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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등에 대한 단상

1.

내가 만난 한동대생들은 - 그런 학생들이니까 '내 주변'에서 만날 수 있었던 거겠지만 - 하나같이 "류대영 선생님"이 자신의 멘토이며, 그분이 자신을 참 좋아했다고 이야기한다.(아, 선생님 그거야 말로 탁월한 '스승의 기술'!)

 

내 동생도 군 제대하고 복학해서 한참은 만나기만 하면 류선생님 이야기를 했더랜다. 그 중에서 내가 가장 인상깊었던, 혹은 감동받았던 이야기는 이거였다. 교회사 수업 첫 시간에 선생님이 커다란 나무를 그리더란다. 커다란 밑둥, 그리고 굵은 가지, 잔 가지, 입사귀를 그리시더란다. 그리고는 입사귀 하나를 짚고서 말씀하셨단다.

 

"여러분 대부분이 지금까지 '기독교'라는 이름으로 알고 경험해온 것은 이 '기독교'라는 나무의 한 잎사귀에 불과합니다."라고.

 

아마 그 잎사귀는 기독교라는 밑둥, 종교개혁이라는 큰 가지, 그리고 미국 개신교라는 중간 가지를 지나, 미국 복음주의라는 작은 가지에 딸린 '한국 보수 개신교'였을 것이다.(선생님은 무수히 갈라진 뿌리도 그렸을까? 나라면 아마도 그걸 먼저 그렸을 것이다. 기독교는 무수히 갈라진 많은 뿌리들로부터 '구성'된 것이니까.)

 

공부는 언제나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자신의 신념체계를 확인하기 위한 공부는 공부가 아니다. 우리가 이토록 커다란 세계 속에 놓여 있다는 것, 그것을 알게 하는 한 순간에서부터 공부는 시작된다. 그런 점에서라면 내 학부시절(총신대) 교회사 수업은 사실상 '공부'가 아니었다. 그 수업 첫 시간엔 "칼빈 이전의 칼빈주의자가 있다"는 일성으로 시작된다. 루터도 칼빈주의자, 어거스틴도 사실은 칼빈주의자, 그리고 예수도 칼빈주의자이며, 사실은 다윗과 아브라함도 칼빈주의자였단다. 농반진반의 이야기지만, 수업 내용 자체는 오직 하나의 교조적 잣대로 기독교의 모든 전통을 제단하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결론은 "우리 칼빈주의만 진짜 기독교다!"로 끝나는 수업. 이건 공부가 아니다.

 

2.

성서 읽기도 마찬가지이다.

 

연애하던 시절 자주 그런 이야기를 하며 싸우곤 했다. "넌 나랑 연애하는 게 아니라 '연애'랑 연애하는 것 같아!". 물론 결혼한 지금은 아니다. 지금은 "넌 나랑 결혼한게 아니라 '결혼'이랑 결혼한 것 같아!"라고 싸운다.(뻥이다. 메롱.ㅋㅋ)

 

돌이켜 보면 내가 어렸을 때 성서를 읽는 태도는 "연애랑 연애에 빠진" 사춘기 소년의 모습이나 다를 게 없었다. 성서를 정말 알고 싶어서 성서를 읽는 게 아니라 나의 종교적 확신을 재생산하기 위해서 난 늘 성서를 읽었다. 사실은 '성서'를 정말로 사랑한 게 아니었다. 성서를 사랑한다고, 성서 말씀대로 살아간다고 믿는 나를 끊임없이 재생산하며 그 '나'를 사랑했던 거다. 이건 사실 진정으로 성서와 연애를, 교감을 나눈 게 아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서야, 성서랑 조금 더 성숙한 연애를 즐길 수 있었던 것 같다. 그건 '내 환상 속의 연애'가 아니라 성서 자신을 마주하고 알려고 하면서 가능해진 거였다. 이런게 '공부'일 것이다. 지금은, 성서가 전보다 훨씬 더 좋다. 이렇게 벗겨도 벗겨도 새로운 것이 나오는 책은 세상에 몇 권 안 될 거다. 그의 내적 분열이 사랑스럽고, 나를 씨름하게 하는 그의 난제들이 지금은 너무 좋다. 이걸 몰랐다면 영원히 나는 성서와 '어른의 연애'는 하지 못했을 거다. 

 

3. 

얼마 전에 심원청년포럼에서 "먹보에술꾼"님이 한국 복음주의 교회를 사회학적으로 분석한 논문을 발표한 적이 있었다. 감상을 나누던 중에 두 사람이 아주 상반된 지적을 했다. 한 명은 "이렇게 교회를 비판했을 때, '참된 신앙인됨'을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가 고민된다."라는 이야기를 했고, 다른 한 명은 "이 글은 지나치게 '호교론'(교회옹호적)으로 보인다."라는 이야기를 했던 것이다. 전자는 신학생의 코멘트이고, 후자는 종교학 연구자의 코멘트였다.

 

사실 그 논문 자체는 아주 건조한 분석 논문이었다. 그러나 단지 '사회학적'인 분석 위에 기독교를 올려놓은 것만으로 신학생은 그것을 기독교에 대한 비판으로 읽었고, 사회학적 분석에서 '기독교적 용어들'이 지나치게 번역되지 않은 채 실려있다는 이유로 종교학 연구자는 그것을 호교론으로 읽어냈던 것이다.

 

그들이 그 순간 느낀 이 균열. 거기에서부터 공부가 시작된다. 자신의 안락한 정체성, 습속, 인간관계에 머무르기만을 바란다면 공부는 별 필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나를 뒤흔드는 균열 속에서 성숙하고자 할 때, 그 때 공부가 시작되는 것이다. 단 한 잎의 입사귀가 전부인 줄 알고 살기보다는, 나무를 아는 게, 그리고 그 나무가 뿌리박은 대지를 아는 게 더 좋지 아니한가. 기독교는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더 넓고 크다. 그리고 세계는 그보다 더 넓고 크다. 여행을 나서야 그 전엔 보이지 않았던 세상의 많은 것들을,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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