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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우병 반란', 어떻게 이끌 것인가?

지금의 시위 국면을 두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논란의 핵심은 아무래도 시민의 자발성과 지도부의 지도 문제다. 이 논란은 '다함께'가 행진을 앞장서서 이끄는 데 대한 반감, 심지어는 '다함께'가 시위대를 동대문까지 이끌어 가서는 어이없게도 갑자기 해산시키려 했던 일에서 촉발됐다. 하지만 이 문제는 지금의 시위가 어디로 향해 갈 것인가라는 중차대한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 정세적으로 굉장히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다.

 

1. 사실들의 정리

1) 시위대는 아주 자발적으로 구호를 결정하고 행진을 벌이고 있다.

2) 사실상 지도부는 존재하지 않으며 '대책회의'와 이 대책회의에 속한 '다함께' 따위의 집단이 이들을 이끌어보려고 하지만 별로 성공적이지 못하다.

3) 별다른 힘이 없는 대책회의와 다함께를 빼고 어떤 단체도 조직적으로 개입하지 않고 있다.

4) 그래서 이 시위 양상이 어디로 갈지, 어떻게 발전할지 아무도 모른다.

한마디로, 어디로 갈지, 궁극적인 목표치가 무엇인지 아무도 모르지만 시민들이 분노해서 계속 나오고 있으며 이런 흐름을 이끌거나 지도할 세력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대중을 지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직시해야 할 사실은 '지도'를 운운할 상황이 아님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런 것은 이 시위의 성격에서 비롯된다. 이 시위는 모든 권위에 대한 거부의 몸짓이다. 여기에는 이른바 기존의 '운동권' 거부도 포함된다. 이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 대전제를 이해하지 못하고 '지도' 운운하는 것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 교과서적 원론을 운운하는 일은 골방에서는 유효할지 몰라도, 2008년 5월 한국의 심장부에서 벌어지는 이 무정부적인 분노의 폭발을 논할 때는 한낱 관념의 유희에 불과하다. (사실 '다함께'의 행태는 이와 또 다르다. 그들은 '관념의 유희'나 '관성'에서 움직이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이것이 그들의 생존 방식처럼 보인다. 이에 대해서는 다시 쓸 기회가 있을 것이다.)

 

2. 시민 자발성의 의의와 한계

이번 시위만큼 시민들의 자발성이 두드러진 사례도 별로 없는 듯 하다. 물론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거리로 나온 사례는 수도 없이 많다. 사실,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 없이 가능한 대규모 시위와 항쟁은 없다.

 

그럼에도 이번 시위의 자발성이 중요한 것은 다른 이유 때문이다. 앞에서도 이야기했고, 전에 쓴 글에서도 계속 강조했지만, 이 시위의 핵심은 “기존 세력 모두에 대한 거부 선언”이다. 국민의 밥상이 위협받는 데도 아무 반응이 없는 정치권에 대한 거부, 거짓을 일삼고 제 살 길만 찾는 기득권층에 대한 거부, 이들을 감싸는 데만 급급한 언론에 대한 거부다. 그리고 분명한 사실 한가지는 노동조합과 운동 단체에 대한 거부도 포함된다는 것이다. 노조나 운동 단체로서는 억울할지 모르지만, 자신들이 대중으로부터 지지받지 못한다는 것은 인정해야 한다. (그 이유가 보수언론의 거짓 공세에 물든 탓인지, 비정규직을 외면하는 등 이기적인 모습을 보인 탓인지, 그건 지금 당장은 시급하게 따질 문제가 아니다.)

 

시위의 본질이 이렇게 때문에 거리의 시민들은 당연히 지도를 거부한다. '다함께'는 이 본질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채 나섰다가, 29일을 기점으로 일단 후퇴한 듯 하다. 다른 운동단체들은 이 본질을 어렴풋이라도 느끼고 관망하는 듯 하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아무리 봐도 '개입의 지점'이 보이지 않는 것이리라. 재빠르게 개입의 지점을 파악하고 움직일 수준만 됐어도, 이 땅의 운동단체들이 무기력하고 경직되어 있다는 비판을 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역시 현대자동차 노조만한 곳은 없다. 욕도 많이 먹지만 그들은 29일부터 조직적으로 집회에 결합했다고 한다. 그들이 어떤 식으로든 '개입의 지점'에 대해 감을 잡았다는 소리다.)

 

시민들의 자발성은, 이 권위에 대한 거부 때문에 더없이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이 땅의 모든 권위와 기득권층에 대한 총체적인 거부, 이것만큼 무서운 것이 없다. 그들이 만약 야당이 동참할 분위기를 만들었다면 이번 싸움은 벌써 끝났을 것이다. 시위는 야당 정치인들의 공허한 발언 속에 사그라들고 정국은 곧 '여-야 영수회담' 따위의 더러운 정치 타협 국면으로 바뀌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시위대 상당수는 허탈감 속에 집으로 돌아갔을 것이고, '역전의 용사들'만 끝까지 남아 '타협과 개량'을 거부하는 '메아리 없는 구호'를 외치다가 경찰에게 무자비하게 진압당했을 것이다. 지금까지 이런 식으로 귀결되는 걸 한두번 본 게 아니다.

