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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은 발견, 나오미 클라인의 '노 로고'

나오미 클라인(Naomi Klein), <노 로고(No Logo: Taking Aim at the Brand Bullies)>, 정현경, 김효명 옮김, 중앙M&B, 2002.

 

올해 나이 36살인 캐나다 출신 언론인 나오미 클라인은 반세계화운동 진영에서 꽤 유명한 인물이다. 대학도 채 졸업하기 전 캐나다 유명 신문 <글로브 앤드 메일>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했으나, 주류 언론이 원하는 것과 자신의 관심사가 다르다는 이유로 편안한 길을 포기한다. 작은 진보 잡지로 옮긴 이 여성은 전세계를 누비기 시작했다. 5년 동안 노동착취 기업들을 돌아다니면서 취재한 결과가 30살 때 내놓은 이 책이다. 한국어판엔 엉뚱하게 '브랜드파워의 진실'이라는 부제가 붙었는데, 이 때문인지 크게 주목받지 못한 것 같다. (현재 일부 온라인 서점에선 품절로 나온다.)

 

이 책을 쓰게 된 동기에 대해 클라인은 “과대 마케팅과 공공 장소가 사라지는 문제에 대한 내 관심과 노동조건 악화에 대한 관심 사이에 연결고리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이것들이 기업 이데올로기로 연결된다는 걸 깨달았지만 기사로 쓰기에는 너무 큰 주제였다. 그래서 책을 쓰게 됐다”고 말한다. (Brian Palmer 등이 편집한 책 Global Values 101, Beacon Press, 2006, 108쪽)

 

이 책은 네 부분 곧 '노 스페이스(공간이 없다)', '노 초이스(선택의 여지가 없다)', '노 잡스(일자리가 없다)', '노 로고(로고는 없다)'로 나뉘어있다. 공간이 없다는 건, 나이키나 엠티비(MTV) 같은 기업들의 브랜드가 문화와 교육까지 온통 침투해 들어와서 공공 장소가 사라진다는 이야기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건, 기업간 합병과 거대 기업의 탄생, 기업의 검열이 문화적 선택의 폭마저 박탈하는 현상을 말한다. 일자리가 없다는 이야기는, 기업들의 비정규직화, 업무 외주화로 변변한 일자리가 줄어드는 걸 지칭한다. 로고는 없다는 부분은, 반기업 운동을 다룬다. 기업 광고를 패러디하고 비꼬는 문화 행위, 노동착취 거대 기업에 대한 항위와 저항 운동, 지역 사회의 반기업 움직임 등 기업이 지배하는 세계화에 대한 저항 움직임들이 자세히 소개된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세계사회포럼 개최에 즈음해 들불처럼 번진 반세계화운동에서 '역사의 종언'이 종언을 맞았음을 느낀다고 쓰고 있다. 이 운동은 중심이 없고 일관된 전략이 없는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 '하나의 세상 안에 여러 개의 세상'을 추구하는 운동이다.

 

1993년 4월2일 담배회사 필립 모리스는 시장을 잠식해 들어오는 값싼 브랜드들에 맞서기 위해 말보로 담배가격을 20% 인하하겠다고 발표한다. 이 사건은 브랜드의 시대가 가고 가격 경쟁의 시대가 온다는 신호탄으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이는 진정한 브랜드의 시대가 열리는 걸 상징한다. 상품을 위한 브랜드의 시대가 가고, 브랜드가 진정한 상품이며 표면상의 제품은 브랜드의 첨가물에 불과한 시대가 왔다는 것이다. 나이키, 애플, 바디숍, 캘빈 클라인, 디즈니, 리바이스, 스타벅스가 이 시대의 주역들이다. 나이키는 운동화를 파는 게 아니라 그 자체가 스포츠이고, 애플은 컴퓨터를 파는 게 아니라 컴퓨터는 '다르게 생각하는' 행위의 부가물이다. 스타벅스는 커피를 팔지 않고 커피의 낭만 곧 따뜻한 공동체의 느낌을 판다. 바디숍은 화장품 가게가 아니고 자연과 하나되는 건강함을 구현하는 장소다.

