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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비평의 진정한 의의는?

인터넷 서점 ‘알라딘'이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 게 하나 있다면, 번역 비평을 대중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알라딘의 ‘서재'를 통해서 수많은 엉터리 번역들이 폭로되고 비판받았다. 그래서 이제 적어도 인문학 또는 철학 서적을 번역하는 번역자들은 ‘수준 높은' 알라딘 비평가들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까딱 잘못했다가는 큰코 다치게 된다. (나는 이른바 ‘사회과학' 분야를 번역하기 때문에 예외다. ‘사회과학서'는 ‘번역 비평가'들의 주요 관심 영역이 아니다!!!) 이 현상은 일단 긍정적이다. 엉터리 번역서로 골탕을 먹은 독자들의 통쾌한 반격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돼먹지 못한 번역서 때문에 독자들이 당한 게 얼마인가? 번역자들은 아직 더 당해도 싸다.

 

그런데 최근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한 번역자가 자신의 번역서를 ‘비판'(또는 ‘비난'?)한 알라딘 이용자 몇몇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것이다. 이 일에 대한 첫번째 반응은 어이없다는 것이리라. 나 또한 그렇다. 나는 독자라기보다는 번역자로 분류되는 사람이지만, “명예훼손이라니... 참으로 딱하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런데 이 사건은 조금 더 생각해볼 여지를 제공해주는 사건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나는 “번역 비평의 의미는 과연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 문제에 답하기 전에 먼저 번역자의 심정을 생각해보자. 이 번역자는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번역서가 두번째 작업이다. 그리고 그는 ‘전문 번역자'의 길을 선택했다. 어쩌면 이 번역자는 “이제 내 번역자로서의 생명은 끝인가?”라는 심정으로 고소라는 극단적인 행동을 취했을지 모른다. 이런 번역자의 심정을 나는 이해할 수 있다. 같은 ‘번역자’여서 번역자를 편드는 게 아니다. 같은 ‘번역자'여서 번역자의 길이 얼마나 힘든지, 얼마나 허약하고, 욕만 먹는 자리인지 알기 때문에, 고소라는 행위는 전혀 동의할 수 없지만 그 심정만큼은 알 것도 같다.

 

물론 사태가 이렇게 된 책임은 먼저 번역자에게 있다. 하지만 한가지 고려해야 할 것은, 번역은 아주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이다. 그에 비하면 번역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일은 누워서 떡먹기 같은 일이다. 나는 얼마전에 ‘민주주의 벼리기'라는 책 일부분의 번역을 검토해서 결과를 이 블로그에 적었다. 어떤 이들은 아주 공들인 작업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 작업에는 그리 많은 시간이 들지 않았다. 만약 내가 이 분량을 번역했다면 대략 10-20배의 시간을 들였어야 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번역 비평이 무의미하다는 것은 아니다. 번역 비평은 중요하다. 다만 그것이 ‘비난'이나 ‘헐뜯기'가 아니라 ‘비평'이려면 한가지 명심할 것이 있다. 이에 대해서는 이택광 교수가 잘 지적했다.

 

우리가 만년 이론수입국의 처지에서 벗어나려면, 인문학자들끼리 '연대의식'부터 먼저 길러야할 것 같다. 좀 틀렸다고 해서 잡아먹을 듯이 덤빌 이유도 없고, 그 틀린 걸 누가 폭로했다고 해서 발끈할 이유도 없다. 서로 틀렸다면, 인문학을 업으로 삼는 이들이 힘을 모아 조금씩 수정해가는 게 올바른 길이다. (출처: 이론수입국의 징후)

 

하지만 나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려고 한다. 내가 진짜 문제삼고 싶은 것은 번역자와 번역 비평자의 불균형 현상이다. 번역자는 날로 줄어드는 와중에, 번역 비평자는 (아마추어건, 프로건) 많이 늘어났다. 그리고 그들의 오역 지적은 책 판매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친다. 오역의 문제점을 지적한 글을 보고, 대부분의 독자가 취할 행동은 딱 한가지다. 책을 사지 않는 것이다. 이미 수없이 당한 경험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번역 비평이 책 구매를 부추기기는 어렵지만 책 구매를 억제하는 건 아주 쉽다.

