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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비껴간 세습 비판

북한의 3대 세습을 둘러싼 논란으로 남한의 이른바 “진보” 세력이 또다시 본 실력을 폭로하고 있다. 스스로 제 정체를 폭로하는 건, 환상을 깨고 현실을 직시할 기회를 주니 꼭 나쁜 일은 아니다. 아무튼 글 좀 쓴다는 사람은 거의 빠짐없이 한마디씩 하고 있다. (북한 문제는 아예 거론을 회피하는 나 또한 이렇게 쓰고 있으니 오죽하겠는가)

 

1. 내가 주목하거나 읽은 글들

 

발표된 순서대로 나열하자면

1) 좌파 학자 손호철(남한 진보여, 북한의 ‘3대 세습’을 비판하라)

2) 논란을 촉발한 경향신문 사설(민노당은 3대 세습을 인정하겠다는 것인가)

3) 경향신문 이대근(북한 3대 세습비판이 내정간섭? 오리엔탈리즘?)

4) 민주노동당 대표 이정희(진보임을 인정받기 위해 한 마디만 해 보라고?)

5) 언론인 홍세화(진보의 경박성에 관해)

6) 언론운동가 유영주(분에 넘치는 민주노동당 비판 경향 사설)

7) 언론인 정일용(자기 잣대로 북을 재단 말라)

 

또 하나 어떤 역사학자가 세습이 절대악이 아니라고 주장한 글이 있는데, 이 학자는 구체적으로 거론하고 싶지 않다.

 

제목만 봐도 내용은 대강 알 수 있다. 서로 의견들이 충돌하고 있는데, 공통점도 하나 있다. “권력 세습은 나쁘다”는 데는 모두 동의하는 것 같다. 세습이 절대악이 아니라고 부르짖는 어떤 역사학자를 빼면 말이다. 그런데 나는 이 전제를 문제삼으려고 한다. 급진적인 접근은 사람들이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전제로 삼는 것의 정당성을 따지고 들어가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렇게 하다보면 놀라운 사실을 발견할 때도 있다.)

 

(먼저 분명히 할 것은, 나는 자주파니 주사파니 하는 사람들한테 지독히 비판적인 사람이다. 그러니 자주파나 주사파가 이 글을 읽더라도 나를 우호세력으로 생각하지 말라. 그건 큰 착각이다.)

 

이 글은 “권력 세습은 나쁜가?”라고 묻되, 정확하게는 “권력 세습은 누구에게 나쁘고 왜 나쁜가?”라고 묻고 그 답을 찾아보려는 글이다.

 

2. 권력 세습은 나쁜가?

 

이 문장은 모호하다. ‘나쁘다’는 건 주체가 명백하게 있을 때만 성립하는 ‘가치 판단’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자면, 밑도 끝도 없이 “저 산은 나쁘다”는 문장을 들으면 웃음이 나온다. “산이 나쁘고 말 게 뭐 있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매일 아침 한시간쯤 산을 넘어 일터에 가는 장애인이 이 말을 했다면 뜻이 분명하다. 분명 저 산은 장애인한테는 나쁜 존재다. (보편적 가치판단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는 건 아니다. 다만 흔히 보편적이라고 하는 것도 “인간”의 관점에서지, “동물” 또는 “자연”의 관점에서도 그렇다는 근거는 없다. 가치 판단에 있어서는 판단의 주체를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권력 세습은 나쁜가?”라는 질문은 “권력 세습은 누구에게 나쁜가?”라고 바뀌어야 한다. 그러면 자연히 “왜 나쁜가?”라는 질문이 따라오게 되어 있다.

 

3. “북한 권력 세습은 누구에게 나쁜가?”

 

남한 사람 또는 미국 사람에게 나쁠까? 일단 별로 큰 문제가 아닌 것 같지만, 이모저모 좀더 따져보면 나쁠 수도 있다. 인류 전체한테 나쁜가? 이건 거의 무관한 문제라고 봐도 그만이다. 아무튼 이는 모두 곁가지고 결국 문제의 핵심은 북한 사람이다.

 

1) 북한 권력 세습은 북한 사람에게 나쁜가?

주체를 조금 더 나눠야 답이 나올 것 같은데, 기본적으로 정치 문제이니 지배권력과 민중으로 나눠보자.

