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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한 언니와 1월 눈덮인 지리산 등반을 약속하고 나니
내가 산을 탄 지 너무 오래되었다는 거.
이번 주부터 가능하면 일주일에 한번씩 등산을 하기로 마음먹고
가까운 인왕산부터 찾았다.
경복궁 역에서부터 올라가기 시작하는데... 흠...
산 정상 부근이 공사 중이어서
애초 부암동쪽으로 하산하려던 계획을 접고
올라갔던 길로 도로 내려왔다.
청와대가 보이는 바위 위에서 희망버스 동지들을 생각했다.
정상에서 내려다 보이는 서울의 풍경이 숨막혔다.
쳐다보기 싫어서 고개를 홱 돌려버렸다.
기차바위 위, 소나무 밑에 돗자리 깔고
보온병 물을 부어 컵라면을 먹으며 언니와 한참동안 수다를 떨었다.
내려와서 사직동 그 가게에 가서 따끈한 짜이로 언 몸을 녹이고
전에 숨과 갔었던 유명한 청국장 집에 들러서 저녁을 먹었다.
또다시 우울의 긴 터널에 들어선 기분이다.
아니, 돌이켜보니 우울하지 않은 날이 더 적었다.
연초에는 삶의 불안에 벌벌 떨었고
혜영이가 죽고 나서는 깊은 공허감과 허무함에 뭐든지 시큰둥했다.
새로운 직업과 바쁜 일상에 잠시 묻어놨던 우울이 9월말부터 서서히 고개를 들더니
이제는 나를 잡아먹어 버릴 것만 같다.
내가 나를 파괴할지도 모른다는 느낌에 정신없는 밤을 보내고
아침에 본능적으로 상담선생님께 연락을 했다.
빨리 오라고 하신다.
여전히 풀지 못한 내 삶의 비밀들이
고구마 줄기처럼 또 주렁주렁 끄달려 나오겠지.
3월에 사주 볼 때 언니가 했던 말,
운명이 서서히 바뀌어가는 시기라는,
그 말이 정확히 들어맞는다는 것을 온 몸으로 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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