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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나와 우리단체가 인권위가 주최한 이주민 인권관련 순회 상담에 같이 결합해서 활동 한 것이 많았다.

여러 지역에 있는 이주노동자, 난민, 결혼이주여성 등이 겪고 있는 어려움에 대한 순화 상담을 해서 해결 할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하자는 이유로 인권위에서 내 도움을 요청 했다.

 

그래서 나는 인권위와 함께 다양한 이주민들의 다양한 어려움들을 뉴스 취재도 하고 방송으로도 내보내고 다큐도 만들고 노래 공연까지 해줬다. 그 동안 인권위가 이주민 당사자와 함께 활동을 이렇게 적극적으로 한적 없는데 올해부터 인권위가 이주민들의 이야기를 관심 있게 활동하겠다는 것에 나는 아주 기뻤고 힘도 났다.

 

인권위에 있는 분들과 함께 활동을 하면서 함께 식사도 하면서 우리는 많이 친해졌다. 내가 그동안 알고 있었던 노동자, 난민 등 여러 이주민들의 다양한 어려움들을 얘기 해주며 인권위를 통해서 그 어려움들이 해결 되 나갈 것 같아는 믿음이 생겨 개인 적으로 굉장히 좋았던 활동 이였다.

 

인권위란 국민들이 자신들의 인권에 대해 호소와 보호를 인권위를 통해 받을 수 있는 희망찬 기관이라고 나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인권위에 대한 평가도 높았고 기대도 컸다.

 

인권이라는 단어자체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없는 인권탄압국가 버마에서 온 나에게는 인권위가 존재하다는 것이 너무나도 신기하고 뿌듯하기도 했다. 시청에 있는 인권위 건물 앞에서 지나갈 때마다 항상 여기 인권위가 있다는 것에 너무나도 부러워서 늘 바라보면서 지나갔다.

 

그래서 인권위직원들과 함께 활동들을 하게 되어 매우 기뻤고 여러 곳으로 인권 순회 상담을 함께 하면서 이주민들의 어려운 상황들을 얘기 해줄 때마다 관심 있게 들어줬던 인권위 직원들의 모습을 보고 나는 힘도 나고 우리들의 인권개선에 대한 기대도 많이 가지게 됐다.

 

그리고 인권위에서 주는 기금을 받고 올해 중순에 제5회 이주노동자영화제도 성공적으로 해 낼 수 있었고 출입국 단속반에 연행된 난민 신청자 버마행동회원의 석방을 위해도 인권위의 많은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인권위에게 나는 깊은 감사의 마음과 애정도 갖고 있었다. 내가 믿을 수 있고 내가 기대할 수 있는 함께 할 동지가 생겼다고 느껴 참 좋았고 앞으로도 함께 할 활동들에 대해도 인권위 직원들과 열정적으로 논의 한 적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주노동자영화제를 주최 중.

인권위가 우리에게 준 영화제 기금에 대한 결정권을 가진 높은 분들이 우리단체와 영화제 활동에 대한 설명 들으러 사무실로 방문 오셨다. 우리 방송이 이주민들을 위해 활동하는 영상물을 보여주고 설명도 해주면서 영상에서 나온 미누형에 대한 이야기도 해주게 됐다. 미누형이 이주자의 인권운동을 하면서 18년 동안 한국인들과 함께 사는 사람으로서 한국국민들이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진정한 친구로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미디어와 노래로 함께 참여 했던 것이 외국인이 한국에 정치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한국 땅에서 하루아침 만에 쫓겨났다고 얘기해줬다.

 

그런데 그분들이 나에게 굳은 표정을 하면서 말하는 것에 나는 엄청 실망했다.

