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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문예비평'에 기고한 글입니다.)
1.
성묘를 다녀오던 길이었다. 조부모님 산소는 안동 학가산 자락에, 외조부모님 산소는 영주의 낙동강 지류를 앞에 둔 작은 언덕 위에 위치해 있다. 묘소라는 공간은 언제나 어떤 멜랑콜리를 불러일으킨다. 산과 강의 아름다운 풍경은 죽음과 삶의 거리를 더욱 부각시켰고, 산 이들은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으로부터 잠시 잠깐 떨어져 나오는 경험을 하고 서로를 위로하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라디오에서 뉴스가 흘러나왔다. 누군가의 죽음 이후에 나오는 잡음에 대한 뉴스였다. 그는 오사마 빈 라덴이었고, 그는 그 뉴스에 따르면 어린 딸과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저항하지 못하고 총살당했다. 그의 죽음 앞에서 많은 미국인들이 환호하고 있었고, 동시에 미국 국내에서도 모종의 법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은 이번 공개적 암살(?) 행위에 대한 비판이 나오고 있었다.
“이제 세계가 한 시름 놓지 않겠어?”
뉴스를 듣다가 아버지께서 던진 이 한마디가 성묘가 준 사적인 멜랑콜리의 감정에 젖어 있던 나를 깨웠다. 이제 은퇴하시고 집에서 시간을 보내시는 아버지도 ‘세계’를 저리 걱정하고 계시는데 내가 가만히 내 감정의 세계 속에 있어선 안 되지 않겠는가… 같은 건 물론 아니었고, 아버지와 그리고 또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그 ‘세계’가 무척 궁금해졌다. 왜 빈 라덴의 죽음에 멀고 먼 한국의 한 아저씨는 시름을 놓았는가.
“빈 라덴 살해는 정의롭지 못해요. 그가 9.11 사태의 범인이라면 미국은 그를 사적으로 처단할 것이 아니라 전범재판에 넘겼어야죠.”
이것은 라디오에서 나온 비난 여론이었다. 나는 이것이 아주 상식적인 의견이라고 생각했다. 전쟁은 보통 법정초적인 행위로써, 전쟁이 끝나면 법과 정의는 새롭게 세워진다. 새로운 법과 정의의 체제 — 그것은 종종 ‘평화’라고 불린다. — 아래에서 전쟁의 패자는 전쟁범죄자가 된다. 아니, 정확히는 그가 패배하고, 전범으로 처벌받음으로써 새로운 법과 정의가 세워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그를 재판에 넘기지 않았다. 미국은 그의 미국을 향한 테러행위를 사법적이고 정치적으로 심판함으로써 새로운 세계 질서를 구축하는 절차를 택하지 않은 것이다. 대신 그들은 빈 라덴이 어떤 무장도 하고 있지 않았음에도 그를 가족들 앞에서 살해하고, 시신은 바다에 던졌다.
이것은 즉각적으로는 단지 사적인 복수행위로 보였다. 아마 이 지점이 미국의 양식 있는 종교인들을 불편하게 했을 것이다. 그들은 빈 라덴 사망 이후 미국인들이 보여준 환호에 조심스럽게 우려를 표하면서 열광적 분위기를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미군의 빈 라덴 살해는 정말 공적이어야 할 심판을 사적인 복수로 대체한 것일까? 니체가 지적한 바 있듯이 복수는 동등성의 표현이다. 복수로 표현되는 분노는 그런 점에서 귀족적이다. 오직 능력있는 자만이 당한 것을 되갚을 수 있다. 니체에게 있어 복수와 분노의 대극에 있는 것은 원한이다. 복수를 할 수 없는 무능력함이 원한의 감정을 낳는다. 원한은 희생자의 감정이다. 저들은 강하고, 나는 약하다. 저들은 사용하지 않을 수도 있었을 자신들의 힘을 사용했다. 따라서 저들은 악하다. 따라서 원한은 능동적인 인간에 대한 혐오와 허무로 나타나며, 신을 요구하는 데로 나아간다. 종교인들의 복수에 대한 불편함은 이 지점에 놓여 있다. 그런데 조금 더 생각해보자면 미군의 행위는 이 둘 중 어느 것에도 속한다고 보기 어려웠다. 무엇보다 오사마 빈 라덴 따위보다 그들은 압도적으로 강한 자였다. 그들은 연약한 희생자의 자리에서 악에 대한 신의 심판을 부르짖는 노예도 아니었고, 동등한 위치에서 힘의 대결을 통해 저들이 준 피해를 되갚아 주지도 않았다. 도대체 저 살해행위는 그렇다면 무엇이었을까?
