 게릴라 전의 한계
    곰탱이
  5. 2016/07/02
    바램, 위로 그리고 결정론..
    곰탱이

학익진 그리고 코기토

<칼의 노래>(김훈, 생각의 나무, 2003)에서 발췌했다.

 

=============================================================

 

- 학익진

"일자진에서 학익진으로 전환하는 수상 훈련은 더디게 진전되었다. 나의 함대가 도주하고 적의 함대가 따라올 때, 적을 적의 사정거리 경계점까지 유도해 놓고 갑자기 나의 함대를 거꾸로 돌려 공세로 바꾼다는 것은 힘들지만 가능한 일일 것이었다. 그때, 나의 모든 함대는 거꾸로 돌아선다. 선두는 후미가 되고 후미는 선두가 된다. 선두나 후미는 본래 없는 것이다. 선두는 후미가 되고 후미는 선두가 된다. 선두나 후미는 본래 없는 것이다. 선두는 돌아서서 후미가 되고 후미는 돌아서서 선두가 된다. 선두는 돌아서면서 양쪽으로 펼쳐 날개를 이룬다. 날개는 적을 멀리서 둘러싼다. 제2열과 제3열은 빠르게 나아가면서 양쪽으로 펼친다. 제2열은 오른쪽 날개에 제3열은 왼쪽 날개에 가세한다. 제4열 제5열 제6열은 양쪽 날개의 분기점으로 집중해서 중군(中軍)을이룬다. 중군은 새의 가슴이다. 새는 가슴 근육으로 날개를 움직인다. 대장선은 중군의 한가운데 위치한다. 제7열 이후는 중군의 뒤쪽을 받친다. 중군에서 양쪽 날개의 끝까지는 낮에는 깃발로, 밤에는 쇠나팔로 연결한다. 날개는 가볍고 빠르며, 중군은 무겁고 강력하다.

날개는 멀리서부터 적을 조인다. 적은 집중되고 나는 분산된다. 집중된 적은 분산된 나를 향해 쏜다. 적의 화력은 집중에서 분산으로 흩어진다. 분산된 나는 집중되 적을 향해 쏜다. 나의 화력은 분산에서 집중으로 모인다.

날개는 더욱 다가온다. 적의 화력은 전방위를 감당해야 한다. 나의 화력은 초점을 이룬다. 중군을 휘몰고 들어가 분산된 적을 부순다. 적은 전방위를 쏘고 나를 한 방위를 쏜다.

적은 계통을 잃는다. 적은 흩어진다. 흩어지면서 중군의 외곽을 우회하는 적들을, 제7열 이후가 다시 막아선다. 진은 거대한 새처럼 물 위에서 너울거린다. 너울거리면서 적을 가슴 깊이 품는다. 품어서 죽인다. 펼쳐서 가두고, 조여서 품고, 품어서 죽인다. 적을 품어서, 적의 안쪽에 숨어 있는 적의 죽음으로 적을 죽인다." (93~94쪽)  

 

 

- 코기토

"나의 적은 전투 대형의 날개를 펼치고 눈보라처럼 휘몰아 달려드는 적의 집단성이기에 앞서, 저마다의 울음을 우는 적의 개별성이었다. 그러나 저마다의 울음을 우는 개별성의 울음과 개별성의 몸이 어째서 나의 칼로 베어 없애야 할 적이 되어야 하는 것인지를 나는 알 수 없었다. 적에게 물어보아도 적은 대답할 수 없을 것이었다." (113쪽)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결정된 공포 그리고 우리의 삶

<칼의 노래 2>(김훈, 생각의 나무, 2003)에서 발췌했다.