이주자의 인권운동 하는 것이 좋은 일이지만 한국 내 문제들에 대한 끼어들어 오지마라는 것 이였다. 인권에 대한 학자도 아니고 전문가도 아닌 나도 미누형도 기본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 인권이란 국경이 없다는 것이다. “다이아몬드는 북쪽에 있어도 남쪽에 있어도 다이아몬드”라는 말처럼 인권이라는 것도 한국인에게도 이주민에게도 같은 가치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서로의 인권을 지켜주고자 보호하고자 하는 행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눈앞에서 힘들어 하는 것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하고 함께 해결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 모두 인간이 가져야 할 인식과 행동이고 그게 바로 인권에 대한 넓은 시각이다. 그리고 그게 바로 우리가 말하는 인간다운 사람이며 사랑이기도 한다.

 

 

그분들이 사무실을 떠난 후 나는 한참 멍하고 있었다. 사실 내 성격상으로는 내가 가지고 있는 인권, 정치 관련 생각을 얘기해서 한판 붙을 수 있었는데 우리의 영화제를 기부하는 것이 있어서 억지로 성질을 죽기고 참았던 것이 참 힘들었다. 이럴 때 나는 단체의 대표역할이 싫다. 정의를 외면하고 자본의 얼굴을 보고 인내심을 억지로 가지고 사는 것이 내게는 참 힘든 일인 것 같아.

 

올해 10월 쯤.

나와 몇 달 동안 함께 순회 상담 활동을 했던 인권위 직원분이 나에게 우리단체가 인권위 인권 상 추천서를 써서 신청하라고 요청을 해서 바쁜데도 인권위가 주는 인권 상을 받고 싶어서 추천서를 밤새 섰고 보냈다.

 

경인 방송 라디오 녹음 끝내고 사무실에 들어왔던 날.

우리단체가 인권 상을 받게 됐다는 편지가 와 있는 것을 보게 되어 나는 너무나도 기뻤다. 내게 희망을 주는 인권위에서 우리를 인권 상을 준다는 것이 정말 두말 할 필 없이 좋았다. 내가 사용하고 있는 페이스북, 트위터 등으로 아는 분들에게 상 받았다는 소식을 알려드리면서 상을 받는 날을 기뻐하면서 기다려 왔다.

그런데 이게 웬일 인가? 인권 상을 받아서 아는 분들의 해주는 축하 말을 다 받지도 못 하는데 인권위원장이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안 해서 많은 시민사회 단체들이 위원장 사퇴를 요구하는 행동이 생겼다. 인권위 건물 안에서 농성을 하고 있는 분들이 매일 보내 준 인권위 상황에 대한 메일들을 읽어 보면서 나는 마음이 참 아팠다. 그분들이 보내 준 내용들 속에 인권위가 잘 됐음 하는 진정한 애정과 사랑이 들어 있는 것이 보여서 마음이 더 아팠다.

 

한국 사회에 좋은 활동들을 많이 하고 있는 대부분의 단체들의 요구를 외면하는 인권위원장의 입장, 내가 존경하는 인권위 대표들의 사표, 심지어 나와 함께 순회 활동을 했었던 나의 아픔의 소리를 따뜻하게 들어 주셨던 인권위직원들의 사표 등이 내가 기대했던 나와 이주민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인권위가 아님을 증명하는 것이 되어 나는 인권위가 주는 내가 그토록 받고 싶었던 인권 상을 받을 때가 아님으로 상을 거부하기를 결정했다.

 

한국에 있는 동안 인권위에 대해 많이 배우고 언젠가 민주화가 되는 버마로 들어갈 때 인권위 같은 기관부터 먼저 만들겠다는 나의 희망이 다시 살아 들어오는 그날에 나는 내가 사랑하는 인권위가 주는 그 인권 상을 뿌듯한 마음으로 받고 싶다.

 

소모뚜-대표

이주노동자의 방송MWTV

[아래는 우리단체가 인권위 인권상을 거부한 성명서다.]

 

 

- 성 명 서 -

 

MWTV는 국가인권위원회의 인권상 수여를 거부한다

 

MWTV (이주노동자의 방송)는,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 11월 본 단체에 수여한 '인권상'을 반납하며, 수상 거부의 이유를 밝히고, 현재 인권위가 직면한 상황에 대해 다음과 같은 확고한 입장을 밝힌다.

