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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하는 이들에게 드리는 새해 인사

대통령 선거가 끝났다. 뭔가 허전하고 허탈하며 막막한데다가 불안하기까지 한 이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어디에도 위로가 없다. 앞날이 걱정된다. '신자유주의 좌파'가 망가뜨려놓은 것들을 더 망치고, 그들이 건드리지 않은 새 영역까지 개척해 망가뜨릴 것이다. 돈 있는 사람들은 환호하겠으나,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은 또 얼마나 더 절망과 고통 속으로 떠밀려 들어갈까? 그러니 절망감, 허탈감, 불안감을 느끼고도 남는다.

 

게다가 투표자의 50%에 가까운 대중이 이명박을 지지하지 않았는가? 사실 정확하게 말하면 이 뭔가 모를 감정은, 이들 '대중'들에 대한 공포다. 저들이 어쩌자고 이런 선택을 했을까? 이들의 이 결정이 어떤 끔찍한 변화를 가져올까?

 

사실 이 대중은 한 무더기가 아니다. '계급 이해에 철저한 일부 계층', 그리고 이들의 감언이설에 속은 이들, 그리고 그저 '못살겠다 갈아보자'는 막무가내의 심정으로 동조한 이들로 나눌 수 있을 테다.

 

정말 무서운 것은 이 '못살겠다 갈아보자'는 생각이 정확한 현실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 심정은 또 다시 배신당하게 되어있다는 사실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럼에도 그들 대부분은 다시 구경꾼으로 돌아가 술자리에서나 불만을 털어놓으며 더 나을 것 없는 삶을 이어갈 것이라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일은 그들만의 잘못이 아니다. 정치 구조, 언론 구조, 사회 구조가 그들에게 '선거 때만 작동하는 한표'로 만족하라고 끝없이 설득하고 압박하는 탓이다. 특히 뉴스, 오락 따위의 미디어를 통한 '프로파간다'가 결정적이다. 언론만 바뀌어도 이런 일은 계속되지 않는다.

 

그러니 '무지한 대중'을 탓할 일이 아니다. 그들은 현명하지 못하지만, 그들이 현명하지 못한 것은 그들 탓이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촘촘하게 얽어매어서 꼼짝도 못하게 만드는 구조의 무서운 힘 앞에서, 모래알 같은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그저 선거 때만 작동하는 '주권자'로 남는 것이 얻을 수 있는 최대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어디에서나 똑같다. 자본주의가 아닌 사회 대부분도 별로 다를 것이 없다. '20세기의 민주주의'가 가져다준 최대치가 이것이다.

 

그래서 이명박이 아니라 정동영이 되었어도 별로 달라질 게 없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민주 사회의 프로파간다'를 강화시키는 가장 세련된, 또는 가장 냉소적인 작업 방식이다. 정동영이 되었다면 뭔가 달라졌을 것이라는 소리가 아니다. 이 말에는 사람을 마비시키는 무서운 논리가 숨어있다. '선거만으로 뭔가가 바뀔 수 있다'는 '희망의 이데올로기' 말이다. 그리고 이 이데올로기와 동전의 양면을 이루는 이데올로기 곧 '하지만 선거로 뭔가가 바뀌지 않는 게 또한 세상사'라는 '절망의 이데올로기' 말이다. 이 논리야말로 '주권자'들을 '선거 때의 한표'로 묶어두는 가장 강력한 프로파간다다.

 

그래서 대통령 선거가 끝난 뒤 허탈하고 막막하고 불안하다는 것, 뭔가 위로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것은, 더없이 소중한 감정이다. 뭔가 잘못됐다고 느끼는 것, 이것이야말로 변화의 출발점이다. 다만 이 감정이 연말 연시 바쁜 일상 속에 봄눈 녹듯 사라지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앞으로 5년동안 이 감정을 계속 유지하면서, 구경꾼이기를 거부하자.

 

절망하는 당신에게 드릴 수 있는 가장 큰 위로는 당신의 그 절망감이 현실을 바꿀 가장 강력한 무기라는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이건 역설도 말장난도 아니다. 진실이다.

 

리오 후버만은 1956년 미국 진보진영에게 이렇게 충고했다.

 

우리가 무엇을 지지하는지 정직하고 분명하게 말하자. 우리의 신념을 선언하고 가르치자. 어디에서든지. 많은 사람이 모인 곳에서든지, 소수의 사람 앞에서든지. 우리의 운동 규모가 적다고 걱정하지 말고, 운동의 질을 더 생각하자. 연구하자. 열심히 노력하자. 복음을 널리 전하는 투쟁을 벌이자...

 

우리가 사는 세상의 진실을, 전체 진실을 이야기하자.

 

여기에 한마디를 덧붙인다. “진실을 이야기하는 데 그치지 말고 진실을 쟁취하기 위해 직접 행동하자!”

 

우중충하고 낯선 땅에서, 두고온 땅과 사람을 그리워하며 드리는 새해 인사다.

2007/12/20 20:15 2007/12/20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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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진보 진영의 글을 번역해 공개하는 걸 주 목적으로 하지만 요즘은 잡글이 더 많습니다. marish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