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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신주의와 귀차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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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 대략.. 점진적으로..

이건 내가 대학에 다닐때 학자투 현장에서 학장이 주로 쓰던 말이다..한때 유행어였지.

 

그리고 이건 어떤가?

일단은 일이 되게 해야지..

이건 나이 지긋한 선배들이 주로 후배들에게 뭔가를 무마시킬때 하는 말이다.

 

나이 불혹을 바라보며 내가 이런 말들에 오염되지 않았는지 고민이 들 때가 간혹 있다.

그러고 보니 내가 불하는 혹이 외부의 무엇이 아니라 내안의 정의가 아닌지 ..흑.

 

요즘 어디선가 일어나는 불란을 보면

늘 이런 말이 뒤따라 나온다.. 그래 그게 다야? 뒤는 없대?

뭐 있을지도 모르지 기타등등.. 따라나오는 음모론..

그럼 그렇지.. 내원참.

이 순간 그 일은 고상한 나와는 관계없는 그저 저급한 뭣들의 권력다툼으로 변해버리고.

 

이유를 찾고 있을지도 모른다.

내 보신주의를 적당히 감춰주고 용서받을 수 있는 귀차니즘 차원으로 만들어줄 이유.

 

몇일전에 텔레비젼에서 내부고발자에 관한 프로를 봤다.

그때 인터뷰하던 어떤 교수가 말하길..

우리 사회는 내부고발자가 어떤 고발을 하면 그 일의 사회적 영향이나, 진위여부에 대한 관심보다는 그 사람이 누군지. 그 일로 그 사람은 어떤 이익을 보는지에 더 관심이 많단다. 설문조사를 해보니 내부고발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생각이 많지만, 내부고발자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매우 이중적 의식상태를 가지고 있단다.

 

그러고 보니 주류언론이 뿌려대던 양비론의 세례를 너무 많이 받았나보다.

아니면 도달할 수 없는 순결주의에 대한 앙망인가?

 

게콘의 강유미기자의 멘트에 그저 웃기만 할 수 없는 씁쓸함이 있는것은 가끔 내 속을 들킨것 같아서 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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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2/20 05:22 2006/02/20 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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싼타! 그 고민거리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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쭌이 다니는 어린이집에서는 매해 크리스마스 즈음에 싼타잔치를 한다.

엄마들로 부터 아이들에게 줄 선물을 한개씩 가져오게 해서 싼타복장을 한 아저씨가 와서 선물을 나눠주게 한다.

덕분에 나는 밤선물과 낮선물 두개를 준비해야 한다.

 

물론, 이 훌륭한 기회를 교육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어린이집에 방문한 산타는

아이들 하나하나에게 선물을 주면서 내년에 어떠어떠한 점을 고치지 않으면 내년엔 선물을 안가져다 줄 것임을 넌즈시 알려준다.

 

쭌이 네살때 까지만해도 산타의 등장 자체가 호기심과 두려움이었다.

당시의 사진을 보면 겁을 잔뜩 집어먹고 있는 모습이다.

 

다섯살 즈음엔 산타의 등장 상황 자체를 즐기고,

산타에게 뭔가를 가져다 주길 기도하기도 하지만,

수염이 이상하다는 둥 약간의 의문을 표하면서도 존재 자체를 의심하진 않았다.

 

올해 여섯살된 쭌은 싼타잔치에 대해 별다른 관심을 표하지 않는다.

물론 선물을 받을 것에 대한 기대는 한다.

어느날 저녁, 원하는 선물을 알아내기 위해 질문했다.

 

나: "산타 할아버지가 올해는 뭘 선물해주면 좋을거 같애?"

 

쭌:"음..탑블레이드...근데 어린이집에 오는 산타할아버지는 가짜다."

