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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12/28
    대추리의 노을
    미친꽃
  2. 2006/08/04
    대추리 도두리.
    미친꽃
  3. 2006/08/03
    [후기] 도둘도둘 도두리 마반장네 집 꾸미기.
    미친꽃
  4. 2006/07/23
    [후기]불판집에서 2박 3일.
    미친꽃
  5. 2006/07/16
    [유람] 제주유람(1)
    미친꽃
  6. 2006/07/07
    [평화행진단]2일째. 비속을 가르며 평화를 지킨다.
    미친꽃
  7. 2006/07/03
    [평택] 빈집, 3개의 방.
    미친꽃
  8. 2006/07/03
    [평택] 저항의 근거, 사람의 온기.
    미친꽃
  9. 2006/06/27
    평택에 가서 빈집을 꾸미자(4)
    미친꽃
  10. 2006/06/27
    [유람]서울 평창동 근처 백사골
    미친꽃

대추리의 노을

대추리의 저녁 노을과 누누누누운.
펑스들이 와서 솔부엉이 도서관 페인트 칠하고 눈 청소도 한 날.
그날의 사진.

 

 

대추리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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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추리 도두리.


대추리와 도두리의 평야.

그날은 날이 맑고 햇빛도 투명했으며, 흰 뭉게구름도 있었다.

 

--

나는 어렸을때 물빛이 밤색으로 보이는 채소밭 옆의 작고 오래된 연못에 떠있는 시들고 슬퍼보이는 연꽃을 바라보곤 했다. 아버지는 그 꽃에는 뿌리가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사람들이 왜 그 꽃을 항상 무언가에 비유하는지 알려주었다. 하지만 그 말의 의미는 내가 성장하고 난 뒤에야 이해할 수 있었다. 연꽃들은 항상 어느 곳으론가 떠내려갈 것처럼 공허하고 자유로웠다. 그러나 작은 연못 속에서 다른 어느 곳에도 가지 않는, 아니 가지 못하는 꽃. 내 인생의 요약은 이것이다. 나도 그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았고 연못 안에서 홀로 살아갔다. 뿌리도 내리지 못했다. 내 자리에서도 온전하게 정착하지 못했다. 다른 세상으로 도망가지도 못하고, 몸을 담근 연못과 함께 더러워지며 나이 들어갔다. 나를 바라보면서 사랑한 이들도 있었지만 아무도 옷깃에 나를 달지 않았다. 또한 방을 장식하지도 않았고 그 누구도 물을 주면서 키우기 위해 정성을 들이지 않았다. 그들은 내가 그들을 필요로 하지 않고 내 연못에서 혼자 떠 있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곳에 떠 있으면서 슬픔과 외로움과 속물이 되는 것을 배웠고 인생을 알게 되었다. 이상 構들리겠지만 나는 다른 그 무엇이 되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들이 나를 좋아해주는 것으로 충분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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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도둘도둘 도두리 마반장네 집 꾸미기.

8월 1일은 대추리, 돗두리에서 촛불 문화제가 시작된 지

700일이 되는 날이었다.

 

이 안타깝고, 경사스런 잔치자리에 참가하고자 불판 친구들은

평택으로 향했다.

 

 


<수원에서 합류한 미친X>

 

원래 신도림에서 만나서 같이 내려가기로 했으나, 불판팀의 참가를 막는 평택서의 공작에

 의해 불가피하게 alternative international direct-action solidarity와 hybrid

 international violence-revolutionary 두 팀으로 나눠지게 되었습니다.

 

 

 

 

 


 

 

신도림에서도 불판팀을 방해하더니, 대추리 초입인 원정리 3거리에서 경찰은 우리를

막아 세웠습니다. 20분이 넘게 실갱이를 한 후에야 결국 A.I.D.S 팀은 경찰에게 차를

내주기로 했습니다.