 

===========================================================

 

- "끼니는 어김없이 돌아왔다. 지나간 모든 끼니는 닥쳐올 단 한 끼니 앞에서 무효였다. 먹은 끼니나 먹지 못한 끼니나, 지나간 끼니는 닥쳐올 끼니를 해결할 수 없었다. 끼니는 시간과도 같았다. 무수한 끼니들이 대열을 지어 다가오고 있었지만, 지나간 모든 끼니들은 단절되어 있었다. 꿂더라도, 다가오는 끼니를 피할 수는 없었다. 끼니는 파도처럼 정확하고 쉴새없이 밀어닥쳤다. 끼니를 건너뛰어 앞당실 수도 없었고 옆으로 밀쳐낼 수도 없었다. 끼니는 새로운 시간으리 밀물로 달려드는 것이어서 사람이 거기에 개입할 수 없었다. 먹든 굶든 간에, 다만 속수무책의 몸을 내맡길 뿐이었다. 끼니는 칼로 베어지지 않았고 총포로 조준되지 않았다." (48~49쪽)

 

 

- 우리의 삶 1 : 죽음을 가로지르기

"나는 죽음을 죽음으로써 각오할 수는 없었다. 나는 각오되지 않는 죽음이 두려웠다. 내 생물적 목숨의 끝이 두려웠다기보다는 죽어서 더 이상 이 무내용한 고통의 세상에 손댈 수 없게 되는 운명이 두려웠다. 죽음은 돌이킬 수 없으므로, 그것은 결국 같은 말일 것이었다. 나는 고쳐 쓴다. 나는 내 생물적 목숨의 끝장이 결국 두려웠다. 이러한 세상에서 죽어 없어져서, 캄캄한 바다 밑 뻘밭에 묻혀 있을 내 백골의 허망함을 나는 감당할 수 없었다. 나는 견딜 수 없는 세상에서, 견딜 수 없을 만큼 오래오래 살고 싶었다. 바다에서, 삶은 늘 죽음을 거스르고 죽음을 가로지르는 방식으로만 가능했다. 내어줄 것은 목숨뿐이었으므로 나는 목숨을 내어줄 수는 없었다. 죽음을 가로지를 때, 나는 죽어지기 전까지는 죽음을 생각할 수 없었고 나는 늘 살아 있었다. 삶과 분리된 죽음은 죽음 그 자체만으로 각오되어지지 않았다." (55~56쪽)

 

- 우리의 삶 2 : 이동

"삶은 집중 속에 있는 것도 아니었고 분산 속에 있는 것도 아니었다. 모르기는 하되, 삶은 그 전환 속에 있을 것이었다. 개별적인 살기들을 눈보라처럼 휘날리며 달려드는 적 앞에서 고착은 곧 죽음이었다. 달려드는 적 앞에서 나의 함대는 수없이 진을 바꾸어가며 펼치고 오므렸고 모이고 흩어졌다. 대장선이 후미에 있을 때 이물 너머로 바라보면 함대는 적과 마주잡고 쉴새없이 너울거리며 춤을 추는 무도자처럼 보였다.

나를 이동시키면서 고정된 적을 조준하는 일은 어려웠고 나를 고정시키고 이동하는 적을 조준하기도 어려웠다. 나를 이동시키면서 고정된 적을 조준하는 일은 더욱 어려웠으나, 모든 유효한 조준은 이동과 이동 사이에서만 이루어졌다. 내가 적을 조준하는 자리는 적이 나를 조준하는 표적이었다. 함대가 이동할 때, 적을 겨누는 나의 조준선은 커다랗게 원을 그리며 회전했다." (58~59쪽)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수(守)와 공(攻), 그리고 그 매개로서의 죽음

<칼의 노래 2>(김훈, 생각의 나무, 2003)에서 발췌했다.

 

==============================================================

 

- "칼로 적을 겨눌 때, 칼은 칼날을 비켜선 모든 공간을 동시에 겨눈다. 칼은 겨누지 않은 곳을 겨누고, 겨누는 곳을 겨누지 않는다. 칼로 찰나를 겨눌 때 칼은 칼날에 닿지 않은, 닥쳐올 모든 찰나들을 겨눈다. 적 또한 그러하다. 공세 안에 수세가 살아 있지 않으면 죽는다. 그 반대도 또한 죽는다. 수(守)와 공(攻)은 찰나마다 명멸한다. 적의 한 점을 겨누고 달려드는 공세는 허를 드러내서 적의 공세를 부른다. 가르며 나아가는 공세가 보이지 않는 수세의 무지개를 동시에 거느리지 못하면 공세는 곧 죽음이다. 적과 함께 춤추며 흐르되 흘러들어감이 없고, 흐르되 흐름의 밖에서 흐름의 안쪽을 찔러 마침내 거꾸로 흐르는 것이 칼이다. 칼은 죽음을 내어주면서 죽음을 받아낸다." (21~22쪽)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성실(誠實), 물(水), 게릴라 전의 한계

<칼의 노래 1> (김훈, 생각의 나무, 2003)에서 발췌했다.