 

'공권력에 의한 인권 침해로부터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기 위해 출범한 국가인권위원회 (이하 인권위)는, 출범 후 근 10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다소의 부침을 겪으면서도 명실상부한 독립 기관으로서 초기의 가치를 지켜내 왔다.

 

하지만 최근 현 인권위원장의 취임을 시작으로, 비민주적인 운영으로 말해지는 여러 행보로부터, 우리는 인권위가 본분에서 벗어나 정상적인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현재 인권위는 위원장의 독단적인 조직운영으로, 독립성마저 지켜지지 못한 채 파행으로 치닫고 있다. 내부 인사들의 연이은 사퇴는 최근 인권위가 그 사명과 근거 의식을 뒤로 한 채,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에의 방증이다.

 

가장 민주적으로 운영되어야 할 인권위가, 정부의 하위 기관으로 전락해, 현재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휘둘리는 것은 '국가인권기구'로서의 입지를 사실상 포기했음을 말한다. 기본적인 인권이 지켜지지 않는 나라를 어떻게 민주국가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며, 인권에 반하도록 운영되는 기관이 어떻게 국가를 대표하는 인권 기구일 수 있는가.

 

본 단체는, 국가인권위원회가 투명한 선출 과정을 거친 구성원들이 이끄는, 진정성 있고 신뢰할 수 있는 기관으로 거듭나길 요구한다. 또한 그 운영에 있어 정부의 테두리를 벗어나 공정하고 평등한 공적 기관이 될 수 있도록 시민사회와 연대 단체와의 대화에 적극적으로 나서기를 기대한다.

 

본 단체의 수상 거부가, 현재의 인권위원회가 당면한 사태에 대한 입장 표명임과 동시에 불가침의 영역인 인권을 말하는 국가의 유일한 기구인 인권위에 보내는 애정 어린 권고임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2010. 12. 07

 

MWTV 이주노동자의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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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08 01:38 2010/12/08 0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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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민 삶이 나아지는만큼 한국인 삶도 나아질 거예요”
버마 출신 소모뚜 ‘인권홀씨상’
 
 
한겨레  김민경 기자기자블로그
 
 
 
» 소모뚜
 
 
 
1995년 스무살 때 가족을 위해 돈을 벌러 여행비자로 버마(미얀마)에서 한국에 왔다. 하지만 ‘코리안드림’은 꿈일 뿐이었다. 눈앞에서 이주노동자들이 다치고, 하루 15시간 넘게 일해도 월급을 떼이기 일쑤였다. 비인간적인 대우에 맞서려면 ‘입’이 필요했다. 그래서 5개월 만에 한국어를 배워 친구들의 입이 됐다.

15년간 버마 민주화와 이주노동자 인권을 대변해온 소모뚜(35·사진)씨가 3일 한국인권재단이 주는 ‘2010 인권홀씨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미등록 이주노동자인 그는 2003년 정부의 이주노동자 강제추방에 맞서 성공회대성당에서농성을 벌인 이후 공개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 그는 버마 민주화를 요구하는 ‘버마행동’의 한국 총무, 이주노동자의 방송 대표, 다국적 노동자밴드 스탑크랙다운 보컬, 이주민 인권 강사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 11월3일에는 ‘난민인정 결정 불허결정처분 취소’ 청구소송 2심에서 승소하기도 했다.

여전히 단속 과정에서 이주노동자가 죽거나 다치고, 한국 경제 발전을 위해 일하는데도 노동권이 보장되지 못한다. “어느 정부도 자국민 우선이잖아요. 이주노동자의 삶이 나아지는 만큼 한국 사람들의 삶도 나아질 거라고 생각하고 우리 활동을 따뜻한 눈으로 봐줬으면 합니다.”

그는 늘 자신을 ‘버마 인권활동가’가 아닌 ‘인권활동가’라고 소개한다. “내 나라만 민주화되고 인권 신장되면 끝이 아니잖아요. 내가 살고 있는 이 한국도 똑같이 따뜻한 세상이 돼야죠.”

글·사진 김민경 기자 salm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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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03 22:20 2010/12/03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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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인권홀씨상 수상자를 발표합니다.