2.
“이제 세계가 한시름 놓지 않겠어? 테러와의 전쟁이 정상적인 전쟁도 아니고, 아주 예외적인 것인데, 무슨 그런 법을 다 지켜가면서 전쟁을 해?”
이것은 뉴스를 들으며 이어지는 아버지의 말이었다. 나는 이 말이야말로 빈 라덴의 살해를 둘러싼 법철학적 논의의 핵심을 짚었다고 생각한다. 빈 라덴의 살해. 그것은 법정초적인 것도, 두 강자들의 영웅적(이고 사적인) 대결도 아닌, ‘세계의 안전’이라는 논리로 행해진 치안 혹은 경찰권력의 수행인 것이다. 이것은 물론 새로운 견해는 아니다. 네그리와 하트는 그들의 『제국』과 『다중』에서 오늘날의 전지구적 권력이 국민국가 단위의 주권권력이 아니라 더 미시적이면서도 동시에 전지구적인 치안권력으로 작동한다는 것을 지적한 바 있다. 그들은 오늘날의 전쟁이 “응집된 거대위협에 맞선 방어에 방향을 맞추기 보다는 확산되는 작은 위협들에 더 초점을 맞추고, 적의 전반적인 파괴에 집중하기보다는 적을 변형하고 심지어 생산하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곧 “고강도의 치안행위”나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그 어느 국가기구보다 더 법 아래 있어야 할 경찰권력이 이렇게 탈법적인 방식으로 수행되어도 되는 것일까? 하지만 우리가 현실에서 경찰권력이 수행하는 역할을 조금만 세심하게 들여다 본다면 경찰권력이 법 아래에 있다는 ‘상식’이 결코 사실이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 앞에서, 유성기업 파업 현장에서 경찰권력은 과연 법 아래에 있었나. 무수한 집회시위의 현장에서 자의적으로 시위를 불허하고, 차벽을 세워 시위대를 고립시키는 경찰권력은 과연 “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는 헌법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가?
그렇다면 오히려 치안이야말로 오늘날 법보다 위에 있는 최상위의 권력으로써 우리 세계에 존재하고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그것은 칼 슈미트가 “예외상태를 결정짓는 자”(정치신학)라고 정의한 주권권력보다도 현대 세계에 더 근본적인 권력이다. 발터 벤야민은 이러한 현대적 치안권력의 양상을 일치감치 간파한 바 있다.「폭력 비판을 위하여」라는 문제적 텍스트에서 벤야민은 경찰권력이야말로 “민주주의 체제 속의 가장 심하게 타락한 모습”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절대군주의 모습으로 입법과 행정이 통합되어 있고, 경찰권력이 지배자의 강제력을 과시하던 절대주의 시대보다 더욱 끔찍한, “문명화된 국가들의 삶 속에 떠도는 (…) 유령같은 형상”(96쪽)으로써 경찰권력은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 현대적인 경찰권력이 문제적인 것은 그것이 법정초적 폭력(전쟁이나 내란, 총파업을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과 법보존적 폭력의 구분이 지양되어 있다는 데에 있다.