 

'상품이 아니라 브랜드'를 파는 이 전략은 기업의 광고와 영업 활동 그 자체를 새로운 문화로 자리잡게 만든다. 엠티비는 단순 음악방송이 아니라 전세계에 민주화와 자유, 기성 세대에 대한 저항을 전파하는 전령이 되고, 나이키는 스포츠의 도전정신 그 자체다. 나이키는 심지어 국가를 대신해 케냐의 육상 선수 2명을 선발해 스키를 훈련시켰고 실제로 겨울철 올림픽에 출전시켰다.(78쪽) 스포츠의 순수함을 극도로 밀어붙인 나이키는, 자신들이 신화의 주인공으로 창조해낸 농구선수 마이클 조던이 독자적인 브랜드로 탈바꿈하자 '순수성'이 훼손됐다고 반발하기에 이른다.

 

“조던이 출연하고 팔크가 제작한 영화 <스페이스 잼>은 조던이 하나의 브랜드로 출발하는 것을 축하하는 파티였다. 이 영화에는 조던의 여러 후원 기업들을 위한 광고가 담겨 있었는데(예를 들면 “자 마이클, 보여주자구. 자네는 핸스 옷을 걷고 나이키 신발 끈을 묶어, 위티스와 게토레이도 챙기고 말야. 우리는 나중에 먹을 빅맥을 준비할테니까!”라는 대사가 있다)...”(83쪽) “나이키의 오랜 광고인 짐 리스월드는 <월스트리트 저널>에서 “<스페이스 잼>은 성공적인 상품화가 우선이며 영화는 두 번째다. 그러니까 결국은 많은 제품을 팔자는 생각인 것이다”라고 불평했다. 이는 예술과 상업 사이에 전통적으로 내포된 관계를 완전히 뒤집는, 문화의 브랜드 만들기에서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다시 말해 한 신발 회사와 광고 대행사가 한 할리우드 영화가 자신들이 만든 광고의 순수성을 더럽혔다고 화를 낸 것이다.”(84쪽)

 

이런 브랜드화는 통일된 기획으로 상점 전체 또는 쇼핑몰 전체를 꾸미는 전략으로 번진다. 나이키 세상, 디즈니 월드 등등. 그리고 이는 마을 전체를 자신들의 상품으로 꾸미는 데까지 이른다. 의류업체 루츠는 자사 제품이 구석구석 자리잡고 있는 브랜드화한 리조트를 건설했다. 디즈니는 플로리다주에 광고에서 해방된 디즈니 타운을 건설하기에 이른다. 광고에서 해방됐으나 디즈니의 완벽한 통제를 받는 도시, 이는 정신분열 또는 환상이다.(192-195쪽)

 

삶 자체가 브랜드인 이런 기이한 현실은 저항을 부른다. 그리고 제3세계 노동착취 공장에서 만든 상품이라는 부속품으로 치장되는 게 폭로될 때, 그 저항은 더욱 커진다. 이 저항은 우리도 익히 안다. 노동운동가들의 나이키 공격, 맥도날드 거부 운동 등등을 말이다. 하지만 또 다른 저항이 있다. '문화 방해'가 그것이다. 애플의 사과 로고가 해골로 바뀌고, 최악의 기름유출 사고를 일으킨 엑손 발데즈호 사건을 '잘못될 때도 있다. 새로운 엑손'이라는 광고판이 상기시킨다.(325쪽) 펩시의 광고 음악을 마구 변조한 <디스펩시(Dispepsi)>라는 음반까지 등장했다.(332쪽)

 

그러나 기업들은 이런 문화적 저항까지 서슴없이 광고에 수용하려고 한다. 나이키의 노동착취 문제가 떠들썩하던 1999년 나이키는 유명한 소비자 운동가 랄프 네이더에게 광고 출연 제의를 한다. “네이더가 에어120 운동화를 들고 “신발을 팔기 위한 나이키의 파렴치한 시도”라고 말하면 2만5천 달러를 지급한다는 것이었다. 나이키 본사에서 네이더에게 보낸 편지는 “소비자 권리 보호에 앞장서고 계신 네이더 씨께서 우리에게 가볍게 잽을 던졌으면 합니다. 이는 매우 나이키다운 광고라고 생각합니다.”...”(348쪽)