 

1-1) 지배권력에게 나쁜가? 권력 세습이 지배권력 전체의 이익에 부합하면 나쁠 건 없다. 지배권력 일부, 그러니까 권력을 노리고 있었는데 김정일 위원장의 아들이 아니어서 기회를 잃은 사람에겐 분명 나쁘겠다. 하지만 이건 사소한 문제다. 김일성 주석의 권위가 아직 유효하다고 볼 수 있기에 이 권위를 동원한 세습이 지배권력 전체를 강화하는 데 득이 될 것이 거의 분명하다. 그러므로 지배권력에겐 권력 세습이 크게 나쁠 건 없다. (지배권력 내부 문제는 그야말로 그들만의 문제다.)

 

1-2) 북한 민중에게 권력 세습은 나쁜가?

두가지 측면으로 나눠 따지면 답이 조금 더 쉬울 것 같다. (1) 정치적 권리 측면 (2) 경제·사회 등 기타 권리 측면.

 

(1) 정치적 권리:

북한 민중의 권력 선택권이 박탈된다는 점에서는 나쁘다. 그런데 선택권 박탈의 근본 원인은 세습 결정이 아니라 북한 정치 체제의 비민주성이다. 세습 결정은 비민주적 체제이기에 가능했을 뿐이다.

(1-1) 선택지가 전제되지 않으면 선택권 박탈이 “나쁜 것”이라는 판단은 별 의미가 없다. 최고지도자로 선택할 후보들이 여럿 있지 않으면 선택권이 없는 거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굳이 말하자면 기권을 선택할 여지만 남게 된다.

(1-2) 비민주성의 상징으로서 권력 세습은 북한 민중의 선택권을 박탈했다는 점에선 분명 나쁘지만, 현실에 있어선 대단한 문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북한엔 ‘현 지배세력’ 이외의 선택지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선택지가 없는 건 북한 체제의 비민주성 때문이고. 결국 북한 민중이 선택권을 박탈당한 건, 권력 세습 결정 때문이 아니라 민주주의가 없기 때문이다.(물론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 북한의 공식 이념인 “인민민주주의”)

(1의 결론) “권력 세습이 북한 민중의 선택권을 박탈하기에 나쁘다”고 하는 건 부정확할 뿐 아니라 위험한 주장이다. 이는 선택권 박탈의 진짜 원인 곧 체제의 비민주성을 감출 위험이 크다. 자칫하다간 북한 지배세력이 모여 앉아 형식상 투표로 지도자를 뽑으면 충분하다는 인상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2) 경제·사회 등 기타 권리:

기타 권리를 “행복의 증진 권리”라고 표현해도 무방하다고 보면 질문은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 “북한의 권력 세습은 북한 민중의 행복 증진을 가로막기 때문에 나쁜가?” 권력 세습이 행복 증진을 가로막는지 여부는 지금 판단할 수 없는 일이다. “김정은 대장”이 순조롭게 권력을 승계한 뒤 “계몽·혁신의 군주”가 될지 아버지나 할아버지보다 못한 “폭군”이 될지, 당장은 판단을 유보할 수밖에 없다.

 

1-2의 결론) 북한의 권력 세습으로 상징되는 정치·국가 체제 문제는, 민중의 정치 권리를 증진시키는 동시에 민중의 행복을 돕는 최선의 방안이 무엇이냐를 기준으로  평가해야 한다. (다만 그래도 남는 것은 “현실적으로 지배권력이 흔들리지 않고 순조롭게 권력 승계가 이뤄지는 게 민중의 행복에 이롭다면 당장은 민중의 정치 권리 박탈을 용인할 수도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질문이다. 이 문제에 답은 여러가지 요인에 대한 검토가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에 사람마다 모두 다를 수 있다.)

 

이 글의 맨 앞에서 거론한 글들 가운데에 이런 내 주장과 거의 같은 주장을 펴는 이가 있었다. 언론운동가 유영주다. 그는 “분에 넘치는 민주노동당 비판 경향 사설”이라는 글의 마지막에 이렇게 썼다. “북이 특정 국가, 특정 체제여서 문제라면 그것은 오직 북 인민의 삶이 행복한가 그렇지 않는가로 접근해 논평할 일이지, 세습 여부를 판단의 절대치로 삼을 게 아니다. … 지금 북 인민의 삶이 행복한가 여부로 접근하면 세습은 사소한 문제로 평가될 수도 있다.” (유영주의 주장을 고려할 때 글의 제목은 조금 과하다. 편집자의 입김이 들어간건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4. 북한 민주화의 주체는 누구인가?