 

하지만 이번 시위는 이렇게 되지 않았고, '당분간'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문제는 이 '당분간'에 있다. 이 양상이 얼마나 더 지속될지, 과연 어떻게 귀결될지, 너무나 불안한다. 어떤 식으로든 '지도'의 필요성이 있다. 아니 좀더 정확하게는 '전략'을 제시할 세력이 필요하다. 전술은 고민할 것도 아니다. 이미 대중이 확고한 전술을 만들어내 실천하고 있다. '비폭력'으로 무조건 계속 모인다는 전술 말이다. '비폭력'이 만능은 아니지만, 대중은 비폭력만이 이 국면을 이어갈 확실한 전술임을 몸으로 느끼고 있다. 하지만 그 다음 문제는 누구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3. 어떻게 이끌 것인가?

이 문제를 고민하기 전에 먼저 고민할 것은, 어떻게 시위에 조직적으로 결합할 것인가다. 상당수의 조직들이 이 시위에 조직적으로 결합하지 못하는 이유는 아마도 무슨 목소리를 낼지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대중들은 그저 '광우병'에만 집착하고 있고, 미국산 쇠고기 문제의 본질적인 문제인 '한-미 자유무역협정'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거나 오히려 지지하는 듯 하다. 한마디로, 운동권이 보기에 지금 시위의 요구는 너무나 부르주아적이다. 변혁적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

 

이런 생각을 한다면, 그건 운동단체들이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져 있느냐를 보여주는 것이다. 교육 문제, 건강보험 민영화, 물 사유화 따위에 대한 반대 목소리가 적지 않게 제기되고 있다는 사실은 논외로 하더라도, 지금보다 더 변혁적인 상황은 없다. 모든 권위에 대한 거부만큼 더 변혁적인 움직임이 있는가?

 

운동단체들은 지금이라도 조직적으로 시위에 결합해야 한다. 다만 깃발은 내리고 단체 조끼는 벗고 나가라. 깃발 들고 조끼 입은 사람들은 모든 권위를 총체적으로 거부하는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동안 당신들이 싸워온 노력과 활동을 부정하자는 소리가 아니다. 당신들이 원하는 게, 투쟁 경력을 대중들로부터 인정받는 것인가? 세상을 바꾸자고 싸웠지, 싸운 경력을 인정받자고 싸웠나? 당신들은 운동 경력 내세워 금뱃지 달고 기껏 민주화운동 보상금에 연연하는 '386'들을 그토록 경멸하지 않았던가?

 

두려워 할 것은 없다. 지금 할 일은, 모든 권위에 대한 총체적 거부에 동참하는 것이다. 여기에 동참함으로써 대중들의 신뢰를 얻고, 운동단체들이 또 하나의 권력, 또 하나의 권위가 아님을 증명해보여야 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하나씩, 하나씩, 민주적으로 설득하고 호소해야 한다. 그렇게 대중의 동의와 승인을 받아야 '지도'가 가능하다. '지도'는 '지도받을' 대상이 인정하지 않는 한 가능하지 않다. 똑똑한 척 한다고, 책 좀 읽었다고, 시위 좀 했다고, 지도부의 권위를 인정해줄 사람은 이제 한국 땅에 단 한명도 없다.

 

나는 운동단체들을 걱정해서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오래간만에 찾아온 이 결정적인 국면을 또 다시 그냥 보낸다면, 이 땅의 희망은 사라진다. 우리 아이들에게 희망을 찾아주기 위해서라도, 지금 당장 겸손한 자세로 나서야 한다.

2008/05/30 22:03 2008/05/30 22:03
30 댓글
  1. lets 2008/05/30 23:00

    현장에 나가 보면, 운동권들 이미 개개인의 '시민'으로써 많이 결합하고 있습니다. 점차 강화되고 있는 국가주의와 남성주의에 불편함에도 불구하구요. 눈에 띄지 않지만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들의 경험을 활용하고 있기도 합니다. 과거 운동권들도 '시민'으로 결합하고 있습니다. 오랜만의 집회에 떨리는 목소리로 발언하고 노래해 가면서요.
    전체를 부정하는 것은 물론 아니리라 생각하지만 약간 불편한 마음이 들어서 몇 자 적습니다. 올리시는 글은 잘 읽고 있습니다. 건필하십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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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marishin 2008/05/30 23:19