 

그래서 인문학 서적 번역 비평자들은, 자신들의 의도와 상관없이, 인문학 책이 팔리지 않는 데 자신들도 한 몫을 하고 있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이 문제에 대해 함께 고민해봐야 한다. 자신들은 무관한 일이라고 치부해서는 곤란하다. 인문학 책이 팔리지 않으면, 번역자에 대한 대우는 더 나빠질 것이다. 그리고 이는 번역의 질을 떨어뜨리는 것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일반인은 상상하지 못하겠기에 실례를 들어본다. 나는 대략 1년 정도 작업해서 ‘탈근대 군주론'이라는 책을 번역했다. 429쪽짜리 책이다. 그리고 번역료로 내 손에 쥐어진 돈은 대략 75만원이다. 이렇게 번역료가 적은 것은 책이 많이 팔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책 정가의 몇퍼센트에 해당하는 액수를 팔린 만큼 받는 조건으로 계약하는, 이른바 ‘인세 계약'의 결과다. 이 경우는 조금 극단적이지만 다른 책들도 인세 계약의 경우 내가 받은 번역료는 기껏해야 150만원을 넘지 않는다.

 

상황이 이런데 어느 바보가 번역을 하겠는가? 이런 상황에서 남는 번역자는 딱 네가지 부류다. 첫번째는, 돈 생각하지 않고 그냥 자기가 좋아서 계속 번역하는 사람들이다. (나는 앞으로도 이 부류의 번역자로 남을 것이다.) 두번째는, 번역의 질보다는 번역의 양에 집중함으로써 가능하면 많은 책을 번역해서 일정한 수입을 올리는 ‘전문 번역가'들이다. (이들은 번역료와 판매량이 비례하는 ‘인세 계약' 대신 원고량에 따라 번역료를 받는 이른바 ‘매절'로 계약하는 일이 많기 때문에 보통은 나보다 더 많은 번역료를 확보한다. 어느 정도 인정받는 번역자는 원고지 한장당 3500원 정도의 원고료를 받을 수 있다. 웬만한 책 한권 번역하면 300만원-400만원쯤은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세번째는 ‘어떤 실적'이 필요한 일부 ‘교수님'들이고, 네번째는 팔릴 책만 골라서 번역할 수 있는 ‘일류 번역자'들이다. 숫적인 면에서 보자면 ‘전문 번역가'가 압도적으로 많고, 나머지 세 부류는 손에 꼽을 정도다.

 

그러니 지금 상황 대로라면 한국 인문 출판계에는 결국 ‘전문 번역가'들만 남을 공산이 크다. 그리고 그들은 가능하면 많은 책을 번역해야 한다. 갈수록 책이 팔리지 않고 그래서 번역자 대우도 그만큼 더 나빠지면, ‘전문 번역가'들은 그에 따라 번역 속도를 더욱 높여야 한다. 그러니 번역 품질이 향상되기를 기대하는 건 헛된 꿈이다.

 

암울하지 않은가?

 

이것이 암울한 것은 먼저, 외국어를 할 줄 모르는 독자들이 외국의 지적 자산 또는 업적을 제대로 흡수하기 어려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외국어를 할 줄 아는 이들의 권력을 강화하는 것으로 이어질 것이다. 외국어를 할 줄 아는 사람들만 ‘선진 학문’을 향유하고, 이것을 바탕으로 그들은 자신들만의 울타리를 쌓아갈 것이다.

 

이것이 암울한 두번째 이유는, 오역과 오역에 대한 불신의 상호 작용 속에 한국 인문 출판의 기반이 무너질 것이기 때문이다. 근본 원인이 어디에 있느냐와 무관하게, 불신 받는 책과 불신 하는 독자가 빚어내는 궁극의 결과는 번역서 판매 부진과 독자 감소일 수밖에 없다. 이는 곧 독자 대중이 외국의 지적 자산에서 소외당하는 것으로 이어질 것이다.

 

번역은 조금 거창하게 말해 ‘지식의 민주화'에 기여한다. 이는, 루터가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변함없는 진실이다.

 

그렇다면, 번역서 비평 능력이 있는 이들은 일정한 의무감을 느껴야 한다. 그리고 의무감을 강하게 느낀다면 직접 번역을 하라!!! 아니면 적어도 당신의 번역 비평이 한국의 번역 수준을 높이는 집단적인 작업에 기여하는 것이 되도록 해야 한다. 번역서에 대한 독자의 불신을 조장하는 것을 넘어서서 좀더 나은 번역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촉진하는 것, 이것이 진정한 번역 비평의 의미가 아닌가?