 

또 하나 거론할 글이 있다. 손호철 교수의 글 “남한 진보여, 북한의 ‘3대 세습’을 비판하라”다. 나로선 이 글의 전체적인 논지를 이미 반박한 셈이지만, 마지막 부분은 주목할 가치가 있다. 그는 글의 마지막에서 “'진보적인 북한민주화운동'에 대해서도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면서 “진보적인 북한 민주화운동은 일차적으로 이의 진정한 주체인 북한 민중 스스로가 민주적 역량을 육성하고 힘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방안에 대한 고민이 중심이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주장은 대체로 동의한다. 다만 ‘진보적인 북한민주화운동’이 뉴라이트류의 운동처럼 내정 간섭적인 형태가 되지 않으려면, 북한 민중 가운데 민주화 세력이 존재한다는 증거가 전제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북한 민중 스스로가 민주적 역량을 육성하고 힘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행위는 자칫 “반 정부 세력을 외세가 인위적으로 만듦으로써” 권력에 타격을 주려는 “제국주의적 공작 활동”과 쉽게 구별되지 않는다.

 

결국 필요한 것은 “북한 민주화운동”이 아니라 “북한 민주화 지원운동”이며, 이는 북한 민중이 스스로 주체가 되어 지원을 요청할 때나 본격화할 수 있는 일이다.

 

덧붙임) 북한 권력 세습이 대다수 남한 사람들에게 우습고 한심해 보이는 게 분명하다. 남한 여론이 북한을 무지몽매한 나라라고 생각하게 되면, 남북 관계 개선에 나쁘게 작용할 위험이 있다. 이 위험을 지적하는 심정은 십분 이해한다. 그렇다고 이른바 남한 “진보” 세력이 “세습 비판” 목소리를 높인다고 해서 이 문제점을 완화시킬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러므로 지금 벌어지고 있는 남한내 “진보세력간 세습 비판 논란”은 “남한 내부용”에 불과하다.

 

덧붙임2) 글을 쓴 지 한참만에 처음 댓글을 접하면서 느낀 건데, 내 의도가 분명히 전달되지 않을 수 있겠다 싶다. 그래서 추가적인 오해를 피하기 위해 한마디 요약문을 덧붙인다. “문제는 권력세습이 아니라 북한 정권의 비민주성, 독재다.

2010/10/15 20:11 2010/10/15 20:11
11 댓글
  1. rabbit 2010/10/19 11:44

    북한의 권력세습을 박정희의 유신정권으로 바꿔서 대입해보면 어떨까요?

    기타 권리를 “행복의 증진 권리”라고 표현해도 무방하다고 보면 질문은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 “박정희의 유신정권은 남한 민중의 행복 증진을 가로막기 때문에 나쁜가?” 유신 정권이 행복 증진을 가로막는지 여부는 지금 판단할 수 없는 일이다. “박정희 유신정권"이 순조롭게 권력을 유지한 뒤 “계몽·혁신의 군주”가 될지 아닐지, 당장은 판단을 유보할 수밖에 없다.

    1-2의 결론) 박정희의 유신헌법으로 상징되는 정치·국가 체제 문제는, 민중의 정치 권리를 증진시키는 동시에 민중의 행복을 돕는 최선의 방안이 무엇이냐를 기준으로 평가해야 한다. (다만 그래도 남는 것은 “현실적으로 지배권력이 흔들리지 않고 순조롭게 권력 승계가 이뤄지는 게 민중의 행복에 이롭다면 당장은 민중의 정치 권리 박탈을 용인할 수도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질문이다. 이 문제에 답은 여러가지 요인에 대한 검토가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에 사람마다 모두 다를 수 있다.)

    이글은 딱 박정희의 한국식 민주주의가 생각나게 하는 글이어서 한번 대입해 봤습니다.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시나요? 이 논리대로 가면 박정희는 어떤 사람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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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arishin 2010/10/19 13:21

      대입항부터 틀렸습니다. 비교 대상은 *북한의 권력 세습 대 유신정권이면 안되고 **북한의 독재 대 박정희의 독재여야 합니다.

      북한의 권력세습 대 박정희의 유신정권이 부적절한 비교라는 건

      1)북한의 권력세습은 북한 독재의 강화 계기가 아닙니다. (권력세습은 독재가 갈 때까지 간 뒤에 나타나는 징후일뿐입니다.) 반면 박정희의 유신정권은 독재의 강화 조처입니다. 김대중에게 거의 질뻔한 뒤 안되겠다 싶으니 독재를 강화하려고 수단으로 들고 나온 게 유신이니까요.