    당연히 그 개개인 가운데는 많은 운동권들이 있겠죠. 그걸 예상 못하고 한 말씀이 아닙니다. 제 말씀은 조직적 결합이 필요하다는 소립니다. 깃발을 들지 않는 조직적 결합, 그리고 그 가운데서 흐름을 만들고 상황을 주도하는 '의식적 노력'을 말하는 겁니다. 이런 취지를 모르고 말씀하시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불편하셨다면 미안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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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marishin 2008/05/30 23:44

    오해의 소지를 줄이기 위해 '운동권'을 '운동단체'로 바꿨습니다. 이렇게 하면, 취지가 좀더 선명해지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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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gaudium 2008/05/31 00:13

    어떻게 결합할 것인가를 고민하려면 대중이 어떤 것을 좋아하고 싫어하는가부터 알아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 점에서 '권위의 거부'를 지적하신 점은 동감합니다. 제 주변에 있는 여러 사람들은 지난 총선에서 진보신당 후보에게 투표했지만, 즉 진보신당이 내세우는 가치와 지향은 '좋아'하지만 휴대폰 문자로 집회에 나오시라는 권유는 '싫어'한다고 하더군요. 지향과 구체적인 실행 사이의 이 간격을 '세련되게' 연결하는 일이 만만치는 않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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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전복 2008/05/31 00:15

    네 마지막으로 저와 했던 논쟁을 끝내러 왔습니다. 저는 지금의 정세가 20년전의 정세와 동일하다고 주장한적은 없습니다. 대중이 진정으로 요구해야할 사항도 20년전의 그것과 같다고 주장한적이 없습니다.

    다만 현재 대중의 수준이 20년전의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를 한것이고 이게 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이 정세에 조직좌파가 개입해서 지도해야하는것이고 이와 별개로 유성님이 말씀하신것처럼 대중이 보여준 역동성은 저희가 배워야 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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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marishin 2008/05/31 00:15

    gaudium/ 그게 참 문제입니다. '세련된 연결'이 정말 중요한 과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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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전복 2008/05/31 00:16

    그리고 이글에 대한 의견을 밝히자면 왜 우리가 조끼를 벗고 깃발을 내려야 합니까? 조끼를 벗고 깃발을 내리라는 주장은 이전 탄핵반대시위때 노빠들이 하던 그 주장이후로는 처음 보는 주장입니다. 이땅에서 가장 자본과 정권에 맞서 치열하게 싸워온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드러내지도 못한다는것은 말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조직좌파나 노총노동자들은 강력한 조직성을 표현하는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걸로 일반시민들과 틈이 생긴다고 생각한다면 님이야 말로 일반시민들을 낮춰보시는게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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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marishin 2008/05/31 00:24

    전복님과 저의 간격의 차이는 좁혀질 것 같지 않습니다. 대중의 수준이 20년전과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고 한다면, 그들이 요구하는 것 또한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고 봐야 할 겁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주도적으로 만들어내는 지금의 정세는 어떻게 20년전과 다를 수 있는 겁니까?

    그리고 20년의 온갖 세월을 겪으면서도 대중의 수준이 20년전과 달라지지 않았는데, 유독 조직좌파는 20년전의 수준과 다른 질적인 성장을 이뤘다고 볼 수 있을까요? 제가 보기에 조직좌파는 어떤 면에서는 날로 퇴보하고 있습니다. 퇴보의 시작 지점을 잡을 수는 없지만요. 요즘엔 과거에 그렇게 흔하던 정세분석 하나 내놓는 조직을 못봤습니다. 요즘도 정세분석이 흔히 나오는데, 저만 모르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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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marishin 2008/05/31 00:26

    조끼를 벗고 깃발을 내리라는 것은, 지금의 이 정국은 '모든 권위에 대한 거부'이기 때문이라고 본문에 분명히 적었습니다. 그것이 제 상황 인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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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전복 2008/05/31 00:26

    님만 모르시는거 같습니다. 여러 정치조직들이 이 정세에 맞는 분석들을 ( 그 평가는 나중에 하더라돠) 내어놓고 있습니다. 물론 거기에 님이 동의하지 않을수도 있습니다.