 

또 다른 저항은 거리 되찾기 운동이다. 광장을 거대 쇼핑몰이 대신하고, 거리는 자동차 물결이 점령하고, 거리의 반문화 광고가 금지되자, 운동가들은 거리를 점령하기 시작한다. 영국 런던에서 시작된 이 운동이 전세계로 번지면서, 거리를 시민들의 축제 장소로 탈바꿈시키려는 온갖 시도들이 나타난다. 그리고 이는 1999년 시애틀의 반세계화 시위, 세계사회포럼 등으로 이어진다. 이 “운동은 하나의 세계 정부를 만드는 것이 아닌, 직접 민주주의에 기반한 지역 공동체를 국제적으로 연결시키는 것이다.”(517쪽)

 

통일된 전략이 없고 혼란스러워 보이는 이 운동은 “저항의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진정으로 민주적이고 대표적인 과정을 기다리고 있다. 그렇다면 이는 단계적 과정인가? 새로운 정치적 교리인가? 아마 아닐 것이다. 단지 허브와 바퀴살의 혼란스런 네트워크를 통해 분명 뭔가 다른 것이 탄생할 것이다. 그리고 이는 유토피아와 같은 세상을 위한 청사진을 제시하기보다 다양한 세계를 위한 가능성을 보호하는 계획일 것이다. 결국 '하나의 세상 안에 여러 개의 세상'이라는 운동은 사파티스타의 뜻대로 신자유주의를 정면이 아닌 모든 방향에서 에워쌀 것이다.”(517-5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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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임 1: 마이크로소프트를 미워하는 컴퓨터 프로그래머들이 많은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1997년 마이크로소프트의 직원은 회사에 충성하는 핵심 정규직(평균 연봉 22만달러)과 이 주변의 4000~5750명의 임시직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임시직 가운데 1500명은 오랫동안 이 회사에서 일한 이들로, 스스로를 '영구 임시직원'이라고 부른다. 이들 임시직은 정규직과 똑같은 대우를 요구하며 소송을 제기했고 97년 마이크로소프트는 패소했다. 하지만 회사는 이들을 정규직으로 대접하는 대신 용역업체로부터 파견받는 걸로 문제를 해결했다. 이제 공식적으로 그들의 고용주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아니라 파견업체이며, 논란의 여지는 사라졌다. 이 회사는 실리콘밸리에서 파견 노동자 사용 추세를 앞장서 이끌었다.(295-297쪽)

 

덧붙임 2: 미묘한 내용이 많아지는 뒷부분으로 갈수록 번역의 신뢰성이 떨어진다. 아이티(Haiti)를 '아이티'와 '하이티'로 번갈아가며 적고, 엑손 발데즈(Valdez)가 '발데즈'와 '밸디즈'로 표기되는 건 단순 부주의일 것이다. 하지만 쉽사리 이해가 안되는 구절들이 점점 늘어나는데, 그래도 대강 넘어갈 정도는 된다.

2006/07/10 18:02 2006/07/10 18:02
2 댓글
  1. NeoScrum 2006/07/11 11:07

    영어권에서 한동안 베스트셀러였던 책인데, 헌책방에 갈 때마다 저걸 한번 사서 읽을까.. 말까.. 하던 참이었어요. 왠지 느낌이 '반문화'쪽인 거 같아서 좀 그랬거든요. 근데 소개해주신 글을 보니 다음에 기회가 되면 한번 읽어봐야겠네요. 이번달에 토론토에 그 책을 토대로 만든 다큐멘터리도 상영된다는데.. 흐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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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slowness 2006/07/20 17:25

    역시 나눠하는 번역의 문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돌려 읽기를 꼭 해야 하는데... 편집자도 책임을 면할 수는 없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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