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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떻게 만날까

1.

"나랑은 진짜 운동가같아"

친구의 말에 나는 소갈머리없이

"어, 나는 활동하는 게 재밌어"라고 말해버렸다. 참으로 오만하게도.

 

활동의 연차가 높아질수록 조직의 무게감은 커져

안식휴가조차도 맘편히 떠나거나 떠나보낼 수 없을 때,

친구가 그 무게감에 대해 말했을 때

나는 "살면서 한번쯤은 그 무게도 견뎌볼만한 가치가 있는 것 같아" 훈계하듯이 말해버렸다.

뭐가 그리 잘났길래.

 

누구보다도 그 무게를 살아내기 싫어하고 있으면서.

이제는 '견디는 것'이 운동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더 이상 즐길 수 없는 순간, 견뎌야 하는 순간이 오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날 거면서 말이다.

 

"나는 애정은 없고 열정만 있다"고 말하며

친구들과 웃었지만,

사실 나에게는 소속감과 애정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런데 나는 노동운동과 여성운동,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것 같은 외로움으로

그렇다고 그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든다든지, 경계를 잇는 다리 역할도 하지 못하면서

스스로를 소외시키며 오늘도 밤늦도록 사무실에 앉아있다.

누구 말마따나

하나가 튀어올라 그걸 잡으면 또 다른 하나가 튀어나오는 두더지 게임같은 활동,

오늘도 두더지를 잡다보면 하루 해가 저무는데 우리는 언제 앞날을 도모할 것인가.

 

"역할이 아닌 '삶'을 살라"고 김어준이 말했다.

이미 활동가의 습성과 페르소나가 몸에 배어버린 나는 어디까지가 역할이고 어디까지가 나 자신인가. 진짜 운동가 같다는 말은 그 페르소나가 너무 자연스럽다는 말일까.

 

활동가라면.... 하는 역할에 친구들은 오늘 하루도 열두번도 넘게 시달린다.

활동가라면 이래야지, 이게 기본이지, 자기 견해가 있어야지...

활동가라면 응당 그래야 한다는 규율, 그 문화에서 느낀 소외감, 박탈감은 바로 1년전 나의 이슈 아니었던가.

빠르게 판을 읽고 전술을 수립하고 논쟁하고

결정적 순간, 판을 읽고 예측할 수 없어 명쾌한 입장을 내지 못해 침묵하면

기회주의자가 되는 문화 속에서 얼마나 자학을 거듭했던가.

그러면 운동은, 조직은

말하지 않는 사람들이 알아서 떠나는

말을 하는 사람들의 전유물이 될 수밖에 없는가 하는 고민도 내 오랜 고민이었던 바.

 

그럼에도 나는 오늘 말하지 않으면 묻힐 것 같아

잘 못하는 말이지만 말해서 작은 파문이라도 내야 한다는 생각에 말하고 또 말한다.

그러면서 내가 원하는 대로 된 것은 말을 했기 때문이라고

친구가 원하는대로 되지 않은 것은 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버린다.

말하지 못하게 만드는 조직문화를 성찰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모든 것을 명쾌하게 설명하고 논파해야 하는

그 말과 글이 지긋지긋해

친구여, 오늘도 마음 속으로 수없이 짐을 쌌다 풀었다 하시는가.

나는 너와 만나고 싶은데

너와 나는 어디에서 만날 수 있을까. 우리는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2.

이건 이번 제주여행 포토제닉. 훗~

 

 

3.

누군가 꽃을 피울 수 있는 무딘 땅이 되어주기엔

나는 그보다는 나의 꽃을 우선 피우고 싶어하는 욕심많은 인간.

 

누군가의 무심한 배경이 되어주기엔

나는 내가 먼저 따뜻한 배경에 폭 감싸이기를 바라는,

다정하고 성실한 돌봄을 한없이 받고 싶어하는 애정결핍 인간.

 

이름없는 들의 꽃이 되어

그대 눈 속에서 흔들리기엔,

김선우의 시를 들려주며

'그대여, 나 괜찮습니다'고 또박 말하기엔,

차라리 나는,

그건 노래일 뿐이고, 그건 시일 뿐이니 다 집어치우고

나는 괜찮지 않다고 징징거리고 싶은 현실적인 인간. 

 

나는 그리 큰 그릇의 사람은 아니니, 그대여, 어찌할까요?

 

사랑의 빗물 환하여 나 괜찮습니다

 

김선우

 

그대 만나러 가는 길에

풀여치 있어 풀여치와 놀았습니다

분홍빛 몽돌 어여뻐 몽돌과 놀았습니다

보랏빛 자디잔 꽃마리 어여뻐

사랑한다 말했습니다 그대 만나러 가는 길에

흰 사슴 마시고 숨결 흘려놓은 샘물 마셨습니다

샘물 달고 달아 낮별 뜨며 놀았습니다

새 뿔 올린 사향노루 너무 예뻐서

슬퍼진 내가 비파를 탔습니다 그대 만나러 가는 길에

잡아주고 싶은 새들의 가녀린 발목 종종거리며 뛰고

하늬바람 채집하는 나비 떼 외로워서

멍석을 펴고 함께 놀았습니다 껍질 벗는 자작나무

진물 환한 상처가 뜨거워서

가락을 함께 놀았습니다 회화나무 명자나무와 놀고

해당화 패랭이꽃 도라지 작약과 놀고

꽃아그배 아래 낮달과 놀았습니다

달과 꽃의 숨구멍에서 흘러나온 빛들 어여뻐

아주 잊듯 한참을 놀았습니다 그대 잃은 지 오래인

그대 만나러 가는 길

내가 만나 논 것들 모두 그대였습니다

 

내 고단함을 염려하는 그대 목소리 듣습니다

나, 괜찮습니다

그대여, 나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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