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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사스의 상심 (Broken Heart of Texas)

마이클 무어코크(Michael Moorcock)

<레드 페퍼> 1999년 7월

 

영국에 살다가 미국 텍사스로 돌아간 이가 쓴 이글은, 민중의 삶을 비참하게 하는 미국의 정책을 텍사스 시골 마을 현실을 통해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 이를 흉내내지 못해 안달하는 블레어주의자들을 맹렬하고 냉소적으로 비판합니다. 붓 가는 대로 쓴 구어체 형식의 글로 비교적 부담없이 읽을 수 있습니다.



 

 

마이클 무어코크의 작은 마을은 '클린턴의 미국'의 무자비한 비인간성을 전면적으로 느끼고 있다. 그런데 왜 영국의 정치지도자들은 똑같은 길을 가고 싶어해야 하는가?


 

나는, 한 편집인이 최근 말했듯이, 야수의 뱃속에서 살고 있다. 텍사스의 엑스 깊숙한 곳에. 텍사스 안에서조차 여기까지 오려면 오래 걸린다. 윌리 헤이그(Willie Hague)는 몇달전에 공화당 본거지를 도는 간이역 짧은 유세 때 이 지역을 지나쳤을 것이다. 그가 바라는 것이 누구의 지지 또는 돈이었을까?

 

우리의 작은 마을은 주 정부 소유 숲과 교도소가 있는 농촌 지역 군에 속한다. 멋진 프랑스풍 법원과 군청 소속 구치소가 있다. 언젠가 당신이 운이 좋으면, 흑인 카우보이가 자신의 미국 남부산 흰말의 방향을 확 돌리곤 말뚝에 고삐를 던지고, 박차가 짤랑거리는 가운데 지껄이면서, 친구들과 시원하게 한잔 하려고 ‘진ㅡ포도주 굴 요리 식당’(Gin-U-Wine Oyster Bar) 문을 밀고 들어오는 걸 볼 것이다.

 

금요일과 토요일에는 주점에서 카우보이 악단이 춤추는 사람들을 위해 공연한다. 오페라 하우스에서는 연극과 뮤지컬이 열린다. 텍사스에서 음악은, 아일랜드에서 시, 미시시피에서 소설이 뜻하는 것과 같다. 리드벨리(Leadbelly)에서 제니스 조플린(Janice Joplin)과 하니발 루컴베(Hannibal Lukumbe)까지, 버디 할리(Buddy Holly)에서 윌리 넬슨(Willie Nelson, 모두 유명한 미국 대중가수 = 옮긴이)까지, 그들은 바로 대중음악의 최고이며 씨앗에 해당하는 것을 만들 수밖에 없다.

 

우리 마을은 너무 자연스럽게 그림 같으며, 주변 지역에 걸맞게 무르익어, 한동안은 할리우드의 모든 속임수 영화들이 여기서 만들어질 듯 했다. 약국에 들어서면 언제나 타이레놀을 찾는 메그 라이언(Meg Ryan)을 돕는 덴젤 워싱턴(Denzil Washington)과 마주치게 된다. 아니면 카운터에서 탄산수를 홀짝거리던 이가 진짜 로버트 듀발(Robert Duval, 위의 두사람과 마찬가지로 유명한 영화배우인듯 = 옮긴이)임을 깨닫게 된다.

 

진짜 행운과 약간의 올바른 생각 덕분에, 이곳은 복원될 필요도 없으며 부자연스럽지 않고, 거의 망가지지 않은 전형적인 빅토리아 시대 서부 마을이다. 텍사스가 공화국이기 훨씬 전부터, 주가 되기 전인 것은 물론이고, 여기에 있었다. 대부분은 불 타지 않았고 회오리바람에 부서지지 않았고 코만치족이 부수지도 않았다. 경제적으로는 사람들이 한몫 보려고 다른 곳으로 옮겨가지도 않았다. 그랬더라면 이 지역의 비슷한 규모 마을 대부분처럼 고생했을 것이다. 아도비 벽돌이라고는 없고, 하얀 기둥과 겹쳐진 꼴의 돌출 현관뿐이다. 거친 서부라기보다는 오래된 남부에 가깝다.