    저도 어제 대중들의 시위를 보면서 감동받았습니다. 그 역동성은 그동안 민주노총의 조직했던 걷기시위와는 질적으로 다른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역동성은 대중이 전투적이라는것은 증명할수있을지모르나 대중이 변혁적이라는것은 증명할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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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전복 2008/05/31 00:27

    조끼를 입고 깃발을 올리는것이 어떻게 다른 시민들에 대한 권위일수있습니까? 그렇다면 일반 시민들이 들고나오는 자발적인 깃발과 만든 조끼는 무엇인가요? 태극기나 소고기 수입반대 현수막을 두르고 나오는 시민들이 있습니다. 이런것도 권위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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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전복 2008/05/31 00:30

    누구의 지도도 받지 않고 권위도 없고 자발적으로 그 자리에서 모든걸 결정하는 집회 그런 집회는 과거에도 있어왔습니다. 저도 그런 집회를 좋아합니다만 이 집회가 정말 가만이 있는데 계속 성장하고 유지될꺼라고 저는 생각 안합니다. 모든 혁명의 시작은 대중의 자발적인 움직임이지만 성공을 위해서는 조직적인 움직임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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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marishin 2008/05/31 00:34

    1. 여러 정치조직들이 내놓는 분석을 인터넷에서 접할 수 있나요? 아시면 좀 알려주시죠. 저만 모르고 있으면 곤란하니 좀 읽어보게요. (이 부분은 다른 뜻이 없습니다.)

    2. 그리고 저는 대중이 변혁적이라는 근거로 '모든 권위에 대한 거부'를 들었습니다. 모든 권위에 대한 거부가 변혁적이지 않다면, 과연 번혁적인 것은 무엇인가요?

    3. 일반 시민이 만든 개인적인 깃발과 조끼는, 특정한 단체를 상징하는 깃발과 조끼와 함께 논할 것이 아닙니다. 적어도 권위 문제를 논할 때는요.

    4. 성공을 위해서 조직적인 움직임이 필요하다는 것은 저도 똑같이 생각하는 겁니다. 이 글의 주제가 바로 그것입니다. 다만 그걸 어떻게 할 것이냐가 문제이죠. 그 첫걸음은 조직적이되 자연스럽게 대중 속에 들어가서 그들과 같은 눈높이에서 움직이면서 조직적이고 의식적인 흐름을 만들어 내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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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marishin 2008/05/31 00:37

    그리고 20년전과 다름 없는 수준의 대중이 만들어내는 현재 정세가 20년전과 어떻게 다를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답을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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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전복 2008/05/31 00:39

    1.

    각 조직 사이트를 찾아보세요. 저도 따로 정리한 링크목록은 없습니다.

    2.

    권위에 대한 거부, 이말은 너무 추상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이 권위에 대한 거부에 과연 자본의 권위에 대한 거부도 포함되어있나요? 제가 변혁을 얘기했을때 그 변혁은 정치혁명과 사회혁명을 얘기하는것이고 님이 얘기하시는건 문화속에서 생활속에서 혁명인거 같습니다. 저는 전자를 얘기하고 있습니다.

    3.

    저는 어떤 이유로도 조끼나 깃발을 벗거나 내릴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그것을 강요하는것이야말로 권위라고 생각되는데요? 한국사회에서 민주노총 조끼가 의미하는것이 무엇인지 과연 그 사람이 이 보수적이고 자본독재의 사회에서 저 조끼를 입으면서 지켜온것이 무엇이었는지 한번 생각해봤습니다. 그분들과 386을 왜 비교하십니까? 그들이 제도정치권에 뛰어들기 위한 경력을 쌓기 위해 조끼입고 깃발올리고 피터지게 싸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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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전복 2008/05/31 00:40

    4번은 저도 부분적으로 동의합니다. 제가 말한 지도라는것도 결국은 실천을 통해서 대중에게 검증받을때야 나올수있는것이니까요. 다함께식의 지도가 잘못된것은 대중에게 어떠한 동의나 검증도 받지 않은 상황에서 성급하게 지도를 하려든것에 있는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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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marishin 2008/05/31 00:52

    2. 정치, 사회, 문화, 생활이 분리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건 너무 도식적입니다. 적어도 지금 가장 심각하게 도전받고 있는 권위는 정치적 권위입니다. 대통령도, 국회도, 아니 정치 전체를 거부하고 있는 것이 현재의 대중입니다.

    그리고 자본의 권위 문제는 이런 권위들 보다 월등하게 미묘한 문제입니다. 자본의 권위는 아주 비가시적으로, 아주 무의식적으로, 그리고 아주 실존적으로 발휘되는 권위입니다. 당장 내일 아침 밥이 걸려있는 문제입니다. 이에 관해서는 조직좌파라는 사람들조차 완벽하게 거부하지 못하는 문제 아닙니까? 과연 이 땅의 조직좌파가 자본의 권위를 완전히 부인하고 완전히 반자본주의적인 삶을 살고 있습니까? 노동자가 자본주의를 지탱하는 최대의 세력이라는 것은 결코 아이러니가 아닙니다. 당연한 것이고, 그래서 반자본주의 혁명이 그리 쉽게 상정될 수 있는 것이 아니죠.

    다만, 지금의 대중 또한 부분적으로는 자본의 논리, 상품의 논리를 넘어서는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물론 보기 나름이지만. (이 부분은 제가 앞의 글에서 썼으니 반복하지 않겠습니다.)

