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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 푸드 (Slow Food) 운동

알렉산더 스틸 (by Alexander Stille)

<더 네이션> 2001년 8월20일

 

패스트 푸드에 맞서 전통적인 식품과 토종 농작물, 가축을 지키는 이탈리아의 슬로 푸드 운동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운동은 미식이라는 취미를 유지하면서도 각 지역의 특색을 지키고, 전통적인 농사법, 가축을 보호함으로써 생물 다양성도 옹호하는 여러가지 측면의 운동입니다. 대기업들이 주도하는 세계화를 거부하면서 각 나라, 각 지역간 연대를 추진하는 다른 세계화 시도로 주목할만하다고 글쓴이는 지적합니다.


 

 

 

8개국 정상회담 기간동안 제노바 거리에서 시위대와 경찰이 전투를 벌이기 훨씬 전에, 여기서 자동차로 2시간 거리인 이탈리아 알프스산맥 기슭 피에드몽트(Piedmont) 지역의 한 시골에서 이 시위보다 훨씬 잠재적인 영향력이 큰 지구화의 방향 안내 시도가 서서히 나타나고 있었다. 붉은 포도주와 하얀 송로버섯으로 유명한 브라(Bra) 지역의 작은 상업도시에 슬로 푸드라는 운동의 본부가 있다. 이 운동은 농작물을 키우고 음식을 만드는 전통적인 방법을 지키고 보급하는 운동이다. 지구화에 대한 프랑스인의 태도를 맥도널드 가게로 트랙터를 몰고 가는 농민운동가 조제 보제가 상징한다면, 이탈리아의 더 섬세하고 평화적인 태도를 상징하는 것이 이 기발하고 지적인 운동이다. 알벤가(Albenga)의 자주색 아스파라거스, 트레비(Trevi)의 까만 셀러리, 베수비오산 기슭의 살구(Vesuvian apricot), 라티카우다(Laticauda)의 꼬리 긴 양, 중세 투스카니(Tuscany) 궁정의 그 유명한 육즙 풍부한 시엔 돼지(Sienese pig), 나이든 농부 몇몇이나 아는 이제는 사라질 처지에 놓인 수제 치즈류와 살라미 소시지를 지키는 운동이다.

 

로마의 그 유명한 스페인광장(Piazza di Spagna)에 맥도널드 햄버거 가게가 생긴 것에 대응해 1986년 시작된 이 슬로 푸드 운동 선언문은 이렇게 주장한다.

 

느긋하고 푸근한 물질이 주는 즐거움을 확고히 지키는 것이야말로 널리 퍼진 바쁜 생활의 어리석음에 반대하는 유일한 길이다.

 

달팽이를 공식 상징물로 하는 이 운동 첫해에는 관심이 음식과 포도주에 집중됐다. 그래서 포도주와 식당, 식료품점에 대한 이탈리아 최고의 안내책자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슬로 푸드 운동은 90년대 중반에는 환경-미식학이라는 정치적인 차원을 만들어냈다. "환경보호론이 팬더곰과 호랑이, 농작물과 가축에 관심을 기울여 만들어낸 것 같은 관심을 유발하려는 것이 우리의 희망"이라고 훤칠하고 턱수염 기른 잘생긴 54살의 남성인 이 운동 창시자 카를로 페트리니(Carlo Petrini)는 말한다. "100년전에는 사람들이 100에서 120가지 종류의 음식을 먹었다. 하지만 지금은 기껏 10에서 12가지의 종류로 먹을거리가 만들어진다."