 
  •  수상자 : 소모뚜 (이주노동자의 방송국 MWTV 대표)

지난 약 한 달 동안 많은 분들께서 인권 운동, 문화, 교육의 현장에서 활동하는 훌륭한 인권 홀씨들을 추천해주셨습니다. 총 6분의 개인과 단체가 1차 서류심사를 통과하였고, 12월 1일(수) 최종 심사위원 회의를 통해 수상자가 결정되었습니다. 심사에는 권태선 (한겨레신문 논설위원, 한국인권재단 이사), 이석태(법무법인 덕수 변호사), 윤혜원 (전 연합뉴스 논설위원), 이영(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 사무처장)님께서 수고해주셨습니다.

 

최종 심사를 위해서는 먼저 심사 기준에 의거하여 1차로 취합된 6분의 후보에 대하여 최종 심사를 통해 이주노동자의 방송국 MWTV 대표 소모뚜님이 수상자로 선정되었습니다.

 
소모뚜님은 15년 전 한국에 입국하여 지금까지 버마 민주화를 촉구하는 다양한 운동들을 펼쳐온 버마(미얀마) 인권활동가입니다. 특히 그가 가진 특별한 음악적 재능과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활용하여 이주노동자 방송의 공동 대표 겸 PD, 버마액션의 총무, 다국적 노동자밴드 ‘스톱크랙다운’의 리더(보컬, 기타), 버마국민운동 촉진위원회의 홍보 담당 등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한국 사회와 이주자 간의 간격을 좁히고 서로에게 다리를 잇기 위해 김포시 등 자치단체와 연계하여 다문화 이해 강사로 강단에 서고 있으며, 경인방송과 EBS라디오에서 버마 음악을 소개하는 진행자로 활약하고 있기도 합니다.

 

소모뚜님의 모국인 버마는 현재 20년이 넘게 군부독재 하에 정치적 탄압이 심각한 상황입니다. 최근 실시된 총선 이후 버마민주화의 상징인 아웅산 수치 여사가 가택연금에서 풀려나는 등 좋은 소식이 들려오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과제가 남아 있습니다. 소모뚜님은 이러한 군사정부의 정치적 박해 가능성으로 인해 대한민국 정부에 난민신청을 했지만 현재까지 난민 지위를 인정받지 못 하고 있습니다.

 

심사위원들은 그동안 버마의 인권현실에 대하여 본인이 당사자일 뿐 아니라, 노래와 영상을 통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해 온 점을 높이 평가하였습니다. 또한 ‘다문화’가 중요한 키워드가 되고 있는 한국사회에서 이주자들이 스스로 좀 더 긍정적이고 자력화(empower)된 활동들을 펼치고 있다는 점이 큰 장점으로 부각되었습니다.

 

 

한 손에는 카메라를 다른 손에는 기타를 들고 인권 현장을 지켜 온 버마 인권활동가, 소모뚜! 정치와 국경, 인종을 넘어 인권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는 활동가 소모뚜님께 존경과 감사의 인사를 드리며, 2010 인권홀씨상에 선정되셨음을 축하드립니다.

 

시상식은 돌아오는 12월 13일(월) 인권재단 후원의 밤 자리에 함께 마련됩니다.

부디 많은 분들께서 오셔서 함께 축하하고 힘을 실어주세요.

 

 

■ 2010 한국인권재단 후원의 밤 & 인권홀씨상 시상식

  ▢ 일시 : 2010. 12. 13(월) 오후 7~9시
 
  ▢ 장소 : 문학의 집(남산) ▶▷ 초청장 및 오시는 길 안내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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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02 23:33 2010/12/02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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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2010년 11월 달. 버마에는 많은 변화가 생겼다. 하지만 그 변화에 대해 버마의 역사를 걸쳐 필자의 시각에서 이글을 쓰게 됐다.