 

철길이 있고 (망할 놈의 외로운 호루라기 소리가 너무 자주 들려온다) 철길의 한쪽에는 가난한 이들이 산다. 묘지는, 명백한 이유로, 통합이 더디다. 하지만 더 이상 흑과 백으로 나뉘지는 않는다. 갈수록 계급 관점에서 볼 수 있게 되는데, 이는 문제를 명확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 우리가 사는 이쪽 집들의 크리스마스 트리가 작은 병원 하나를 유지할 수 있는 전력 공급을 받아 반짝이는 동안 반대편 통나무집에는 전기가 들어오지도 않으면, 사람들은 우울해질 수밖에 없다. 이 마을은 인간미 있고 관대한 지역사회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의심스럽게 자유주의적인 곳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우리 마을의 북쪽 지역에는 1848년 이래 관념론적인 독일인들과 체코인, 루터교도들, 자유주의 가톨릭교도들이 정착했다. 이들은 노예를 인정하지 않았다. 민족과 남녀 성 측면에서 보면 우리 마을 의회는 가장 균형 잡히게 구성되어 있다. 게이 짝들도 정기적인 지역사회 일에 참여한다. ‘앵글로’ 계열과 ‘라틴’(Latino, 남미) 계열의 결혼도 요즘은 흔하다. 흑백 부부도 몇쌍 있다. 우리는 전혀 몰랐지만, 우리가 미국에서 처음으로 남미계 보안관을 선출했다. (나는 이 사실을 가디언을 읽고 알았다.) 우리가 투표한 것은 그의 장점 때문이었다. 연방 복지청은 우리 마을과 옆의 한 마을이 텍사스에서 가장 사회적으로 진보적인 지역사회라고 말한다. 자부심을 가질 만한 마을이다. 미국적인 것 가운데 가장 좋은 모습이다. 관대하고 실질적이며 상식으로 가득한.

 

나는 내 이웃 대부분을 아주 존경하며 사랑한다. 그들은 필요한 걸 말하면 바로 일어나 도와줄 것이다. 문제를 제기하면 해결하려고 뭉칠 것이다. 친근하고 포용력이 있는 지역사회다. 근처에 번성하는 거대한 무정부주의자들의 공동체가 있는데, 효율적인 땅 관리와 수양에 감명 받은 무지랭이 농부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 민병대 지역사회도 주변 어딘가에 하나 있다. 이들이 위장용 군복을 입고 슈퍼마켓 주변에 무리 지어서 불쌍한 백인종에게 다가올지 모를 재난에 대비해 물건을 싣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큰 신임을 못 얻는다. 우리가 가장 존경하는 법조인, 의사, 공무원 가운데 몇몇은 흑인이다. 인종차별주의는 아직도 LBJ가 텍사스를 보스턴에 팔아 넘겼다고 믿는, 나이든 심술쟁이들과 연결되는 경향이 있다. 대체로 당신이 짐승의 뱃속에 살아야 한다면 이보다 더 나쁜 데 살게 될 것이다.

 

주지사 조지 부시 2세와 시시한 말을 나누면서 윌리엄 헤이그는 아이디어를 얻으려 왔다고 했다. 우리를 보러 온 것도, 우리 생각을 물으려 온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는 분명히 조지 부시의 ‘누구도 버림받지 않는다’는 연설에는 감명 받았다. 이 말은 그가 집에서 써먹을 수 있는 수사였다.