 

나:"--; 왜 그렇게 생각했는데"

 

쭌:"내가 수염을 당겨봤는데 가짜였어.."(기억력 짱 좋은 우리 아들)

 

이모:(이모의 수습) "산타할아버지는 바쁘잖아. 그리고 밤에 오시잖아. 근데 어린이집에는 낮에 오시잖아. 그러니까 할아버지가 직접 못오시고 심부름을 시키는거야..횡설수설"

 

쭌:"응"

 

어른들: ............휴~

 

그런데 오늘 낮에 다시금 이모와 산타에 관한 토론을 했는데

쭌은 여전히 어린이집에 오는 싼타가 가짜라고 생각하는데(산타가 없다는건 아니고)

이유인 즉

어린이집 친구들도 다 그렇게 생각하고, 자기가 생각해도 그렇다는 것이다.

이모의 수습은... "마음속으로 믿는 사람한테만 산타가 오는거야..."였다는데

 

의문. 

왜 어른들은 아이들이 산타를 믿기를 바라는 걸까? 자신들은 믿지도 않으면서,

온갖 텔레비젼에서는 산타 훈련받는 모습까지도 방송하고,

(물론 성인시대간에 ..그러나 아이들도 본다)

어린이집에서는 '아이들 몰래' 선물을 가져오라는 주의사항에 친절하게 밑줄친 안내문을

아이들 가방에 넣어 집으로 보낸다

(--; 7세반아이들의 반은 글을 줄줄 읽는다.),

눈가리고 야옹거리면서까지 산타의 존재를 믿도록 지켜주는 것이 어른된 도리라고 생각할까?

왜 아이들이 산타를  사실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할까? 

그리고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 상황이 아동기의 종료라고 생각하는걸까?

나도 내가 왜 그랬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마치 '산타는 없어! '라고 말하면

동심을 이해하지 못하는 삭막한 엄마인것 같은 느낌을 마구 받으면서

내가 왜 그래야 하는지 한번도 생각해본 적 없이 전전긍긍 산타할아버지의 존재를 만들었었다.

 

오늘 매우 씩씩한 어린이집선생님하고 산타잔치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그 선생님이 일하는 어린이집에는 몇해 전부터 '산타'대신 '백두할머니'가 오곤했는데

올해는 백두할머니가 오셔서 선물을 주는 대신 선물을 받아갈 예정이란다.

그리고 내년부터는 아예 오시지 않을 예정이라고...

그래서 아이들에게는 뭐라고 이야기했냐고 물었다.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한 이야기의 대충의 요지는..........

 

크리스마스는 원래 예수님이라는 분의 생일이었는데...그사람이 우짜구 저짜구...

그래서 사람들이 예수님이 태어난 날을 기념해서 선물을 주고 받았는데

선물을 못받는 사람들에게 산타가 몰래 선물을 가져다 주기 시작했고 ...우자꾸 저짜구..

그래서 그 날은 선물을 받는 날이 아니라 선물을 주는 날이다.

백두할머니는 그래서 너희처럼 생일이나 어린이날이나에 선물을 받을 수 있는 아이들 말고,

꼭 선물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나누어주려고 한다더라...

그래서 우리도 선물을 받는대신 선물을 하였으면 한다...

 

고 했다고..

그래서 언니들은 동생들에게 사탕목걸이를 만들어주고.....

아이들이 가져온 선물은 또 누군가 필요한 사람에게 선물 하려고 한다고..

 

머찐 선생님!

기업의 크리스마스의 상술에 놀아나지도 않고,

나눔의 정신도 아이들과 나누고.

그 골치거리 산타도 해결했다.

 

이렇게 산타를 알게 된 아이들은 어쩌면 아주 어른이 되어서도 산타를 믿을 수 있을 지 모른다.

백화점에서 만나는 산타는 가짜지만,

'내가 만날 수 없더라도 정말 산타는 있지...' 라고 속으로만 생각하는 어른들이 많아질 수도 있을거다.

그런 어른이 많아지면 그래도 세상이 좀더 살만해지지 않을까?