이달 11월 7일에 미얀마 군사 독재정부가 20여년 만에 선거를 치렀다. 한국 포함한 해외에 거주하고 있는 버마인들이 투표 할 수 있다고 하는 군정부의 공식적 발표가 11월 3일 날에 나왔지만 한남동에 있는 미얀마 대사관은 10월 29일 날에 이미 선거 투표를 했다. 미얀마 대사관은 한국 내 거주 3500여명의 버마인들에게 선거 투표 참여할 날에 대한 공식적 발표도 해 주지 않았지만 대사관과 친밀한 사람 몇 명에게는 투표하러 오라고 직접 연락해 그들끼리 투표를 했다. 몰론 한국 내 거주 버마인들은 미얀마 군정부의 선거에 대한 믿음이 없기 때문에 아무도 이를 아쉬워하지 않았다.

미얀마 군사 독재정부의 세계 역사적 최악의 선거가 끝난 후 정부의 총리가 직접 관리하는 “국가 평화 ”당이 선거에 75%로 이겼다는 발표와 함께 부정선거 결과에 대한 항의하는 야당들의 분노 가득 찬 행동들도 아주 뜨겁게 나오고 있다. 부정선거에 대한 선거 관리위원회 관계자들은 여론과 야당에 질문을 열심히 피하고 있다.

야당들은 수지여사가 이끄는 민족민주동맹 NLD가 군정부의 비민주주의적 선거에 참여 거부한 것이 옳다고 인정 했다. 이들은 처음부터 미얀마군정부가 불평등한 선거를 치를 것이라고 예상 했지만 군정부의 행동이 야당들의 예상보다 더 악취였다.

미얀마 군사 정부는 자신들의 부정선거에 대한 국제사회의 강력한 비판이 쏟아지고 있는 분위기 속에 그동안 이름조차 듣기 싫다고 해 온 수지여사를 가택연금 해제 해줬다.

버마 민주화의 희망이고 버마국민들이 수십 년 동안 꿈꾸고 있는 인간다운 삶의 길의 등불인 수지여사가 석방 되자 온 세계는 버마국민들과 함께 무척 환영하고 반가워했다.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여러 국가 대통령 등 지도자들이 수지여사의 석방을 아낌없는 환영을 직접 해줬지만 버마처럼 군사 독재정부 하에 살아 온 경험이 있고 같은 아픔을 겪어 온 한국은 버마에 한국대기업들이 진출하고 있어서 그런지 한국정부는 외교통상부 명의의 짧은 논평을 발표하는데 그쳤다. 5.18 광주 민중항쟁으로 우리에게 용기를 줬던 민주주의 선배국가인 한국의 이런 행동에 많은 버마활동가들은 서운했다.

물론 우리가 정기적으로 하고 있는 미얀마대사관 앞 기자회견 때도 좁은 대사관 앞 길 거리에 경찰차를 미리 와서 주차 해 놓고 설자리가 없어서 길거리로 나와 서게 되는 가지회견 참가자 버마활동가들에게 도로를 막고 기자회견하는 것이 명박한 불법이다! 인권 운동 하는 사람들이 한국시민들의 불편함을 생각 안 하냐! 등으로 성질내면서 했던 것을 서운한 것이 점점 익숙해져서 필자는 수지여사 석방을 위한 한국의 발표에 대한 별로 서운하지 않았다. 나의 사소한 작은 불편함을 받혀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의 평화를 위해 배려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기본 인식이 아닌가. 그게 바로 깨어있는 국민, 선진 문화인의 인식과 속이 넓은 국격이 아닌가 싶다.

주변 국가들의 관심과 지지가 버마의 민주화를 위한 정말 힘이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특히 중국, 인도, 태국 같은 주변 국가들은 늘 국익우선으로 미얀마정부와 친밀한 관계를 맺고 왔기 때문에 이번 수지여사의 석방에 그들은 참 조용했다.

특히 지난 20년 전. 1990년 선거 때 민족민주동맹NLD가 선거에 이기자마자 첫 번째로 달려와서 축하 인사를 다른 국가들 보다 먼저 하기에 애썼던 중국이 수지여사의 석방에 대해 말 한 마디도 안 해 줬지만 국제사회가 뱉은 비판의 침 속에 가라앉은 군정부의 부정선거를 민주주의의 길을 향하는 걸음이라고 칭찬해줬다.