 

텍사스는 가난하고 빈궁한 이들에게 가장 좋은 시절에도 지원을 많이 하지 않았으며, 그래서 우리는 클린턴의 유명한 복지 개혁의 효과를 아주 빨리 느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 숫자는 줄지 않고 있다. 도리어 는다. 우리 마을은 상대적으로 부유한 군에 속해 있다. 하지만 우리의 재원이 바닥나고 있다. 한정된 기금을 따기 위해 날로 많은 기관이 경쟁한다. 기금을 얻기가 어려울수록 요구는 는다. 우리 지역의 ‘식품창고’(Food Pantry)ㅡ주 정부 지원을 약간 받는 자원봉사 단체로 밀가루와 기름 같은 생필품을 날로 늘고 있는 가난한 이들 (대부분이 백인)에게 준다ㅡ는 최근 홍수 이후 능력 이상을 감당해야 했다. 그래서 모범적인 가족위기센터(여성 쉼터)가 공급이 줄었음에도 사람들에게 음식을 제공해야 했다.

 

내 담당 의사는 지역사회에 전적으로 헌신하고 있다. 그 여성은 A J 크로닌 같은 의사다. 가난한 이들에게 제대로 된 의료혜택과 영양식을 제공하려고 있는 힘껏 애쓰는 이다. 주류를 이루는 종교가 자신의 정치적 수사(공세적이며 경멸스런 텍사스 정치가 필 그램, Phil Gramm)처럼 반지성적인 (성서 지대 침례교, Bible Belt Baptist) 주에서 이런 의사가 어떻게 자식들을 교육시킬지 걱정된다. 그 이는 단호하게 관리의료기구(HMO, 선불 회비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설 의료보험으로 관리의료라는 개념을 도입한 것이 특징이다. 그런데 관리의료라는 개념이 많은 문제를 유발하고 있다고 한다. 한마디로 ‘의료비 후려치기’다. = 옮긴이) 참여를 거부하고 있다. 이 기구는 그 이의 보험료를 계속 올리고 있다. 보험회사들이 이 기구를 소유하고 있다. 이 기구는 사람들이 지불할 수 있는 한 어떤 수준의 의료보장도 제공한다. 내 친한 친구는 최근에 이 사실을 쓰라린 경험을 통해 알게 됐다.

 

우리의 학교는 자랑할 만한 것이 못된다. 휴게실에 코카콜라 자동판매기를 놓는 댓가로 돈을 받는 몇 안되는 학교다. 나머지는 다 빼자. 자영업을 하는 손재주 좋은 내 친구들 가운데 의료보험을 감당할 수 있는 이는 거의 없다. 지역 슈퍼마켓은 쇠사슬톱이 있으면 쓸 수 있는 ‘자가 봉합 도구’(self-sewing kits)를 판다. 내 친구 하나는 최근에 스스로 상처를 잘 꿰맸다. 그리고는 자랑스럽게 보여줬다. 어느 돌팔이 의사도 이보다 더 잘하지는 못할 것이다.

 

다정해 보이지만 유창하지는 않은 부시 주지사 (그가 헤이그에 대해 한 말은 ‘똑똑하다’는 것이었다.)는 최근에 텍사스 교육제도에 대한 야심을 설명하는 텔레비전 광고를 했다. 그는 우리의 목표가 모든 어린이가 글을 읽을 수 있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내 생각에 텍사스는 세계에서 12번째로 경제 규모가 크며 독립국가가 되어도 문제가 없다. 그런데 교육은 미국에서 최악에 속한다. 상황이 비슷한 루이지애나와 미시시피 같은 인근 주들은 적어도 상대적으로 가난하고 교육재정을 도박 수입에 의존한다는 핑계라도 있다.