 

파두아 암탉(Paduan hen)의 운명을 걱정하는 것은 몇년전까지도 돈키호테식의 엘리트주의적 걱정으로 취급됐다. 하지만 광우병에 대한 끊임없는 공포에 시달리고 최근의 구제역 발생에 놀라고 유전자조작 음식 논란이 벌어지면서, 자연적이고 유기적인 방식을 강조하는 슬로 푸드 운동이 갑자기 정치적으로 중요해지고 인기를 얻게 돼, 이 운동 지도자들까지 놀라게 만들었다. 사라질 위기에 처한 음식을 옹호하는 운동을 시작한 1995년 이후 회원이 2만명에서 42개국 6만5천명으로 늘어났다. 이 운동은 자신들의 정치적 관심사를 출판물로 내기 위해 최근 브뤼셀에 사무실을 내고 유럽연합을 상대로 농업 및 무역 정책에 대한 압력을 가하고 있다. 이 뿐 아니라 뉴욕에도 사무실을 두고 있는데, 뉴욕에서는 전시회를 열고 전통 음식 생산자들의 시장 개척을 시도하고 있다.

 

2년전 유럽연합이 미국 항공우주국에서 고안한 엄격한 위생 기준을 유럽의 모든 식품 생산업자에게 적용하려고 했을 때, 슬로 푸드는 근육을 수축시켰다. 이 기준은 우주인들이 우주 상공에서 아프지 않게 해주려고 만든 것이다. 크래프트 푸드 같은 거대 기업들은 성공적으로 이 기준을 맞췄지만, 수많은 소규모 농민들은 보고서 작성, 서류작업, 새 장비도입 같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부담 때문에 이 기준이 적용되면 퇴출이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슬로 푸드는 탄원운동을 시작해 50만명의 서명을 받았고, 결국 이탈리아는 수천에 이르는 장인 식품생산자들에 대해 예외를 인정받는 성과를 얻어냈다.

 

유럽에서 국경이 사라지고 교류 통로가 많아지면서, 식품은 정체성을 지키는 중요한 요소가 됐다. 19세기 철학자 루드비히 포이에르바하의 유명한 말 "우리가 먹는 것이 바로 우리다"에 새로운 의미가 더해진 것이다. 그러나 슬로 푸드의 호소력의 비결은 사라져 가는 즐거움에 대한 향수 어린 반추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다. 슬로 푸드는, 지구화가 작은 식품 생산업자들에게 해롭기도 하기만 이롭기도 한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편으로, 지구화는 다국적 기업이 사실상 전세계 곳곳에 손을 뻗게 해주는 획일화의 효과를 발휘한다고 본다. 그러나 동시에, 소수집단(양봉가나 갤릭어 사용자 등)이 먼 곳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을 쉽게 해줌으로써, 틈새 문화가 번성할 여지도 제공한다. 이탈리아인들은 맥도널드를 겁내하는 대신, 자신들이 추격해 이길 수도 있다고 느낀다. "우리는 질에 승부를 걸고 있다"고 페트리니는 말한다. 슬로 푸드 운동이 만들어낸 국제 네트워크는 페트리니가 "고결한(virtuous) 지구화"라고 부르는 것의 한 예이다.

 

요즘 슬로 푸드의 정치적 측면이 훨씬 두드러지지만, 이 측면은 과거에도 언제나 이 조직이 타고난 성격의 한 부분이었다. 이 운동은 페트리니가 설립한 전국적 사회적 클럽이며 이탈리아 공산당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이탈리아 문화레저협회(ARCI)의 미식가 지부에서 출발했다. 사실, 반체제 공산주의 신문 `일 마니페스토(Il Manifesto)'가 처음 `감베로 로쏘'(Gambero Rosso, 빨간 게)라는 제목의 미식 관련 별지를 발행했고, 이것이 슬로 푸드의 권위 있는 식당 및 포도주 안내책자로 발전했다.

