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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정세 분석을 위하여

미합중국 광우병 위험 쇠고기 수입 반대로 시작된 지금의 정국이 어디로 발전할지 누구도 예측하기 힘들다. 촛불집회와 시위만으로 보면 상황이 더 진전될 기미는 별로 없는 것 같다. 하지만 노조와 같은 조직적 세력들의 참여 측면, 조선 따위의 극우신문 광고주 압박 운동과 한국방송 지키기 운동 따위로 쟁점이 계속 확대되는 점 등은 최근 2주 사이 변화된 모습이다. 촛불집회에 온갖 깃발들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도 주목할 변화라면 변화다. (지난번 글에서 운동단체들이 깃발과 조끼를 벗고 집회에 참여해야 한다고 쓴 것이 오류가 아니냐는 지적이 있었다. 부분적으로 수긍할 수 있는 지적이지만, 깃발의 의미 차이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깃발을 내리라는 것은 어떤 권위에 의존하거나 권위를 드러내려는 의도를 버리자는 뜻을 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국면에서 이 문제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아무튼 지금 중요한 것은 정세를 제대로 분석하는 일이다. 정세 분석하자고 하면, 행동 능력 없는 좌파들이 그럴듯한 말만 늘어놓겠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정세 분석이 없이는, 앞으로 무엇을 할지 결정할 수 없다. 정세 분석은 전술과 전략을 세우는 데 아주 중요한 것이다.

‘촛불 집회, 시위 정국’이 길어지면서, 이런 저런 주장들이 나오고 있다. 어떤 이가 정리한 것을 보니, 이명박 이후를 논의할 ‘진보진영 협의체’를 만들자는 주장, ‘제헌’이 필요하다는 주장, ‘제헌’에 앞서 주민소환제를 실시하자는 주장 따위가 있다고 한다. 이외에도 노조가 총파업을 벌임으로써 전선을 한층 확대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모두 나름대로 의미있는 주장들일 수도 있지만, 떨쳐버릴 수 없는 것은 과연 이런 주장을 하는 이들이 제대로 정세를 분석하고 하는 소리인가 하는 의구심이다. 객관적인 정세 분석이 없는 당위적인 주장은 심각한 해악을 끼친다.

 

위에 거론한 주장들은 공통적으로 지금의 시위 대중이 ‘진보적’ 또는 ‘급진적’이라고 보는 듯 하다. 이명박 퇴진을 전제로 한 이후 체제 논의로 옮겨가도, 제헌 목소리를 높여도, 노조가 총파업을 벌여도, 시위 대중이 강하게 호응할 것이라고 전제하지 않으면 현실성이 없는 주장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정말 그렇다면 문제가 전혀 없겠지만, 아니라면 정세에 혼란을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 정세를 너무 앞서가는 주장은 현실에 유효한 도움을 주지 못하고 기껏 자기만족에 빠지기 쉽다.

 

그래서 제대로 된 정세 분석이 필요한데, 그 이전에 짚고 넘어갈 일들이 있다.

 

1. 대중은 진보적인가?

나는 촛불집회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온갖 목소리를 쏟아내는 장면이 착시 현상을 일으키기 쉽다고 본다. 그들이 굉장히 급진적이고 진보적이라는 착각 말이다. 대중은 현재 단지 미합중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에만 공명하는 것이 아니라 건강보험 민영화, 물 산업 민영화 따위의 민영화(사유화) 반대 목소리에도 공감을 표시하고 있다. 게다가 극우신문들의 해악을 깨닫고 공영방송의 중요성까지 인식하기 시작했으니, 놀라움을 넘어 감탄과 희망에 빠져 바라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몇달 전까지는 보수화로 치닫던 사람들이 어떻게 갑자기 진보적으로 돌변할 수 있는가? 대통령 선거에서의 압도적인 승리는 논외로 하더라도, 얼마전 총선에서 한나라당의 승리를 그저 ‘낮은 투표율’ 탓으로 돌리고 말 수는 없다. 한국 사회가 보수화하고 있다는 것은 그저 표면만 본 착각에 불과했단 말인가? 이런 질문에 설득력 있게 답하지 못한다면, 현재 대중이 진보적이라는 생각은 기각되어야 마땅하다.

 

그럼 지금의 이 모습이 진보적, 급진적인 것이 아니면 무엇인가?