 

여기서는 부자가 되려고 교육을 많이 받을 필요가 없다. 보험과 총기 시장을 빼고 여기서 잘 되는 사업은 사설 교도소업이다. 수감자들은 나에게 편지를 보낸다. 가석방을 하면 수익이 떨어진다. 한 조각의 희망도 없는 수감자들은 아주 심하게 미쳐간다. 감옥 안의 살인율은 늘고 있다. 모두 고통을 받는다. 당근과 채찍이라는 통제 수단은 이제 채찍 일변도가 됐다. 내부에서 벌어진 살인을 조사하다가 무고하게 체포된 한 기자는 골함석에 몇시간동안 무릎꿇고 있어야 했다. 골함석은 아주 정상적인 것이다. 수감자간의 강간과 고문도 마찬가지다. 간수들은 짐승이 아니다. 잘사는 사람들이 자금지원이 형편없는 서비스를 방치하는 것이다. 이는 잔인하고 수치를 모르는 현대 미국의 단면이다. 미국이 유럽연합에 참여하고 싶었다면 인권 상황을 크게 개선할 수 있었을 것이다.

 

요 전날 나는 슈퍼마켓 계산대에서 한 여성과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는 몸의 못을 비교했다. 그 여성은 생계를 위해 말똥을 치우지 않고 나도 더 이상 돈벌이를 위해 기타를 연주하지 않는다. 그 여성은 간호사였고 13살짜리 자식과 지내기 위해 휴가를 얻었으며 가끔 말을 탄다. (말 타는 것은 텍사스에서는 부자들이 하는 일이 아니다. 여기 사람들은 자신의 말을 당신이 훈련시켜주면 좋아한다.) 그 여성은 월급 때문에 이 지역에서 일하지 않고 오스틴에서 간호사일을 한다. 나는 아직 이 지역에 남아있는 (5개가 남아있다) 병원들이 너무 엉망이라고 말했다. 그 이는 묘하게 웃었다. 이 지역에서 건강 관련 일을 하는 사람들은 한가지 계약이 있다. ‘병원에 가기보다는 서로를 찾아간다.’

 

나는 내가 영국에서 돌아온 직후 부인을 병원에 데려갔다가 수준이 너무 엉망인 것에 크게 놀랐다고 이 간호사에게 말했다. 영국 사람들은 미국의 병원이 모두 ‘응급실’(ER, 유명한 미국 연속극 = 옮긴이)같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 여성은 진저리를 치며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리곤 비슷하지도 않아요라고 말했다. 그 여성은 그 연속극을 못 본다. 웃음이 나와서. 절망하게 되어서.

 

미국인 친구들은 영국 병원에 갔다가 생각지도 못한 대접을 받은 것에 대해 말하곤 한다. 내가 아는 한 런던의 체어링크로스(Charing Cross) 수준의 병원이 미국에는 하나도 없다.

 

영국의 약값이 비싸다는 데는 대부분 동의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상표의 약은 영국에서 개인적으로 사는 것보다 미국에서 사는 값이 최대 5배는 비쌀 것이다.

 

블레어주의자들(과 블레어주의자가 되고픈 헤이그)은 3주 동안 미국 플로리다에 갔다가 영국 에섹스로 돌아와 미국이 얼마나 좋은지 말하는 이들 같다. 아니면 유력한 쇼핑몰만 아는 기자 같다. 서비스가 더 좋고, 싸구려 음식도 더 좋고, 호텔도 더 근사하고, 사람들은 친근하고, 낙관론이 더 강하고, 날씨도 더 좋고, 이건 더 싸고, 저건 크고, 여기도 호황, 저기도 호황. 아마 현실은 염두에 두지 않을 거다. 이는 뿌리 깊은 소비문화다. 전제에 의문을 품지 못하기 때문에 위험스럽게 자만에 찬 논리 말이다. 미국과 영국은 이제 거의 똑같은 정치적 동기, 야망, 주주, 사회문제를 갖고 있을 정도로 경제가 너무 밀접하게 연결되어있다.

 

그들에겐 문화적으로 익숙한 사회 기반이 없는 여기의 생활 현실은 아마 블레어주의자에게 충격을 줄 것이다. 나의 미시시피 출신 부인조차 몇년동안 문화충격에 시달렸다.