 

뿌리는 좌파이지만, 페트리니는 언제나 슬로 푸드가 강력한 경제적, 상업적 뼈대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내가 처음 아르치골라(이탈리아 문화레저협회의 미식 부문)를 시작했을 때, 나는 워싱턴의 랄프 네이더를 방문했다. 그는 연필과 종이를 꺼내더니 `회원 140만명이면 여기서는 사업이다'라고 말했다. 당시, 협회는 정치적 고려가 의사결정을 지배했기 때문에 수백만달러의 빚을 지고 있었다. 나는 경제적으로 단단하고 자급적인 조직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슬로 푸드의 출판 부문은 금새 성공했다. `감베로 로쏘' 안내책자는 프랑스의 미슈렝 가이드처럼 이탈리아 미식가의 성경이 되었다. `감베로 로쏘'의 포도주 안내책자에서 으뜸으로 꼽히는 것은 사실상 그 포도주가 금새 동이 난다는 것을 보장하는 것이다. 지난 6년동안 슬로 푸드는 2년마다 열리는 이탈리아 최대의 음식 행사인 살로네 델 쿠스토(Salone del Gusto, 미식 박람회)를 후원했다. 이 행사에는 550개의 음식, 포도주 생산업자가 참여한다. 이 행사는 전세계의 중요한 식당 운영자, 포도주 및 식품 수입업자 수천명이 꼭 참석해야 하는 행사가 됐다. 또 얼마전까지는 생산지 주변에서만 제품을 팔던 소규모 생산업자 수백명이 국제적인 시장을 확보하도록 해주는 행사다.

 

이런 효과는 내가 브라에서 10마일 떨어진 슬로 푸드 네트워크 소속 소규모 제분소를 방문했을 때 명백하게 알 수 있었다. 약 25년전 제분업자의 아들이며 손자이며 증손자인 렌조 소브리노(Renzo Sobrino)는 전통적인 시리얼, 곡물, 밀가루를 생각한다는 생각으로 버려진 19세기식 제분소를 구입했다. 그는 단지 19세기 맷돌 같은 옛 방식만 쓰려고 한 것이 아니고 더 이상 쓰이지 않는 밀과 옥수수 품종도 되살리려고 했다. 소브리노는 주변 농부들을 설득해 `오토 필레'(otto file, 여덟 줄)이라고 하는 옥수수를 심도록 했다. 이 옥수수는 보통의 옥수수가 가는 14줄 짜리인 것과 달리 굵은 여덟줄 짜리다. 이 옥수수는 두껍고 짙은 색 알이 아주 맛있지만, 에이커 당 5~6배의 소출을 내는 미국산 잡종 옥수수에 밀려났다. 소브리노는 농부들의 수확물을 살 용의가 있었지만 상당수는 그가 미쳤다고 생각해 제의를 거부했다. 그의 잠재적인 고객인 지역 제빵업자들은 가격에만 관심이 있었으며, 산업적으로 생산되는 것보다 2~3배 비쌀 것이라는 말에 흥미를 잃어버렸다. 여러해동안 소브리노는 제분소를 시멘트 섞기에 이용함으로써 수입을 보전했고 곡물을 가는 데는 일주일에 하루나 이틀만 이용했다. "나는 문자 그대로 대규모 산업적인 제분소를 공격하는 돈키호테 같이 느껴졌다"고 소브리노는 말한다. 그러나 이제는 자신이 모두 관장하는 사업을 얻었다. 윌리엄스-소노마(Williams-Sonoma)는 심지어 그가 생산한 밀가루와 옥수수가루를 자사의 점포와 통신판매를 통해 파는 계약을 맺자고 제안하기까지 했다.

 

소브리노의 식품 맛을 보면 왜 그런지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그는 내게 5일된 빵을 줬는데, 마치 갓 구운 것처럼 부드럽고 맛있었다. 소브리노의 전통 곡물과 제조법에 대한 열정을 공유하고 있는 피에드몽트 지방의 제빵업자인 유지니오 폴(Eugenio Pol)은 통밀빵을 만들고 있는데, 이 빵은 설탕도, 이스트도, 방부제도 안 넣었지만 맛이 넘쳐나며 2주간이나 보존할 수 있다. 폴은 자동차로 몇시간 걸리는 지역의 유명 식당에서 빵 주문을 받고 있으며, 도쿄에서 이 빵을 팔고 싶어하는 일본 기업까지 접촉했다. (슬로 푸드 운동의 도움을 받아 폴은 전통적인 제빵법을 가르치는 작은 학교도 세웠다.)