법정립적 폭력은 그것이 승리를 통해 입증되기를 요구받으며, 법 보존적 폭력은 그것이 새로운 목적을 설정하지 않는다는 제한에 묶인다. 그런데 경찰의 강제력은 이 두 조건들로부터 해방되었다. 경찰의 강제력은 법정립적인데, 그 이유는 경찰권력의 특징적 기능은 (일반적인) 법률의 공표라기보다는, 그것이 법적권리주장을 가지고 반포하는 각각의 모든 포고행위이기 때문이다. 또한 경찰의 강제력이 법보전적인 이유는 그 자신이 그러한 목적을 수행하는 데 이용되기 때문이다. (...) 따라서 경찰은 법적 목적과 관련이 전혀 없는데도 법령에 의해 규제된 삶을 통해 무자비하게 괴롭히는 존재로서 시민을 따라다니거나 또는 시민을 완전히 감시하거나 아니면 명백한 법적 상황이 주어져 있지 않은 무수히 많은 경우에 ‘치안 유지 때문에’ 개입한다.(97쪽)
냉전의 종료 이후 UN을 통해 국가 간의 전쟁 가능성이 통제되고, 사회주의 역시 (법을 정초하는) 혁명의 전망을 잃어버렸을 때 대두한 것은 단지 신자유주의 세계화만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신자유주의 세계질서는 전지구적 경찰권력과 함께 도래했다. ‘역사의 종말’(후쿠야마), 그것은 무엇보다 법정초적 폭력의 성공적인 제거였으며, 그 자리를 채운 건 ‘상례화된 예외상태’를 다루는 권력인 경찰의 폭력이었던 것이다. 경찰권력의 전면적 대두는 법정초적 폭력과 법보존적 폭력의 구분을 의문에 붙이며, 매 상황을 예외로서 간주하게 만든다. 테러는 이제 정상상태 바깥의 예외적인 현상이 아니라 그 자체로 정상적(?)이며 항구적인 위협이 되며, 고전적인 ‘법을 위반하는 것으로서 범죄행위에 대한 처벌’에 대한 관념은 ‘안전을 위협하는 잠재적 테러분자에 대한 규제’로 대체된다. 세계는 이제 끊임없이 ‘한시름 놓기 위해’ 경찰력의 사용을 요구하는 항구적인 예외상태에 놓이고 만다. 이주민, 시위대, 실업자, 철거민, 노동자… 그 모두는 잠재적이고 실제적으로 사회를 위협하는 세력이 되며, 경찰권력은 자의적 판단에 의해, 그리고 첨단의 강제력을 동원해 그들의 시민적 권리를 통제한다.
3.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치안의 논리가 법적 정당성의 논리를 넘어서면서 그것이 가지고 있는 공적 성격 또한 탈각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단지 (오래된 논의인) ‘국가는 부르주아의 집행기구’이며, ‘경찰은 자본가들의 사병’이라는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모든 사적 관계가 ‘치안화’되고 있다는 것이 문제적이다. 치안이라는 논리는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구분도 지양한다. 그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오늘날의 ‘용역깡패’들이다. 이것은 사실 부적절한 어휘인데, 물론 그들이 지난 80년대의 구사대나 철거깡패의 행태를 여전히 이어가고 있는 측면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많은 부분 이들은 경비업법에 의해 합법의 외양을 걸치고 하나의 ‘사설 경찰’의 형식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유성기업 사태로 유명해진 CJ시큐리티나 용산참사, 각종 철거현장 등에서 활약(?)하는 삼오진 등은 모두 경찰서에 정식으로 등록된 기업이며, 이들 용역회사 중에는 연 매출이 100억대에 달하는 커다란 기업도 있다.
법적으로는 경찰의 역할과 경비용역의 역할이 분명하게 구분되어야 하겠지만, 사실상 그들의 ‘진압작전’ 앞에 노출된 사람들에게 둘 사이의 구분은 별 의미가 없다.(이들을 부리는 누군가에게 있어서도 그러할 것이다.) 노사관계나 재개발 문제 등 일차적으로 사인들간의 대화나 투쟁으로 진행되어야 할 사안들이 아주 빠른 시간 안에 ‘시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준테러세력’에 대한 소탕의 문제로 담론화되고(‘도심 테러리스트’로 규정된 용산 철거민들이 대표적이었다.), 용역들과 경찰은 매우 일사분란한 공조태세를 갖춰 노동자들이나 철거민들의 권리주장을 위협하는 것이다. 이러한 치안적 개입을 통해 정작 이 문제를 책임 있게 해결해야 할 상대방인 자본가들은 그 책임을 회피하게 된다. “이것은 계약 관계의 문제가 아니라 시민의 안전의 문제다.” 그들은 철거민들과 노동자들이 진압당한 이후에야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서류에 도장을 찍는다. 치안적 개입은 자본가와 노동자, 철거민들 간의 동등한 사적 관계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그러는 사이 반대편의 ‘진압당하는 존재들’은 공적 시민권마저도 체계적으로 박탈당하고 만다.