 

현재의 모습은 첫째 모든 권위의 거부이다. 이 거부는 하루 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니고 적어도 2000년 이후 한국 사회를 가장 확실하게 특징짓는 현상인 ‘불신’이 계속 쌓이다가, ‘기존 정치 일반의 무능’, 특히 ‘나의 생존과 안전에 대한 위협’에조차 반응하지 못하는 ‘정치의 총체적인 무능’에 대한 폭발적인 분노로 터진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한국의 시민들은 ‘지배층의 부도덕’(땅투기, 병역 기피, 학력 위조, 거짓말)부터 ‘경제 침체’로 대표되는 ‘무능력’에 이르기까지 가지가지로 질리다 못해, 이제 그들의 부도덕과 무능 때문에 ‘생명의 안전’까지 위협받는다고 느낀다. 쇠고기 이외의 문제들 가운데 건강보험 민영화 문제가 가장 먼저 부각되고 대중의 큰 호응을 얻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안전’이라는 측면에서 긴밀하게 얽히는 문제다. 물 문제, 전기 문제도 이와 비슷하게 생존과 안전이라는 측면에서 ‘피부에 와닿는’ 문제들이다.

 

하지만 대중의 급진성은 딱 여기까지다.

 

2. 대중은 국가에 무엇을 요구하는가?

대중의 급진성을 따지려면, 그들이 국가를 어떻게 보는지도 알아야 한다. 지금까지 60년동안 한반도 남쪽에 ‘국가’는 존재하지 않았다. 우파들에게 국가는 곧 대통령으로 대표되는 정부였고, 좌파들에게 국가는 ‘폭력적인 억압 기구’일 뿐이었다. 이렇게 국가가 없으니, 시민도 없었다. 우파나 좌파나 모두 ‘민족’에 집착한 것은 이 때문이다. 국가와 국가를 구성하는 시민을 민족이 대체했고, 그래서 이 ‘민족’은 보수적이고 진보적인(또는 저항적인) 두가지 성격을 동시에 지녔다.

 

하지만 언제인가부터 이 땅에도 ‘국가’ 개념이 현실로 다가오기 시작했는데, 그건 ‘시민’의 발견에서 비롯됐다기보다는 ‘한국’에 대한 자부심에서 비롯됐다. 2002년 월드컵을 계기로 ‘한국’ 대신 ‘대한민국’이라는 호칭이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 이 ‘대한민국’은 경제적으로 내세울만한 나라다. 정보통신 강국, 세계 10권에 육박하는 경제 대국이다. 게다가 이런 경제력은 월드컵 축구 4강, 박세리를 중심으로 한 골프 강국,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박태환과 김연아로 대표되는 수영과 피겨스케이팅의 성과까지 가져다줬다. 가짜로 귀결되고 말았지만 황우석도 있었고, 할리우드와 겨루겠다는 심형래도 빼놓을 수 없다.

 

반면에 정치 현실은 이런 자부심에 전혀 걸맞지 않았다. 여당이건 야당이건 ‘자랑스런 대한민국’에 걸맞은 정치를 보여주지 못하긴 마찬가지다. 외교 또한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다. 효순-미선 사건에 뒤늦게 수많은 사람들이 분노해 거리로 나온 것도 바로 ‘자랑스런 대한민국’에 걸맞지 않은 ‘굴욕적 대미 관계’와 무관하지 않다. 그것은 반미라기보다, 이제 우리도 ‘미국’에 좀더 당당해지고 싶다는 의지의 표시다.

 

그런데 이런 대중의 요구와 기존의 국가관은 어울리지 않는다. ‘자랑스런 대한민국’은 ‘무능한 정부’로 대표될 수 없고, ‘폭력적 억압 기구’의 틀 안에 가둬둘 수도 없는 개념이다. 이런 불일치가 해소되지 않고 지속되는 가운데 ‘국민의 생명’을 아랑곳하지 않는 ‘굴욕적 쇠고기 협상’이 터져나왔다. 광우병 위험 쇠고기 수입은 ‘자랑스런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에 대한 자부심을 여지없이 무너뜨리는 것이었다.

 

이런 상황은 ‘국가’를 다시 구성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경제 강국은 ‘삼성’으로 대표되는 기업이 이뤄냈고, 세계에 내세울 스포츠 강국은 ‘박태환’과 ‘김연아’가 이뤄냈다면, 정치(또는 민주주의)와 외교는 누가 맡을 것인가? ‘우리가 바로 민주주의’라는 구호는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날로 커져가고 있는 ‘기존 권위에 대한 거부’도 ‘국가의 재구성’을 부추기고 있다. 그동안 꾸준히 자라오던 ‘시민’이 불려나올 수밖에 없다.

 

이제 한국인들은 진정 근대적 의미에서의 ‘국민국가’와 ‘시민’에 눈을 뜨고 있다. 그리고 이 ‘국가’는 ‘모든 권위에 대한 거부’ 끝에 발견한 ‘해법’이다. 그 자연스런 귀결은 이 ‘국가’가 우선 광우병 쇠고기를 저지해야 하며 이어서 ‘시민’의 건강을 지켜줄 건강보험을 제공해야 하고, 물과 전기를 안정되게 공급해야 한다. 그리고 마침내 ‘지속적인 경제 성장’도 제공해야 한다. 그래야 ‘자랑스런 대한민국’이 계속 유지될 수 있다.