 

산타 할아부지 내년부터는 우리집에도 오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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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2/20 01:42 2005/12/20 0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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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안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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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의 내용물은 일반은행 및 상점에서 사용하실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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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2/18 00:13 2005/12/18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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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안내문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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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를 착용후 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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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2/18 00:09 2005/12/18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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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세용 포르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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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밤도 쭌의 수다가 늘어지는 가운데

무심히 듣고 있던 나의 귀를 확 잡아당기는 대목이 있었다.

 

쭌: 영준이가 여자가 가슴보이는 책 보여주면 우리가 "뜻"이렇게 한다요.

(참고: 게그콘서트의 한 코너 외인구단에서 게그맨들이 나와서 이상한 소리 할때마다 "뜻"뭐 이런 이상한 소리를 내는 장면이 있다.)

 

@#$%^& 빨간책? 어디서? 어린이집에서?? 벌렁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척 물었다.

 

나:가슴보이는 여자 나오는 책이 뭔데?

 

쭌:그러니까 선녀와 나뭇꾼에서요 선녀가 결혼하기 전에 나오잖아요.. 그리구 또 어디더라..

(참고:선녀의 목욕장면으로 추정됨)

 

허거걱... 선녀와 나뭇꾼도 포르노로 보면 포르노가 된다.

얼마전에 부인과 자신의 알몸사진을 홈페이지에 올린 사실로 유죄판결을 받은 한 미술교사가 있었다.

그 사진을 유죄로 판결한 재판부는 그 사진을 포르노로 본거다.

그분들이 이글을 발견하시면 선녀와 나뭇꾼도 포르노가 될판이다.

 

나뭇꾼과 선녀 그림동화는 전혀 음란하지 않을거다.

그러나 여성의 몸과 성에 대해 부정적인 우리 사회의 문화는

겨우 6세된 아이들도 여성의 몸을, 성을 무언가 부끄러워해야하는 것으로 인식하게 만들고 있다.

 

사실 선녀와 나뭇꾼이야기는 매우 부도덕한 이야기다.

옷을 훔쳐서 오갈데 없는 여자의 삶을 보호를 핑게로 감옥같은 생활에 가두는....

더구나 그 여성을 유괴하는 찬스는 착한 일에 대한 보상으로 주어진 것이다.

더 심각한 것은 자신의 삶을 유린한 그 나뭇꾼을 선녀는 용서하고 하늘로 불러 올린다.

 

이 그림동화를 보면서 남자아이들은 여성을 삶의 동지가 아닌 소유물로 인식하게 될것이고,

여자아이들은 그 이야기에서 체념과 강요된 착한여자의 모습을 배울것이다.

이렇게 시작된 일글어진 남여간의 관계에 대한 인식은

고3쯤 되면 교실에 '한시간 더 공부하면 내 마누라 얼굴이 달라진다' 같은 급훈이 달리는 상태가 되기도 한다.

 

사람이 사람에게

또는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모든 것들에 대해 지녀야 하는 기본적인 태도가 

서.로.존.중.하.는.것. 이란 걸 알면서 자라도록 하고 싶은데

너무 많은 테클이 들어온다.

 

낼은 쭌이랑 진지하게 선녀와 나뭇꾼에 대해 토론해 보아야 겠다.

딸가진 친구들이 그런다...."세상 너무 험하다. 아들 가진 사람들이 아들을 잘 키워야 해..."

정말 그렇다. 불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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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24 00:33 2005/11/24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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쭌이의 아이는 태어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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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1월9일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소위가 있다. 2006년도 예산안 검토가 그날 있을 예정이다.

여성부 예산의 90%를 육박하는 비율이 보육예산이다. 

보육예산 총액은 2005년 대비 32.1%가 상승했다.

정부가 드뎌 보육의 국가책임성에 대해 인식하기 시작했나?


그런데 이상하다.

국공립보육시설 점유율 5%선이 무너져 이제 4.8%이고,

2006년도에는 국공립보육시설은 100개만 짓겠단다.