법정립에 앞선 권력의 정립이라고 말 할 수 있을 이러한 폭력에 벤야민은 ‘신화적 폭력’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그는 ‘주권권력’이라고 할 수 있는 법정립적 폭력이 사실은 ‘신화’에 기반하고 있다고 말한다. 물론 이것은 허구적인 것이 아니라 지극히 실정적인 것이다. 그는 자신의 자녀들을 레테 여신의 두 자녀(아폴론과 아르테미스)보다 낫다고 자랑하다가 자녀 모두를 잃는 벌을 받은 니오베의 신화에서 신화적 폭력의 발현을 발견한다. 니오베의 교만은 그것이 법을 침범하는 것이기 때문이 아니라 운명에게 도전했다는 점에서 자신 위에 내릴 숙명을 불러낸다. 신들의 폭력은 니오베의 자녀들은 피 흘려 죽게 하지만 니오베 앞에선 멈춤으로써 그녀를 영원히 죄 받은 존재로 남겨두며, 그것을 통해 인간과 신의 ‘경계’를 설정한다. 벤야민은 바로 이러한 신의 분노의 ‘발현’으로서의 폭력이 법정립적 폭력보다 더 근원에 놓인 ‘권력의 정립’을 보여준다고 말한다.(107-110쪽)바로 이것이 곧 모든 정립적 폭력과 보존적 폭력이 자리 잡은 장소이다. 그것은 사실 어떠한 정당화된 목적을 위한 결단이 아니라 말하자면 ‘운명’의 폭력이었던 것이다. 오늘날 이 ‘운명’은 ‘치안’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빈 라덴과 쌍용차 노동자들과 철거민들, 정책 반대자들의 피를 흘린다. 치안의 논리는 어떤 목적을 갖는 것으로서가 아니라 지배 그 자체가 목적인 것으로, 권력을 드러내는 신의 발현으로써 오늘날 모든 폭력의 위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4.
그러나 우리는 벤야민에게서 이러한 신화적 폭력에 대항하는, 아니 그것을 파괴하는 것으로서 ‘신적폭력’이라는 개념을 만나게된다. 그것은 말하자면 정상을 규정하는 예외(주권권력)나 상례화된 비상사태(경찰권력)가 아니라 오직 예외일 뿐인, ‘진정한 비상사태’(「역사의 개념에 대하여」)에 대한 사유이다.
“모든 영역에서 신이 신화와 대립하는 것처럼, 신화적 폭력은 신의 폭력과 대립한다. […] 신화적 폭력이 법정립적이라면 신적 폭력은 법 파괴적이고, 신화적 폭력이 경계를 설정한다면 신적 폭력은 경계가 없으며, 신화적 폭력이 죄 값을 치르게(sühnen) 한다면, 신적 폭력은 죄를 사해주고(entsühnen), 신화적 폭력이 위협적이라면 신적 폭력은 내리치는 폭력이고, 신화적 폭력이 피를 흘리게 한다면 신적 폭력은 피를 흘리지 않은 채 죽음을 가져온다.”
벤야민은 구약성서 민수기에 나오는 고라 일족의 심판 이야기를 니오베의 신화와 대립시킨다. 고라 일족은 엑소더스의 민중지도자인 모세에 반기를 들고, 가문의 유력자들이 합당한 권위를 갖게 해달라는 요구를 주장했다. 심지어 그들은 엑소더스 자체를 부정하기까지 했다. 신은, 그들을 심판했다. 땅이 갈라져 고라의 일족과 그들의 재산을 모두 단번에 집어 삼켰던 것이다. 그런데 일견 이 두 이야기는 별반 구분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고라의 심판이 ‘죄값을 치루게 하는 폭력’과는 다른 ‘죄를 사하는 폭력’이라는 것이 무슨 말인가. 벤야민 양자 간의 차이를 만들어낸다고 본 것은 ‘피’이다. 신화적인 폭력은 피를 흘리는 존재, 즉 순수하고 단순한 개별의 ‘목숨’에 가해지는 폭력이고, 이와는 반대로 순수하게 신적인 폭력은 살아 있는 자를 위해 “모든 생명 위에” 가해지는 순수한 폭력이다.