 

이런 결론은 다시 첫번째 질문으로 돌아가게 만든다. 대중은 진보적인가? 대중은 새로운 ‘국가의 구성’을 요구하는 한에서 ‘진보적’이지만, 그 진보는 ‘국가’로 귀결되는 한에서 아주 반동적이고 권위적이며 보수적이다. 결국 이제 좌파 또는 진보 세력은 ‘탈계급적 국가주의’ 아니 ‘비계급적 국가주의’(사실 언제 한국의 사회 인식 일반이 계급적인 적이나 있나?)를 직시해야 할 때가 온 듯 하다.

2008/06/16 13:23 2008/06/16 13:23
11 댓글
  1. gaudium 2008/06/16 16:22

    "진보적"을 '계급적 진보성'으로, "반동적이고 권위적이며 보수적"을 '탈계급적 국가주의'로 하셔야하지 않을까요? 요즘 '진보'와 '보수'가 워낙 넓게 쓰이니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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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marishin 2008/06/16 20:46

    현재 대중의 ‘진보성’이 ‘계급적 진보성’인지도 약간 의심스럽습니다만, ‘탈계급적 국가주의’만큼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엄밀한 용어의 선택이 중요한데, 잘 안되는 것은 그만큼 제 분석이 덜 확고하다는 것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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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지나다 2008/06/17 15:26

    대중의 진보성과 보수성을 몇몇 현상으로 재단하는 논의자체가 우스운 것 아닐까요. 좌파들이 언제 대중이 진보적이냐, 보수적이냐를 판단해서 운동에 개입했었나요? 글을 보며, 오만한 엘리트의 글자놀음이란 생각밖에 안들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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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marishin 2008/06/17 20:49

    대중의 진보성과 보수성을 ‘몇몇 현상으로 재단하지’ 않고 ‘모든 현상’을 보고 판단하는 시각을 누군가 제시해준다면 저로서는 더 고마울 게 없겠습니다. 그런 능력이 안되어서 몇몇 현상으로 재단한 것이니, 문제가 있다면 제 능력의 한계에 있겠습니다.

    세상을 보려면 자신의 ‘관점’을 가져야합니다. 아무 관점이 없는 것 또는 모든 시각을 포괄한 관점은 세상을 볼 능력이 없음을 뜻할 뿐입니다. 나름의 관점 제시를 ‘우스운 것’ 또는 ‘오만함’이라고 한다면 세상에 우습고 오만하지 않은 건 없겠습니다.

    그리고 진보적이냐 보수적이냐가 개입의 기준은 아닙니다. 하지만 현실 분석이 없는 운동은 맹목적이게 되고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됩니다. 이건 기본에 해당하는 사항일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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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흠... 2008/06/18 02:13

    먼저 글의 제목의 '올바른'이라는 표현이 눈에 거슬리네요.
    저는 지금의 촛불집회가 우리들('운동권'이자 자타칭 진보적 지식인)에게 던져주는 의미는, 그토록 원했던 '올바른'것을 추구하고자 했던 우리들(운동권이자 자타칭 진보적 지식인)이야말로 지금의 세계를 제대로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으므로 '우매한' 대중들이 그 뜻을 이해하여야 한다라는 소위 '엘리트주의'를 어떻게 하면 극복 해야 할 것인가라는 문제제기이지 않을까 합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을 경제대국의 반열에 올린것은 '삼성'이라는 기업의 노동자이지 '삼성'이 아니지 않을까요. 또 스포츠 강국의 비유를 통해 정치외교분야의 박세리와 김연아를 바라는 듯한 논리는 시민사회의 긍정성을 인정하고자 하는 님의 논리와 배치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으로 궁금한건 대체 무엇을 근거로 '한국의 사회 인식 일반이 계급적이 적이나 있나?'라는 사족을 달으셨나요?
    보기에 따라서는 님의 글쓰기가 '17세기 계몽주의'적인 문체의 부활을 보는 것 같아 좀 껄끄럽네요.

    글 속에 수많은 개념들이 난무하는 것을 보니 많은 책들을 읽으 신거 같은데

    한가지 묻겠습니다. 그럼 대체 대중들의 '비계급적 국가주의'를 직시하기만 하면 됩니까? 소위 진보진영들의 여러 주장들이 그저 '따위'에 불과한 것이라면 현재 벌어지고 이명박 정부의 '천민' 자본주의 정책에 무엇으로 대응을 해야 합니까'직시'하는 것으로요?

    님의 글은 전혀 진보적이지도 그리고 전혀 와닿지도 않습니다. 무지 몽매한 '대중'들의 '비계급적 국가주의' 집회를 전혀 '직시'하지 못한 진보진영에게 날리는 통렬한 비판이라고 하기에는 많은 아쉬움이 뒤따르는 것 같습니다.

