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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2/30
    20대를 부르는 시민단체의 '사람냄새'(5)
    나랑

20대를 부르는 시민단체의 '사람냄새'

연말에 활동 평가를 하면서 회원 연령층 분석을 했는데

20대 회원이 너무나 적은 것에 적잖이 놀랐다.

20대와 어떻게 소통할 수 있을까 화두만 가지고 있었고

그들에 대해 깊이있게 분석하거나 어떤 전략을 세우지는 못하던 차에

괜찮은 글을 보게 되었다.

 

민우회 회원이신 오디 님이 전에 어떤 포럼에서 발제하신 글인데

시민단체의 강점인 '사람냄새'를 매개로 어떻게 20대와 만날 것인가

에 대한 오디님의 고견^^에

고개를 끄덕거리며 읽었음둥.

(밑줄은 내가)

 

2008년 02월 15일

20대를 부르는 시민단체의 사람냄새

 

(희망청에서 열렸던 포럼에서 내가 발표한 발제문.)

 

시민단체와 20대가 소통을 못 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나는 시민사회단체가 현재 20대와 어떻게 소통하고 있는지에 대한 분석과, 그들이 20대와 함께 연대하려면 무엇을 어떻게 조직해야 할지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한다.

 

민주화가 항상 앞으로만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끊임없는 진보의 노력을 하지 않으면 오히려 후퇴할 수도 있다. 87년 민주항쟁이 성공했으므로 어느 정도는 나아지지 않았냐는 말. 나는 바로 그 말에 의문을 제기한다. 87년 이후에 오히려 우파진영은 각성하고 20대 뉴라이트 조직화에 힘을 쏟은 것에 반해, 진보진영에서는 다른 부분에 너무 열심이었던 것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를테면 통일문제에만 집착을 했다거나, 노동형태가 매우 다양해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현대자동차 공장 같은 대단위 공장노동자만을 ‘노동자’로 본 노동운동 같은 것이다. 그래서 여러 다른 형태의 노동을 하게 될 20대가 그 노동운동이 이야기하는 구호가 자기와는 관계없다고 여기게 되면서 20대와 진보진영의 거리가 점점 멀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자본주의가 심화되면서 사회는 점차 부르주아적 세련, 깔끔함을 추구하게 되었다. 이런 도시화를 긍정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안에서 자라난 젊은이들에게 변함없는 투박한 양상의 운동은 오히려 ‘빨갱이’같다는 거부감을 증폭시킬 뿐이다. 자극적이고 단색으로 써진 플래카드, 남성적인 싸움들, 그리고 운동의 서열화나 가부장성 같은 것은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며 점차 20대들로부터 관심을 잃어가게 되었다.

 

97년 외환위기 당시 지금의 20대들은 초, 중, 고등학생이었다. 그 때 우리가 부모세대로부터 배운 교훈은 이 사회는 ‘승자독식’사회라는 것이었다.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우리들의 ‘꿈’이 되었다. 그리고 학내 분위기를 보면, 97년 외환위기 이후에 진보성향의 동아리는 급격하게 쇠퇴했다. 청년실업 및 경쟁과열화체계가 고착화되면서 대학 1학년생마저 학점과 취업준비를 위한 대학생활을 하게 된 것이다. 선후배 사이의 괴리도 증폭되었다. 3년 이상 회장을 연임하는 동아리도 있었고 문을 닫는 학회도 늘어갔다. 그런데 한편, 한나라당은 비록 여당 집권에는 실패했지만 외환위기 이후의 청년들의 변화된 욕구를 정확히 읽었다. 우파 세력은 대학가, 청년계층, 종교에까지 침투해가며 20대들에게 신자유주의와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역설하기 시작했다.

 

