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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넷, 생일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혼자 맞는 생일이 몇 년만인가 햇수를 세어보았다.

쓸쓸함 때문인지 피로감 때문인지 출근하기 싫어서 밍기적거렸다.

 

미용실, 쇼핑몰 등에서 날아오는 생일축하 문자를 보며

이런 게 나이 먹는 건가? 생각했다.

그래도 여성의 전화에서 보낸 축하 문자는 반가웠다.

 

내가 빵에 있을 때, 여행 중 내가 구속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페루에서 빵으로 엽서를 보냈던 학교 선배가 잊지 않고 문자를 보내주었다. 지금은 서울에 있단다. 

내 생일 5월 12일은 015B 노래 제목이기도 해서 과 사람들이 모두 쉽게 기억했었다.

 

오전 시간은 정신없이 빨리 지나갔다.

잠깐 옥상에 올라갔던가. 5월의 연두빛이 아름다워 탄식이 절로 나왔다.

 

친구와의 가식없는 대화가

그간 복잡했던 머릿 속을 교통정리 해 주었다.

내가  친밀한 관계를 맺는 데 있어 핵심적인 요소 중 하나가 솔직함, 가식없음 임을 다시 한번 느꼈다. 그런 대화에서 내가 얼마나 위안을 얻는지, 그게 좌절되었을 때 내가 마음 깊이 실망한다는 것도.

 

케익에 꽂힌 7개의 촛불을 한꺼번에 끄지 못해

운동을 해서 폐활량을 늘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너무 오래 운동을 안했다.

 

민우회 친구들이 적어 준 편지를 보며 키득거렸다.

제주산 조개 껍데기가 달려있는 편지.

그들이 그려준 나의 뇌구조는 몇 가지 주제로 정리된다.

1. 제주올레, 자연

2. 민우회, 정보활동, 야근 X, "여러분~~~"

3. 폴에 대한 두근두근(이건 분명 폴이 적었을꺼다), 옛 애인, L바

4. 독립, 불광동

이게 '보여지는 나랑' 이구나 싶었다.

 

계단까지 내려와 배웅해 준 친구에게

슬쩍 눈물을 비칠 뻔 했다.

 

한강공원에 가는데

한 커플이 다가와 한강공원 서래섬이 어디냐고 물었다.

나도 거기에 간다며

그들과 함께 어색하게 걸었다.

여자가 하이힐을 신어서 자꾸 신경이 쓰였다. 일부러 천천히 걸었다.

 

생일 선물받은 오지은의 음반을 들으며

강물에 반사된 주름진 햇빛을 한없이 바라보았다.

한강 다리 위에 걸려있던 해가 다리 밑으로 떨어지려고 할 때엔

왜 그랬는지,

정말 가슴이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이제 남은 인생에

어쩌면 쓸쓸한 생일이 더 많을 수도 있다고

얇은 남방 속을 파고드는 강바람이 알려주었다.

 

개늑시, 사람들은 각자의 윤곽을 또렷하게 드러내며

누군가는 조깅을, 누군가는 낚시를, 누군가는 사진 촬영을

또 몇몇 여자들은 혼자 강둑을 터벅터벅 걷고 있었다.

 

이제 정말

혼자가 됐다는 걸

온 몸으로 실감했다.

 

렛츠보이, 머슫보이, 롸잇보이 랑나의

쓸쓸했던 서른 넷 생일은 그렇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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