 

 


<차를 내주고 허탈해하는 대안 국제 직접행동 연대>

 

 


<차를 내주고 허탈해하는 A.I.D.S>

 

석유시대의 종말 이후에도 우리는 생존할 수 있습니다. 차가 없으면 걷는 거죠

 

 


<걸어가는 A.I.D.S>

 

 

 

 



<넘어가는 해>

 

2시간 가까이 걷고, 해가 지는 무렵에 겨우 대추리에 도착할 수 있었고,

A.I.D.S. 는 에어콘 빵빵하게 나오는 차를 타고, 희희낙락거리면서

들어온 H.I.V.와 만나게 되었습니다.

 

 

 

 


<700일 촛불 문화제>

 

 


 

 

 

 


<회의 하는 사람들>

 

 


<회의하는 사람들>

 

 


<회의하는 사람들>

 

다음 날 아침, 불판팀은 열무밭에 갔습니다.

 

 


<자라는 열무>

 

 


<열무를 억압하는 구멍>

 

 


<불판밭 근처에 있는 버려진 펜션>

그런데 불판밭 근처에 호사한 건물이 쭉 세워져 있었습니다. 말을 들어보니 업자들이

평택에 미군기지가 들어선다는 것을 알고 미리 지어논 빌라였죠. 제대로 지어놓지도

않고 보상금만 쏙쏙 빼먹는 되먹지 못한 놈들이죠. 그래서 황량하게 버려진 15동의

건물만 덩그라니 남아 있었습니다.

 

 


<돈지랄>

 

 


<돈지랄>

 

 


<돈지랄>

 

불판밭 탐방을 끝내고 이제 우리는 도둘도둘 도두리로 향했습니다.

바로 마반장네 민박집을 꾸미기 위해서죠.

 

 


<향하는 불판팀>

 

 


<향하는 불판팀>

 

 


<향하는 불판팀>

 

 


<마반장네 민박집>

 

 


<마반장네 민박집>

 

 


<마반장네 민박집>

 

 


<마반장네 민박집>

 

 


<마반장네 민박집>

 

 


<마반장네 민박집>

 

 


<마반장>

 

 


<마반장네 민박집>

 

점심부터 시작한 집꾸미기는 저녁 7시까지 이어졌습니다.

맨날 뺀질뺀질 거리던 불판팀이 이렇게 까지 열심히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미역국>

 

2일날 아침 불판팀이 먹었던, 이 미역국 때문이 아닐까 곰곰히 생각해 봅니다.

막걸리와 소주로 상한 속을 달래주었던

 

청정해역에서 해녀들이 직접 따온 미역에다가

날씨가 참기름, 소금, 간장 만으로 간을 한 

그리고 무엇보다도 숨김맛으로 작동했던 대추리표 마늘이 들어간 바로 그 미역국..

 

 

 

 

1박 2일 동안의 모든 공로를 미역국에게 돌리며...

 

마반장 좋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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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불판집에서 2박 3일.

<목요일>

범국민 대회가 7월 22일 대추리에서 열린다고 하여, 구*구씨의 제안에 따라 목요일에 들어갔다. 구*구씨는 대낮에 들어갔고, 나는 저녁에 들어갔는데, 검문을 심하게 해서 혹시 못 들어갈까봐 사실 되게 쫄았다.

 

<불판집 전경> 불판집의 모습

 

내가 오기전 돕*드와 구*구씨는 여러 빈집을 돌며 불판집에서 쓸 가재도구들을 모았는데, 제법 쓸만한 이불도 한 채 가져왔고, 아주 고급스러운 털실들을 봉다리째 수집해 왔다. 또 제법 쓸만한 버너 몇개와 다라이 등등을 구해다 놓았다. 또한 제법 쓸만한 장롱과 책장도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불판집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고, 화장실은 여전히 고장난 상태다. 그러나 쉬야는 화장실 바닥에 누고 물을 뿌리면 해결되고, 끙아는 변기에 누고 물을 부으면 된다. 그러나, 불판집 용 밭을 만들었으므로 여러분은 구로구가 주어다 씻어놓은 요강에 쉬야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나중에 비료로 쓸 예정임.

