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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4-07>신문의 날 덕분에 찾은 귀한 책

중요한 날은 아니지만, 4월7일이 신문의 날입니다. 평소는 잊고 지내지만 오늘만 되면 저는 짜증스럽습니다. 4월7일은 최초의 한글 신문이라는 독립신문이 창간된 날이고 그래서 이 날을 신문의 날로 정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신문은 일반인이 아는 것과 달리 '부왜 역적' 신문입니다. 이런 날을 신문의 날로 기념하니, 이 나라 신문들이 이 꼴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아무튼, 신문의 날을 계기로 독립신문의 친일 역적 질을 분석한 책을 다시 떠올려서 인터넷 헌책방을 뒤지다가 등잔 밑이 어둡다는 걸 절감했습니다. 너무나 가까이에 이 책이 있었습니다. 그 책이란 경상대학교 려증동 교수께서 1991년에 낸 <부왜역적 기관지 독립신문 연구>(경상대학교 출판부)입니다. 한 10년전쯤에 빌려서 읽었는데, 그동안 꼭 한권 갖고 싶었지만 절판되어서 구하지 못하던 책입니다.

 

신문의 날이 이렇게 기쁘기는 처음입니다.

 

이 책에 소개된 독립신문의 면모를 보여주는 몇구절을 소개합니다.

 

* 동학교도들을 나쁜 놈들이라고 한 부분:

 

대한전국에 처음으로 동학시초하던 괴수 중에 제일 큰괴수 최법헌을 충청남도 회덕군 사는 전 주사 송경니씨가 충주지방대 병정과 여주군 별순교를 다리고 강원도 원주군땅에 가서 잡아, 5월28일 경무청으로 올려왔다 더라.(고종35년 5월31일 332호 잡보: 독립신문3 246)

 

* 의병들을 나쁜 놈들이라고 한 부분:

 

지금 거창군 땅에 우거한 노응규는 본래 안의군사람으로 일찍 비도괴수. (고종35년(1898) 7월14일 357호 잡보: 독립신문3 장347)

 

(노응규는 을미년에 국권회복을 위한 토왜의병을 일으켜서 진주토왜의병대장이 되었고 1907년 왜적에게 잡혀서 한달 뒤 감옥에서 단식으로 순국했다는 게 고종실록을 인용한 저자의 설명입니다.)

 

비도괴수 서상열이가 여덟 고을 비도를 모집한 것이 3천여명이라. 서가가 3천 여명 비도를 함창태봉에 가서 일본병정으로 싸흘새 일시에 비도들이 사면으로 흩어져 서가가 크게 패하여 례천과 풍기로 드러가. (고종33년 4월30일 11호 잡보: 독립신문1 42)

 

한번씩 읽어보시기를 권하고픈 책입니다만, 구하기가 어려워서...

2004/09/01 20:10 2004/09/01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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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진보 진영의 글을 번역해 공개하는 걸 주 목적으로 하지만 요즘은 잡글이 더 많습니다. marish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