    3. 이 부분은 제 논점과 크게 벗어나는 것입니다. 저도 민주노총 조합원입니다. 민주노총 팔아먹으면서 출세한 놈들 손으로 꼽을 수도 없습니다만, 이야기가 이렇게 진행되면 중단하느니만 못합니다. 이 부분은 추가 언급을 거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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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전복 2008/05/31 00:57

    노동자가 자본주의를 지탱하는것이 아닙니다. 노동자는 생존을 위해 어쩔수없이 노동력을 파는것이지요 그러나 자본주의의 발전이 심화될수록 노동자는 이렇게 사느니 이런 착취사회를 뒤엎는것이 이익이라는것을 깨닫게 되고 그렇게 해서 운동에 나서게 되는겁니다. 그걸 가지고 노동자가 자본주의를 지탱한다고 말씀하시는것은 맞지 않습니다.

    자본주의에 살면서 산으로 들어가 독야청청하며 문명을 거부하는것이 반자본주의적 삶일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을 온몸으로 겪으면서 그 안에서 파열구를 찾는게 반자본주의 운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대중의 권위반대는 그야말로 무정치에 가깝습니다. 사회나 정치가 문화와 도식적으로 분리되는것은 아닐지라도 상호영향을 받는 서로 다른 영역임은 확실합니다 지금 이 자발적인 대중이 왜 홈에버 이랜드 집회에는 결합하지 않습니까? 왜 기륭전자 조합원들과는 연대하지 않습니까?

    아직까지 대중의 권위반대=님의표현을빌리자면=는 반자본주의로 나아가고 있는 수준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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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gaudium 2008/05/31 01:06

    전복/ 그냥 이 국면에서는 "조끼"말고 '잠바'입으면 안되겠습니까? 잠시 "조끼" 벗었다해서 "피터지게" 싸운 노고가 퇴색되는건 아니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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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marishin 2008/05/31 01:12

    논의를 정리하지 않으면, 서로에게 도움이 안될 것 같습니다.

    1. 노동자가 자본주의를 지탱하느냐, 이거 논하자면 굉장히 복잡한 문제이니, 여기서 그치는 게 좋겠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있겠죠.
    2. 자발적인 대중이 왜 홈에버 이랜드 집회에 결합하지 않느냐? 이 문제는, 권위에 반대하는 대중적 투쟁과 바로 연결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어찌보면 논의를 너무 통속화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닙니다. 차원이 다르다는 거죠.
    3. 대중의 권위 반대가 반자본주의로 나아가고 있다는 게 아니라, 자본의 논리, 상품의 논리를 무의식적으로 넘어서고 있다는 거죠. 단초가 보인다는 뜻입니다.

    여전히 저의 질문 한가지는 답을 안하시네요. 20년전과 같은 수준의 대중이 어떻게 다른 정세를 만들어낼 수 있죠? 사실 저로서는 '전복'님과의 논의에서 핵심이 이 문제입니다. 이에 대한 답이, 전복님의 논리를 수긍할 만한 것이냐 아니냐를 결정하는 기준이 됩니다. 적어도 저에게는 말입니다.

    전복님은 저에게서 현재 상황이 '반자본주의'로 나가느냐에 대한 명확한 답을 가장 듣고 싶으신거죠? 그에 대한 답은 이미 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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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 김강 2008/05/31 16:03

    전복/ 아.. 정말 전복님이 서울에서 한 번 상황을 보시면서 함께 하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네요.

    그리고 이미 현재의 자본주의가 이전의 산업노동의 헤게모니를 더이상 주장할 수 없는 국면이라는 걸 같이 고민해봤으면 좋겠습니다. 지금은 사실상 실업자도, 주부도 "노동자"가 된 시대 아닐까요.

    조직 노동자 중심이론은 너무 지금 현실과 안 맞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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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 회사원 2008/06/01 22:09

    다른 건 잘 모르겠으나 오늘 마지막까지 쫓기며 집에 돌아온 바로는 나름대로 짚히는 것이 있긴합니다.

    1. 이명박 정부, 경찰은 차분하고 냉정하게 대처하고 있다.
    2. 때때로 분명한 전술에 의한 작은 승리의 경험을 축적해나가지 못한다면 잔혹한 보복을 당하고 말 것이다. '87 년 7, 8, 9 대투쟁이 그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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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 회사원2 2008/06/02 14:55

    독특한 '유행'감각과 묘한 '처세'술을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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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 marishin 2008/06/02 20:17

    잘 보셨다니,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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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 잠깼음 2008/06/03 11:47

    쭉 marishin님 글이랑 댓글을 보다가 드는 생각인데요.

