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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가 주장하는 롱테일 이론

이 글의 목적은 인터넷 현상에 대한 논평이 아니다. 뭔가 새로운 이론을 접할 때, 비판적 글읽기가 얼마나 절실한가를 말하려는 것이다. 제대로 읽어야 제대로 판단할 수 있고, 또 제대로 글을 쓸 수 있다.

 

롱테일이라는 말이 유행이다. 인터넷에선 인기 없는 물건들(긴 꼬리)의 판매량을 모두 합치면 최고 인기 제품(머리)의 판매량에 버금가는 상당한 규모를 형성한다는 주장이다. 이는 많이 팔리는 20%가 전체 매출의 80%를 차지한다는 식의 이론(아거님 글을 보면 파레토법칙이라고 한다)을 뒤집는 논리다. 롱테일 이론은 인터넷 시대에는 별 볼일 없는 다수가 힘을 발휘한다는 주장인 것이다. 너무 멋지지 않은가? “최첨단을 달리는 블로거들”로부터 열렬한 환영을 받는 게 너무나 당연하다.

 

앞장서서 이 이론을 주창하는 사람은 아메리카의 기술 관련 잡지 <와이어드>의 편집장 크리스 앤더슨이다. 그는 온라인 서점 '아마존', 온라인 음악 판매상 '아이튠스 뮤직스토어' 등의 사례를 자기 주장의 근거로 제시한다. <롱테일>이라는 책도 냈다.

 

내가 보기에 이 현상은 새로울 게 없다. 규모가 큰 일반 상점에서도 나타나는 상식적인 현상이다. 많은 사람이 찾는 상점에서는 대중적 인기가 높은 물건만 팔리는 게 아니라 인기 없는 물건들도 꾸준히 팔린다는 건 당연한 이야기다. 다만 이 현상이 일반 상점에서 뚜렷하지 않은 건, 일반 상점은 비용 때문에 일정한 매출이 안되는 물건을 일정 시점이 지난 뒤 치워버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온라인 상점은 물건 전시 비용이 거의 0에 가깝기 때문에 잘 안팔리는 물건도 계속 유지할 수 있다. 롱테일 운운이 온라인에서만 가능한 건 다름 아니라 바로 ‘물건 전시 비용’ 덕분인 것이다. 그러니까 이 현상을 쓸데 없이 과장할 일이 아니다.

 

아무튼 책이 나온 이후 롱테일 이론에 대한 비판이 나오고 있다. 가장 결정적인 것은, 온라인에서도 이 현상이 별로 두드러지지 않다는 실증적인 반박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의 리 곰스가 쓴 글이 대표적이다. 온라인에서도 히트 상품의 매출이 여전히 압도적이라는 것이다. 이 쯤 되면 롱테일 이론은 아예 용도 폐기되어야 정상이다.

 

그런데 곰스의 글에 대한 앤더슨의 반박을 읽어보니, 앤더슨은 '허풍쟁이 이론 장사꾼'이 아니라 바보다. 반박의 핵심은 판매 점유율 계산법이 잘못됐다는 것이다. 상위 10%의 매출이 얼마고 하위 80%의 매출이 얼마라는 식으로 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물건이 1000가지인 상점의 상위 10% 곧 100가지가 전체 매출의 50%를 차지한다고 할 때, 물건 가짓수를 9000가지 늘려 전체를 10000가지로 만들면 100가지 곧 상위 1%가 전체 매출의 50%를 차지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렇게 되면 판매가 소수에 더 집중되는 것같은 착시현상이 나타나니, 계산을 %가 아니라 절대 수치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상위 100가지의 매출 비중을 비교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계산하면 자신이 주장하는 롱테일 현상이 온라인에서 분명히 나타난다는 것이다. (앤더슨의 계산법은 확연한 롱테일 패러독스를 보면 자세히 나온다. 이 부분은 곰스에 대한 반박 글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물론 둘 다 영어로 쓰인 글이다.)