보육의 공공성확보 우짜구 하면서 매년 국공립보육시설을 400개씩 지어서 2008년까지 최소한 국공립보육시설은 전체 시설대비 10%선까지 올리겠다는 정책이 얼마전까지만 해도 있었는데..뒤적 뒤적..그러고 보니 그게 올 9월이었다. 그럼 2007년도부터는 한해에 1200개소씩 짓겠다는 건가? 그건 아닐텐데..그럼 달랑 한달 반만에 아무런 설명없이 보육정책의 기조가 바뀐것일까?


이거 원 구멍가게 가게부도 아니고 일국의 아이들을 위한 정책이 설마??


여성부에서는 국공립보육시설 짓기가 너무 힘들단다.

그 첫번째로 든 이유는 지자체에서 부담이 과중해서 안짓겠다고 하니, 한 두달정도 여성부 장관님이 몸소 몇몇 지자체를 방문하여 '독려'도 해보았지만 말을 안듣는 단다.


또 두번째 이유는 민간보육시설들이 애들이 빠져나갈 것을 우려해 국공립보육시설 짓는 것을 반대하기 때문에 어렵단다. 그래서 더 이상은 힘들어서 못하겠다고... 우짜겠냐고 한다.


보육정책을 포기하고 방향을 전환하는 이유로는 참 민망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식 낳기만 하라고 그럼 키워주겠다고 호헌한 정부에서 관련예산은 좀 늘여야 면이 서겠고,

그렇게 늘어난 예산 32% . 그 돈은 다 어디로 갔나?


다시 뒤적 뒤적... 다른 예산은 도통 물가상승분 3%만큼만 늘어났는데..뒤적 뒤적...

아! 저소득가정보육료지원 62.8% 상승.

그러니까 2백80만천칠백원 버는 가정의 아이까지 지원하겠다는 내용이다. 어린이집에 보내는 맞벌이 부부의 총수입으로 생각하면 중산층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수입이지. 좋은 일이지.


근데..  왠지 느낌이 안좋다. 좋은 일이기만 한가?

국공립보육시설수가 4.8%에서 머물고 더 이상 확대될 전망이 없는 상황에서,

민간보육시설에 이용하는 저소득층 아동의 수만큼 돈을 직접지불하면, 그 돈은 어디에 쓰일까?

그 돈을 받고 부모들은 질좋은 서비스를 저렴한 비용에 이용할 수 있게 될까?

그래서 자식키우는 걱정은 좀 덜 수 있게될까?


정부는 민간보육시설의 가격규제를 언제까지 지킬 수 있을까?

한국조세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50인 규모의 보육시설일 경우 0세아(80만원~110만원), 2세아(42만원~57만원), 5세아(27만원~35만원)이 든다고 한다. 정부가 여기서 일정비율의 부모부담을 제외한 나머지 금액을 민간보육시설에 채워줄 수 있을까? 다 채워주지 못한다면 답은 한가지 보육료 자율화해서 부모의 소득수준에 따라 아이들은 차별화된 보육을 받아야 한다. 어려운 말로 이런걸 사회양극화라고 하던가? 이제 공식적으로 인생의 스타트라인이 달라지는것이다.


더 이상한건 툭하면 신문지상에 터지는 보육시설의 비리문제를 보고도 세금으로 지급된 그 돈이 정상적으로 쓰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한 신문의 조사에 따르면 미취학자녀를 둔 부모가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교육비 수준은 32.9%가 5만원이하, 28.8%가 10만원 이하였으며 무상교육이 맞다는 의견이 22.8%였다. 결국 84.5%가 10만원이하의 교육비용이 적당하다고 생각한다는 이야기인데 이 엄청난 간극은 어디서 어떻게 채울 수 있을까?


내가 일하는 단체에서는 보육이라는 말이 생기기 시작하기 전부터 20년동안 줄곧, 보육은 공공재이며, 이를 위해서는 보육아동의 50%이상이 국공립보육시설에서 보육받아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물론 초기에는 보육시설의 50%라고 더 심하게 주장했었다.) 정부도 이제까지는 50%는 아니지만 보육의 공공성을 위해 국공립이 최소한 10%는 되야 하지 않겠냐고 해왔다.