      2) 또 부적절한 이유는 북한의 권력세습(또는 독재)에 대해 북한 내부 상당수의 반대가 존재하느냐 여부가 불확실한 상황과 남한 내부에선 유신정권에 반대하는 내부 세력이 상당히 많았다는, 굉장히 중요한 차이 때문입니다. (이는 제가 ‘북한 민주화 지원운동’을 강조한 것과 연결되는 지점입니다.)

      제 글을 비판하시려면 좀더 적절한 비교 대상을 찾아보시는 게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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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abbit 2010/10/19 14:07

      대입항이 맞냐 틀리냐가 그리 중요해보이지는 않습니다. 글쓴이가 북한의 독재를 썼더라면 저도 박정희의 독재로 대입을 했겠지만, 권력의 지속을 썼기 때문에 저도 박정희 권력의 지속을 쓴 것입니다. 그리고 사회가 다르고 역사가 다른데 100% 맞는 대입항이 있을까요? 문제는 민중의 행복이 권력세습으로 가능하냐 다시 말하면 북의 독재로도 계몽, 혁신만 있다면 민중의 행복 증진이 가능하다는 논리의 문제라는 거죠... 이 얘기와 한국식 민주주의가 뭐가 다른지, 그리고 박정희를 그리워하는 일부의 향수와 뭐가 다른지 잘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말해 이 문제에 대해 평소에 깊이 생각해보지도 않았고, 북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합니다만 전개하신 논리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아 답글 달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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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arishin 2010/10/19 14:54

      1) 한 말 반복해서 하는 거 싫어하지만, “민중의 행복이 권력세습으로 가능하냐 다시 말하면 북의 독재로도...”라는 대목은 제 주장과 다르다는 게 첫번째 제 댓글의 요지입니다. “권력세습은 독재의 지속”이 아니고 “독재를 보여주는 징후”라는 게 제 주장입니다.

      이는 세습 대신 지배계층 내 다른 인물을 내놔도 독재는 변함없다는 걸 함축하는 말입니다.

      그러니 둘은 전혀 다른 이야기이고, 그 차이가 핵심입니다.

      2) 그리고 두번째 댓글에 대한 답은 이미 본문 글에 있습니다. 다시 인용하는 걸로 답을 대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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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만 그래도 남는 것은 “현실적으로 지배권력이 흔들리지 않고 순조롭게 권력 승계가 이뤄지는 게 민중의 행복에 이롭다면 당장은 민중의 정치 권리 박탈을 용인할 수도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질문이다. 이 문제에 답은 여러가지 요인에 대한 검토가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에 사람마다 모두 다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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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가: 여기서 ‘독재의 지속’ 대신 ‘권력 승계’라고 한 건, 독재의 지속이 인민의 행복에 득이 되지 않는 건 명백하기 때문입니다. 곧 이 대목은 ‘북한 독재 권력이 (세습이든 아니면 다른 인물을 내세우는 방식이든) 비민주적인 방법으로 순탄하게 승계되는 게’라는 뜻입니다.

      독재 문제라면 북한 주민들이 들고 일어나서 싸워야 할 문제라는 게 명백하되, 그 방법론은 북한 주민의 상황, 민주화 세력의 존재 여부, 존재한다면 그 세력이 얼마나 힘이 있는지 등 여러 요인을 따진 뒤에 나올 수 있는 복잡한 문제입니다. 그리고 이는 북한에 대한 정보가 없는 제가 답할 수 있는 수준을 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혀 언급을 안 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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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lois 2010/10/19 15:36

    한 국가의 민주성/비민주성은 그 국가에 속하는 국민/인민의 정치력에 의해 어느 정도 수준인지 가늠할 수 있습니다. 민주적이냐, 비민주적이냐는 상대적인 표현일 뿐이고, 이를테면 A라는 나라는 B라는 나라보다 민주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국에서 온 이주노동자들의 경우 법과 정의에 대한 주관적인 판단력을 갖추고 있고 자기의사를 표현하는 능력이 높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조선족이 많이 있는 식당노동자들 사례를 보면 50대층은 유물론을 알고 있어서 자기 주장과 단결력이 강한 반면, 비교적 신세대들은 권리의식이 낮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박정희의 독재와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일당독재는 오로지 그 국가의 법과 제도, 그리고 국민/인민의 정치력으로 가늠할 수 있습니다. 불행히도 우리는 북한에 대해 별로 아는바가 없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확실한 것은 이승만 독재정권 시절 좌익은 씨가 말랐으며, 박정희 독재정권 시절 급속한 산업화-국민화(전국토의 병영화)와 더불어 국민의 정치력은 말살되었습니다. 이로인해 항쟁이 터집니다.