    제가 있는 지역에서도 촛불집회를 하고 있어요. 제가 있는 대학에서도 꾸준히 가는 학생들이 있죠.
    그중에 한분은 평소에 프로게임 동영상을 보다가 아프리카라는 곳에서 촛불시위 영상을 보고 충격을 받으셨는데, 전주에서 노동자가 분신을 했다는 소식까지 듣고 운동단체에 찾아오셨어요.
    뭐 할일 없겠냐고요. 그러면서 저희가 만든 유인물 함께 돌리고 있습니다. 살면서 유인물 선전같은거 한번도 해본적 없는 분이 너무 열심히 하고 있어요. 사실 대학생 '활동가'라고 할수도 있을 제가 그분의 열성에 감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 일요일에는 대책위에서 '공식적'으로 촛불집회는 없었죠. 그런데 그분을 비롯해서 약 100여명 정도 되는 시민들이 그냥 촛불을 들고 광장에 모이셨더군요.

    지역의 대책위-사실 지역 대책위 돌아가는 거 보면 답답할때도 있습니다-가 운동단체가 조직하지 않아도 서울에서 일어나는 일에 분노를 느끼는 시민들이 모여서 얘기를 합니다.

    사람들이 처참하게 다치고 있는데 우리도 행진해야하는 거 아니냐.

    그런 생각이 듭니다. 국가와 자본이 안간힘쓰며 사람들에게 지우려는 순종을 거부하고 광장으로 모이고 거기서 저항과 변혁, 더 나아가면 꼬뮨이라는 것이 시작된다고요.

    그곳 광장에서 준비된 이야기, 나아가야할 방향에 대해 제안하고 얘기하고 설득하는것이 운동단체들의 조직적 참여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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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 自由魂 2008/06/15 23:30

    뒤늦게 이 글을 봤네요. 리플들은 읽지 않았습니다.

    권위에 대한 거부로만 이번 시위를 보신다면 이전의 시위와의 차잇점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가장 커다란 특징은 2002년과 2004년에 '깃발 내려'라고 외치던 시민들이 이젠 스스로 깃발을 들고 조직을 꾸며 시위에 참여한다는 것입니다. 촛불시위 초기에 '깃발부대'에 대한 괴담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지금 상황에서 시민들 스스로 그 '깃발부대'를 자처하고 있는 변화를 볼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오마이뉴스나 한겨레, 경향과 기존 좌파들, 좌파 교수들은 대중의 자발성에 찬사만 보내고 있지만 중요한 것은 이 자발성의 내용이 이전과 달라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함께를 비롯한 대책위의 문제는 이런 조직화되고 있는 대중의 자발성을 대책위의 활력으로 끌어들이지 못하고 유명무실한 '1700여 개의 시민 단체의 참여'라는 명분에만 매달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좌파들은 아예 개입할 생각도 못하고 있고요.

    그리고 깃발을 내리고 조끼를 벗고 참여하라는 주장은 화물연대의 파업에 대한 촛불시위 참여자들의 호응을 봤을 때 현실적으로 올바른 방침은 아니라고 봅니다. 오히려 촛불시위가 보름을 지나가면서 시민들, 특히 아고라를 중심으로 민주노총이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강력하게 제기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에 와선 그들이 스스로 깃발들고 스스로를 '아고라당'으로 표현하면서는 민주노총과 기존 좌파가 깃발을 들고 조직적으로 참여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도 그리 많아보이진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이 대책위와 기존 좌파에게 불만인 것은... 왜 정부와 정면으로 대결하지 않고 시위대를 청와대와 상관 없는 곳으로 뺑뺑이 돌리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이것은 6월 10일 이전 상황이고 지금 상황에선 시민들이 청와대를 무시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문제의 핵심은 기존의 좌파가 급진화하고 있는 대중을 쫓아가지 못한다는 데 있습니다. 핵심을 모든 권위에 대한 거부로 잡으신다면 그게 2002년과 2004년의 얘기라면 옳겠지만 올핸 옳지 않아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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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 自由魂 2008/06/15 23:41

    조금만 더 첨언한다면...

    1. 지금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들을 중심으로 '조직화'가 이뤄지고 있는데 이 커뮤니티 내에 주도적인 사람들을 중심으로 정당한 권위와 대표성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2. 이들 커뮤니티의 활동을 주도하는 대표적 사람들을 대책위의 목표와 구체적 전술을 결정하는 데 실질적으로 함께 참여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단지 들러리로서가 아니라요.