그런데 지금 여성부  국공립을 더 짓는 것이 맞지 않다고 말하는 근거인 보육아동의 형평성- 어떤 아동이 민간보육시설을 이용하느냐 국공립보육시설을 이용하느냐에 따라 다른 지원체계를 갖는 것은 나쁘다고 말하는 것이다. -문제는 일단 국가의 책임선을 다하고 나서 해야 하는 말이다. 그 논리는 아동의 형평성문제가 나쁜 일이니, 모두 다 공평하게 시장에서 키우라는 이야기니 말이다.


나보다 머리 좋은 사람들만 모여 있는 정부부처에서 이런 생각을 하지 못한 건 아닐텐데 도대체 왜 나의 나쁜 머리에 물음표만 가득 차게 만드는 정책을 만들어내는 것일까?


아! 기억나는 문구가 하나있다. 여성부 정책자료에 반드시 등장하는 문구.

"보육예산은 증대되었으나 국민체감도는 여전히 낮고..."


국민의 정책체감도는 내가 얼마를 지원받는다고 해서 높아지는 것이 아니다. 내가 얼마를 지원받는다 하더라도 보육료의 급격한 상승이나 보육료의 자율화 등으로 내가 내야 하는 총액이 늘어난다면 국민들이 원숭이가 아닌 이상 정부의 보육정책이 훌륭했다고 평가하지는 않을텐데..


여성부가 9월에 제출했다가 짤린 예산서를 보면 보육시설을 이용하는 아이들 전부에서 머리당 얼마씩을 얹어서 국공립이든 민간이든 시설에 돈을 주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름하여 기본보조금제도.


그 계획에 따르면 매달 41,888원에 시설이용 아동의 머리수를 곱해서 주는 것이다. 그래서 그 비용으로 '서비스제고지원비'라는 이름을 붙인다. 그 돈이 들어가는 만큼 민간보육시설의 서비스 질이 높아질 거라는 예상이다. 그런데  그 어마어마한 예산에 한해의  물가상승분 만큼만 곱해서 인상하려고 해도, 인상비용이 국공립보육시설 100개 신축비용이 나온다. 그 돈을 매해 물가인상분 만큼이라도 올릴 수 있을까? 못 올리면 어떻게 되나? 그럼 당연히 시설 운영비가 모자랄 테니 차액의 돈은 부모의 주머니에서 나와야 하겠지.


이 제도가 정착되어, 최소한의 국공립과 민간시설만 남는 보육시장에는 무한 경쟁만이 남는다.

내가 부모로서 경쟁력 있는 시설에 찾아서 보내지 못하면 내 아이는 정원을 다 채우지 못한 반에서 정당한 월급도 못 받는 선생님으로 부터, 덜 좋은 환경에서 덜 좋은 식단을 제공받으면서 지내야 한다.

보육시설의 경영난은 그것이 민간이든 국공립이든, 제대로 원아모집을 못한 원장과 교사의 책임이다.

우리 반 아이들이 줄면 교사는 경영상의 이유로 감원을 당할 수밖에 없다. 선생님이 없으니 그 시설에 다니는 아이역시 제대로 돌보아 질 수 없을 거다.


지금도 95%의 민간시설은 그렇다고? 그러니 별다를 게 없다고? 그러니 국공립 안 짓고 민간시설을 지원하는 게 현실적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럼 우리의 미래는 어떻게 되는 걸까?

우리 쭌이는 이담에 자식을 낳을 엄두 낼 수 있게 될까?

과연 우리 쭌이의 아이는 태어날 수 있을까?

아니 그렇게 까지 멀리 가지 않더라도,

지금 보육시설에서 자라고 있는 아이들의 삶은 어떻게 변하는걸까?

누가 내 머릿속의 이 무수한 물음표들을 없애줄 순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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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07 23:14 2005/11/07 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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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필이미지-날 갈등시킨 쭌이의 오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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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 다녀오다가 쭌이가 길에서 오백원을 주웠다.-눈도 좋아.

