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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토의 유고 공습은 유럽 사민주의의 배신의 상징

이그나시오 라모네(Ignacio Ramonet)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1999년 4월호

원 제목 = 사민주의의 배신 (Social democracy betrayed)

 

이 잡지 사장이자 출판 최고책임자가 쓴 이 글은 유엔을 거치지도 않고, 최소한의 국제법적 절차조차 무시하고, 미국 정부의 압력에 굴복해 유고 공습에 동참한 서구 사민주의 정권들을 맹렬하게 비난합니다. 또 여기에 그치지 않고 유럽 사민주의 정권의 이념적 변질을 지적합니다. 신자유주의 정책을 그대로 받아들인 `무늬만 사회주의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유럽 사민주의자들이 보수주의자들을 역사의 뒤안으로 몰아내고 이 시대의 우파가 됐다고 선언합니다.


 

 

북대서양조약기구가 1949년 창립된 이후 처음으로, 자국 국경 밖에서 어떤 공격행위도 하지 않은 나라를 상대로 전쟁을 벌이고 있다. 또 1945년 이후 처음으로 유럽의 군대가 다른 유럽 주권국가에 폭격을 하고 있다. 99년 3월23일 발표된 전쟁 개시 결정을, 한 때 스페인 사회주의노동자당 지도자였던 야비에르 살라나 나토 사무총장은 "도덕적 의무"라고 표현했다.

 

살라나는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영국의 수상이며 현재 유럽 사민주의의 유력 인사들인 리오넬 조스펭, 게르하르트 슈뢰더, 마시모 달레마, 토니 블레어의 지지를 받고 있다.

 

이들 모두는 워싱턴이 제안한 군사적 해결책이 코소보 평화협정의 교착 상태를 타개하는 "유일한 길"이라는 데 동의했다. 91년 미국이 이라크와 벌인 전쟁에서 확인됐듯이 이런 위기는 공습으로 해결되지 않으며, 지상군을 파견해 코소보를 점령하는 것은 인명 피해 측면에서 너무 대가가 큰 데다가 발칸반도 전체로 분쟁이 확대될 수도 있다는 사실은, 상식에 해당하는 데도 말이다.

 

이 위기는 주로 유고 대통령 슬로보단 밀로셰비치가 코소보에 폭넓은 정치적 자치권을 주는 걸 거부해서 생긴 것이다. 그러나 그의 결정은 코소보가 문화적 이유 때문에 세르비아에 속해야 한다고 믿고, 코소보의 소수 세르비아계 사람들에 대한 연대감을 느끼는 세르비아 대중의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다. 그래서 이 전쟁은 나토가 우리에게 선전하는 것과 달리, 고립된 밀로셰비치 대 연합군 및 해방을 갈망하는 세르비아 국민의 대립이 아니다. 상황은 훨씬 복잡하다.

 

솔라나는 이 결정이 유럽에 속한 국가의 국민들을 독재 정권이 계속 탄압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데 근거한 것이라고 합리화했다.(르몽드 1999년 3월25일치) 그렇다면 우리는 유럽 국가이며 나토 회원국인 터키한테 쿠르드족에게 자치권을 주고, 쿠르드족 시민 수천명을 이미 숨지게 한 탄압도 중단하라고 호소해야 하는가? 이중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아닌가?

 

장 조레와 국제법 존중 전통의 후예인 사민주의 지도자들이 워싱턴의 압력에 굴복해 한치의 국제적 합법성도 없는 엉뚱한 군사행동을 시작할 수 있는가? 이 지역에서 군 병력 사용을 허용하는 국제연합의 명시적 결의도 없고, 국제 분쟁의 최고 중재자인 유엔안전보장이사회에 공습 시작 전에 자문을 구하지도 않았으며, 세르비아에 무력을 사용하라는 이사회의 동의도 없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각국의 지도자가 자국 의회한테 전쟁 전에 상황을 설명하지도 않았다. 이 분쟁에 무력을 사용해도 좋다는 의회의 승인은 아예 논외로 하더라도 말이다.

 

그래서 거대한 인류 화합의 신화인 사회주의는 다시 한번 유럽 사민주의 지도자들한테 배신을 당했다. 99년 3월12일 독일 재무장관 오스카 라폰테인의 사임은 이미 사민주의 파산의 극적인 증명이기에 충분했다. 또 이 사임 사건은, 1930년대 루스벨트 대통령이 미국의 경제위기를 해결할 수 있게 해준 케인스적 접근조차 너무 좌파적이라고 여기는 신자유주의 정통에 대한 대안을 사민주의가 제시할 수 없음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오스카 라폰테인은 동료 사회주의자들이 퍼붓는 5가지 중요한 죄를 뒤짚어 써야했다. 유럽의 재출발을 원한 죄, 공정한 세제를 옹호한 죄, 유럽중앙은행을 위태롭게 한 죄, 국제 금융통화체제의 개혁을 요청한 죄, 그리고 이에 앞서 대부 비용을 줄이고 소비를 촉진하며 실업에 대항하려고 이자율을 낮추도록 독일중앙은행에 요구한 죄다.

 

그의 퇴임이 사민주의의 이념적 붕괴의 또 다른 신호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이 운동은 완전히 방향을 잃었다. 기껏해야 어렴풋하게 느껴지는 다음번 위기에 대한 걱정에 사로잡혀 건전한 이론적 기반도 없이 방향을 돌리는 데 불과하다. 물론 이것도, 우리가 그들이 포기한 것과 반칙한 것의 목록을 따지지 않을 때나 가능한 평가지만. 블레어의 자문 교수 안토시 기든스의 `제3의 길', 슈뢰더의 조언자인 보도 홈바흐의 `올바른 선택'같은 것이 그렇다.

 

유럽 주요국가에서 동요하고 있는 것이 명백한 사민주의 관점에서는, 정치는 경제를 뜻하며, 경제는 재정을 뜻하며, 재정은 다시 시장을 뜻한다. 이것이 바로 사민주의가 사유화와 공공 분야의 해체, 거대기업의 합병과 집중을 열심히 권장하는 이유이다. 사민주의는 사회계약을 기꺼이 폐기하려 하며, 완전 고용이나 빈곤 퇴치, 유럽연합의 1800만 실업자와 5000만 빈곤층의 어려움을 개선한다는 생각을 이미 포기했다.

 

사민주의는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뒤 지식계층의 싸움에서 승리했다. 보수주의자들은 패배했고, 귀족정치가 1789년 이후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듯 역사의 장을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좌파는 정치 지형에 새로운 자리를 만들어내야 한다. 체제순응주의 또는 보수주의의 껍데기가 사민주의자들 앞에서 무너진 지금 말이다. 사민주의는 이제 새로운 우파다. 사민주의는 공허한 기회주의 정신에 따라 신자유주의를 길들이는 역사적 임무를 맡았다. 그들은 지금 세르비아와 전쟁을 벌이고 있으며 내일은 자신의 이웃과 싸워야할지 모른다. 사실주의의 이름 아래. 배를 흔들리 않고, 무엇보다 현재 상태를 교란하지 않으면서.

 

 

원문: mondediplo.com/1999/04/01leader.html

영어로 번역: 바바라 윌슨(Barbara Wilson)

한글로 번역: 신기섭

2004/07/11 18:24 2004/07/11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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