 

여담 한가지를 적는다. 요즘 내가 수업을 듣는 과목의 영국인 강사는 보드리야르와 지젝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다. 그가 지난주 수업시간에 보드리야르 번역에 대해 재미있는 말을 했다. 프랑스 학자인 보드리야르의 책 가운데 하나를 오스트레일리아 사람이 영어로 번역했는데, 도저히 읽을 수준이 못된다는 것이었다. 프랑스어를 어느 정도 하는 이 강사는 프랑스어 원문과 영어 번역본을 비교해봤는데, 번역자가 프랑스어를 이해하지 못하고 번역했더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 강사, 한마디를 덧붙였다. “프랑스 학자들은 아주 독특해서 번역이 보통 어려운 게 아니다.”

 

프랑스 학자들의 책이라면, 영역본조차 너무 믿지말지어다.

2008/03/10 11:56 2008/03/10 11:56
13 댓글
  1. gaudium 2008/03/11 03:46

    누군가 오역을 지적했을 때 타당하다 싶으면 그냥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하고 고치면 되는데, 그게 그리 쉽지 않은 듯 합니다. marishin님께서 "직접 번역을 하라!!!", 느낌표를 세 개나 적어두신 게 심상치 않아 보입니다.^^ 저도 가끔은 그 말을 하고 싶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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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marishin 2008/03/11 19:16

    요즘 들어 그런 느낌이 더욱 많이 듭니다. 오역을 찾아내고 공개하는 일은 꼭 필요하고 좋은 일이기도 하지만, 남의 번역 문제점만 들춰내는 것이 지금 우리 현실에서 정말 건설적인가 자꾸 의문이 듭니다. 번역자들을 자극하고 번역의 질을 높이는 데 기여하기보다는, 번역 전반에 대한 불신, 책을 사지 않을 핑곗거리 제공 같은 부정적인 영향이 훨씬 큰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렇게 되면 결국 번역 출판 전반의 붕괴로 가겠죠. 그리고 그 결과는 '황폐화'뿐 아니겠습니까? 어차피 돈이 최고이고 '실용'이 복음인 세상에서 더 황폐해질 게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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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회사원2 2008/03/24 10:34

    "번역이 지식의 민주화에 기여한다"는 말씀 참으로 공감갑니다. 조금 넓게보아 영어몰입교육책과 관련있는 많은 생각거리와 답변을 얻어갑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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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yoonta 2008/03/24 13:51

    님 논리에 동의할수없군요. 번역비평이 무서워서 번역본못내는 사람이 있다면 오히려 반겨야하지 않을까요? 번역비평하는 사람이 번역으로 먹고사는 사람들 일거리까지 걱정할 필요는 없는 것이죠. 전문번역가들이 문제많은 날림번역을 남발한다면 이도 역시 비평의 대상으로 문제삼아 퇴출시키면 될 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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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marishin 2008/03/24 20:50

    회사원2님, 반갑습니다. 생각할 거리를 드렸다니, 더 없이 반가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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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marishin 2008/03/24 21:11

    yoonta님, 반갑습니다. 그런데 저의 어떤 논리에 동의할 수 없다는 건가요?

    번역비평이 무서워 번역 못하는 사람이 생기니 번역비평 하지 말라거나, 번역비평 하는 사람이 번역으로 먹고 사는 사람 걱정해주라고 한 적 없습니다. 걱정해주라고 한들 걱정해줄 것도 아니잖아요?

    제 주장은, (제대로 된) 번역자는 줄고 번역비평자는 늘고 있는 가운데, 번역에 대한 불신만 팽배해지는 결과가 무엇인가 생각해보자는 겁니다. 그건 결국 번역서의 감소, 번역의 질 저하로 이어질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사실 책 한권 번역에 100만원 남짓 지불하면서 번역의 질 탓하는 것은 어찌보면 우스운 일입니다. 번역비평자나 독자는 이런 현실에 눈감고 싶겠지만, 이것이 분명한 번역 현실입니다. 날림 번역의 근본적 원인이구요.)