 

하여간 주어온 이불을 덮고 자려니 온 몸이 간지럽고 축축하여 도저히 잘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한 밤중에 다시 마리아에게 이불 한채를 다시 빌려와 제법 편안하게 잠을 잘 수 있었다(라고 썼지만 사실 등이 배겨서 아침 일찍 깼다)

 

 

<첫날 사진> 구로구는 솔부엉이 도서관에서 책은 안읽고 인터넷만 했다네~

 

 

<둘째날>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이불을 개서 파란방에 놓아두러 간 구로구는 잠시 잊고 있던 파란방의 핏빛에 놀라 비명을 질렀다. 나도 볼 때 마다 무서워서 심장마비를 예방하고자 낮 동안에는 빨간 커턴을 잠시 묶은 후 창을 열어두곤 했다.

 

우린 지킴이네 집에서 밥을 해 먹은 후, 마을 빈집을 돌며 다시 가재도구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동네 할아버지께서 친히 나오셔서 이런 저런 조언을 해 주셨는데, 이사간 전 주인들이 자신들이 버린 집에 와서 감놔라 배놔라 참견하니 조심하라는 충고와 언제 왔다 갔다 등등 정보를 주셨다.

 

 점심으로는 맛난 콩국을 먹었고, 마*아와 함께 항아리도 구하러 다녔고, 빈 초가집 앞 있는 개복숭아 나무에서 복숭이를 따려고 했으나, 너무 맛이 없고 벌레만 많아서 몇개 따다가 포기했다. 대신 모기에게 많이 물리는 성과가 있었다.

 

우리는 불판집이 생겼지만, 역시 불편한 수도시설과 하수시설, 전기 시설 등으로 인하여 지킴이네 집에 너무 많은 신세를 지고 있다.

 

참, 불판집 현판을 새기려고 나무장식 판때기를 구해왔다. 마당 앞에 잘 세워두었음.

누군가 멋진 현판을 만들어 주길~

 

참, 둘째날은 볕이 좋아서 주어온 이불을 구*구씨와 함께 세탁하여 잘 말려두었다.

그날 저녁에 덮었더니 해볕냄새가 났다.

 

우리는 좋은 아이디어가 있었다. 무쇠솥을 주어다가 마당에 부로끄로 화덕을 만들고 장작을 때서 솥밭을 해 먹기로 했다. 누룽지도... 그래서 모든 빈집을 다 돌았고 심지어 문이 잠긴 빈집은 담을 넘어 들어가기도 했지만 무쇠솥은 구할 수 없었다. 이미 고물상들이 다 가져간 모양이었다. 아쉬웠다.

 

오후 무렵 돕*드와 디*를 통해 불판집에도 밭을 주겠다는 얘기를 들었고,우리는 기쁨에 들떠 열무를 심기로 전격 결정했다. 우리가 심은 씨앗은 중국산이 아닌 한국산 열무 씨앗으로 매운 맛이 덜하고 시원한 것으로 유명하다. 씨앗은 마*리의 친구가  사다 주었다. 밤이 되자 마*아의 친구들이 대거 등장했다.

 

저녁 초불행사때는 '공공일기' 출판 기념회를 겸하여 진행되었다. 책을 많이 얻어왔으니 한권씩 가져가시오.

 

빈집에서 술을 한 병 줏어왔다. 지킴이들과 함께 먹으려고 졸린 눈을 부비며 마실나간 지킴이들을 기다렸으나, 정작 주어온 술은 너무 맛이 없어서 먹을 수 없었다.


 

<둘째날 점심> 콩국수와 밭에서 딴 토마토, 고추, 오이무침

 



 <유럽풍 램프> 그러나 심지가 없어서 사용할 수 없다.