필자는 수지여사가 석방 되는 날에 이를 축하 하는 한국 분들의 축하 문자를 많이 받았다. 많은 분들은 수지여사가 석방 되어 버마는 민주화의 꽃이 피우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필자도 정말 그렇게 생각 하고 싶다.

하지만 미얀마군사정부의 속을 아무도 모른다.

지난 2003년 수지여사를 석방 해주고 새로운 역사의 페이지를 열렸다고 본인들 스스로 발표했던 군정부가 2003년 5월 30날에 수지여사를 학사하러 시도했다. 정부의 부하들의 칼날 하에서 운 좋게 살아남은 수지여사를 군부는 여사의 안전을 위해 보호해주겠다는 이유로 이번 석방 되는 날까지 7년 동안 가택 연금을 했다.

그래서 필자는 수지여사를 석방 해 준 군사 정부는 이번에 본인들이 저지른 부정선거에 비판하고 있는 국제 사회의 눈길을 돌리기 위해 또한 민주주의의 길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또 다시 쇼를 한다고 생각한다. 아직도 남아 있는 2500여명의 정치수감자들을 석방해주지 않는 것을 보면 군정부의 민주화를 위한 진정성이 없는 마음을 알 수 있다.

이번 수지여사의 석방은 버마의 긴 민주화의 길을 위해 첫 걸음이기 때문에 한국을 포함 한 국제 사회는 버마에 대한 관심을 더욱 가졌음을 부탁한다. 더 이상 수지여사가 군정부의 손 안에 쥐고 있는 카드가 되지 않게 함께 노력 해줬음을 강조한다. “자유를 위해 투쟁하는 우리에게 여러분의 자유를 나눠 주세요”라는 수지여사가 국제 사회에 강요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다.

수지여사는 석방 되자마자 “민주주의의 기본은 표현의 자유”라고 하면서 그동안 정의를 위해 표현하기에 두려워했던 국민들에게 용기를 가지라고 했다. 국민들 스스로 깨어나서 두려움이 없이 정치활동에 관심과 참여 하는 용기를 만들어주는 것이 국민 지도자로서 우선 적으로 해야 할 일이다.

어두운 속에서 살아 온 버마국민들. 자유와 평등, 평화의 길을 가기 위해 스스로 깨어나서 지속적으로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수지여사의 희망찬 연설에 등등한 용기를 얻어 희망찬 새날을 위해 또 다시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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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02 23:32 2010/12/02 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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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민도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이에요  인권기자단 기사

2010/11/24 13:01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참 좋은 말입니다.

여기 있는 모든 분들

꽃보다 아름다우시죠?

우리 모두는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꽃보다 아름다운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세상은 아름다워 질것입니다."



 

- 강의를 시작하며, 소모뚜

 

유난히 추웠다는 지난 토요일, 어둑어둑 땅거미가 내려앉을 무렵. 추위를 무색하게 만드는 노래 소리가 강의실에 울려 퍼졌다. 11월 13일, 경북대학교에서 대구참여연대가 주최하는 시민학교가 열렸다.

 ‘이주민, 그들의 역사와 인권’이라는 주제로 열린 이번 강의는 버마에서 온 이주노동자 활동가 소모뚜(35)씨의 노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로 시작됐다. 

 

이주민, 꿈과 희망을 찾기 위한 도전자

 
사용자 삽입 이미지소모뚜씨의 고향은 버마이다. 100년 가까이 지속되는 독재정부, 그 정부 아래서 유린되는 인권, 가난에 시달리는 국민들. 아동군인이 7만 명인 나라, 내전으로 고통 받는 소수민족들. 이것이 그의 조국 버마의 현실이다. 공무원이었던 그의 아버지는 버마 민주화를 위한 시위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직장을 잃게 되었다. 그 후, 생계가 어려워지면서 가족에게 보탬이 되고자 15년 전 한국으로 와서 '이주민'이 되었다.