    번역비평이 번역자에 빌붙어 존재하는 걸 넘어서는 걸 고민해야 하고, 번역 정말 걱정하는 사람은 번역비평만 할 것이 아니라 직접 번역하라는 주장이 제 말씀의 요지입니다. 이 말에 동의할 수 없다는 건가요?

    이 말에 동의할 수 없는 이들에게 제가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번역비평을 '정말로 치열하고 끈질기게 하는 것'일 겁니다. 진짜 제대로 비평을 하면, 분명 현재의 번역과 출판 현실에 상당히 기여하게 될 겁니다.

    번역자가 사라지면 번역비평도 함께 사라질 운명이라는 것이 그저 안타까울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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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yoonta 2008/03/25 00:44

    예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번역자가 사라지면 번역비평도 함께 사라질 것이다라는 걱정에서 하시는 말씀인것 이해합니다. 하지만 번역에 대한 불신이 팽배해지는 것이 무서워서 번역비평을 하지말자고 할수는 없는 노릇아닙니까?

    제가 님 논리에 반대하는 것이 있다면 "번역비평"--->"번역에 대한 불신 팽배"--->"날림번역의 범람"이렇게 이어질 것이라는 논리/결론에 동의할수 없다는 겁니다. 직접 번역하라는 말은 "번역비평을 하지말라"는 주장의 논거가 될수 없습니다. 마치 영화비평하는 사람에게 영화비평하려면 영화감독도 하라라고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지요. 직접 번역을 할수 있건 없건 직접 영화감독이 될수있건 없건 비평작업이라는 것은 항상 필요한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전문 비평꾼에서 이루어지건 아마추어 비평꾼에 의해서 이루어지건 간에 말이죠.

    비평이 활성화되면 될수록 저는 그만큼 양질의 책들을 더 많이 볼수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오히려 지금까지 그리고 지금도 번역비평이라는 작업에 우리가 너무도 등한시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님은 "지나치다"고 생각하실지 모르겠는데 전 오히려 "부족하다"고 느낍니다. 영화건 문학이건 번역이건 학술적 논의건 비평이 활성화되어서 그 비평대상이 사라졌다는 이야기는 들어본적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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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marishin 2008/03/25 01:23

    글쓴이의 의도를 짐작해 '해석'하기보다는 글을 있는 그대로 읽는 것이 중요합니다.

    1. 번역비평 - 불신 팽배 - 날림번역의 범람은 제가 제기한 논리가 아닙니다. 제 주장은 '헐뜯기' 또는 '비난'으로서의 번역비평이 불신을 더 조장하고 이는 결국 '다 함께 죽는 일'(번역서의 퇴조)이 된다는 겁니다. 강조점은 '더'에 있습니다. 다시 말해, '헐뜯기'로서의 번역비평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는 말이죠. 번역 문제의 주요 원인을 '번역비평'에서 찾을만큼 제가 비현실적이거나 멍청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번역비평이 어때야 되는가를, 이택광 교수의 지적을 언급함으로써 말한 것입니다.

    2. 저는 "번역비평을 하지말라"고 주장한 바 없습니다. 이런 주장을 하지 않았으니, 이 주장의 근거로 '직접 번역하라'라고 하지 않은 것은 말할 것도 없죠.

    다시 제 글을 읽어보시면, "의무감을 강하게 느낀다면 직접 번역을 하라!!!"고 쓴 것을 확인하실 수 있을 겁니다. 이른바 '조건절 문장'입니다.

    그 뒷부분은 제가 쓴 내용과는 무관한 부분이라 언급하지 않습니다. 그냥 번역비평이 더 활성화되어야 한다는 yoonta님의 주장을 듣는 것으로 족합니다. (번역비평이 더 활성화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동의하는 바입니다. 다만 제가 동의하는 것은 무엇이 진정한 번역비평이냐가 전제되어 있는 겁니다. 제대로 된 번역비평은 없고 번역 헐뜯기는 활성화하고 있다는 게 제 '현실 인식'의 일부라는 것을 덧붙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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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yoonta 2008/03/25 02:07

    님의 의도를 짐작할 의도는 없었습니다만 어쨋든 님의 요점은 확인되는 것 같군요.