 

소브리노와 폴 같은 생산업자들은 슬로 푸드 네트워크의 혜택만 받는 것이 아니라 광범한 문화적 변화의 혜택도 보고 있다. 소비자들은 훨씬 박식해졌으며 분별력도 갖추게 됐고, 또 건강과 환경에 대한 인식도 높아졌다. 소브리노는 카무트(kamut)라는 고대 이집트의 곡물도 제분하는데 이는 밀에 알레르기가 있는 이들에게 아주 좋다. "이것은 다른 곡물처럼 진화하지 않아서 염색체가 더 적고, 밀에 작 적응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좋다"고 소브리노는 설명한다. 소브리노가 제분하는 카무트는 미국에서 생산되고 있다. `고결한 지구화'는 쌍방향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슬로 푸드 운동이 특별한 유기 식품 가게에 가서 더 비싼 값을 치를 용의가 있는 상대적으로 소수인 엘리트 부류 밖으로 확대되는 대중 운동이 될 수 있을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할만한 이유가 몇가지 있다. 50년전, 2차대전 여파 속에서 평균적인 유럽 가정은 수입의 3분의 1을 식품 구입에 썼다. 오늘날 이는 15%이다. 미국에서는 이보다 더 낮은 10%다. 뛰어난 슬로 푸드 운동의 나라 이탈리아에서는 식비가 가계 예산의 18%를 차지한다. 슬로 푸드가 조사한 바로는, 이탈리아인 절대 다수가 품질을 위해선 식비를 20% 이상 더 지출할 용의가 있다. 수십억달러가 삶에 필수적이지 않은 도박, 성형수술, 음란물에 매년 소비되는 이 세계에서 일주일에 식품에 몇달러 더 쓸 여지는 분명히 있다.

 

최근의 식품 공포를 겪고 특히 회원을 동유럽으로 확대할 전망을 품고 있는 유럽연합이 농업정책을 재검토하고 있는 이제, 슬로 푸드가 영향을 끼칠 때가 됐다. 유럽의 농업정책은 전쟁의 굶주림을 생생히 기억하던 1950년대에 세워진 것이다. "목표는 자급자족이었으며, 강조점은 대량 생산이었다"고 슬로 푸드 운동의 브뤼셀 사무소장 마우로 알브리지오(Mauro Albrizio)는 말한다. "농부들은 생산량에 따라 보조금을 받았다. 유럽연합은 예컨대 시장가격보다 일정하게 더 높은 가격을 보장했다. 유럽의 농부들은 미국이나 캐나다 농부들보다 생산성이 조금 처졌기 때문이다. 생산을 많이 할수록 더 돈을 많이 번다. 이는 생산량을 강조하는 집약적 농법을 부추겼다. 질에 대한 보상이나, 과정의 통합이나 생산의 중요성에 대한 보상은 없다." 유럽연합 전체 예산의 45%인 420억 유로 규모의 농업예산 가운데 90%는 이런 가격 지지를 위해 쓰인다. 그러나 소비에트 체제에 속하던 몇나라를 회원으로 참여시킨다는 전망을 고려할 때 유럽의 농업보조금 체계는 바뀌어야 한다. "현재의 가격 지지 정책을 단순히 동유럽으로 확장하는 것은 비용이 너무 들어서 불가능하다"고 알브리지오는 말한다. 다양한 대안이 논의되고 있다. 슬로 푸드는 가격 지지 체계가 점차 쇠퇴하고, 질보다 양을 선호하는 체계가 아닌 좀더 적절한 방식으로 대체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농부들은 경작지 규모에 따라 보조금을 받되, 저가 제품을 위해 생산성을 극대화할지, 또는 유럽이 가장 적합하다고 말들 하는 고품질 제품에 집중할지를 결정하는 방식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양 대신 질을 선택하는 추세는, 광우병을 겪고 요즘 슬로 푸드 운동이 보호하려고 애쓰는 피에드몽트 젖소 같은 품종을 접해보고 나서 더 강해지고 있는 듯하다. 뛰어난 육질 때문에 값이 많이 나가고 그 젖으로 만든 치즈도 비싸게 팔리지만, 피에드몽트 젖소의 숫자는 지난 25년동안 60만 마리에서 30만 마리로 급격하게 줄었다. 생산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 젖소는 흔한 홀스타인 젖소보다 우유를 적게 생산한다. 또 전통적인 사육법을 쓰는 농부들이 이 젖소를 키워서 파는 데까지 18달이 걸리는데, 반면 식품 첨가물과 성장 호르몬을 써서 소를 키우면 단지 14달만에 팔 수 있다. 그래서 피에드몽트 젖소는 최근 냉정한 농업의 논리에 자리를 내줄 처지가 된 것 같다.

