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정치는 신학으로부터 떨어질 수 있는가? - 마크 릴라, <사산된 신>을 읽다.

마크 릴라, 『사산된 신』, 마리 오 옮김, 바다출판사, 2009.

 

 

 

 

1648년 10월 24일. 베스트팔렌의 오스나브뤼크에서 역사적인 평화조약이 체결되었다. 그 조약은 종교개혁으로 인해 벌어진 ‘신교 유럽’과 ‘구교 유럽’의 피비린내 나는 30여 년의 전쟁을 끝맺는 것이기도 했지만, ‘교회의 정치에 대한 지배’라는 중세 유럽의 기나긴 신학-정치적 전통과 이별하는 것이기도 했다. 유럽의 각국은 이제 황제와 교황의 이중의 지배권으로부터 벗어나 국민국가 내부의 주권 체제를 확립하게 되었으며, 정치는 종교로부터 분리되어 세속적이며 국제적인 새로운 질서에 의해 움직이게 되었다. 알다시피 이것은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근대 세계 질서의 시작이었다.  



신학- 정치적 질서의 악몽이 되돌아오다

 

그로부터 약 353년이 지난 어느 날, 가야 할 곳에 도착하지 못한 비행기 두 대가 뉴욕의 한 빌딩에 충돌하며 새로운 전쟁의 서막을 알렸다. 그 후 수년 간 세계는 다시금 신학적 용어가 정치와 종교 담론으로 깊숙이 들어오는 것을 지켜보아야 했다. 한쪽은 명시적으로, 다른 한쪽은 은유적으로 '성전(聖戰)'을 외치며 시작된 이 전쟁은 근대 국민국가 체제의 전쟁이라기보다는 이단과 이교도를 향한 중세의 전쟁에 가까운 모습으로 전개되고 있다. 매일 성경 구절을 하나씩 묵상하며 그날의 '군사 작전'에 대한 지침을 내렸다는 럼스펠드에게서 우리는 1000년 전 십자군전쟁에 참전한 한 유럽 영주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이미 350여 년 전에 떨쳐버렸다고 생각했던 이 신학-정치적 질서의 악몽이 되돌아오는 것을 서구의 지식인들은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마크 릴라의 『사산된 신』은 이러한 신(新)신학-정치적 질서 앞에 선 서구 지식인의 진지한 -그러나 매우 우울한- 답변이라 할 만하다. 릴라는 ‘자유주의적이며 민주적인 서구’ 대 ‘종교적이며 덜 진보한 이슬람’이라는 상투적인 렌즈로 오늘날의 세계 질서를 바라보는 통상적인 사유와 결별한다. 근대 유럽의 정치적 사유를 엄밀하게 검토한 끝에 그는 서구의 ‘자유민주주의’가 결코 정치신학을 완전히 떨쳐버리지 못했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들은 그런 일 -신학적 개념들이 사람들의 정신을 자극해 사회를 파멸시키는 ‘메시야주의적’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것- 은 더 이상 없을 것이라고, 인간은 종교와 정치 문제를 구분하는 법을 배웠으며 광신주의는 사라졌다고 믿었다. 오판을 한 것이다."(강조와 괄호 안은 필자)

 

릴라에 따르면, 정치신학의 뿌리는 깊고도 깊다. 사실은, ‘정치철학’이야말로 유럽인들에게 새로운 것이다. 정치 문제를 우주의 궁극적 존재자인 신에 대한 사유와 연결시키는 것은 사실 인류 역사와 함께 시작된 습관이다. 적어도 기독교 정치신학의 역사 만해도 정치철학의 탄생 이전 1600년의 전통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정치철학의 나이는 아직 400살 밖에 되지 않았다!) 릴라는 따라서 오늘날 정치신학의 흥기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정치철학이 탄생하던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고 말한다. 유럽이 종교 전쟁의 포화에 휩싸여 있고, 지식인들이 그 끔찍한 메시야적 열정 앞에서 환멸을 느끼고 있던 그 시점으로. 그리고 바로 그 자리에 홉스와 로크가 있다.

