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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2/04
    빵의 추억(8)
    나랑

빵의 추억

나는 2009년 1월 1일을 수원구치소에서 맞았다.

아침에 쇠고기 떡국이 나왔던 것 같은데

나는 1월 1일부로 단식을 시작해서 떡국을 못 먹었고 냄새만 맡았다.

 

새해 아침을 그 곳에서 맞았기 때문인가.

2009년을 돌아보니

가장 먼저 구치소가 떠오른다.

경찰서에서 이송되어 구치소에 입소한 첫날 밤,

첫날이라 내복도 없고 두꺼운 이불도 없어서

추위에 오돌오돌 떨며 서러워 하고 있는데

옆방에서 아기 울음소리가 들렸다.

이건 뭥미?

 

알고보니 옆방 언니가 임신한 채로 구치소에 들어왔다가

병원에서 애를 낳고 다시 들어온 것이다.

3살이 되기 전까지는 구치소 안에서 애를 키울 수 있기 때문에

바깥에 애 키울 사람이 없는 사람은 데리고 들어 올 수 있다.

당시 4개월이었던 그 아이 이름이 '김요한'이었는데

요한이는 척박한 환경에서도 잘 웃고 씩씩하게 잘 컸다.

 

내가 출소하던 날,

그 언니는 청주교도소로 이송되었고

그 때 요한이는 보행기를 탈 정도로 커 있었다.^^

 

운동할 때 요한이 보는 재미(하루에 한 번 운동시간이 있다),

일주일에 두 번 과자 받아서 먹는 재미(일주일에 두 번 물품을 신청하고 물품이 들어온다),

그동안 읽고 싶었던 소설 실컷 읽는 재미,

드라마 '바람의 화원'과 '그들이 사는 세상' 보는 재미(뉴스만 빼고 모두 녹화방송을 틀어준다.),

등등으로 지루한 하루하루를 때웠던 것 같다.

오늘은 목욕하는 날, 오늘은 머리감는 날, 오늘은 물품 들어오는 날, 오늘은 패떳하는 날

하루하루 의미를 부여하면 괜히 시간이 좀 빨리가는 것 같기도 했다.

 

 

 

<빵에서 신었던 운동화. 끈 사용이 금지되어 있어서 이렇게 찍찍이 운동화만 신을 수 있다.>

 

 

 

나는 '공안'관련 범죄자라서 독방에 있었는데

1.7평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옆방은 나와 같은 평수에 마약 언니 2명이 살았으니까 참 불편했을 것이다.

독방에서 2개월 넘게 지내다보니

나중에는 사람의 온기와 사람냄새가 참 그리웠다.

그래서 내 옷에 배인 내 체취를 킁킁 맡아보기도 했다. 킁킁~ ㅎㅎ

9명, 11명이 한 방에서 지내는 재소자들은

싸움이 잦아서 방을 자주 옮기곤 했다.

 

나는 보석으로 출소해서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지만

함께 투쟁했던 동지들은 실형을 선고받고

아직 수감되어 있기에

빵은 나에게 아픈 공간이다.

 

하지만 나 개인적으로는

그 안에서 강해졌다거나 

또는 너무 힘들었다거나

그런 느낌은 없다.  

예상했고 각오했었기에

받아들였다.

 

1년 6개월간의 수배생활에 지칠대로 지쳐 있었고

노동운동을 그만두기로 이미 결심하고 있었던터라

재소자 처우 등 관련해서 싸움을 만들지도 않았다.

그냥 조용히 견뎠다.

 

빵에서 얻은 성과가 있다면

부모님이 나를 완전히 포기했다는 것(?) ㅋㅋ

출소한 이후로 부모님은

내가 뭔 짓을 하든 빵에 가는 것보다야 낫겠지 하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 뭔 짓을 하든 간섭하지 않는다.

 

거의 매일 면회를 와 준 현장의 조합원들과

학교 동기와 애인이 하루도 빼놓지 않고 보내 준 이메일이

(바깥에서 법무부를 통해 이메일을 보내면 출력해서 검열한 후 나에게 갖다준다.)

큰 힘이 되었었다.

그러고보면 참 많은 사람들의 보살핌과 배려가 있었기에 내가 그 곳에서 잘 견딜 수 있었나보다.

현장 조합원들을 이제 만날 수는 없지만

그분들께 마음으로 감사를 전한다.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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