    그러니깐 님 말씀의 요점은 지금의 번역비평은 "제대로 된 번역비평은 없고 번역 헐뜯기는 활성화"된 상황이라는 말씀이시군요. "현실인식"의 차이인것 같습니다. 어떠한 번역비평이 "제대로된" 번역비평인지 그 기준을 먼저 구체적으로 제시해주는 게 순서가 아닐런지요..물론 저도 어떤 번역비평이 "제대로 된" 비평인가에 대해서는 분명히 말씀드릴 능력도 안되고 그럴 입장도 아닙니다.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날림비평이건 제래도된 비평이건 안하느니만 낫다는 것이죠. 님 말씀이 옳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지금의 상황은 보다 양질의 번역비평이 나올수있는 과도기적 상황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제대로된 비평이 나오려면 님이 본 게시글에서 수행하신것과 같은 '번역비평에 에 대한 비평'을 좀더 자주할때, 그래서 그 '제대로 된 비평이란 무엇인가'의 모범을 보여주실때 가능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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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marishin 2008/03/25 02:59

    이택광 교수의 지적 정도로는 만족하지 못하시는 가보군요. 그리고 이와 관련해서 제가 보여드린 게 있다면 그건 '번역비평에 대한 비평'이 아니라, 요 아래 있는 '민주주의 벼리기'의 번역 검토 작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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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yoonta 2008/03/26 01:11

    marishin님의 아래글은 저도 잘 봤습니다. 저처럼 영어보다 한글이 더 편한 사람에게는 로쟈님이나 marishin님등의 번역비평글들은 여러모로 도움이 되죠. 앞으로 님의 "제대로된" 번역평 더욱 자주 볼수있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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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지나가다 2008/05/30 21:41

    웹검색을 하다 어찌어찌 흘러들어와 이 글도 읽게 되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인문서 번역비평을 인터넷 서점에 올리는 사람들은 몇 명 되지도 않거니와 본인들이 번역자이기도 한 경우가 많던데요. 데리다 번역서 오역지적을 한 진태원씨가 대표적인듯 하고.

    그러니 번역비평 전반의 문제로 뭉뚱그리기보다는, 일부 비평들의 경우 어떤 점이 문제인가, '어떻게' 비평하느냐가 문제인데, 이 글에서는 그냥 비평하는 사람들은 비판만 하지말고 번역을 하라는 이야기말고는 '어떤'비평이 '어떻게'문제인가 하는 점은 읽을 수 없어서 아쉽습니다. 어떤 책에 대한 번역비평이 그 책의 구매율을 떨어뜨린다고 해서 꼭 '나쁜' 비평이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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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marishin 2008/05/30 22:29

    올바른 지적이십니다. 사실 요즘은 몇명 되지도 않아요. 그리고 진태원씨는 전혀 다른 경우라는 것도 잘 압니다. 이 글은 사실, 오역을 지적한 사람을 번역자가 고소한 사태를 계기로, 아주 특정한 문제에 대해 쓴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는 사람은 이 글이 무엇을 겨냥했는지 다 안다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글은 아주 지독히 특정 맥락에 관련된 글입니다. 이 맥락을 모르는 분들은 그래서 납득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습니다. 물론 이 맥락과 무관하게 나름대로 이 글이 주장하는 바가 전혀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아무튼 조금 복잡합니다. (그 맥락을 알고 싶으시면 알라딘 서재에 가셔서 이 글을 퍼다 놓고 논평한 곳을 찾아보십시오. 그리고 그 곳에서 저와 얽히는 과거의 사건도 찾아보십시오. 그러면 짐작을 하실 겁니다.)

    그리고 이 글은 지금 말씀하시는 문제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다시 쓴다는 것을 전제로 한 글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본격적인 글을 쓸 기회를 못 찾고 있습니다. 질문 하신 것에 대해 제가 구체적으로 답할 기회가 있겠죠. 지금은 제가 짬을 낼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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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문화가 배제된 번역의 위험성 'power' 먼 댓글 보내온 곳 2009/03/03 01:39

    아라의 글로벌 마인드 칼럼..think globally 에서의 글 파워블로그는 무슨 파워블로그? 1.영향력부터 제대로 알자!  @ 2009/02/25 00:51에서 발췌합니다. 다음 사전에서 power를 검색 하면 아래와 같이 나온다. power 힘, 능력 power the ability to control people or things 국어 사전의 파워 - 남을 복종시키거나 지배할 수 있는 공인된 권리와 힘. 힘 , 권력 으로 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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