 

그런데 이건 완전 바보나 할 수 있는 소리다. 물건 1000가지를 갖춘 상점에서 상위 100가지의 매출 비중이 50%였다고 치자. 그런데 이 상점이 새로 물건을 9000가지 들여 놓았다고 치자. 이렇게 늘렸는데도 상위 100가지의 매출 비중이 50%를 유지하려면 어때야할까? 다른 조건의 변화가 없다면 새로 들여놓은 9000가지 물건이 단 하나도 팔리지 않아야 한다. 이건 가능하지 않다. 하다못해 몇개라도 팔리고, 상위 100가지의 매출 비중은 줄게 된다. 하나도 팔리지 않을 것같으면 뭐하러 힘들여 9000가지를 새로 들여놓겠나? 하다못해 단 하나라도 판매되게 마련이다. 그리고 이렇게 되면 앤더슨은 '롱테일 현상'이 나타났다고 환호할 것이다. 이는 “나는 바보다”라고 외치는 격이다.

 

물론 앤더슨이 이런 말도 안되는 계산법을 제시하는 게 이해되는 측면도 있다. 예컨대 아마존 서점에는 수많은 책들이 있지만 그 가운데 상당수는 더 이상 상품이 아니다. 비용이 들지 않기 때문에 목록에서 지워버리지 않은 것이지, 실제로는 전혀 판매되지 않고 재고도 없는 책들이다. 그러니 이런 것까지 모두 포함시켜서 %로 계산하면 상위 판매 품목의 비중이 과장되는 측면이 있다. (그런데 사실 롱테일 이론은 이런 상품이 아닌 것들의 존재까지 '긴 꼬리'의 비중과 중요성을 강조하는 데 이용해 먹는다. 그러면서도 판매 비중을 계산할 때는 이것들의 역효과를 차단하는 엉뚱한 계산법을 쓰자고 주장한다. 유리할 때 이용하고 불리할 때 빼는 이율배반이다.)

 

그리고 이 현상은 일반 상점에서도 어느 정도 나타난다. 교보서점이라고 이런 책이 없겠나? 다만 비중이 아마존에 비해서 낮고, 주기적으로 실시하는 총정리 때 서가에서 사라진다. 그러니 비교를 하려면 '아직 상품의 가치가 있는' 책들만 골라내서 비중을 계산해야지, 앤더슨처럼 '상위 100가지' 식으로 계산해선 안된다. 문제는 '아직 상품의 가치가 있는' 것들을 골라내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머리와 꼬리의 엄밀한 분석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불가능한 걸 하려고 바보 같은 계산법을 고안하는 이유야 뻔하다. 허황된 이론으로 장사하자니 '장난질'을 하는 것이다.

 

사실 문제는 앤더슨이 아니다. 누군가 '섹시한' 주장을 펴면 무조건 흉내내는 게 첨단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진짜 문제다. 아메리카에서 이런 짓이 벌어지건 말건 신경 쓸 생각없다. 다만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이라도 좀 제대로 따져보고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수용을 하든 말든 했으면 좋겠다.

 

이 글은 아거님의 '과연 롱테일이 웹을 흔드는가?' 덕분에 쓰게 됐다.

2006/07/30 00:09 2006/07/30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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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롱테일 이론"에 대한 비판 먼 댓글 보내온 곳 2006/07/31 13:47

    ☞ 바보가 주장하는 롱테일 이론 (밑에서 본 세상) 그리고 이 현상은 일반 상점에서도 어느 정도 나타난다. 교보서점이라고 이런 책이 없겠나? 다만 비중이 아마존에 비해서 낮고, 주기적으로

  2. Subject: 롱테일 (The Long Tail)에 대한 생각 먼 댓글 보내온 곳 2006/08/01 18:21

    롱테일에 대한 반박글들이 올라오면서 우리나라 블로거들 사이에서도 이슈가 되고 있는거 같다. 대표적인 글이 아거님 과연 롱테일이 웹을 흔드는가 와 marishin 님의 바보가 주장하는 롱테일 이

  3. Subject: 과연 롱테일은 또 다른 거품 2.0 일까 먼 댓글 보내온 곳 2006/08/08 10:50

    2004년 10월, 와이어드 특집기사를 통해 롱테일을 비교적 일찍이 접하고도 사실 무슨말을 하려는건지 제대로 알 수 없었다. 독해능력도 문제였겠지만 기존의 파레토법칙에 익숙했던 내게 이 새

  4. Subject: 의심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먼 댓글 보내온 곳 2006/09/08 00:08

    나의 성격중 하나는 너무 잘믿는다는것이다. 이런 나의성격이 장점이 될수있지만 단점이 될수 있다. 아니 이제는 단점에 가깝다. 프로그래밍을 하면 정말 꼼꼼할 필요가 있다. 언제가 한번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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