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11/05'에 해당되는 글 3건
- 2004/11/05 행복한 청소부
- 2004/11/05 직업에 대해
- 2004/11/05 전 막스를 읽은적이 없습니다만.. (4)
직업에 대해
낼 아침 출근을 안해도 된다는 느긋함이 이밤을 여기서 계~속 놀도록 만드네.
오늘 낮에 사무실에서
보수도 한달에 100만원 이하로 받는,
게다가 하루 노동시간도 어마 어마 긴,
더군다나 그 노동의 성격이라는 것도 육체+지적+정서를 동반해야 하는
심지어 사회적으로 중요한 일이라 대접도 못받는
보육교사의 일에 대해 이야기했었다
일테면.
아이들이 좋아서.
여자에게 적당한 직업인것 같아서.
그저 할게 별로 없어서.기타등등..
그러나 그녀(그)들이 이 일을 직업으로 선택하고 몇년을 지내다 보면
아주 관성적으로 변하게 된다.
아이들 똥닦아주고, 밥먹이고. 짧은 시간이지만 뭔가 교육적일것 같은 프로그램도 해야하고
청소도 해야하고, 빨래도 해야하고, 부모상담에 온갖 서류까지...
이런 일들속에서 그녀(그)들은 서서히 지쳐간다.
그러다가는
이 일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이 돈으로 언제까지 먹고 살수 있을까?
뭐 그런 걱정이 든다.
그리고 열심히 무언가를 배우러 다닌다.
전문성(?)을 쌓기위해
색종이접기도 배우고
새로운 경향의 유아교육이론도 배우고
재롱잔치 준비용 무용도 배우고
이도 성에 안차면 대학원에 진학할 것을 꿈꾸기도 한다.
그러나 결국, 다양한 노력을 통해서도
자신이 선택한 그 일에서 어떤 지점에서도 만족감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나중엔 직업이 그저 호구의 수단이 된다.
호사스럽게까지는 아니더라도 적당히 살아보기엔 충분하지도 않은 호구지책.
그런데 얘기를 들어보면,
보육교사나, 변호사나, 의사나, 청소부나 몇가지 항목에서의 차이는 있겠지만
다 만찬가지인것 같다.
예전에 아주 오래전에 북한소설이 한참 유행처럼 나오던 때가 있었다.
그때 읽은 제목도 기억나지 않는 책이었는데,줄거리도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
다만 어떤 한 지점에서 내가 받은 감동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또렷하게 남아있다.
한 노동자가. 기계를 다루는 노동자가 있었다.
그는 자신의 일에서 끊임없는 개선의 방향을 찾고 확산시키려고 한다.
결국 그는 그로 인해 당으로 부터 인정을 받는 해피앤딩이다.
그때 내가 받은 막연한 감동은
일은 하고 산다는 것이 단지 생계가 아닌 무엇이 함께 존재하는 것이어야 하는구나
하는 것이었다.
직업과 여가를 분리해서,
일하는 시간은 일하고, 그 나머지 시간은 나의 즐거움을 찾기 위해 보낸다.
주5일 근무도 된 마당에...그렇게 사는 사람이 많은것 같다.
그런데,
그게 잘 분리가 되려나. 사는데 그 큰 한부분을 완존히 포기하고 살아가는게 즐거울까?
아라한 장풍대작전에서 도사..에 대해 이야기한 장면이 있었던거 같은데..
뭐 배달의 달인...뭐 그런 자신의 일에 전문가가 된 그런 사람이 도사라고 했던거 같던데.
도사 까지는 아니더라도. 내가 선택한 일에서 나의 의미를 찾는것이 내 인생의 죽어버린 시간을 되살리는데 필요한거 같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될 수 있을까?
내가 내 노동의 내용과 방식을 변화시킬 수 있다면 그게 가능할까?
보육교사로 돌아와서.
월간유아 프로그램집을 배껴내는 것이 아니라
나의 아동관이 반영된 보육과정을 기획하고.
그 과정이 진행되고.
나와 아이들 사이의 교감이 생겨나고.
또 성인 누군가로 부터 내 노력을 지지받고 인정받을 수 있다면 가능할까?
모든 사람이 자신이 원하는 직업을 가질 수는 없겠지만.
자신이 선택한 직업에서 자신의 가치를 발견해 낼 수 있다면 좀 더 행복하지 않을까?
근데 그게 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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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랙백1 Tracbacks (+view to the desc.)
전 막스를 읽은적이 없습니다만..
* 이 글은 아샬님의 [노동교] 에 대한 트랙백 입니다.
개인적으로 이런식의 논쟁에 끼는 건 별로 안좋아 하는데..
왜냐면,
대화는 서로를 변화시키지만, 논쟁은 자신의 논리를 더 강화하는 방식이 되어버리니까요.
결국 간극을 더 키운다고나 할까요?
그치만 잠 안오는 오늘 같은 밤은 몇자 쓰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군요.
우선,
전 막스 읽은적 없습니다. 그리고 시오니즘의 구체적인 뜻도 모릅니다.
그저 선민의식이라고 해야하나? 이정도로만 알고 있니다.
그러나 "성매매가 노동이다"라고 인정해야 한다는 의견엔 동의가 잘 안되는군요.
1.
그건 그 일이 추악하고, 천하고, 악한것이라고 생각해서가 아닙니다.
섹스 자체가 추악하고 악하고 천한건 아니니까요.
