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코포라티즘이라고?
사회적 코포라티즘 노선은 한국 노동운동의 바람직한 중기 전략이다. 하지만, 몇 차례의 사회협약 시도 중 유일하게 실천된 것이 정리해고 뿐이라는 사실은 그 옳고 그름과 무관하게 한국 노동운동이 사회협약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능력을 갖추지 못했음, 더 근원적으로는 사회협약의 조건이 조성되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
모든 사회협약은 계급타협이고, 모든 계급타협의 전제는 계급투쟁이다. 그렇다면 짚어 보자. 한국에서 계급투쟁이라 일컬을만한 게 언제 있기나 했던가?
출처: 레디앙
정리해고만 관철된 게 사회협약 조건이 갖춰지지 않았다는 뜻이라는 건 궤변이다. 이는 도리어 사회적 코포라티즘(사회적 교섭주의)이 노동운동의 전략이 될 수 없다는 걸 보여준다. 코포라티즘 옹호론자들이 전형으로 삼을 것으로 짐작되는 독일 사례를 보면, 이런 소리 못할 것이다. 코포라티즘은 노사가 나눠먹을만큼 넉넉하던 시절이 1960년대 이후 끝나면서,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일부 옹호론자들의) '이상향'이다.
참고: 독일 노동운동 살아남을까?
다른 이야기지만, 저출산 고령화 사회협약에 대해 별 생각이 없었는데, 이게 문제가 많긴 많은 것 같다. 별 생각이 없었던 점을 반성해야 한다.
새벽길 2006/07/07 17:50
사회협약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들을 쭉 놓고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 합니다.
marishin 2006/07/07 19:05
새벽길님, 반갑습니다. 사회협약이 비교할 정도로 많은가요? 사회협약에 별 관심이 없어서 그런지, 기억나는 게 거의 없군요.
이재유 2006/07/08 15:27
안녕하세요, 마리신님^^... 사회협약이나 사회적 코포라티즘이란 제가 생각하기엔 이렇습니다. 일종의 굴욕적인 강화조약 같은 것이라고요. 진지도 없이 떠돌며 싸우다가 막판에 적에게 포위되어 궤멸 위기가 도래했을 때, 궤멸되지 않기 위해 거의 무조건 항복해서 이루어지는 강화조약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marishin 2006/07/09 14:15
이재유님 말씀이 특히 우리 현실엔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