전경련이 후원하는 YLC와 EIC. 뉴라이트청년연합과 뉴라이트대학생연합. 기업에서 운영하는 청년동아리 영삼성과 영현대. 여기에 가입하려는 20대의 수는 해마다 늘어가고 있고, 각종 기업에서는 ‘인턴’을-알고 보면 무임금 착취인 것을- 대학생들의 취업경력의 일환이라는 명목으로 모집한다. 신자유주의시대의 ‘정치’에도 능한 청년들을 배양하기 위함이라는, ‘한나라당 대학생 정치캠프’도 있다. 봉사활동 점수를 필요로 할 때는 삼성복지재단, LG복지재단, ktng복지재단에서 열리는 봉사프로그램에 참여하면 경력과 봉사점수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도 있다. 그리고 지난 17대 대선, 이명박 공개지지를 선언한 총학생회장들의 명단을 보면 새삼 우파진영이 20대를 모으는 것에 성공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 20대들이 처음부터 우파였던 것은 아니다. 투표권도 처음 쥐고 비로소 성인이라 인정받은 20대, 그들이 제 앞길에 대해서 이제 막 고민을 시작했을 때 눈에 뜨인 것이 바로 앞에서 소개한 단체들이었다. “대학생활+α”. 대학생들은 그 α로서 다양한 문화활동, 자치활동들을 꿈꾼다, 그렇지만 진보진영에서 그런 자리를 만드는 것을 소홀히 하다 보니 주어진 선택지가 우파가 만들어낸 것이 대다수이다. 그리고 사실 진보진영에 남아있는 단체들은 자기 정체성도 매번 고민할 만큼 역량이 떨어진 것이 현실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이를 메울 방법을 모색해봐야 한다. 지금의 대학생들이 설령 고등학교까지는 돈밖에 몰랐다고 할지라도, 지금부터라도 그 물꼬를 틀어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나는 한국여성민우회에서 2달간 상근자원활동가를 했다, 그런데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은 시민단체라면 수많은 평범하고 관심 없는 ‘다수’들을 설득해야 하는데, 아쉽게도 활동가들은 하루하루 이슈 파이팅조차 너무 버거워서 그 관심 없는 다수에게 다가갈 여유가 별로 없는 듯 했다. 20대 자원활동가들을 시민단체 내에 조직하면 좀 상황이 나아질 것 같은데 그들에게는 자원활동가를 조직해서 관리하는 것도 업무 부담이 되었던 듯하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엔 봉사활동 점수도 경력이 되어서 수요가 많은 것에 비하여 막상 봉사활동을 모집하는 시민사회단체는 별로 없다. 그래서 학생들은 안타깝게도 점점 기업재단으로 몰린다.

 

민우회에서 자원활동을 하던 당시에 나는 ‘평등한 호칭문화를 만들기 위한 호락호락 캠페인II’라는 것을 함께 꾸리게 되었다. 이 때 나는 대학생들을 조직해서 ‘캠페인 지기’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그 전에 했던 ‘캠페인I’에 대한 누리꾼들의 횡포가 너무 심해서 활동가들이 전적으로 이것에만 매달렸다는 이야기를 듣고 생각해낸 제안이었다.

 

대학생들은 생각보다 쉽게 모였다. 개인적인 친분으로 온 친구도 있었고, 봉사점수 준다고 해서 온 친구도 있었고, 시민단체 구경 간다고 온 친구도 있었고, 소위 ‘꼴펨’이라는 것에 대한 거부감을 가진 친구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런 ‘운동권’이나 ‘꼴펨’에 대한 오해와 편견은, 그들이 민우회라는 장소에 ‘직접 방문해보는 경험’, 그리고 활동가들과 술한잔 하는 경험으로 충분히 깰 수 있었다.

 

운동에 대해서 20대들이 걱정했던 것 중 하나는 정죄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그러나 사실 활동가들 누구도 정죄하지 않는다. 한 후배는 나중에 나에게 ‘여성단체 갈 때는 미니스커트 입으면 안 될 것 같아서 그날 모임 갈 때 걱정했었다.’라며 자신의 편견을 조심스럽게 고백했다. 이는 단지 여성단체 뿐만 아니라 다른 시민단체에 대한 상상력이 깨지는 순간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생각해왔던 ‘시민단체스러움’을 많이 깨면서 거리를 좁혀갔다. 나는 이런 변화에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 여기에 우리의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20대가 시민단체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조중동과 TV언론+자신의 상상력이 전부이다. 아직까지는 괜찮다. 그러나 시민단체가 이대로 그들의 상상력이 극대화되도록 내버려둔다면, 머지않아 시민단체와 시민의 소통은 정말 단절될 것이다.

 

기존 회원들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들에게만 기대를 건다면 ‘시민단체의 노령화’는 걷잡을 수 없이 심화될 것이다. 끊임없는 운동을 하고 싶다면 평범한 20대들과 소통할 자리를 계속 마련해야 한다.

 

시민단체 중에서 메이저급이라 불리는 참여연대는 다른 단체에 비해 회원이 아닌 시민들도 참여 가능한 프로그램을 많이 여는 편이다. 토론회나 간담회, 4-5회 정도 지속되는 테마강좌, 시민운동 현장체험, 책 저자와 함께 하는 자리 등. 모두 좋은 프로그램들인데, 그 중 20대의 참여율이 가장 높은 프로그램은 ‘시민운동 현장체험’이다. 청년들을 모집 대상으로 하고, 한 달 코스로 교육 및 직접행동을 함께 했던 이 프로그램은 다수의 20대 청년들이 참여연대에 발길을 들여놓을 수 있게끔 다리를 놓아준 원동력이 되었다.

 

그리고 이번에 참여연대에서 처음으로 대학생 인턴제도를 도입했는데, 20명을 뽑는 것에 무려 70여명이 지원했다고 한다. 여기서도 알 수 있듯이 20대들이 우경화되고 보수적이 된 것은 아니다. 좀 더 잘 살고 싶고, 행복하게 살고 싶은 욕구는 분명히 있는데, 그런 주제를 가지고 기업과 대화할 기회는 많았어도 시민단체에 다가갈 통로는 마땅치 않았던 것이다.