 

 

<세쨋 날>

역시 등이 배겨서 일찍 일어났고, 낫을 빌려서 화단의 잡초를 모두 베어내고 거기에 열무와 약간의 허브를 심었다. 그러나 허브가 뿌리를 내릴지 걱정. 

 

허브가 뿌리내릴때까지 물이 마르면 안된다고 하니 물 좀 충분히 주시고, 풀이 자랐거든 김 좀 매주오. 혹시나 하여 비닐을 덮어두긴 했는데 시간이 없어서 그냥 막 덮어두었으니 마무리 좀 잘 해주세요.

 

그리고 디온에게 우리 밭 위치를 물어서 김 좀 매주시고, 오줌을 싸려거든 아나키 방의 요강에 오줌을 모아서 화단이나 열무밭에 뿌려주세요.단, 파리가 꼬이지 않게 함께 있는 항아리 뚜껑으로 꼭 덮어두시오.

 

 열무밭을 호미로 로터리치고 씨를 30Cm 간격으로 점뿌리기 하여 밭을 만들었다. 밭은 4반에 있다. 우리 밭은 파를 심은 고랑 옆의 2개. 나머지 2개는 지킴이네 밭.

 

마*아씨 친구들은 불판집에 구경와서 다들 감탄을 하고 갔다. 부러운 눈치였다.

 

<잡초 무성한 화단> 이렇게 귀신산발머리 같던 화단을  정리하여.

 


 

<정리된 화단> 민트와 맨 앞줄의 쪽파. 그리고 열무를 심었다.

 


<밭일> 옮겨 심을 민트를 선별하는 구*구씨.


 

밭을 다 일군후 범국민 대회장인 평택역으로...가는 길에 본 전경들.

<전경들> 더위에 지친 전경들, 그중 한명이 미소를 날리고 있다.

 

<버스를 막고 기사에게 뭐라고 속닥거리는 경찰. 함께 탄 할머니께서 크게 호통을 치셨다>

 

<자전거 순례단, 남도에서 부터 자전거를 타고 온 순례단. 따르릉~>

 


 <깃발을 든 고등어씨>

 

<우산을 든 인간 로터리 머쉰 '곳'과 그 옆의 '열무'>

<천리길도 한 걸음 부터>

<여러 친구들께 당부 말씀>

1. 화단의 민트와 열무가 자랄 수 있게 물 잘 주세요.

2. 화단과 열무밭에 들러 시시 때때로 김을 매주세요.

3. 오줌을 깨끗하게 모아서 비료로 사용합시다. (요강은 아나키방에 있음. 단 엉덩이 싸이즈와 맞추어 보시고 사용가능한 지 테스트를 해주시면 감사)

4. 집 단장을 더 해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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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람] 제주유람

 

 7월 11일부터 16일, 5박 6일 동안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이란 것이 먹고, 놀고, 쉬는 것이라지만

우리는 네가지 큰 틀을 붙잡고 뭔가 의미가 있는 여행이

되고자 노력했다.

 

1. 평택 미군기지 확장반대

2. 한미 FTA 저지

3. 여성주의

4. 생태주의               

 

이상 네가지의 기조를 가지고 '철조망을 불판으로' 제주순례를 시작

했다.


 

<제주항공 비행기 앞에서>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제주항공의 비행기는 일반의 그것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프로펠러가 밖으로 돌출되어 있으며, 겨우 70명의 승객만이 탈 수 있는 저가형

비행기인 것이다.

김포에서 제주로 내려가는 내내, 우리는 비행기의 소음과 흔들림으로 인해

추락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떨어야 했다.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제주공항에서 우리는 미리 예약해둔 바이크 렌탈회사의 직원의 환영을 받았다.

그리고 윗 사진에 나와있는 2인용 바이크를 4일 동안 10만원 빌렸다. 