    'long revolution'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지금 당장 소위 근대적인 혁명이 가능하리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다른 형태로 또 다른 공간에서 발생하리라 생각합니다. 기분이 나쁘셔도 어쩔 수 없지만 지금 님의 글을 본 제 입장에서는 그 혁명, 새로운 형태와 공간에서 일어나는 혹은 일어나고 있는 그 혁명이 (님이 무엇을 원하든) 님이 원하는 방향으로 절대! 일어나진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사회의 변혁을 바라는 님의 신념이 얼마나 투철 하신지 모르겠지만 보다 길게 그리고 조금은 진중히 지금의 상황을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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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명왕성 2008/06/18 02:35

    현재 촛불시위 정국이나 이것을 둘러싼 정국 분석과 관련해서는 매우 공감을 합니다. 특히 이명박 이후에 대한 논의가 대중의 진보성에 대한 지나친 낙관과 기대가 섞인 것 일 수 있다는 견해에 전적으로 동감입니다. 현재 대중들의 진보성이 지닌 한계에 대한 지적 역시 마찬가지구요.

    근데, 중요한 것은 현재 우리가 직면한 가장 중요한 문제가 무엇이고 또 그것에 대한 일반 대중의 인식과 올바른 투쟁을 위한 방향이 중요할 텐데, 그 부분이 좀 모호하지 않나 하는 생각입니다.

    현재 우리 사회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사실 이명박 정부 자체가 아니라, 이명박 정부가 극도로 노골화하는 형태로 드러나는 신자유주의적 경향이란 건 선생님께서도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문제는 이것이 독재와는 달리 그 폐해가 대중들에게 쉽게 전달되지 않는 게 아닐지요. 전 사실 지금 촛불시위를 하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한미 FTA에 대해 긍정적이란 앙케이트 결과가 이를 시사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대중들이 촛불을 드는 것은 단지 자신의 생명에 대한 위협, 안전 문제와 관련된 것이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현 정부가 지향하는 정치, 경제, 외교적 함의에 대한 큰 그림을 결코 대중들이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때문에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내용 중에, 대중들이 근대적 '국민국가'에 대한 요구를 한다는 말은 그래서 수긍하기 어렵구요.(또, '국민국가'란 개념을 매우 자의적으로 사용한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차라리 선생님이 말씀하신 국민국가란, 공적 영역에 대한 사민주의적 사상에 기반하여 그 역을 수행하는 국가란 게 더 정확한 게 아닌지요)

    따라서 대중들이 현재 요구하는 것은 자신의 최소한의 생존을 위협하지 않는 수준입니다. 좀 더 논의를 단순화 한다면, 현재 대중들은 노무현 정부 정도(?)나 그에 준하는 정도의 공공 영역에 대한 보장(그게 공기업 문제도 마찬가지고, 노무현 정부가 수입하려했던 쇠고기 수입의 조건이 지켜졌다면 과연 촛불을 들었을지 생각해보면 이 문제는 분명해지지요)에다, 좀더 경제적 성장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램..정도에 지나지 않는다고 봅니다. 이는 정말 단순한 논리인데, 지식인들이 현재 사태를 보면서 지나치게 이론화의 함정에 빠진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대중들이 그나마 이명박 정부의 거칠고 세련되지 못한 정치 행태로 인해 폭로된, 신자유주의가 가진 폐해를, 일반 서민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보다 쉬운 단어, 문장으로 단순화 하고, 이를 이슈화 하는 것, 그래서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노동자들이 파업과 이 문제가 유리되지 않는다는 걸 깨닫게 하고, 이들과 연대하여, 결국 저 신자유주의의 파고를 막아내는 것이어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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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marishin 2008/06/18 06:56

    먼저 ‘명왕성’님의 언급에 대해 답합니다.

    현재 대중이 요구하는 것에 대해서는 명왕성님의 지적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저도 글에 그런 이야기를 썼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지금 필요한 것’에 대해서 쓰신 부분도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명왕성님이 중요하다고 보는 “올바른 투쟁을 위한 방향”과 관련해서 ‘모호하다’는 지적 또한 올바른 지적이십니다.

    한마디로 명왕성님의 지적에 저도 모두 동의합니다. 다만 이 글은 투쟁 방향을 제시하려는 글이 아니기 때문에 그 부분을 언급하지 않은 겁니다.

    명왕성님의 지적 가운데 논의의 여지가 있는 부분은 딱 한군데입니다. “대중들이 근대적 ‘국민국가’에 대한 요구를 한다”는 부분입니다. 먼저 저는 대중들이 국민국가를 요구한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자랑스런 대한민국’이라는 개념이, 다시 말해 한국에 대해 대중들이 갖게 된 ‘자부심’이 새로운 국가를 요구하게 된다는 겁니다. 정부로 대표되는 국가라는 개념도, 억압기구에 불과한 국가라는 개념도, 이 요구에 걸맞지 않다는 겁니다.