    따라서 정치력이 없는 민중의 경우 민주주의는 혼란으로 점철될 수 있으며, 이에 다시 독재정권의 정당화에 대한 빌미를 줍니다. ex) 바이마르 공화국의 실패 - 나치정권 수립

    민주주의가 혼란으로 이어질 경우 강력한 정부가 들어서는 것에 대해 큰 이의는 없습니다. 다만 그 정부가 다시 민중의 정치력을 회복하고 개선시키는데 이바지한다는 것을 조건으로 한다면.

    북한의 일당독재는 체제유지를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남한의 양당독재와 크게 다른 점이 없지만, 그 독재가 어떻게 기능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좀더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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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lois 2010/10/19 16:28

    키케로의 <국가론>에 나오는 스키피오 서클이 국가와 인민에 대해 어떻게 말하는지 적어보겠습니다.

    아프리카누스는 "국가은 인민의 것입니다. 인민은 어떤 식으로든 군집한 인간의 모임 전체가 아니라, 법에 대한 동의와 유익의 공유에 의해서 결속한 다수의 모임입니다." 라고 정의합니다.

    스키피오는 "따라서 내가 설명한 군중의 결합인 전체 인민(populus), 인민의 구성체인 나라(civitas) 전체 내가 이미 말한 것과 같이 인민의 소유물인 국가(res publica) 전체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어떠한 계획(consilium)에 의해서 지배받아야 할 것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이 사람들은 나라를 자연적인 결합체, 국가를 법과 계획에 의해 매개된 인위적인 조직으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현대 민주주의 국가는 여론에 의해 정치가 구성되기도 합니다. 여론은 사람들의 의견의 집합체입니다. 이 의견은 가족과 학교, 직장, 사람들의 모임(사회) 등을 중심으로 형성됩니다. 비슷한 사람들끼리 비슷한 의견을 갖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만일 성매매방지법이 제정되었을 때, 여론은 몇가지로 갈립니다. 매춘은 없어져야한다. 성매매는 서로의 자유에 의한 상거래다. 성판매는 여성의 성적자기결정권이다. 성매매는 여성의 성적자유를 침해한다. 기타등등.

    여기서 국민이 권리가 무엇인지, 정의가 무엇인지, 자기결정이 무엇인지, 자유가 무엇인지, 성이라는 대상의 속성과 성이라는 상품의 속성이 무엇인지를 모를 경우 혼란이 생깁니다. 기준은 헌법을 찾아봐야합니다. 헌법에 뭐라고 나와있는지.

    북한도 마찬가지로 혼란이 일어났을때, 어떤 식으로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며 최종결정의 근거는 어디에 있는지, 의견이 반영되는 다수는 누구인지를 안다면 그 국가의 지배구조를 얼추 짐작할 수 있을것입니다.

    그러나 한가지 확실한 사실은 우리는 정치와 경제가 분리되어 있고, 아마 거긴 하나일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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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arishin 2010/10/19 17:01

      너무 상대성을 강조하는 것도, 구체적인 내용을 모른다는 걸 강조하는 것도, 좋지 않다고 봅니다.

      북한 민주주의 문제는 일차적으로 그들이 내세우는 ‘인민민주주의’를 기준으로 판단해도 충분합니다. (북한 헌법 제4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주권은 로동자,농민,근로인테리와 모든 근로인민에게 있다.” 전문은 http://ko.wikisource.org/wiki/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_사회주의_헌법 )

      현재 북한 상황을 판단하는 데 있어서는, 굳이 남한과의 비교나 먼 옛날 서양의 학자까지 끌어들이는 수고를 할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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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lois 2010/10/19 18:27

    그러면 이제 남아있는 것은 이 헌법과 실제 의사결정방식 그리고 인민의 삶이 얼마나 일치하느냐가 관건이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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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arishin 2010/10/19 18:58

      제 이야기가 그것입니다. 북한은 명목상 ‘인민민주주의’를 주장하면서 시작했고 ‘자유민주주의’를 명백히 거부했습니다. 이 두가지 중에 어떤 게 좋으냐는 현실적으로 ‘이념’을 제거하고 논하기 불가능합니다.