 

사회적 기구는 고사하고, 일상적인 조립식 설비가 질은 낮으면서 값은 비싼 것 또한 그들을 놀라게 할 것이다. 소비주의는 정말 뿌리가 깊다. 퇴행에 뿌리박힌 (소비주의)? 45만달러짜리 새 집이 15~20년 지나면 망가지기 시작할 것으로 사람들은 예상한다. 슈퍼마켓에는 많은 물건들이 있는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상표만 다른 똑같은 콘플레이크가 가득한 가운데 누리는 선택의 폭일 뿐이다. 게다가 포장 단위가 큰 것에 콘플레이크가 더 적다. 큰 통에 든 물비누는 헤프고 값은 더 비싸다. 못 먹을 고기 천지고, 유전자조작을 했다거나 호르몬처리를 했다는 표시도 없다. 조악함은 피할 수도 없으며 널리 퍼져있다.

 

내 말을 믿으시라. 청소부는 언제나 똑같이 쓰레기통을 던지고, 관료들과 좋은 자리에 있는 이들은 당신의 삶을 더 망쳐놓는다. 은행은 효율이 떨어지고 배관공은 당신을 벗겨먹고, 병원에서 기다리는 시간은 내가 런던의 국립병원에서 기다리던 것보다 훨씬 길다. 그것도 당신이 병원비를 감당할 수 있을 때 말이다. 아니면 의료보호 대상자라는 이유로 퇴짜를 맞거나.

 

거짓말은 풍토병이 됐다. 거짓말이 끔찍하게 혼란을 주고 시민들의 시간을 낭비한다.

 

'매기와 론'(Maggie & Ron)이 시작된 이후 영국 정치인들은 나에게 이 끔찍한 영국의 록앤롤 영화를 떠올리게 한다. 그들은 자세만 왕 같으면 왕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코소보가 증명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미국인들이 말은 아주 잘하지만 걸을 때는 오른쪽 발만 두개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자족적인 독재가 이렇게 행동한다.

 

저들이 고안해낼 수 있는 가장 빠른 경제 엔진으로 온 나라를 가득 메우려고 하는 동안 이 모든 것이 일종의 조잡함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그 엔진이라는 것은 비효율적이고 내연 엔진처럼 결국은 파괴적인 것이다. 여전히 모든 사내들은 번지르르한 모터를 원한다. 또 될 수 있으면 총도 갖고 싶어한다.

 

가난한 나라들은 사회기반 사업에 대한 투자를 유치할지도 모른다는 기대 속에 외관은 인상적이지만 기능은 엉망인 호텔과 공공건물을 짓는다. 블레어주의자들은 미국과 똑같은 슬로건을 외치고 똑같은 주문을 외우고 같은 신을 숭배하고 위세를 떨면 우리가 상상하는 모든 미국의 구호품을 가져다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아브라카다브라’(주문을 외는 소리 = 옮긴이)가 보통 영국인에게 ‘파업 3번이면 해고야’ 이상을 뜻하는가? 아니면 공격적인 미국식 스포츠용어의 주문 이상을 뜻하는가? 이것도 아니면 보통 미국인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데 극적으로 실패한 부유한 마피아두목(kulak capos)과 기독교연합주의자와 NRA 침례교도, 담배 민주당원, 코카콜라 공화당원의 반 분석적인 슬로건 이상을 뜻한단 말인가? 아이들이 도심의 내전에서 죽을 때, 내부 스트레스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 삶이 단지 이문이 큰 가짜가 됐을 때 기묘하게 부를 챙긴 이들은 누군가? 미국은 이제 세상의 미스터 두꺼비(꼴 보기 싫은 놈 = 옮긴이)이다. 깜박이는 망가진 오토바이, 빵빵. 저리 꺼져.

 

위대한 영웅이여!

이제 토니는 미스터 두꺼비의 아첨꾼인가?

 

나는 이런 바보같은 준 권위주의적 말들이 무얼 뜻하는지 모른다. 최근까지 나는 마약 황제(Drug Czar)가 딕트레이시에 나오는 러시아 마피아인줄 알았다. 물론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수많은 미국 정치가들은 만화만 보는 것 같으니까. 그들이 어디서 그런 쓸 데 없는 수사를 배웠겠는가? 컴퓨터게임에서? 아니면 스타트렉에서?