    그러니 새로운 국가가 요구되고 그것은 ‘시민’들이 새롭게 구성한 ‘국가’, 서양의 사례에서 찾자면 ‘국민국가’라는 개념이 진정으로 요구되는 시점에 한국 사회가 와 있다는 겁니다. 대중이 모두 이를 분명히 인식하고 있고 모두 의식적으로 요구하고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좀더 쉽게 표현하면, 그동안의 한국 사회의 변천 과정에서 지금 단계에서는 ‘진짜 주인인 국민들을 위한 국가’가 현재 대중들의 요구 사항을 충족시키기 위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중들이 ‘우리가 바로 민주주의’라는 구호를 내세울 때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뜻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라고 저는 ‘해석’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이 국가가 사민주의적인 것인가는 해석이 다를 수 있다고 봅니다. ‘국민을 위한 국가’라는 개념은 꼭 사민주의만을 뜻하는 것은 아닐 수 있습니다. 그 이전에 ‘시민’들이 등장하면서 ‘국가’란 무엇인가라고 묻게 될 때 처음으로 도달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사민주의의 맹아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둘은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대중이라는 말을 많이 썼는데, 사실 썩 마음에 들지 않는 용어입니다. 저들은 대중이고 나는 똑똑한 지식인이고, 뭐 이런 이분법을 암시하는 듯 해서요. 하지만 이런 뜻은 전혀 없습니다. 마땅한 용어가 생각나지 않아서 쓴 것뿐 입니다. ‘무리지어 나선 국민’, ‘무리지어 나선 시민’쯤의 뜻으로 썼습니다.

    이 정도면 설명이 됐는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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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marishin 2008/06/18 07:39

    ‘흠...’님께 답변합니다.

    1. 먼저 글의 제목의 '올바른'이라는 표현이 눈에 거슬리네요.... 지금의 세계를 제대로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으므로 '우매한' 대중들이 그 뜻을 이해하여야 한다라는 소위 '엘리트주의'를 어떻게 하면 극복 해야 할 것인가
    === 맞는 말씀입니다. 엘리트주의를 극복해야죠. 대중은 우매하지 않습니다. ‘올바른‘이라는 표현은, 소위 이렇게, 저렇게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이른바 ‘지식인’들을 겨냥한 것입니다. 대중이 우매하니 대중에게 가르쳐주자는 게 아닙니다.

    2. 그리고 대한민국을 경제대국의 반열에 올린것은 '삼성'이라는 기업의 노동자이지 '삼성'이 아니지 않을까요.
    === 맞습니다. 제가 그렇게 생각한다는 소리가 아닙니다. 대중의 인식이 과연 무엇인가, 또는 대중을 지배하기 위해 퍼뜨린 인식이 무엇인가, 그것을 통해서 대중은 어떤 생각을 지니고 있는가를 논한 대목입니다. 이 말이 옳다거나 제 생각이라는 것은 아닙니다.

    3. 또 스포츠 강국의 비유를 통해 정치외교분야의 박세리와 김연아를 바라는 듯한 논리는 시민사회의 긍정성을 인정하고자 하는 님의 논리와 배치 되는 것 같습니다.
    === 저는 ‘시민사회의 긍정성’을 인정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이 글 어디에도 그런 논리는 없는데, 그렇게 느끼셨다면 제가 글을 분명하게 쓰지 못했나봅니다. 박세리, 김연아, 박태환은 한국인 일반이 ‘대한민국’에 대해 자부심을 갖게 만든 사례들을 열거할 것에 불과합니다.

    4. 그리고 가장 결정적으로 궁금한건 대체 무엇을 근거로 ‘한국의 사회 인식 일반이 계급적이 적이나 있나?'라는 사족을 달으셨나요?
    === 저야말로 궁금합니다. 해방정국 곧 1945년에서 남과 북의 국가 수립 시기까지를 빼면 ‘대한민국 60년‘동안 언제 사회 전반적으로 ’계급적인 인식‘이 지배한 적이 있습니까? “한국 사회는 자본가와 노동자의 대립 속에서 형성되었고 지금도 이 대립 관계가 사회를 구성하고 있다”는 식의 인식을 공개적으로 거론하고, 이를 많은 사람이 수긍하는 일이 한국에서 벌어진 적이 있느냐는 겁니다. 이와 비슷한 말만 해도 ‘빨갱이’로 내몰려왔고, 지금도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게다가 이 부분은 사족이 아닙니다. 현재 국면이 ‘탈계급적인가’라는 중요한 부분과 관련해서 저는 계급적인 적도 없으니 탈계급일 것도 없다고 주장하는 겁니다. 저에게는 ‘사족’이 아니라 중요한 부분입니다.

