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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청년, 혹은 청춘? 메모

-강상중과 유시민이 '청춘'을 내걸고 책을 냈다.

-10여년 넘도록 '청년'이나 '청춘' 따위를 이야기하는 집단은 NL아니면 교회 뿐이었다.

-'청년'이 외따로 이야기될 때는 그들이 하나의 독자적인 하위문화를 갖추고 있을 때이다. 80년대같이. 그러나 그간 청년문화라는 건 존재할 수 없었고, 철저히 자본주의의 대중문화 내부에 포섭되었던 것. 이를테면 X-세대 담론이 얼마나 쉽게 자본주의 속으로 들어갔던가.

 

-그런데 청년이 돌아온다.

-이 돌아옴은 사실 매우 의심쩍은 구석이 많다. 무엇보다 그것이 80년대의 '청년'들에 의해 돌아오고 있다는 점에서. 그 시초는 아마도 우석훈이 될 것이다.

-청년에게 호소하면서도, 또 386을 비판하면서도 이러한 청년 담론은 자본에 의해 주도되거나, 아니면 의고적인 움직임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잉여는 도처에 존재할 것이다. 저딴 책을 '제대로' 읽지 않은 아해들이, 지들의 짱돌을 들고, 지들의 '고민하는 힘'을 표출하고, 지들의 '독서'를 할 때 무언가 공간이 열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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