 

홉스는 종교적 열정이 정치에 미치는 파괴력에 대해 그 이전과 이후의 누구보다도 진지하게 생각했던 사람이었다. 그가 보기에 종교적인 열정은 인간이 타인과 세계에 대하여 갖는 공포심으로부터 생겨난 것이었다. 신앙은 사람들에게 하나의 안전판을 제공해주지만, 이번에는 신이 또 하나의 공포 요인이 된다. 어떻게 해야 신의 심판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신구교의 성직자들은 제각각 이것에 대한 대답을 제시했고, 이 종교적 다양성이 종교적 분쟁의 원인이 된다. 홉스의 해결책은 간단하면서도 무시무시했다. 인간이 털어낼 수 없는 공포를 오직 한 사람 -인간 군주- 에게 집중함으로써 모든 신학-정치적 분쟁을 종결시킬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하지만 하나의 종교적 믿음은 단지 군주에 대한 공포만으로는 결코 쉽게 다른 것으로 전환될 수 없는 것이었다. 따라서 로크 등 홉스의 ‘자유주의적’ 후예들은 좀 더 세심하게 종교적 열정을 관리하는 법을 제시하였다. 그것의 키는 ‘관용’에 있었다. 국가가 종교를 제어하기를 포기하고 단지 그 종교가 공적인 장에 위협적으로 나타나지 않도록 관리하기만 한다면, 종교적 열정은 ‘일요일의 사적 예배'에서 충분한 자유를 누리며 정치를 위협하지 않은 채 존속할 것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종교와 정치는 깔끔하게 분리되지 않았다

그러나 종교와 정치는 결코 이들의 바람처럼 깔끔하게 분리되지 못하였다. 릴라는 자유주의의 탄생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는 정치신학적 사유의 흔적을 대륙의 근대 사상가들에서 찾고 있다. 루소, 칸트, 헤겔로 이어지는 철학적 전통은 홉스와 그 후예들보다 훨씬 더 심원한 언어로 인간의 종교와 그것의 역할에 대해 사유했다. 그들에 의해, 기독교는 더 이상 메시야적 구원 종교가 아님에도 세속의 정치와 오히려 깊이 밀착한 사회 운영의 원리로 제시될 수 있었다. 19세기의 독일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이들에게서 더 나아가 기독교가 도덕적 발달과 사회적 화합에 기여하려면 국가가 기독교를 적극 권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들의 기독교는 더 이상 성서적 계시 종교가 아니라 ‘문화 개신교’였다. “신약성서의 예수는 화평이 아닌 칼을 가져왔다. 자유주의 예수는 책과 음악을 가져왔다."(235) 자유주의 신학은 기독교를 ‘독일 정신’과 동일시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그러나 그들의 신학은 20세기 초, 1차세계대전이라는 대재앙과 함께 몰락하고 말았다. ‘기독교 독일'은 전 유럽에 처참한 폐허만을 남기고 끝났던 것이다.

 

릴라는 이 압도적인 페허가 낳은 ‘구원에 대한 갈증' 속에서 온갖 종류의 종교적 열정이 다시금 서구 정치 사유 속으로 깊이 침입해 들어왔다고 주장한다. 그 출발점은 오히려 종교가 정치로부터 재분리되는 데에 있었다. 바르트 등의 소위 ‘위기 신학자'들은 정치(독일)와 구분된 신성한 계시와 성서의 구원 약속을 복원하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릴라는 그들이 홉스가 가졌던 민감한 인식 -종교적 열정이 정치적 주제와 연결되기가 얼마나 쉬운지- 을 가지지 못했다고 비판한다. 즉, 그들이 인본주의적인 종교를 비판하고, 신과 인간의 무한한 차이와 신으로부터 오는 구원과 임박한 종말을 강조할 때 “(그들의) 용어들은 정치적 수사에도 인용되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문명의 붕괴는 ‘충격'이었고, 러시아혁명은 ‘격변'이었다. …좌익에서 우익에 이르는 모든 이념주의자들은 오직 자신들의 당만이 노동계급 또는 독일 국민을 ‘구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종교적 열정은 이제 하나의 '역사철학'의 옷을 입고 다시금 정치 속으로 깊이 들어오게 된 것이다.