여행 내내 바이크 운전을 내가 했는데,

이는 바이크 렌탈회사 창립 이래, 여성이 운전하고 남자가 뒤에 타는 방식은

최초인 일이었다.

그리고 거리에서도 지나가는 시민, 농민, 어민, 남녀노소 할 것없이 우리를

쳐다보며 놀라워 했다.

 또한 중간에 서울에서 내려온 마붑, 매닉 일행 또한 놀라워 하며 우리를

부러워 했다. 특히 매닉은 '어떻게 산만한 얘가 뒤에 타고 네가 운전을 하니?'

라는 가부장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 발언을 하기도 하였다.

 

 

 

 


 


<제주... 그리고 바다>

 

 


 


<마라도로 향하는 배안에서>

 

 


 


 


<마라도>

 

 


 


<종과 종 사이를 넘는 교감 - 말>

 

 


 


<종과 종 사이의 교감 - 오징어, 까마귀>

 

 


 


 


<해수욕>

 

 


 


<대안에너지 - 풍력발전>

 

 


 


 


 


 


 


 


 


<한라산 등정>

 

 

 

 


 


 



<해녀와 그녀들의 삶>

 

해녀 혹은 잠녀는 단순히 물질을 하는 여인들이이 아니었다. 해녀는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던 이들이었다.

해녀는 제주도를 넘어서 일본, 중국, 러시아 등지까지 원정을 나가 활동하였으며,

노동을 통해서 당시 여성에 대한 사회적 시선을 넘어섰던 이들이었다.

 

 

 

 

 

그 밖의 등급 외 사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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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행진단]2일째. 비속을 가르며 평화를 지킨다.

평택 미군기지 확장반대, FTA 전면 중단하라는 깊은 뜻을 가지고 걸어서 평택까지.

저는 평화행진단에 오후 5시 경 합류했습니다.


<수원 동문(창룡문) 앞에서 잠시 대열을 정비하는 평화행진단>

 

평화행진단은 수원에 도착하여 수원시 우만동 소재 경기경찰청 앞에서, 폭력적인 진압과 마구잡이 연행에  대한 항의 집회를 했습니다. 그리고서는 위의 사진에서 볼 수 있듯, 아름다운 창룡문 맞은 편 연무대(활쏘는 곳)에서 잠시 다리쉼을 했습니다.

 

 


<평화를 택하는 자전거, 그리고 살짝쿵 토끼 이빨이 민망한 순간, 그러나 여전히 수원성은 의연했다>

 

평화행진단은 동문(창룡문)에서 남문(팔달문)으로 걸어가면서, 동네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었어요. 이에 동네분들도 반갑게 손을 흔들어 주셨습니다. 시가지인 남문에 오자, 많은 시민과 상인 및 아르바이트생들이 가게에서 모두 뛰쳐나와 행진단을 맞이했습니다..라는 것은 살짝쿵 뻥입니다. 그러나, 시민과 상인 및 아르바이트 생들이 가게에서 나와서 전단지를 받아간 것과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계속 지켜본 것은 사실이지요. 그러면서 아직 가게안에 남아있는 동료에게 이렇게 외치더군요. "미군기지 반대하는 거래!!" (수원에는 94년 쌀개방 반대 투쟁이후로 이렇다할 대규모 집회가 많지 않아서리..)

 

<남문에서 매교동을 지나는 평화행진단, 걷는 것은 평화다>

 

이제 한 20분 정도만 더 걸어가면 수원역입니다.

수원역에서  저녁 집회를 할 예정입니다. 그런데...

 

<수원역에 다 왔다 싶었는데, 갑자기 쏟아지는 비. 아웅~ It's rain>

 

갑자기 비가 오는 거에요. 아웅아웅.

그러나 비가 와도 저녁집회는 합니다.

 

수원역 광자에서 진행된 저녁 집회는 8시 10분경 시작되었고, 9시 30분경 끝났습니다.

 비가 와서 사람들이 별로 없을 줄 알았는데, 꽤 많았어요.