    5. 한가지 묻겠습니다. 그럼 대체 대중들의 '비계급적 국가주의'를 직시하기만 하면 됩니까? 소위 진보진영들의 여러 주장들이 그저 '따위'에 불과한 것이라면 현재 벌어지고 이명박 정부의 '천민' 자본주의 정책에 무엇으로 대응을 해야 합니까'직시'하는 것으로요?
    === 이 질문에 답하려면, 이 글의 성격에 대해 설명해야겠습니다. ‘지금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려면, 지금의 상황이 어떤지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다시 말해 정세 분석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 글은 이 정세 분석을 ‘올바르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현재 ‘대중의 상태‘를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제 나름대로 해석한 ‘대중의 상태’를 주장한 글입니다. 그러니까 이 글에서 ‘무엇으로 대응해야 할 것인가’까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멉니다. 그리고 ‘무엇으로 대응할 것인가’는 제가 자신있게 제시할 능력이 없습니다. 능력이 없으니,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겁니다.

    6. 님의 글은 전혀 진보적이지도 그리고 전혀 와닿지도 않습니다.
    === 맞습니다. 이 글은 전혀 진보적이지 않습니다. 현재 대중이 어떤 상태일까를 ‘분석’하는 글에 진보적, 보수적이라는 이념이 들어가면 그 분석은 제대로 된 현실 분석이 되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이 글은 이념적이지도 않습니다. 객관적으로 있는 것을 정확하게 바라보자는 겁니다. (물론 관점이 없이는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관점은 이념 또는 가치관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와닿지 않으신다니 그 부분은 유감이군요. 와닿지 않으시는 걸 보니, ‘객관적인 현실 분석’이라는 이 글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 제가 실패한 것 같습니다.

    7. 무지 몽매한 '대중'들의 '비계급적 국가주의' 집회를 전혀 '직시'하지 못한 진보진영에게 날리는 통렬한 비판이라고 하기에는 많은 아쉬움이 뒤따르는 것 같습니다.
    === 오해입니다. 제 글은 현재 벌어지고 있는 촛불집회가 “무지 몽매한 대중들의 비계급적 국가주의 집회”라는 소리가 아닙니다. 전혀 무관한 이야기입니다. 솔직하게 말하면, 이런 식의 요약은 오해라기보다 왜곡에 가까운 것입니다.

    8. 지금 님의 글을 본 제 입장에서는 그 혁명, 새로운 형태와 공간에서 일어나는 혹은 일어나고 있는 그 혁명이 (님이 무엇을 원하든) 님이 원하는 방향으로 절대! 일어나진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 제가 원하는 방향을 이 글에 쓰지 않았는데, 어떻게 제가 원하는 방향을 아셨죠? 제가 이 글에 쓴 것들은, “내가 한국의 대중을 최대한 있는 그대로 객관적으로 볼 때, 현재의 상태가 어떻게 보일 것인가”라는 질문에 스스로 답하는 글입니다. 그러니 제 희망사항은 이 글에 전혀 담겨 있지 않습니다. 있다면 딱 하나, “좌파 또는 진보세력은 ’비계급적 국가주의‘라는 현실을 제대로 봐야 한다.”는 희망사항뿐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글을, “어떤 사람이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객관적으로 현실을 보고 그 현실을 설명하려고 시도한 글”로 다시 보시고, 이 시도가 성공적인지, 엉망인지를 평가해주실 수 있다면 저로서는 더 큰 영광이 없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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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나침반 2008/06/18 14:45

