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어떤 사태에 대한 짧은 기록

대략 지난 일주일동안은 먹고 살기 위해(?) 읽어야 하는 책들까지 모두 제쳐놓고 브릭에 들어가 살았다. 이 사태를 이해하는 건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제 진상조사에 착수했으니 일단은 한 고비를 넘긴 듯 하다. 그래서 그동안 느낀 걸 간단하게 정리해두기로 했다.

 

첫째, 사람들이 생각보다 논리적 이해에 취약하다는 걸 절감했다. 원인 가운데 하나는 인터넷 게시판의 긴 글을 컴퓨터 화면을 통해 본다는 환경적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내 경험을 볼 때, 종이에 인쇄해서 읽어보면 훨씬 논리적으로 정리할 수 있다. 인터넷과 컴퓨터를 매개로 한 공공 논의(비전문가와 전문가 모두 마찬가지다) 틀에 많은 회의를 느끼게 된다. 보통 심각한 게 아니다. 여론의 왜곡과 조작 가능성이 너무 크다. 생각과 글쓰기도 완전 인스턴트 시대에 접어들었다. 물론 이해를 못하거나 거부하는 데는 이외에도 많은 원인들이 있으나, 이런 원인들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 것같다. 아마 여기에 비유할 수 있는 사건이 유서대필 사건 같은 게 아닐까 싶다.

 

둘째, 과학자라는 사람들이 여론에 호소하기 위해 과학을 배반하는 데 너무 큰 실망과 충격을 느꼈다. 해명이라고 내뱉는 말들을 보면 모멸감마저 느껴진다. 과학을 하는 사람이 아닌 내가 이럴진대 과학자들은 어떨까? ”※※※ 죽이기”라고 이름붙여 내놓은 4가지 의혹에 대한 반박 글이 역시 백미다. 죽이기라니... 과학은 과학적으로 접근해야 된다고 점잖게 거들던 분들은 다 어디갔나?

 

그래도 진실이 모든 걸 앞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직 꽤 있다는 게 소득이라면 소득이다. 아니, 소득 정도가 아니라 이것이야말로 희망이다.

 

맥락은 전혀 다르지만, 리오 후버만의 글 한 구절을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모호한 태도를 취하지 않고, 일부를 잘라내 버리지도 않고, 겁을 내 피하지도 않으면서, 우리가 본 데로 이야기할 때 이 일을 가장 잘 수행할 수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의 진실을, 전체 진실을 이야기하자.

 

'뎁스의 방식'이라는 글의 한 대목이다.

2005/12/12 18:30 2005/12/12 18:30
5 댓글
  1. 행인 2005/12/13 01:57

    저도 그 부분에서 희망을 느낀답니다 *^^*

     수정/삭제 |  댓글에 답장 |  댓글 고유 주소

  2. 自由魂 2005/12/13 12:04

    개인적으로 대중에 대한 '신뢰'를 접게 된 계기가 될 뻔 했습니다.
    다행히도 사태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적지 않은 사람을 확인할 수 있어서 '희망'을 느낄 수 있었답니다.

    지금이야 잊은지 오래지만 한 때 '공학도'로서 저의 과거가 논문의 '진실' 여부를 떠나 황우석 교수에 대한 실망을 더해주고 있습니다. 지금에 와서 정치적이지 않은 과학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너무나도 '정치적' 모습으로 일관한 모습에 실망을 금치 않을 수 없습니다.

     수정/삭제 |  댓글에 답장 |  댓글 고유 주소

  3. marishin 2005/12/13 13:47

    행인님, 자유혼님, 저와 비슷한 생각을 하셨군요. 난치병 환자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도 그 자체로 좋은 일이지만, 이렇게 진실 또는 사태를 있는 그대로 보려고 애쓰는 이들의 존재를 확인하고 얻은 희망도 값지겠죠. 희망을 잃지 말고 살아야겠습니다.

     수정/삭제 |  댓글에 답장 |  댓글 고유 주소

  4. 동동이 2005/12/13 17:54

    저두 이불 뒤집어쓰고 훌쩍거리면서 모니터 앞에 앉아있었는데, 광기를 닮은 여론도 그것을 바꾸려는 진실에 대한 신뢰도 한 사회에서 한 때 이렇게 어마무지하게 쏟아져나온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합니다. 정말 다이나믹 코리아인걸까요. -_-

     수정/삭제 |  댓글에 답장 |  댓글 고유 주소

  5. marishin 2005/12/13 18:51

    동동이님, 맞습니다. 정말 다이나믹한 면에선 세계 최고죠. 모니터 앞을 떠나기가 겁날 정도로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이라니. 딸 아이 돌보기가 제 임무였는데, 아이가 나중에 제 엄마한테 “아빠가 놀아주지 않았다”고 훌쩍거릴 정도였답니다. 둘러대느라고 엄청 고생했다는^^

     수정/삭제 |  댓글에 답장 |  댓글 고유 주소

트랙백1 트랙백
먼 댓글용 주소 :: http://blog.jinbo.net/marishin/trackback/170
  1. Subject: 대중운동을 목격하다 먼 댓글 보내온 곳 2005/12/23 23:05

    황우석 사태에 대해서는 참 관심이 없었다. 요란했던 광기는 이상할 것이 없었다. 다만 익숙한 악몽이 다시 도진 것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사태가 진정되기 시작한 이

앞으로 뒤로

외국 진보 진영의 글을 번역해 공개하는 걸 주 목적으로 하지만 요즘은 잡글이 더 많습니다. marish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