 

소모뚜씨는 이주민을 "꿈과 희망을 찾기 위한 도전자"라고 말한다. 그의 첫 도전은 김천의 박스 공장에서 시작됐다. 매일 15-16시간 씩 고된 노동을 했지만, 가족의 생계에 대한 책임과 스스로 한국 경제 발전의 일원이라 여기며 묵묵히 8년을 일했다. IMF때는 월급을 반만 받고 라면을 먹으며 경제 위기 회복을 도왔다.

 

하지만 경제 위기가 닥칠 때면 해고 일 순위는 '이주 노동자'였다. 때로는 범죄자, 테러리스트 취급을 받기도 했다. 얼마 전 끝난 G20 정상회의를 대비한 강화된 단속으로 베트남 이주 노동자가 추락해서 숨지기도 했다. 소모뚜씨는 이해할 수 없다. 왜 그들에게 테러리스트가 있다고 생각하는지. 돌아온 것은 "그럼, 어디에 있겠느냐"라는 대답 뿐이었다.

 

정부의 단속과 사회의 냉대 앞에서 그의 친구들은 강제 추방되거나 죽음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암담했다. 이주 노동자의 현실에 대해 알리려 했지만 정부도, 언론도 들으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가만히 앉아 있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 이주민의 목소리를 들려주고자 '활동가'로의 삶을 시작했다.

 

 

이주 노동자 활동가, 소모뚜

 

'활동가' 소모뚜씨는 무척이나 바쁘다. 이주 노동자의 방송 MWTV 대표와 다국적 노동자로 구성된 밴드, ‘스탑크랩다운(Stop Crack Down, 강제추방중단)’에서 보컬․기타리스․작곡을 맡고 있다. 또 그의 고향 버마 민주화를 위한 '버마 행동, 한국'의 총무를 맡고 있다. 그 외에도 이주노동자의 임금 착불이나 근로기준법과 관련된 노동 상담, 결혼 이주 여성들에 대한 지원 산업까지. 몸이 두 개, 세 개라도 모자랄 정도다.

 

하지만 소모뚜씨는 하나도 힘들지 않다. 오히려 그의 이야기를 듣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어 보람되고 행복하다고 말한다. 물론 어려운 점도 많다. 당장 생계를 이어가는 것도 문제다. 무엇보다 방송이며 밴드를 이끌어 가기엔 인원과 재정은 너무도 열악하다. 처음 방송을 시작할 땐, 기본적인 방송 기술조차 몰랐다. 그러나 그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몰랐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어떤 내용을 담아야 하는지를 알고 있었다"고 말한다.

 

그에게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고, 이뤄야 할 꿈이 있다. 그는 "방송, 밴드 방법은 다르지만 그 목적은 하나다. 차이로 인해 차별 받지 않는, 함께 사는 다문화 사회가 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Hero-System의 한국 다문화


현재 한국의 이주민은 120만 명. 곳곳에서 이주민을 만나는 것이 어렵지 않은 시대가 됐다. 저출산,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한국 사회와 경제는 이주 노동자와 결혼 이주 여성에 기대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일까. 언제부턴가 '한국은 다문화 사회'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되었다. 방송에서는 명절이면 한복을 입은 이주민이 한국 노래를 부르거나, 김치를 담그는 모습이 나오곤 한다. '한국인이 된' 이주민. 그 때서야 한국 사회는 그들을 사회 구성원으로 받아들인다.

 

소모뚜씨는 '한국인이 되어야' 하는 다문화 사회가 마땅치 않다. 그가 느끼는 한국 사회의 다문화는 단지 “결혼한 이주 여성을 한국화 시키거나, 못 사는 나라의 여성이 한국 남성을 만나서 잘 살게 된다는 ‘Hero-System’”일 뿐이다. 소모뚜씨가 희망하는 다문화 사회는 모든 이주민이 자신의 정체성을 가지는 사회이다. 그는 “모든 이주민이 한국인이 되면 다문화는 필요 없다”며 “네팔 사람, 필리핀 사람 이렇게 당당히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서 차별하지 않고 사는 사회가 다문화 사회”라고 말한다. 결국 그가 말하는 다문화 사회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들부터 이주민에 대한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소모뚜씨가 부른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라는 노랫말에 '다문화 사회'로 가는 길이 담겨 있는 듯하다.