    이런저런 얘기들 나오는 것은 좋죠. 현재의 시위를 어떻게 바라볼 것이냐라고 했을 때, 많은 이들이 자신의 틀대로 이것을 분석하려 하니깐요. 이전에 있어왔던 각 사상의 대립과 충돌은 이러한 운동 속에서 더욱 격화되고, 서로에게 파산선고를 내릴 수도 있겠지요. 그리고 그 열쇠는 아마 님이 바라보고있는 대중들이 가지고 있겠지요.
    이 글을 무리한 이론화의 틀이라든지, 대중의 역동성을 재단하는 글이라든지.. 그런 식의 의견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듯 합니다. 사실, 이 글에 대한 즉각적인 반응은 저도 비슷했지만, 현재의 운동방향과 정치선동들을 위해서는 님이 얘기하시는 "올바른(또는 글렀던) 분석틀"이라는 것은 중요하니깐요. 저는 현재의 운동을 "여기까지", 혹은 "이거다"라고 규정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대중들의 의식의 파고는 상황에 따라서 높아질수도, 낮아질 수도 있는 것이니깐요. 항상 변화하는 것이라는 기본 전제가 저에겐 깔려 있으니깐요. 다만, 현재의 상태를 진단하고 이 속에서 운동을 어떻게 진행시키는 것이 가장 올바를까(정말 주관적으로)라는 생각은 합니다. 내가 하는 선동들이, 내가 뿌리는 유인물들이, 내가 하는 발언들이 사람들 사이에서 어떻게 얘기되고, 또 동의될 수는 있을까. 혹은 저 사람이 하는 발언은 나와 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해석되고 있을까. 그래서 포털 사이트를 자주 둘러보긴 합니다. 진보넷 블로그 혹은 다음 아고라가 전부는 아니겠지만, 많은 이들이 생각을 나누는 자리니깐요. **자이건, 장애인이건, 동성애자이건, 자신을 어떤 것으로 정체화하고 있지 않은 이들이건, 한나라당 알바건 말이죠.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비계급적 국가주의"의 조건은 무엇인가요? 촛불을 들고 있는 시민들에게 어떤 질문을 하고, 어떤 대답을 들으면 그것을 "비계급적 국가주의"라고 얘기할 수 있죠? 직접 물어보는 것도 도움이 되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님은 움직이는 대중에게 어떤 질문을 했고, 대중들은 어떤 반응을 보여왔죠? 아니, 그 전에 님은 한국사회를 살아왔던 대중들에게 어떤 질문을 해오셨나요? 저는 그게 궁금합니다. 반도체 1위, 삼성, IMF 극복(되었다는 말 자체가 웃기지만), 김연아, 박세리 등의 스포츠 스타(박지성은 왜 빼시나요 -_-), 월드컵4강 등 님이 거론한 대중에게 영향을 미친 일련의 사건(?)들은 어떻게 한국사회에서 작동하고 있는지요.
    기본적으로 님의 분석틀의 몇몇 지점에는 동의합니다. 앞서의 사건들이 대중들의 생각이나 행동을 규정하는데 영향을 미쳤으며, 지금의 행동을 설명하는데 유력한 근거들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노동자 "계급"이라서 나왔다. 여성주의자라서 나왔다. 이것이야말로 교조적인 틀이라고 생각합니다. 성적 취향, 장애여부에 관계없이 아직 자신을 정체화하지 않은 많은 이들은(정체화했다 하더라도) 그러한 사회적 사건들에 영향을 받습니다. 그러한 사건들이 현재 한국을 살아가는 많은 이들의 사고와 행동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그리고 현재의 촛불시위에서 그것이 어떻게 드러나고, 또한 이후의 사건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지. 이것은 책상머리를 감싸안고 있는 학자들 뿐만 아니라, 현장에서 활동하는 활동가들에게도 주요한 고민꺼리입니다. 물론, 서로의 지향점은 명백히 다르겠지만요.
    그러나 님의 분석틀에 한한 글은 이미 실천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비계급적 국가주의"라는 말 속에서 이미 장애여부, 가치관여부, 성별여부, 계급여부에 대한 얘기는 용납되지 않습니다. 단지, 현재의 촛불시위를 근대국가와 시민이라는 정체성에 눈을 떠가고 있는 단일한 집단으로만 얘기할 뿐, 그 속에서 사람들이 어떠한 또다른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디로 나아갈지에 대해서는 닫아두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아니라고 말씀하셔도, 이미 비계급적 국가주의라는 분석틀을 좌파들이 떠안기를 희망하고 있으시니깐요.
    지금 촛불시위를 하는 이들이 더 나은 국가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있다. 또는 더 나은 지배계급을 원하고 있다. 라고 분석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을 "비계급적 국가주의"라고 얘기할 수도 있습니다.(또하나 알아야되는 새로운 용어가 나왔다는 것에 대해서는 정말 유감이지만) 하지만, 그 사람들의 생각이 어디로 번져나갈지, 또 어떻게 번져나갈지에 대한 고민을 하지 못한다면, 그 분석은 정지되고 화석화된 분석이라고 할 수 밖에 없을 듯 합니다. 지금까지 대중들의 사고와 행동은 어떻게 발전해왔는지요. 88년 올림픽부터, 97년 IMF, 02년 월드컵, 쭉쭉쭉 나아가서 황우석 사건(이거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분석해야할지)들은 현재의 촛불시위와 어떻게 연관을 맺고 있는지.
    나아가서 현장에서 자신의 노동조건에 대한 불만을 가지고 있는 노동자들, 성폭력 피해나 성차별에 힘들어하는 여/남성들, 장애차별에, 이성애적 차별에 고통받고 있는 이들은 이러한 사건들을 어떻게 느꼈고, 그 속에서 어떤 생각을 하고 행동을 했는지에 대한 분석을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촛불시위에 나선 시민들의 정체성은 다양합니다. 노조로 조직된 노동자이면서도 노동자로서가 아닌, 아이의 건강을 위해서 나온 부모로 나온 이들도 있겠죠. 하지만, 부모로서 나왔다고 해도 그들이 처한 현실 속에서 생각과 행동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습니다.
    제가 님에게 질문하면서도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은 그러한 단선적이고 정지된 분석으로는 어떠한 전망도 열 수 없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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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marishin 2008/06/18 21:30

    나침반님께 답합니다.