그런데 쭌이가 "엄마 오백원 주웠어"하는 그 순간. 한 오초쯤 경과하는 그 시간 동안

내 머리속에는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음..그러니까 길에서 돈을 주우면 어떻게 해야하는거라고 배웠지?

주워서 경찰서에 가져다 준다?->경찰이 화내지.

놓였던 자리에 그대로 두고 주인이 찾아갈 수 있도록 한다.->근데 이런 경우에 난 어떻게 하지?

 

물론 난,

이게 왠 횡제냐? 하고 가져가지.

물론 신분증이 든 지갑이거나, 엄청난 것일 경우엔 찾아주도록 노력하지->그러고 보니 그런 경우는 한번도 없었네..

 

앗뜨.. 그럼 이 순간 난 6세 우리 아들에게 무어라고 해야하지?

 

오초 경과 후.

그런니까 쭌아. 길에서 뭔가를 주우면 주인을 찾아주어야 하는데, 이 오백원은 이름이 없으니 찾아줄 수도 없고.

주인이 찾으러 온다는 보장도 없고, 게다가 그리 큰 돈도 아니니 열심히 찾을 것 같지도 않고..횡설수설..

 

결국 쭌이는 오백원 주운 기념으로 기념촬영을 요구했다.

 

흐흐.. 부모 노릇하고 살기 힘들다.

 

웬만하면 타의 모범까지는 아니지만

아들에게는 세상을 사는 모범을 보이고자 하는 욕구가 있는데.

그 모범이란것을 규정하기가  이렇게 어렵군.

 

결국, 집으로 돌아와서 내가 터득한 삶의 지혜까지 아들넘에게 알려주었다.

 

야! 원래 꽁돈은 쓰는거래. 과자나 사서 풀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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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0/25 00:15 2005/10/25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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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공엔
주먹이나 온갖것이
다 들어가듯이

구멍 하나 없는 나무토막에
못이 박히는 것은
그 안에 틈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단단하기 이를 데 없는 강철을
무르디 무른 물이 헤집고 들어가
매끈하게 잘라 낸다는 것도
역시 틈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서로 다른 존재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들어올 수 있는
마음의 틈을 마련해 두어야 합니다

틈/법현...지하철 5호선 발산역 승강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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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0/19 05:24 2005/10/19 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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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녕 쭌이의 유아기는 끝나버린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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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 이렇게 서운할 수가 없다.

충격의 강도는 서서희 왔다.

 

어제 늘어져서 프라하의 연인을 보고 있는데 쭌이가 졸리다고 그림책을 읽어달라고 한다.

나:"쭌 엄마 텔레비젼 봐야되.."
쭌:"나중에 컴퓨터로 보면되잖아"
나:"안돼 그럼 천원 내고 봐야되..지금 볼래"
쭌:"엄마는 나보다 텔레비젼이 더 중요해?"
나:"허걱..뭐라고 했냐????"

 

     다시금 정신을 가다듬고,
    "물론 쭌이가 세상에서 젤로 중요해 하지만 지금은 텔레비젼 보고싶어"


그러나 잠시후 나는 그림책을 읽고 있었고 쭌이는 두페이지가 넘어가기 전에 잠이 들었다.

첫번째 강도는 뭐랄까? '헐헐 우리 아들이 좀 컸군..'하는 것이었다면 두번째는 좀 세게 왔다.

보통 어린이집에 가기전 쭌과 나는 갖가지 닭살 애정표현을 한다.
먼저, 두팔을 머리로 올려서 만드는 하트
그리고, 손으로 만드는 심장에서 뛰는 작은 하트
또, 사랑의 쌍권총
하나더.. 사랑의 화살쏘기..

오늘도 여느때처럼 닭살 애정행각을 요구하는 나에게

애정표현의 4단계를 수행하면서 쭌이 비수처럼 날린 한마디.

"유치하지만 참는다"

허걱 이럴수가.