 

우리 상식에 대한 진짜 겁나는 모욕은, 미국 공무원들의 이런 정책과 소음과 질주와 궤변이 문제를 더욱 깊게 한다는 점이다. 미국에서 일하면 이런 미국의 의식을 흉내내려는 의욕을 느끼게 된다. 그것들은 심각한 사회적 기능장애를 만들어낸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공공기관에서 원하는 대답을 해주라고 종용한다. 문제를 풀지 못하고 고정관념에 도전하지 못하고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이들을 처벌함으로써 진실을 말하는 대신 말이다. 총을 든 아이들처럼 공무원들은 거짓말을 배운다. 감정적인 설득은 광고에서나 효력이 있다.

 

온정주의는 이 나라의 정치적 수사에 깊게 숨어있다. 이 수사 대부분은 기네스북에 마리 코렐리(Marie Corelli)가 쓴 것 같다. 상원의원이 ‘위대한 미국의 공공’이라고 말하면 그냥 ‘공공’이라고 말하는 것보다 시간이 많이 걸린다. 우리 납세자들은 이런 군더더기 말에 대한 대가를 치른다. 그러나 그들이 말만 하게 두는 것이 나을 것이다. 미국 의원들은 언제나 복잡한 사회적 기름에 단순한 해머를 들이대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결과에 소스라치게 놀란다. 이 나라는 ‘3명의 조역’(Three Stooges)이 뭔가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경영한다. 주류판매 금지령이 조직 범죄를 확립하는 경이를 이룩했다. 마약 시장을 합법화하되 규제하는 것은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만 가능하다.

 

왜 영국의 정치인들은 이런 사회를 만들려고 안달을 하는가? 사회의 각종 기구를 남에게 맡기고 시민권을 빼앗고는 그것을 ‘권리위임’이라고 부르는 사회를 말이다. (‘퇴화’가 아닌가 의심하게 한다.) 거대한 수사를 중얼거리지만 실제로는 영국보다 권리가 훨씬 적은 사회를 말이다. 또 사생활 침해가 훨씬 많다고 느끼게 되는 사회를 말이다. 학교와 다른 공공기관에 갈수록 무능한 사회 공학을 들이대는 사회 말이다. 공중보건과 교육과 치안 수준이 더 낮은 사회 말이다.

 

우리가 원하는 것이 변호사들만 배불리는 비난과 맞비난의 적대적 교착상태인가? 아니면 강요된 정통? 그것도 아니면 언제나 똑같은 끝없는 게임? 선출직 관리를 대표가 아니라 고객으로 여기는 권위주의 문화? 아니면 사회복지에 경쟁과 평균 점수와 사업방식을 도입하는 어리석음? 부패한 경찰을 맞거나 누군가의 기습적인 총기 난사로 우연히 죽을 위험? 훈련도 못 받고 총 갈기기를 즐기는 경찰과 자만에 가득한 못 배운 공무원? 개인에 의존하는 정치? 진짜 정치 쟁점이라고는 대중매체에서 결코 논의되지 않는 풍토?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법을 가졌다는 보통사람의 분명한 인식? 생존하려면 거짓말을 해야 하는 것? 글쎄, 우리 모두는 이런 체제 아래서 러시아가 어떻게 됐는지 봤다.

 

물론 그들은 이미 복지와 교육 관련 수치를 날조했다. 과거의 수혜자들을 안보이게 함으로써 수혜자 명단을 줄였다. 명단에서 사람을 없애버리는 데 쓰인 속임수는 인간의 재능에 대한 찬사다. 미국의 재능은 실제 문제를 해결하는 데 헌신했었다. 이제는 갈수록 사기와 비현실화에 헌신하고 있다. 미국의 산업은 쇼 산업이 됐다.