 

============================================================

 

- 성실(誠實)

"김수철은 곡성의 문관이었는데 임진년에는 의병장 김성일의 막하에 들어가 금오산에서 이겼다. 예민하고 담대한 청년이었다. 문장이 반듯하고 행동이 민첩했다. 입이 무겁고 눈썰미가 매서웠으며, 움직임에 소리가 나지 않았다." (122쪽)

 

- 물(水) = 물(物) 자체 = 저항, 투쟁

"물에 맞서는 배의 저항은 물에 순응하기 위한 저항이다. 배는 생선과 같다. 배가 물을 거스르지만, 배는 물에 오래 맞설 수 없고, 물을 끝끝내 거절하지 못한다. 명량의 역류를 거슬러 나아갈 때도, 배를 띄워주는 것은 물이었고 배를 나아가게 하는 것도 물이었다. 생선의 지느러미가 물살의 함과 각도를 감지하듯이 노를 잡은 격군들의 팔이 물살의 힘과 속도와 방향을 감지한다. 장수의 몸이 격군의 몸을 느끼고, 노 잡은 격군의 몸이 물을 느껴서, 배는 사람의 몸의 일부로써 역류를 헤치고 나아간다. 배는 생선과도 같고 사람의 몸과도 같다. 물 속을 긁어서 밀쳐내야 나아갈 수 있지만, 물이 밀어주어야만 물을 따라 나아갈 수 있다. 싸움은 세상과 맞서는 몸의 일이다. 몸이 물에 포개져야만 나아가고 물러서고 돌아서고 펼치고 오므릴 수가 있고, 몸이 칼에 포개져야만 베고 찌를 수가 있다. 배와 몸과 칼과 생선이 다르지 않다." (143쪽)

 

- 게릴라 전의 한계

"싸움은 싸움마다 개별적인 것이어서, 새로운 싸움을 시작할 때마다 그 싸움이 나에게는 모두 첫 번째 싸움이었다. 지금 명량 싸움에 대한 기억도 꿈속처럼 흐릿하다. 닥쳐올 싸움은 지나간 모든 싸움과 전혀 다른 낯선 싸움이었다. 싸움은 싸울수록 경험되지 않았고, 지나간 모든 싸움은 닥쳐올 모든 싸움 앞에서 무효였다." (155쪽)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바램, 위로 그리고 결정론..

뭔가 다짐 같은 것을 하기 위해 다시 <칼의 노래>(김훈)를 집어들었는데,

이젠 약발이 다했나보다... 위로가 되지 않는다...^^

 

- "한 번 휘둘러 쓸어버리니, 피가 강산을 물들이도다." (一揮掃蕩 血染山河) 

(<칼의 노래 1>, 속 표지에서 발췌)

 

- "이 세상에 위로란 본래 없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칼의 노래 1> 18~19쪽에서 발췌)

--> 예전에는 죽음이 나를 위로하였지만, 이제는 그 죽음이 나를 위로하지 못하는구나.

 

- "나는 다만 무력할 수 있는 무인이기를 바랐다. 바다에서, 나의 무(武)의 위치는 적의 위치에 의하여 결정되었다. (......) 내가 함대를 포구에 정박시키고 있을 때도, 적의 함대가 이동하면 잠든 나의 함대는 저절로 이동한 셈이었다. 바다에서 나는 늘 머물 곳 없었고, 내가 몸 둘 곳 없어 뒤채이는 밤에도 내 고단한 함대는 곤히 잠들었다."

(<칼의 노래 1> 36~37쪽에서 발췌)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