여기서 벤야민이 다루고 있는 것은 역사의 구원에, 혹은 혁명적 봉기에 있어 누군가의 목숨은 죽어야 하는 그 곤혹스러운 상황이다. 좀 더 확대해보자면 여기엔 목숨 뿐만 아니라 그 목숨을 가진 개별자에게 속하는 것들, 이를테면 재산이나 인격 등도 포함될 것이다.(독일어 Eigentum이나 영어 Property는 모두 재산이라는 의미와 고유성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구약성서의 면죄하는 폭력에는 언제나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이 뒤를 따른다. 그러나 벤야민은 이 계명이 판단의 척도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계명은 무엇보다 “이미 실행된 행위에 적용될 수 없는 것”이며, “행동하는 인격체 또는 공동체에 대해 행동의 지침으로 있다. 행동하는 인격체나 공동체는 홀로 있으면서 그 계명과 대결해야 하며 예외적인 경우들에서 이 계율을 제대로 고려하지 못한 데 대한 책임을 스스로 떠맡아야 한다.”(113쪽) 결국 신적인 폭력은 이러한 법적 정당성의 바깥에서 수행되는 민중의 폭력, 그것이다.
“이 신적 폭력은 종교적 전성을 통해서만 입증되지 않고, 적어도 성화된 발현 속에서 오늘날의 삶에서 발견된다. 완성된 형태의 교육적 폭력으로서 법의 테두리 밖에 있는 것이 그러한 신적 폭력의 현상 형식들 중 하나이다. 따라서 신적 현상형식들은 신 자신이 폭력을 기적 속에서 행하는 점을 통해서가 아니라 피를 흘리지 않고 내리치며 면죄하는 수행적 요인들을 통해 정의된다. 그것은 마침내는 모든 법정립의 부재를 통해 정의된다.”(112쪽)
지젝은 신적폭력이 법을 정초하는 예외적 존재로서의 국가주권과 구별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무정부주의적 폭발로서의 순수한 폭력과도 구분된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무엇보다 ‘백성의 소리는 신의 소리’(VOX POPULI, VOX DEI)라는 그 의미에서 신적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오늘날 신화적 폭력 아래에서 구조화된 사회적 공간 바깥에 있는 자들이 ‘맹목적으로’ 폭력을 휘두르면서 즉각적인 복수와 정의를 요구하고 실행에 옮기는 것이다. 그리고 이 폭력이 상례화된 예외상태를, 그리고 법이 무너지더라도 또다시 법정립이 발생하고야 마는 운명의 악순환을 돌파한다.
역사에서 이러한 신적 폭력의 이미지에 상응하는 것은 무엇일까? 「폭력 비판을 위하여」텍스트 안에 있는 근거들을 탐색해보자면 일차적으로 그것은 소렐에게서 영감을 받은 ‘프롤레타리아 총파업’이다. 소렐은 프롤레타리아 총파업을 법정립적인 법정립적 총파업, 즉 입법적이고 제헌적인 정치적 총파업의 폭력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는 법을 파괴하는, 따라서 국가를 파괴하는 총파업이며, 순수 수단으로서 비폭력적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102-103쪽) 그러나 벤야민이 신적 폭력을 곧장 프롤레타리아 총파업과 연관 지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정작 신적 폭력을 다루는 마지막 문맥에서 ‘프롤레타리아 총파업’은 하나도 다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혁명적 폭력’ 역시 조건법으로만 말해지고 있다.
벤야민은 어쩌면 ‘신적 폭력’은 실정적인 방식으로는 말해질 수 없는, 즉 폭력이 행사되는 그 순간에는 알 수 없는 폭력이라고 생각한 것이 아닐까. 그것은 그런 점에서 ‘사건의 질서’ 안에 있다. 결국 벤야민의 서술 속에서 신적 폭력은 이미 법정립을 통해 성공적으로 역사로 귀속된 어떤 사례로는 제시될 수 없는 ‘신적 폭력’ 그 자체로 남는다.