 

이런 값나가는 품종의 소멸을 막기 위해 슬로 푸드는 성채 또는 방어부대 개념을 도입했다. 또 멸종 위기에 처한 식품 목록과 그것들을 보호할 후원 전략도 만들었다. 보통 그 방식은 사육, 재배와 판매를 돕는 방식이다. 피에드몽트 젖소를 위해서 슬로 푸드는 16개 사육업자로 컨소시엄을 구성했다. 슬로 푸드는 사육 규모를 늘리거나 경쟁력을 위해 비용을 줄이는 방식 대신 최고의 고기를 생산하기 위해 자연적 및 유기적 사육법 규정을 엄격하게 만들어 합의하도록 권장했다. 몇년전이라면 자살 전략 같던 이 방식은, 중부 유럽에서 광우병 첫 발병 소식이 전해진 지난해에는 성공적인 방법이 됐다. 이탈리아에서 소고기 소비가 30% 정도 준 가운데, 도살업자와 소비자들은 진정 안전을 보장하는 고기를 필사적으로 찾았고, 피에드몽트 젖소 고기 수요가 급증했다.

 

당연한 일이지만 피에드몽트 젖소 고기 값은 킬로그램 당 3달러인 보통 고기보다 비싼 4달러다. "보통 이탈리아인은 1년에 20킬로그램의 소고기를 먹는데, 피에드몽트 젖소 고기에 킬로그램 당 2000리라를 더 쓰면 1년에 4만리라(18달러)가 더 든다. 뛰어난 품질과 안전성을 생각하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비용이다."라고 슬로 푸드의 피에드몽트 젖소 보호 운동을 이끌고 있는 지역 수의사 세르지오 카팔도(Sergio Capaldo)는 말한다. "육류가공업자나 도살업자에게 1파운드 당 90센트 차이는 아주 큰 차이지만, 한해에 42파운드를 구입하는 소비자 개인에게는 그 차이가 훨씬 적다. 그래서 포도주를 고르듯이 소고기를 고르는 훈련된 소비자가 있다면, 비용과 질의 전체 계산식이 완전히 바뀔 것이다."

 

소비자가 분별력을 갖추게 되면 피에드몽트 젖소 같은 성장이 느린 가축도 여지가 생긴다. "이 고기는 서대를 포함한 상당수의 생선보다도 지방과 콜레스테롤이 적다"고 카팔도는 말한다. 실제로, 미국 농무부의 실험을 보면, 피에드몽트 젖소 고기 100그램에는 보통의 소고기에 11.3그램 함유된 지방이 1.7그램밖에 없다. 또 보통의 고기 100그램이 251칼로리의 열량을 내는 것과 달리 95칼로리의 열량을 낸다.