 

 

"이주노동자도 또 하나의 전태일이에요"

 

강연이 이뤄진 13일은 전태일 열사가 분신한지 40년이 되는 날사용자 삽입 이미지이다. 40주기를 맞아 지난 7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전국 노동자 대회'에 소모뚜씨도 참여했다. 한국인은 아니지만 이주 노동자 역시 또 하나의 전태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70만 명이 '이주 노동자'임에도 그들의 이야기를 하려는 소모뚜씨가 설 자리는 없다. 소모뚜씨는 "최소의 인간다운 삶을 지켜주는 근로 기준법의 소중함을 온 몸을 불태워서 보여 줬던 전태일 열사와 수많은 한국인 노동자처럼 이주 노동자도 한국에서 최소 하루 평균 15시간 고된 노동을 하며 저임금, 사업장 폭행 나아가 인종적 문화적 차별까지 당하고 있다"며 "그런데 이주 노동자의 안타까운 죽음은 행사장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고, 이에 대해 발언할 기회도 없었다"고 말했다.

 

비정규직 중에서도 최악의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이 이주 노동자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노동계 내에서도 이주 노동자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려는 노력은 많이 미약하다. 소모뚜씨는 "노동자가 서로를 적으로 만들면 안 된다. 모든 노동자는 자본주의 시스템 하에서 함께 갇혀있기 때문에 연대해서 싸워야만 한다"고 말한다. 한국 노동자와 이주 노동자가 서로 반목할 것이 아니라, 노동자라는 동질감을 회복하고 연대를 해나가는 것이 절실함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소모뚜씨는 "한국 노동자와 이주 노동자가 함께 할 수 있는 전략적 프로그램을 노동계에서 많이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한국 노동자에게 다가가서 이주민에 대한 현재 상황, 이주민이 여러분의 일자리를 빼앗기 위해 오는 것이 아님을 말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연대에는 한국 노동자뿐만 아니라 이주 노동자의 노력도 필요하다. TV속에 왕왕 나오는 한국말을 능숙하게 하며, 한국 문화를 잘 아는 이주 노동자는 사실 드물다. 노동자 뿐만이 아니다. 대부분의 이주민이 한국어를 몰라서 의사소통은 물론이고 기본적인 생활도 되지 않는다. 자연히 이주민과 한국인의 연대는 어려울 수밖에. 소모뚜씨는 "이주민들도 자신이 월급 못 받는 것만 주장하지 말고 구성원들과 함께 어울릴 수 있는 행동과 고민을 해야 한다"며 "이주민은 한국말을 배우고 한국에 관심을 가져 함께 발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정든 나의 고향, 한국

 

"한 모금이라도 얻어먹어 봤으면 반드시 그 은혜를 갚아야 한다"

 

소모뚜씨가 한국에서 이주 노동자 활동가로 사는 것은 은혜를 갚는 것이라고 한다. 버마에서 20년, 한국에서 15년을 보냈다. 그에게 한국은 또 하나의 고향과 같다. 그는 "한국에서 실망스러운 모습도 많이 봤지만, 버마에서는 얻어갈 수 없는 민주주의․자유․평등에 대해 배웠다"며 스승과 같은 고마운 존재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활동을 계속할 수밖에 없다.

 

"한국이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사회가 되는 것이 제가 한국에 산 것에 대한 은혜를 갚는 것이죠. 내가 가진 것 없잖아요. 때문에 제 나름대로 외면하지 않고 같이 행동하는 것으로 갚아나가는 것이죠"

 

정든 고향이 더 좋아졌으면 하는 그의 희망. '차이로 인해 차별 받지 않는', '함께 사는 다문화 사회'를 만들기 위한 그의 당찬 행보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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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02 00:51 2010/12/02 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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