정녕 쭌이의 유아기는 끝나버린것일까?

그 허전함을 무엇으로 채울 수 있을까?

.

.

.

물.론. 정신을 차리고 충격에서 벗어나 생각하니 

그건 녀석의 어른인체하는 말투일 뿐,  여전히 잘때는 가슴을 파고드는 애기다.

그러나

쭌이는 이렇게 나에게 조금씩 준비를 시키고 있는것 같다.

'엄마 나 이제 클거거든.. 엄마도 마음의 준비를 해야지....'하면서 말이다.

 

쭌이를 낳기 전 태교서적으로 본 책 중에 "아이는 길을 묻는 손님이다"라는 책이 있었다.

그 내용은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부모가 아이에게 할 수 있는 건 친절한 길안내뿐이라는 그 제목의 의미는 충분히 알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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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0/11 01:24 2005/10/11 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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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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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이가 죽었다.

몇달전부터 변을 제대로 못보고 하루에 서른번쯤 화장실에 들락거리고.

내가 여행을 다녀온 몇일간 쉬를 못하고  있다고 걱정하더니만,

오전에 쭌이랑 외출해 돌아오니

바둑이도 이모도 없었다.

 

병원에 갔나보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여섯시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걱정이 된 엄마가 애견병원에 갔더니 의사는 수술해도 해결이 될것 같지 않아 안락사를 시켰다고 했다는데 이모는 그후로도 한참있다가 돌아왔다.

 

돌아온 이모에게 쭌이가  "바둑이는"이라고 묻자.

"죽었어"라고 답하고 방으로 들어가 이불을 뒤집어 쓰고 누웠다. 그후로 계속..

 

쭌이는 텔레비젼을 보다가 쬐금 눈물을 흘렸고,

"엄마 난 눈물이 나오다가 텔레비젼을 보면 눈물이 안나온다"..한다.

 

그리고 좀 있다가 목욕하다가 또 묻는다.

"바둑이 죽었어?"

"응"

"죽은거라도 보고 싶어.."

"볼수 없어"

그러자 눈가가 벌게 진다...그리곤 또 한참을 논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에 관한 '슬플때도 있는거야'라는 책을 읽으라고 주었더니

한참을 읽더니 종이와 연필을 찾아 무언가를 만든다.

그 책에.. 사랑하는 사람이 죽으면 앨범을 보고 추억하라는 귀절이 있었는데 ..그걸 보곤.

쭌이는 조그만 종이에 바둑이의 초상을 그린다.

'이바독 앨범'이라고 쓴 종이밑에 하트 눈을 한 바둑이가 있고.

'잘살기 기대해'라고 쓰여있다. 바둑이 초상옆에는 마음을 담은 하트가 여섯개쯤 그려져 있다.

그리고 쭌이는 이제 모든게 잘 되었다는 듯이 그걸 제 눈에 잘 보이는 곳에 붙이란다.

그리고 어른이 될때까지 소중하게 보관하겠다고 말한다.

 

그리곤 놀다 잠이 들었다.

 

이모는 이불을 뒤집어 쓰고 있고,

할머니와 나는 저녁 내 말없이 텔레비젼을 보고 있고.

쭌이는 나름의 죽음에 대한 의식을 치루고 혼곤히 잠들어있다.

 

나는 저녁내 비염때문에 콧물을 흘리며 훌쩍거린다.

바둑이때문이라고 생각했던 비염 증상이 바둑이가 없는 이 상황에도 여전히 나타난다.

아마 바둑이가 아직 못떠난 모양이다.

근처 어딘가에서 15년 평생을 살았던 우리 옆에서 서성이고 있나보다.

 

우리는 살면서 피할 수 없이 가까운 누군가의 죽음을 만난다.

그럴때 쭌이처럼 솔찍하게 그 죽음과 만나서 인정하고,

다시 만날 수 없음을 슬퍼하고,

떠나간 생에 대해 애도하고,

그리고..잘 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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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0/02 01:54 2005/10/02 0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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