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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운동을 목격하다

황우석 사태에 대해서는 참 관심이 없었다. 요란했던 광기는 이상할 것이 없었다. 다만 익숙한 악몽이 다시 도진 것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사태가 진정되기 시작한 이후다. 정말로 이상하고 궁금한 것은 광기 그 반대편에 있다. 어떻게 사람들은 그 광기의 도가니에서 그토록 빠르게 헤어나올 수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물론 진실이 서서히 드러났기 때문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국익'이 최우선일 때 '진실'은 아무런 힘도 없었다. 변화의 단초는 확실히 그 전부터 감지되었던 것이 아닐까? 이른바 '대중파시즘'이 창궐하던 포털과 언론 홈페이지들의 공간 이면에는, 이와는 전혀 다른 공간과 다른 사람들이 있었다. 물론 진보블로그는 광기에 꿈쩍도 하지 않았지만, 이는 단지 진보블로그만의 얘기는 아니다. 내가 본 다른 여느 블로거들의 공간도 황우석을 지지하는 견해가 더 많았을 수는 있어도, 광기와는 사뭇 거리가 있었다. 그리고 또 다른 공간들도 있었다. "그러나 오래동안 대중을 두려워했던 나는 차라리 희망을 보았다. 그렇게 해일이 거셀 때, 전문기자가 국익을 위해서 진실을 버리자고 노골적으로 선동할 때, 진보적 지식인들이 경악에 찬 목소리로 대중을 질타할 때, 한구석에선 시답잖게 노닥거리면서도 합리와 상식을 잊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대중이었다." - 장귀연, 'PD수첩의 용기, BRIC의 전문성, DC과갤의 상식을 사랑한다' 중 "포기하다시피 한 인터넷에서 청년과학자들이 소통하고 활동하고 있었다. ...... 이데올로기나 정치 이런 것과 관계없이 진실을 찾아내고 있었다. ...... 브릭(BRIC-생물학연구정보센터)에 주목하고, 브릭에서 다시 한 번 정신을 맑게 하고, 그들이 대화하고 소통하는 모습에서 힘을 얻었다. 청년과학자들, 그분들이 영웅이다. ...... 그들이 언론인이고 그들이 지식인이었다." 전규찬, '지식인은 도대체 뭐 하는 작자들인가' 중 "대략 지난 일주일동안은 먹고 살기 위해(?) 읽어야 하는 책들까지 모두 제쳐놓고 브릭에 들어가 살았다. 이 사태를 이해하는 건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그래도 진실이 모든 걸 앞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직 꽤 있다는 게 소득이라면 소득이다. 아니, 소득 정도가 아니라 이것이야말로 희망이다." 신기섭, '어떤 사태에 대한 짧은 기록' 중 그들은 광기의 흐름에 휩싸이지 않고, 조용히 자신의 생각을 내뱉고 서로의 정보를 교환했다. 그리고는 마침내 흐름이 뒤바뀌었다. 광기의 흐름 그 자체였던 '대중'과, 그 흐름을 조용히 거스르다 끝내 흐름을 뒤바꿔 버린 '개인'들 그들의 차이는 무엇일까? 그들은 다른 사람들일까? 대중파시즘의 진원지라고 지목되었던 것도 인터넷이지만, 이를 뒤엎은 개인들이 모여 있던 곳도 인터넷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온 이야기들이 퍼져나갈 수 있었던 계기도 인터넷이다. 두 공간에는 전혀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두 공간의 차이, 그것이 궁금하다. 브릭에서 글을 쓰던 사람들이 그들이 이러한 사태를 대비하고 준비했을리야 만무하다. 광기의 휩싸인 대중들을 굳이 설득시키기 위해서 글을 쓴 것도 아니다. 내가 보기에 그들은 그들의 스타일대로 그들이 연구실에서 토론하는 방식대로 얘기했을 뿐이다. 브릭은 원래 그런 공간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수많은 대중에게 생물학 교양과 과학적 방법론에 대해 교육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디씨 과갤은 또 어떻게 봐야 할까? 그곳은 놀이터다. 파시즘이 놀이터 앞에서 멈췄다. 그곳은 바깥 세상과는 무관했냐 하면 그런 것은 또 아니다. 그들은 황우석과 관련된 광기를 놀이감으로 활용했다. 그리고 거기에서 단지 놀이 이상을 한 사람들이 있다. 다음을 보는 순간, 나는 외쳤다. '대중운동이닷! 정말 오랜만이군.' melona로 살았던 며칠 지난 대선에서 오마이뉴스는 조선일보를 눌렀지만, 브릭과 과갤이 주된 정보의 원천이 되는 지금은 또 다른 국면이지 않을까? 그리고 이러 저러한 공간들이 혼재하는 세상에서 지식인, 언론인의 역할, 대중과 전위, 그리고 대중운동의 개념은 다시 정립될 필요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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