    3. 다른 많은 것들도 필요하지만 지금 당장에 운동의 구체적 목표를 정하고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시민들과 허울뿐이지만 지금 운동을 대표하고 있는 지도부 사이의 불화를 가능한 줄이고 시민의 창의적인 자발성과 기존 운동단체들의 유용한 경험들을 결합하기 위한 가장 첫 번째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4. 그리고 한가지 더 필요해보이는 건 지금 요 몇일간은 경찰과의 충돌이 자제되는 상황이긴 하지만 앞으로 더 폭력적인 상황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그런 상황을 그 어떤 곳에서도 대표로 뽑힌적이 없는 소수의 '예비군'들에게 맡겨놓을 순 없습니다. 가능하다면 참가한 각 인터넷 커뮤니티 스스로 경찰의 폭력으로부터 우리를 방어하고 우리 스스로의 잘못된 폭력을 통제할 수 있는 그런 비폭력위원회 비슷한 것을 꾸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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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 marishin 2008/06/16 03:12

    깃발이 다시 등장한다는 것, 맞습니다. 상황이 굉장히 유동적이어서 글을 쓰고 나면 상황이 바뀝니다.^^ 그런데 그 깃발과 이 깃발은 같은 깃발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고라당’이라고 쓴 깃발과 운동권의 깃발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이 차이는 1번에 쓰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조직화’가 이뤄지고 있으며 그들이 스스로 권위과 대표성을 만들어간다는 것, 이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제가 하자는 이야기는 ‘권위’ 비스므리한 것을 버리고 함께 참여해서 그 안에서 인정을 받고 권위를 부여받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다만 이런 참여가 ‘조직적’이어야 한다는 것이죠. 새로운 권위를 창출한다는 ‘목적 의식’을 가지고 참여하는 것, 이것을 ‘조직적 참여‘로 표현한 것입니다.

    핵심을 모든 권위에 대한 거부로 잡는 것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2002년과 2004년의 연속선상에 이번 시위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큰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모든 권위에 대한 거부는 하루 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1990년대 후반 이후 또는 2000년 이후 한국 사회의 핵심 특징은 ’불신‘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에 대한 불신, 모든 기득권층에 대한 불신, 그것이 계속 쌓이다가 이번에 폭발적인 국면에 도달했다고 생각합니다. 폭발의 계기는 ’정치의 부재‘에 대한 인식이구요. (시민들이 어떤 위협을 느낄 때 정치가 그것에 전혀 반응하지 않는 것을 보면서 느낀 ’정치의 절대적인 부재‘가 계기라고 봅니다.)

    덧붙이자면, 대중의 급진화 주장에 저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저는 현재 상황을 보는 ’진보‘ 또는 ’좌파‘ 진영의 가장 큰 착각이 ’대중의 급진화‘ 또는 ’대중의 탈보수화‘를 전제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지난 대선까지는 계속 보수화하던 한국 사회가 하루아침에 쇠고기때문에 ’급진화‘할 수 있겠습니까? 이 난감한 질문을 피해가는 길은 ’그동안 대중이 진짜 보수화한 것은 아니었다‘고 주장하는 것일텐데, 이는 사실과 동떨어진 ’강변‘에 불과하다고 느껴집니다.

    제가 보기에 대중은, 현재의 시위대는 결코 급진적이지 않습니다. 급진적이라면 오직 ’모든 권위에 대한 거부‘에서만 급진적인데, 이제 서서히 ’모든 권위에 대한 거부‘가 ’향후 문제에 대한 두려움‘으로 대체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조선일보 공격과 KBS 지키기는 ‘인터넷의 한계’를 시위 대중이 인식했다는 뜻이고, 민주노총 따위의 강력한 개입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자신이 벌여놨지만 스스로도 이렇게 계속 가면 안될 것 같고, 누군가 나서서 대신 정리해주기를 바라는 의존 심리‘의 표현이라고 봅니다. 이는 시위의 장기화, 그러나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는 기존 체제에 대한 인식의 결과로 보입니다.

    일단은 이렇게 답변을 드리고, 조금 더 정리된 글은 다시 쓰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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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 독자 2008/06/16 10:09

    아시겠지만 시위가 6월들어 가두화 된 이후로 깃발들이 대거 등장했습니다. 제 눈엔 시위 현장에선 그 수많은 노조와 좌파단체들의 깃발에 거부반응을 나타내는 분들이 거의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뭐랄까요... 마음 속의 호오여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시위 현장에서 만큼은 아주 느슨하게 연대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인터넷에선 깃발들에 대한 강한 불신을 표하는 분들이 여전히 있지만요.

    marishin님의 논지에 대체로 공감하지만, 에너지가 모인 다음 국가권력과의 대결을 불사하는 국면이 되자 깃발들이 대거 등장하고 생각 보다는 거부반응이 덜 나타나는 걸 보면서 또한 비폭력에 극도로 과민반응하며 기계적으로 집착하는 것을 보면서 기존 권위의 거부와 예속이 동시에 현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들은 정부와 보수언론에 불만과 불안감을 느껴 촛불을 들고 항의했지만, 이른바 일반 시만과 운동권을 철저하게 구분하고 후자를 거부했었죠. 보수언론을 비롯한 지배세력의 권위에 공포감을 느껴 그들에게 '찍힐까봐' 비정치성과 비폭력에 집착한 것은 아닐까요? 국면이 전환되자 이번엔 운동권의 권위에 어느 정도 의존을 했고요. 그러면서도 태극기를 몸에 두르고 군복을 입고 대치라인 최전선에서 경찰과의 충돌을 피하고 비폭력 시위하자고 외치는 사람들은 기존 권위에 강고하게 예속되어 있음을 표현하는 것은 아닐까요? (그렇다고 폭력 시위를 했어야 한다 그런 얘기는 아닙니다. 그냥 관찰자적 입장에서 말하는 것일 뿐)