      그럴 때 1차적으로 따질 건, 북한이 내세운 ‘인민민주주의’에 현재 북한 정치체제가 부합하느냐입니다. (저는 절대 부합하지 않는다고 봅니다. 북한이 현재 독재인 게 문제이지 권력세습은 사소하다고 주장한 것은 바로 이 판단에 근거한 겁니다.)

      그리고 원 글에서 2차적으로 따진 건(행복 증진 권리 운운 부분), 북한이 과거 ‘조선’이나 진배없는 비민주적인 국가라고 전제하고 시작한 겁니다.

      백성이 주인이 아닌 ‘조선’에서 왕위 세습 그 자체는 이후 백성의 행복 증진 여부와 별개의 문제이듯, 현재 북한도 마찬가지로 별개의 문제라는 겁니다. 아직은 판단을 유보할 수밖에 없는거죠.

      다만 권력 선택 권한을 박탈당한 엄연한 현실에서도 인민들에겐 ‘지배계급간 치열한 권력다툼’보다 ‘순단한 권력 승계’가 나을 여지는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그렇다면 혹시 당장의 ‘권력 선택권 박탈’을 묵인할 수도 있는가 하는 질문은 남겠다는 것이고, 이 문제는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는 문제라고 봅니다. (이에 대한 제 생각은 정리되지 않았고, 복잡한 문제가 얽히기 때문에 의견이 분분할 수 있다는 언급 정도로 넘어간 거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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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ois 2010/10/19 19:45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주의 헌법 제5장 공민의 기본권리와 의무에서 "제63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공민의 권리와 의무는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전체는 하나를 위하여>라는 집단주의원칙에 기초한다."는 북한이 전체주의 국가라는 것을 말해주며, 비민주성은 그 본질에 속한다고 생각합니다.

      "제81조 공민은 인민의 정치사상적 통일과 단결을 견결히 수호하여야 한다.공민은 조직과 집단을 귀중히 여기며 사회와 인민을 위하여 몸바쳐 일하는 기풍을 높이 발휘하여야 한다." 역시 북한이 전체주의 국가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고 "제82조 공민은 국가의 법과 사회주의적생활규범을 지키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공민된 영예와 존엄을 고수하여야 한다."는 것은 공민 즉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가 있는 자들은 체제안정을 위한 노력을 해야하며 더 이상 혁명과 운동의 기능을 수행할 수 없음을 말해주는 것이 아닌가합니다.

      또한 공민은 통치의 안정성을 위해 협력하는 자들로서, 광의에서 인민에 대한 지배의 주체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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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arishin 2010/10/21 10:20

      제 사정상 답글이 늦었습니다. 한가지 마음에 걸리는 게, ‘일국 중심적인 집단주의 성향’과 ‘전체주의’를 성급하게 동일시하는 위험입니다. (그리고 북한 헌법이 정의를 분명히 내리지 않고 있지만, 공민은 인민의 공적인 측면을 지칭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다면 공민이 인민의 지배 주체라는 말은 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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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newtimes67님의 트윗 먼 댓글 보내온 곳 @newtimes67 2010/10/15 20:26

    [남한내 “진보세력간 세습 비판 논란”은 “남한 내부용”에 불과하다] 라는 언급에 백번 동의....http://blog.jinbo.net/marishin/340

  2. Subject: @dusns님의 트윗 먼 댓글 보내온 곳 @dusns 2010/10/18 13:09

    marishin님의 글 "핵심 비껴간 세습 비판" http://blog.jinbo.net/marishin/340

  3. Subject: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키케로의 "국가론" 먼 댓글 보내온 곳 ou_topia 2010/10/20 21:02

    marishin님의 [핵심 비껴간 세습 비판] 에 관련된 글. marishin님의 [핵심 비껴간 세습 비판]에 lois님이 올린 덧글을 좀더 자세히 살펴보고 싶어서 태크를 날린다. 키케로의 &ldquo;국가론&rdquo;(De re publica)에 기대어 이북을 한번 살펴볼 수도 있겠다. 우선 lois님이 참조한 키케로의 &ldquo;국가론&rdquo; (De re publica, 1,39-1,41; http://www.gottwein.de/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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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진보 진영의 글을 번역해 공개하는 걸 주 목적으로 하지만 요즘은 잡글이 더 많습니다. marish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