    1.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비계급적 국가주의"의 조건은 무엇인가요? 촛불을 들고 있는 시민들에게 어떤 질문을 하고, 어떤 대답을 들으면 그것을 "비계급적 국가주의"라고 얘기할 수 있죠?
    === 아마도 “국가가 무엇이고, 국가는 무엇을 우선으로 해야 하며, 누가 국가의 주인이냐?”고 묻는 거겠죠. 그에 대한 개개인의 대답은 한가지로 모이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문제는 사회적 의식이고, 개개인은 의식하지 못하더라도 사회적 의식에 지배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한국이라는 사회의 ‘비계급적 국가주의’의 형성에 대해서는 제 나름의 근거를 이 글에서 제시했는데, 제가 제시한 근거가 설득력이 없다고 보시면 그만입니다. 나침반님의 생각이 그렇다면, 제가 나침반님을 설득하는 데 실패한 거겠죠.


    2. "비계급적 국가주의"라는 말 속에서 이미 장애여부, 가치관여부, 성별여부, 계급여부에 대한 얘기는 용납되지 않습니다. 단지, 현재의 촛불시위를 근대국가와 시민이라는 정체성에 눈을 떠가고 있는 단일한 집단으로만 얘기할 뿐, 그 속에서 사람들이 어떠한 또다른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디로 나아갈지에 대해서는 닫아두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 제가 이야기하는 것은 개인의 정체성과는 무관한 이야기입니다. 물론 ’국가주의‘가 판치면, 장애인, 계급, 성별 문제 따위는 부차적인 것으로 치부되죠. 제가 상황을 ’국가주의‘로 규정한다고해서 사람들의 정체성이 막히나요? 제가 규정한 것은, 사회적 현실이 그렇다는 겁니다. 그런 현실을 인식해야 다양한 정체성을 어떻게 진전시켜 나갈지에 대해 의미있는 노력이 가능하다는 뜻이죠. 그러니까 고민할 일은, 국가주의의 도래 앞에서 다양한 정체성을 어떻게 지키고 진전시켜 나갈 것이냐의 문제라는 것이 제 주장에 담긴 함의라는 뜻입니다.

    3. 현장에서 자신의 노동조건에 대한 불만을 가지고 있는 노동자들, 성폭력 피해나 성차별에 힘들어하는 여/남성들, 장애차별에, 이성애적 차별에 고통받고 있는 이들은 이러한 사건들을 어떻게 느꼈고, 그 속에서 어떤 생각을 하고 행동을 했는지에 대한 분석을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촛불시위에 나선 시민들의 정체성은 다양합니다.
    === 맞는 말씀입니다. 그 고민을 해야죠. 저는 그 고민을 하기 전에 우리를 둘러싼 사회를 직시하자는 겁니다. 사회를 직시해야 제대로 고민할 수 있다는 겁니다.

    4. 단선적이고 정지된 분석으로는 어떠한 전망도 열 수 없다는 것입니다.
    === 사회가 복잡하긴 합니다. 하지만 거기에는 지배적인 흐름이 있습니다. 지배적인 흐름이 무엇이냐는, 인식의 문제이지 실천의 문제가 아닙니다. 조건을 제대로 인식해야, 제대로 된 실천이 나온다는 문제 의식에서 출발한 글입니다. 나침반님의 요구 사항은 정당하지만, 저는 거기까지 갈 능력이 없어서 그 앞에서 그쳤다는 소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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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나침반 2008/06/20 17:17

    예. 답변 잘 들었습니다. 자신의 공간에서 건투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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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촛불집회에 대한 모호하고 협소한 생각 먼 댓글 보내온 곳 2008/06/18 11:46

    marishin님의 [올바른 정세 분석을 위하여]을 읽으며 몇가지 생각을 정리해야할 것 같다. marishin님의 그 글은... 사실 이전에 쓰신 글들을 봤을때 상당히 괴리감을 느꼈다. 글쓴이와 끌이 잘 연결되지 않는다고 할까. 그런 느낌들 그러나. 지금 촛불집회의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국민소환제, 헌법개정, 제헌의회까지 많은 얘기가 나오는 이 시점에 과연 그런 대안(?)들이 촛불의 정세를 냉정하게 보고 말하는가를 소위 진보적

  2. Subject: 사건, 전위, 정치 먼 댓글 보내온 곳 2008/06/20 17:46

    연구실 촛불집회 연구모임에서 발제한 글.          

  3. Subject: 대중의 진보성과 보수성 먼 댓글 보내온 곳 2008/07/09 23:29

    이 글은 ‘올바른 정세 분석을 위하여’에 이어지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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