수원대 지킴이들, 성공회대 지킴이, 수원농촌진흥청 공무원노조, 수원 KYC 등등등... 

비가 왔지만, 너무 너무 신나고 재미있는 집회였습니다.



<빗속 집회는 이런 느낌으로 진행>

 

10시경 평화행진단은 숙소로 쓸 수원고등동 성당으로 이동했습니다.

아... 비가 와서 사람들이 좀 추웠을 거에요.

잠자리는 성당의 식당 겸 강당에 마련되었습니다.

신부님께서 온풍기를 틀어주셨지만, 비가 와서 오돌오돌 추울까봐 걱정이네요.

 

'걷는 것이 평화'

우리는 대추리 돗두리 황새울 지킴이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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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 빈집, 3개의 방.

::님의 [빈 집 꾸 미 기 - 3 rooms] 에 관련된 글.

빈집이 아주 멋있게 변신했다.

놀라울 따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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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 저항의 근거, 사람의 온기.

::님의 [빈 집 꾸 미 기] 에 관련된 글.

 

역시, 저항의 근거는 삶.

삶은 온기.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개개인의 삶에서 뭍어나는 고단함,

괴로움들 때문에, 일하다 말고 울때가 많다.

 

남의 인생사를 들여다 보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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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에 가서 빈집을 꾸미자

http://www.stopcrackdown.net/zeroboard/view.php?id=peace&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120

<그림과 노래와 가사는 위 게시판에서 퍼왔습니다>

 

7월에 평택 대추리와 도두리에 강제철거가 시작될 거 같습니다.

큰 행사가 있을 때는 마을 통행을 막지만 평소에 버스를 타고 가면 막지 않아요.

 

 



I'll light the fire You place the flowers in the vase That you bought today
Staring at the fire For hours and hours While I listen to you
Play your love songs Allnight long for me Only for me


 

난 불을 지피고, 당신은 오늘 사 온 꽃들을 꽃병에 꽂도록 하세요.
몇 시간이고, 타오르는 불을 바라보며, 밤새도록 날 위해 당신이 연주하는 사랑 노래를 들을거에요. 나만을 위한 사랑 노래를..


 

Come to me now And rest your head for just five minutes Everything is done
모든 일이 끝났으니,이제 내 곁으로 와서 5분만이라도 머리를 기대어 보세요


 

Such a cozy room The windows are illuminated By the evening sunshine through them
Fiery gems for you Only for you Our house is a very, very, very fine house With two cats in the yard


 

무척이나 아늑한 방.. 당신을 위해 불타는 보석처럼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저녁 노을에
밝게 빛나는 창문.. 오직 당신만을 위해..
우리 집은 마당에 고양이 두 마리가 있는 무척이나 멋진 집이에요.


 

 Life used to be so hard Now everything is easy 'Cause of you ..and our
지난 삶이 힘들었지만 당신 때문에 이젠 모든게 순조로워요  


 

la,la,la, la,la, la, la, la, la, la, la..... Our house is a very, very, very fine house With two cats in the yard Life used to be so hard Now everything is easy 'Cause of you ..and our
I'll light the fire while you place the flowers in the vase That you bought 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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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람]서울 평창동 근처 백사골

고등이와 함께, 백사골에 갔다.

어느 인터넷에 서울 안에 있는 가 볼만한 유람지라고 나와있길래,

고등이를 꼬득여서 비오는 날 뿜어져나오는 피톤치드를 만끽하러 기어이 가고야 말았다.

 

그날은 웬지, 비오는 날의 나무 냄새를 맡고 싶었다고나 할까?

그러나, 난, 내가 찾아가고자 하는 곳의 약도는 커녕 지명조차 기억하고 있지 못했다.

오로지 알고 있는 것이라고는 '세검정의 선비들이 글을 읽던 자리'라는 것 뿐.