    한편 "노짱"의 한 말씀 이후 청와대로 가자는 목소리는 쏙 줄어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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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 marishin 2008/06/16 11:30

    제 능력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들을 여러분이 막 이어서 제기하시네요^^

    ‘느슨한 연대’는 정확하게 보신 것 같습니다. 저는 현장 상황을 전혀 모르지만, 이 느슨한 연대의 시작은 아마도 경찰의 폭력적인 진압 이후가 아닐까 싶습니다. 폭력적인 진압 이후, 예비군 부대도 등장하는데, 이것은 자위의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깃발의 등장도 이런 위협에 대한 대처법의 하나인 것 같습니다. 혼자가 아니라는 것, 모두 개인들이 아니라는 것, ‘아고라당’이라는 깃발을 통해서라도 뭉쳐서 집단 의식을 보여야 이 위협에 심리적으로 공동 대처할 수 있다는 인식을 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다보니 운동단체에 대해서 느슨하게라도 연대할 수 있게 되구요. (저들이 어떻게 당했는지 짐착하고, 저들이 조직을 내세우는 이유를 알 것도 같다는 변화가 촉발한 것이 아니겠는가 하는 겁니다.)

    비폭력의 문제도 초기와는 조금 다른 게 아닌가 싶습니다. 지금의 비폭력 집착은 ‘경찰 폭력’에 대한 불안감과 관련이 있어보입니다. 그냥 느낌일 뿐입니다만.

    비폭력 집착이 기존 권위에 대한 예속을 표현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시위 대중은 ‘반국가’적이지 않고 도리어 아주 ‘국가주의적’인 것은 분명하다고 봅니다. 누군가는 ‘민족’으로의 복귀라는 식으로 말하던데, 제가 보기에는 이제야 말로 한국의 상황은 ‘국가’가 진정으로 의미를 지니기 시작했다고 봅니다. 한국의 민족주의는 이제 국가주의로 변화하고 있다는 겁니다. 이명박 또는 이명박 정부는 ‘국가’가 아니라는 인식, ‘국가’는 자신들이라는 인식, 우리의 요구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를 바로 세우자는 것이라는 인식, 이런 것들이 정말로 구체적으로 살아나고 있다고 봅니다. 그러니까 이건 기존 권위 문제와는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지금까지 60년동안 한국이라는 ‘국가’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우파에게 국가는 곧 대통령이었고, 좌파에게 국가는 곧 ‘폭력적 억압 기구’일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우파도 ‘민족’에, 좌파도 ‘민족’에 의존했던 겁니다. 그러나 이제는 ‘제대로 된, 우리가 진짜 주인인, 자랑스런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를 세우자는 생각을 하는 겁니다. 드디어 처음으로 ‘nation-state‘에 대한 인식이 생기는 거라고 봅니다.

    일단은 이 정도로 답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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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사회자를 갈아 달라 먼 댓글 보내온 곳 2008/05/31 10:56

    사회자라는게 진짜 안 좋은 일이라는 거... 어제 확실히 알았다. 언로를 독점하고, 이미 나온 말을 자기 뜻대로 평가하고 재단한다... 게다가 사회자의 마이크를 지켜주기 위해서 폭력집단의 호위를 받아야 한다. 최대한 말을 하지 않는 사회자가 필요하다. (나이먹을수록 도덕경을 자주 생각한다) 이 사회의 사회자들도 좀 말을 줄이셨으면... 자기 말보다 사회 구석구석의 다른 사람들 말을 들려주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긴 뭐 다함께나 나눔문화나 NL이나..

  2. Subject: 다시, "다함께", "대책위", "예비군" 여러분들께. 먼 댓글 보내온 곳 2008/05/31 16:19

    1. 다함께 여러분들께. “우리는 모두 시민이고, 운동권입니다.” 안녕하세요. 지난 번에 첫 번째 편지를 다함께 여러분들게 드렸던 김강기명입니다. 다함께 회원이신 한규환님의 반론 글도 잘 보았습니다. 저와 다함께 회원분들의 생각이 당연히 같을 순 없을 것이고, 오히려 이런 토론이야말로 “이럴 때일 수록 단결하는” 것보다 훨씬 더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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