인간이 임금을 받고 하는 행위 모두가 노동이다라고 해석해야 한다면, 성매매도 노동이 되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노동이란 누군가에게 해가 되는 것이 아니어야 한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생각이 노동의 신성함을 지키려는 변태적 생각인가요?
2.
사실 우리 사회가 소수자들의 생각은 늘 존중받지 못하는 사회입니다.
그래서 소수자들이 죽을 힘을 내서 소리쳐야 그들의 목소리가 조금은 들리게 되는거지요.
여성은 이 사회의 소수자이며(양은 물론 50%지만 소수자인건 맞죠?)
그런 너희들이 또다른 소수자 성매매여성들의 생존권 문제에 대해 그리고 무심할 수 있었느냐..라는 문제제기에는 물론 겸허하게 반성하고, 사과해야 합니다.
그리고 반성과 사과 이후에는 새롭게 대책을 강구해야 하겠지요.
그런데 그 새로운 대책의 강구가 시도를 뒤업을 정도가 되어야 할까는 모르겠네요.
그리고, 성매매방지법을 제기한 여성단체들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철거를 강행하는 회사에 비유해서 이야기하는 건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해요.
더군다나 그래서 처음의 시도와 의미가 다 틀렸다고 말하는 것도요.
3.
강압적인 부분이 있었다면..이 아니라,
첫발은 어떤 의미로 들여놓았을지 몰라도 그 다음 순간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진행되기 때문에 강압적인 일 부분이 있고 그걸 해결해야 한다가 아니라,
그 전체 구조가 문제를 가지고 있다고 봐야하지 않을까요?
실제 성매매문제에 집중하고 그 여성들과 만나고 있는 분들을 만나보면 -전 직접 성매매여성을 만나본 적이 없기에 그분들의 의견을 전적으로 받고 있습니다만-그렇게 말하십니다.
그러니 강압적인 일부분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으로 결코 해결될 수 없는 문제라고 봐지는거지요.
4.
다른 노동의 선택이 없는 상황에서 생계대책으로...
물론 첨엔 한 일년만..그럼 작은 가게자리라도 얻어서 손털고 남들처럼 살아야지..했겠지요. 그러나 그게 일년이 되고 이년이 되고..자꾸만 빚은 늘고 그렇게 한 오년 갇혀 살고나면, 더 이상의 새로운 삶에 대한 가능성도 안보이게 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것 밖에 없는것 같고..그렇게 될것 같지 않나요?
사실은 성산업의 발전이 여성들에게 다른 가능성말고 자꾸만 그곳으로 발걸음하게 만들고 있는건 아닌가요?
여성들이 해 먹고 살 일이 없다는 거-요즘 같아서 딱히 여성들만이 아니지만 여성들이 더 심하니까요.- 에 주목하면서 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성매매여성들의 생존권을 걱정해주면서 계속 그 일을 하도록 만들어 주는 것보다 더 그들을 위하는 일이 아닐까 싶은데..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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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성노동자들의 배제가 제 포인트니까 1번에 대해서 간단히 답을 하죠.
정치경제학에서 다루는 노동과는 전혀 다른 노동의 개념을 이야기하시는데,
도대체 그 '해'의 기준이 뭡니까?
환경오염 등이든 군사산업든 기타 등등 해를 끼치는 일은 널렸습니다.
당장에라도 각종 유해 업체와 군사 관련 업체에 찾아가서
일하는 분을 붙잡고, "개과천선하시고 진정한 노동을 하시길.."이라고
주문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제가 요구하는 건 단순합니다.
정말로 노동이 아니라고 하고 싶으면
정확한 노동의 개념을 제공을 하던지
아니면 성노동자들이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할
정확한 근거를 제시하면 되는 겁니다.
이래저래 말도 안 되는 걸로 노동이 될 수 없다고 하는 건
정말로 웃기는 겁니다.
제가 요구하는 건 합리적인 논증입니다.
그걸 제시 못 한 채 그냥 성노동자를 배제하는 게
바로 종교라는 거죠.
게다가 철거 이야기에 대해서는 완전 핀트가 나간 거죠.
아무리 필요하더라도 최소한 선대책 후집행이 원칙이어야 하는데
그걸 깡그리 무시하고 불도저식으로 무식하게 진행된다는 거죠.
그게 소위 이명박 스타일이죠?
법 집행 자체가 누구의 이익을 위한 거든, 아니면 정의를 걸고 하는 거든
실행되는 부분은 전혀 차이가 없습니다.
제가 느끼기에 그 부분을 덮는 건
불의한 전쟁과 정의로운 전쟁을 나누는 것과 동일합니다.
그래서 첫 글에서 이라크 전쟁의 예를 살포시 띄운 거죠.
후세인 나쁜 거 누가 모릅니까?
여담이지만...
산업 육성의 차원으로 바라본다면 4번 이야기는 근거가 없습니다.
소위 국가에서 육성하는 사업들은 많이 있지만
그게 모두 지속적이고 번성하는 건 아닙니다.
게다가 소위 성산업은 이전부터 국가의 육성과는 거리가 있었죠.
끽해야 박정희 때 국가적으로 움직인 게 전부죠?
그런데 현재의 상황에서 그런 식으로 너무 간단히 보는 건
근거가 결여된 겁니다.
게다가 왜 굳이 다른 노동으로의 선택을 운운하는 겁니까?
어떤 건 선하고 어떤 건 악하다는 가치 판단에 의해
한쪽으로 몰아가는 거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