 

사실 어디서 내릴지 몰라서 버스 기사아저씨께 물었다.

 

"세검정에서 내려주세요"

"세검정 어디 갈건데요? 거기 꽤 넓은 데"

"아..... (목적지의 이름을 모르므로 할 말없음) 아.. .저기 선비들이 글 읽던 곳이요"

"음...모르겠는데?"

 

하여튼, 그냥 대충 세검정에서 내렸다.

그리고는?? 뭘?? 어쩌라고?? 버럭!!

관광안내도도 없었다. 그래서 파출소에 들어갔다.

고등이는 쪽팔리다며, 한사코 나보고 들어가는 거였다.

남자는 여자를 너무나 귀찮게하네~~

 

파출소에서 이 지역 관광안내도를 문의하자니, 그런 것은 없다는 반응.

어찌할까 하던 찰나, 나의 맘을 알았는지 어디가냐고 물어오는 것이다. 크허허.

 

" 아... 이름을 잘 모르겠는데, 여기 근처에 선비들이 글 읽던 자리가 있다던데, 그곳을 가려고요"

" 이름 몰라요?"

"아... 저기 선비들이 글 읽던 곳에 가려고...."

 

나는 연신 선비가 글 읽던 곳을 비맞은 중 처럼, 중얼 거렸다.

그때 다른 경관이 거기가 백사골이고, 백사 이항복이 글을 읽던 곳이라면서

벽에 붙은 지도를 짚어가며 상세히 설명, 결국 우리는 우리가 가고 싶은 곳이 어디인지 알게되었어. 크허허.

 

마을 길을 따라 쭉 올라가니, 아기 자기한 예쁜 집들이 많이 나왔다.

어떤 집은 적당히 수수하면서도 참 예뻤고, 어떤 집은 참 얄밉게 저만 반지르르 했으며,

또 어떤 집은 참 어설프게 돈 있는 티를 내고 싶어했다.

그 많은 집 중에 가장 인상에 남는 집이 하나 있었다.

 낡고 오래된 단층 건물과 그 건물에 어울리는 주소문패가 달린 집. 그 소박함에 건배. 그 집 옆에는 감시카메라가 설치된 어설픈 부르주아의 집도 있었다. 그 감시카메라 앞에서는 "뿡알 먹어라"를 함.

 

그리고, 백사골로~

 


<담쟁이가 예쁜 어느 집 앞>

 


<가시 철조망에 사실 경비까지, 담장쳐진 도시에서만 살고픈 욕망 혹은 두려움>

 

백사골은 정말 아기자기.

비가 부슬부슬 내려서 오히려 호젓했던 곳.

작은 졸졸 냇물에는 버들치도 살고 있었다.

작은 오솔길은 과연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지를 의심케했는데...

 

 

 

결국, 부암동에서 올라간 우리는 바로 옆 평창동 기슭으로 내려왔다.

 


<백사골 입구>


<이 실개천에는 버들치와 맹꽁이가 산다>

 

 

 

 


<고등이와 나>

 

산속에서 어디로 가야할 지 몰라 아무대로나 막 가다보니,

마을 가는 길이 나타났다.

그 산길은 어느 집 뒷곁으로 이어져 있었다.

그 곳을 빠져 나오려니 남의 집안이 훤이 다 보이는 통에 미안함을...

대문도 없던 집. 아마도 우리 처럼 길 잃은 사람들을 배려한 것일지도.

 


 

고등이가 무엇인가를 무서워하고 있었다.

무엇일까?

 

<평창동 산동네 골목과 무섭게 짖어대던 작은 강아지>

 

고등이가 무서워 한 것, 그것은 바로 '짖는 강아지'.

조그만 녀석이 어찌나 짖어대던지 나도 무서웠다.

이렇게 허름한 산 동네 밑에는 제법 아름다운 집들이 있고...

그 아름다운 집들은 또 다시 '담장을 쳐서' 자신을 가두어 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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