 

실제로 미국 업계의 상당 부분은 범죄다. 경제 성장의 본질인 국내 무기거래의 부산물에 전세계가 너무나 의존하고 있다. 그래서 마약과 총기 산업이 노예제처럼 수익성이 없어지면 어떻게 하나? 미국이 권총을 불법화하면 이탈리아의 총기 수출업자들은 어떻게 될까?

 

아직은 블레어의 궤변이 잘 먹히지 않는 국면이다. 그러나 곧 먹히게 될 것으로 확신한다. 나는 블레어주의자들이 지자체에 ‘위임’하기 시작할 것(분할해 지배하고, 한 조각의 빵을 위해 서로 싸우도록 하고)과 오래된 (1689년) 영국의 권리장전을 재발견해 우리(1850년 가톨릭교도에게도 적용되기 전까지는 개신교도만을 뜻하던 우리)에게 총기를 보유할 권한을 부여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총기 소지는 미국인들이 가장 먼저 확보한 것이다. 비커스의 손에서 총이 발사된다. 브라우닝 주식을 좀 사라. 점잖은 웨슨씨, 부자 스미스씨. 세르비아인들에게 성숙한 민주주의가 그들을 어떻게 때려부수는지 보여주자. 빈민가 주민이 이웃을 쏴 죽일 때마다 조금 떨어진 곳의 백인 신사가 몇달러씩 번다. 이는 국제적으로도 적용된다. 제국주의는 민족주의를 낳았고 민족주의는 총이 필요하다.

 

만약 클린턴의 ‘그녀는 빨아들이기만 했다’ 사건이 상징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오늘날 미국 사회 대부분에 침투해있는 깊은 위선일 것이다. 이는 저속한 새 노동당이 거물의 북에 맞춰 춤춤으로써 열정적으로 재생산하려고 애쓰는 문화다. 미국의 헌법은 영국의 불문법 또는 영국이 오래 전에 버린 불문법 일부 조항 및 수사의 미국 내 잔재와 비교해보면 종종 서툴고 불공평하다. 우리는 대배심 제도가 명백하게 불공정해졌기 때문에 1930년대에 폐지했다. 건강 산업 또는 총기 산업처럼 법률 산업도 산업 고유의 방식으로 번성하고 있다. 어떤 단계에서는 새로운 시장이 창출되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산업이 확대되지 않는다. 산업은 생존을 위해 확대되어야 한다. 무한히. 무한을 소모하는 것이다.

 

그 결과는 합법적인 사회가 아니라 법률 만능 사회다. 이 사회는 법정의 절반의 진실과 단순화가 기준이 되고, 일상적 경험이 아니라 법적인 추상화가 논쟁을 지배하고, 진실 증명보다는 유죄인정 거래(plea bargain, 피고가 유죄를 인정하면 법원이 형을 낮추거나 석방하기로 거래하는 것 = 옮긴이)가 더 중요하고, 정치인들과 언론이 비참한 환경에 사는 이들에게 그들이 세상에서 가장 잘 산다고 지속적으로 말하는 사회다. 이런 사회는 투명함의 반대를 만든다. 또 사회의 부정을 증가시킨다. 냉소적이고 파괴적인 타락을 부추긴다.

 

이것이 `외로운 별의 주'(Lone Star State, 텍사스 = 옮긴이) 외딴 곳에 사는 우리 몇몇이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의 상당수는 제 6세대 옐러 도그 LBJ 민주당원 텍사스인이다. 우리 집은 1865년 늙은 악당이 지었다. 그 이후 지금까지 크게 고칠 필요 없었다.

 

 

원문: www.redpepper.org.uk/intarch/xmoor.html

번역: 신기섭

2004/07/11 18:03 2004/07/11 18:03
댓글1 댓글
  1. diacritics 2006/02/18 11:04

    <대부>의 변호사 톰과 <현대 묵시록>의 킬고어 대령을 기억하시리라 생각됩니다. 듀발의 명연이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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