 

결국 기나긴 논의를 거쳐 드러나는 것은 오히려 신학적 사유에 깊이 오염되어 있는 서구 정치사상의 모습이다. 릴라는 오늘날 자유민주주의와 정교 분리로 특징지어지는 서구의 정치사상이 결코 안정적인 토대에 놓여 있지 않다는 것을 강조한다. 종교적-신학적 열정(이제는 더 이상 기독교적이지만은 않은)은 언제든지 정치 질서의 위기 속에서 귀환할 준비를 하고 있으며, 따라서 자유주의자들의 후예들은 자신들의 역사적 업적인 종교적 관용과 정교분리가 단지 지나간 유산만이 아니라 진행 중인 실험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그것을 잘 관리해나가야 파국적인 위기를 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릴라는 현재의 위기를 극복할 길을 제대로 찾은 것일까? 어쩌면 그야말로 현재의 신학-정치적 질서를 하나의 ‘위기'로 인식하고, 정교분리를 통해 정치가 안정적이며 원만한 토대 위에서 이루어지는 ‘구원'의 길을 모색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책의 결론은 결국 이 ‘원만한 정치 제도'를 향하고 있다. 서구인들은 자신들의 역사를, 여전히 정치신학을 정치의 자원으로 삼은 타 문명권에 강요하지 말아야 하며, ‘다른 문명'은 그들의 전통 안에서 그것을 위한 신학적 자원을 찾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갈망이야말로 인류 평화라는 '구원'을 갈망하는 하나의 (신 없는) 종교적 심성의 발로인 것은 아닐까. 

 

나는 릴라야말로 서구 근대의 종점에서 길을 잃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묻고 싶다. 정치와 종교가 그토록 분리되기 어렵다는 것을 훌륭하게 서술해 놓고(이 책은 신학교의 현대신학 과목 교과서로도 매우 훌륭한 책이다) “그러니 우리 서구의 유산인 정교 분리를 더 잘해야 한다" 정도의 결론밖에 내리지 못한 것은 매우 아쉽다. 오늘날 명백하게 정치가 신학화되어가고, 신학이 정치화되어 가고 있는 상황 속에서 과연 이상적인 근대로의 회귀가 가능할 수 있을까? 어쩌면 (릴라를 포함하여) 우리는 더 적극적으로 우리가 신학적 상상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음을 직시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오히려 그럴 때야말로 우리는 좀 더 솔직하게 신학적 자원을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사용하는 길을 찾게 되지는 않을까. 어쩌면 지금 우리가 다시 읽어야 할 책은 홉스의 『리바이어던』이 아니라 그와 같은 시대에 매우 과감하게도 자유로운 종교적 상상을 민주주의의 무기로 삼을 수 있다고 보았던 스피노자의 『신학정치론』일지도 모른다.  

 

2009.10.21 ⓒ 김강기명

 

 

김강기명: 성공회대 석사, 심원청년신학포럼 기획위원. 경쟁사회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진학한 신학대학에서 정작 발견한 건 세상보다 더 세상같은 종교판이었다. 그때부터 신학 너머의 신학을 꿈꾸며 스피노자와 안병무를 스승 삼아 학문과 사회의 이곳저곳을 해매고 있다. 서울 북촌에서 고냥마님 세 분, 인간마님 한 분을 모시고 살고 있다. osr1998@hanmail.net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