 

민우회에 함께 갔던 한 남자친구는 ‘해방감을 느꼈다’고 했다. 여성주의가 남성도 해방시켜준 것이다. 참여연대에서 만난 한 친구는 ‘아직 돈 걱정이 좀 되긴 하지만, 돈 걱정만 없으면 진짜 여기서 일하고 싶다.’ 고 말한다. 파편화된 요즘 세상 속에서 시민단체의 ‘사람냄새’가 그들을 감싸 안은 것이다.

 

시민단체 내에 대학생 조직을 만들면 어떨까. 가뜩이나 외환위기 이후로 동아리가 흔들리고 있는 때에, 학교 당국의 학내 동아리에 대한 처우도 나날이 안 좋아지고 있다. 이런 위기를 기회 삼아서, 시민단체에서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시민단체의 특성을 주제로 한 대학생자치기구를 만들어도 좋을 것 같다. 그렇게 함으로서 시민단체와 대학생 조직이 상호 소통하면 더 발전적인 방향으로 흐를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

 

이미 시민단체에서 20대 조직에 대한 시도를 안 했던 것은 아니라는 것 잘 안다. 그러나 시민단체가 이들에게 비전을 제시해주지 못하고 ‘노동’만 시키면 결국에는 남들 토익공부할 때 자기만 시간 버렸다는 회의감과 함께 취업전선에 한발 늦은 선수처럼 고달프게 빠져들게 된다. 이들과 함께 새로운 운동에 대해 같이 고민하고, 또한 시민단체에 종사하는 이들이 어떻게 사는지, 대학생 때 어떤 고민을 하다가 이러한 진로를 갖게 되었는지에 대해 20대들과 좀 더 깊고 친밀한 소통이 있었다면 이렇게 안타까운 인연의 단절은 없었을 것이다. 요즘 20대들은 관계가 파편화되었다고 하지만, 오히려 파편화되었기 때문에 작은 관심에도 크게 감동을 받을 수 있다.

 

그리고 내가 민우회에서 보낸 시간을 알차다고 느끼는 이유를 위의 사례들과 비교해보자면, 캠페인 의사결정에 참여했었다는 점이 큰 차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그 조직에서 의미 있는 한 명이라고 생각이 들 때 더 동기부여가 되면서 열심히 할 수 있는 것 같다.

 

우파진영에서 잘 하는 것 중의 하나는, 멘토가 잘 형성되어있다는 것이다. YLC를 예로 들면 산발적인 1회성 강연회로 끝을 맺는 것이 아니라 체계적인 멘토링과 지속적인 취업컨설팅을 해준다. 시민단체에서도 시민운동의 효과적인 방안을 함께 모색할 멘토를 형성하면 좋겠다.

 

참여연대 같은 큰 조직의 경우는 의사수렴 방식이 너무 체계적이어서 20대가 참여하기 다소 어렵기도 하다. 이런 경우에는 대선 때의 ‘100인 유권자 위원회’처럼 각종 부서별로 ‘20대 위원회’를 두어서 그들과 참여연대 활동가들이 함께 시민단체의 발전적 방향에 대해 소통할 수 있게끔 자치기구를 만들어보면 좋겠다.

 

요즘 20대를 설득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이건 내 문제야’라고 인식하게 하는 것이다. 내가 환경운동을 해야 하는 이유, 반전운동, 여성운동을 해야 하는 이유가 알고 보니 다 나를 위한 것이로구나. 내가 잘 살기 위해 저들과 경쟁하는 것은 결국에는 개미지옥 싸움이구나. 그럼 우리는 지금 서로 싸우기보다는 연대해서 다함께 현실에 맞서 싸워야겠구나. 이러한 사실을 인식하게끔 하는 것이다.

 

사실 진보진영에서 이야기하는 등록금 문제, 학벌 문제, 비정규직, 신자유주의. 이 모든 것은 20대에게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문제들이다. 그러나 그 사실을 정작 당사자인 20대에게 인식시키지 못한다면, 진보진영에서 외치는 투쟁은 한낱 허공에 맴돌 수밖에 없다. 20대들이 ‘우리 편’이 되도록 설득을 해내는 것이 시민단체들에게 주어진 과제이다.

 

박봉에, 매일같이 야근을 해도 일이 끝나지 않는 시민사회단체의 애로사항을 절대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렇지만, 언제까지 이 ‘소수’들만 운동할 수는 없는 것 아니겠는가. 20대들을 조직해야 한다. 함께 싸울 이들, 미래를 짊어질 이들을 조직해야 한다.

 

시민사회단체와 20대의 발전적인 네트워킹을 기대하며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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