 

분별 있는 소비자가 식품 제조법에도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생각은 비현실적인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미 미국에서 이런 징후를 보고 있다. (윌리엄 그레이더, `마지막 농장의 위기" 더 네이션 2000년 11월 20일을 보라) "나는 미국이 타고난 슬로 푸드의 땅이라고 생각한다"고 페트리니는 말한다. "당신네 나라엔 거대한 유기 농산물 운동이 있으며 소규모 양조장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10~12년전까지는 맥주 시장을 지배하는 거대 기업 두곳(부시와 밀러)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1600개의 소규모 양조장이 있다." 이와 함께 농부가 주도하는 시장과 지역사회가 후원하는 농업이 떠오르는 점도 고무적이라고 그는 말한다. 뉴욕시의 한 집단이 뉴욕주 농촌의 농민들과 한해에 6~8달동안 일주일에 한번씩 채소를 공급하는 계약을 맺고 있는 식의 일 말이다. 인터넷 같은 새 기술은 주식거래와 책 판매에서 중간상을 없앴는데, 같은 일이 식품에도 적용될 수 있다. 인터넷은 지역사회의 농업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데 중요한 구실을 해왔다. "지역사회가 후원하는 농업과 농민 주도의 시장은 슈퍼마켓의 중재를 필요 없게 만든다"고 페트리니는 말한다. "이는 소비자와 직거래하는 새로운 농민층의 형성과 함께 바닥에서부터 생성되는 생물다양성이다. (캘리포니아주 버클리에 유명한 세즈 파니세 식당을 세운) 앨리스 워터스(Alice Waters)는 정원을 손수 만드는 법을 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다. 그 이는 골수 슬로 푸드 운동가다." 사실, 지난해에 슬로 푸드 운동은 캘리포니아에서 가장 많은 새 회원을 확보했다. 그 결과, 슬로 푸드는 지난 7월 샌프란시스코에서 미국 내 첫번째 회의를 열기로 결정했다.

 

오늘날 번창하고 있는 지구 규모의 소비 경제에서 슬로 푸드는 이 시대의 문화에 특별히 적용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 시대의 문화는 본질적으로 소비를 거부하지 않지만 체인점과 패스트 푸드의 균질화와 속도광적인 것을 거부하는 즐거움을 찾는 환경론의 일종이다. 시애틀과 제노바의 시위대를 움직인 쟁점이 바로 슬로 푸드 운동의 농업과 문화 다양성에 대한 우려의 한 부분이라고 페트리니는 말한다. "나는 슬로 푸드가 단지 미식가 조직이 아니라 행복권을 비난하지 않으면서 환경과 전세계 기아 문제를 다루는 조직이 되길 바란다"고 그는 말한다. "미국의 미식가 집단은 단지 자신들의 배꼽만 생각한다." 또 정치 의식도 없다. 반면 미국의 환경운동은 두부 이외의 다른 음식을 먹는 것은 절망적이다 싶을 정도로 이기적이며 타락한 것이라고 여기는 자기부정적이고 금욕적인 경향이 있다. "이제는 국제연합 식품농업국조차 즐겁게 먹는 것을 논하지 않고는 기아에 대해 말할 수 없다고 인식하고 있다"고 페트리니는 말한다. "동시에, 기아를 인식하지 못한 채 즐거움을 논할 수도 없다." 슬로 푸드가 보호하는 많은 음식은 지금은 진미로 취급되지만, 과거에는 농민들의 음식이었다. 이 음식은 그 자체가 굶주림을 피하기 위한 뛰어난 전략이며 환경을 현명하게 이용하는 법에 대한 지식을 담고 있다. 이런 음식의 보존과 개발은 멋진 음식 몇가지 이상을 의미할 것이다.

 

 

원문: www.thenation.com/doc.mhtml?i=20010820&s=stille

번역: 신기섭

2004/07/11 17:53 2004/07/11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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