“특정한 경우에 순수한 폭력이 언제 실제적으로 있었는지를 결정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똑같이 가능하지도 않고, 똑같이 시급하지도 않다. 왜냐하면 비할 바 없이 큰 영향을 속에서가 아니라면 신적인 폭력이 아니라 오로지 신화적인 폭력만이 그 자체로서 확실하게 인식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폭력이 인간에게 주는 면죄하는 힘은 명백하게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116쪽)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에서 전태일과 광주라는 우리의 역사적 기억을 다루어보는 것은 어떨까. 지금 완벽하게 코포라티즘으로 전락한 ‘민주노조운동’의 역사서술 속에서가 아니라,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네 마네를 가지고 청와대와 지역단체들이 다투고 있는 저 화려한 5.18 기념식 속에서가 아니라 사건으로서의 전태일과 광주를 말이다. 전태일이 자신의 목숨에 불을 붙였을 때, 그것은 1970년대 전체의 ‘생명’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었던가. 광주도청의 마지막 총성이 울렸을 때 그 역시 80년대의 모든 ‘생명’을 구원하는 폭력이 그곳에서 일어났던 것이 아닌가. 크고 작은 억압 받는 자들의 반란들, 법 바깥의 투쟁들은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그들을 둘러싼 신화적이고 운명적인 모든 종류의 폭력에 맞선다.
5.
2009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에 홍대입구역 앞에 있는 작은 식당 '두리반'이 강제로 영업을 종료당했다. 그 일대를 몽땅 사들이고, 세입자들의 연대를 분쇄하여 차례차례 헐값을 주고 내보낸 GS 건설의 유령회사 남전디앤씨는 계고장 하나 미리 보내지 않은 채 갑자기 용역을 동원해서 마지막까지 협상하지 않고 남아 있던 칼국수 요리집 두리반의 집기를 들어내고 펜스를 둘러 쳤다. 공공개발이든, 민간개발이든 재개발은 세입자들에게는 악랄하기 그지 없는 폭력으로 다가온다. 홍대 앞의 문화와 상권을 만들며 이 지역의 가치를 올려온 건 땅주인들이 아니라 그곳에서 영업하는 세입자들과 손님들이었건만, 땅주인들이 시세의 열 배가 넘는 평당 8000만원에서 2억 원까지 받고 땅을 팔아 이득을 보는 동안 세입자들은 그나마의 월세 보증금도 소송비용으로 뜯기고, 마치 시혜를 베풀듯 주어지는 몇백만원의 이사비용만 받고 추방당해야 했다. 거대 자본은 세입자들과 어떤 타협을 할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돈으로 용역회사를 고용하여 세입자들을 자본이 소유한 땅 — 세입자들이 삶을 이어가는 그 땅 — 에서 몰아냈다.
그 다음날 밤, 두리반의 안종려 사장은 극한의 두려움과 분노 속에서 그 펜스를 뜯고 가게로 다시 들어갔다. 그는 시혜도, 추방도 거부하고 두리반을 지키며 치안권력과의 싸움에 들어갔다. 그의 요구는 단지 이전의 삶을 이어갈 수 있게 해달라는 것. 경찰과 용역회사의 경고와 위협 아래서 항상 불안할 수 밖에 없었던 농성장의 분위기는 이듬해 2월 홍대 인근에서 활동하던 젊은 음악가들이 함께하면서 변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농성 주체들의 사정을 듣고 ‘음악가의 방식’으로 연대를 시작했다. 토요일의 ‘자립음악회’와 금요일의 ‘칼국수음악회’가 시작되었고, 2010년 5월 1일 노동절을 기점으로 이 연대는 폭발적으로 확장되었다. 65팀의 밴드와 3000여 명의 관객이 모여서 “세계노동절120주년기념전국자립음악가대회뉴타운칼챠제공파티<51+>”를 열었던 것이다. 그 후로 두리반 건물 전체는 삶의 기반을 잃게 되어 법 바깥의 투쟁을 시작한 철거 당사자들 뿐 아니라 애초에 잃어버릴 어떠한 삶의 기반도 없이 도시의 이곳 저곳에서 삶과 활동의 공간을 찾아 헤매이던 젊은이들에 의해 점거당했다. 공간을 갖게 된 이들은 음악회, 토론회, 영화상영회, 낭독회, 강연회, 세미나 등 각종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밤마다 모여들어 술 마시고 노래하고, 친구를 사귀고 연애를 했다.
그들의 행위는 이내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자본과 치안권력에 맞서는 하나의 상징이 되었다. 그들의 행위는 불법이었고, 법에 의해 보호받는 재산권의 행사를 심각하게 제한하는 것이었지만, 다른 편에서 보면, 그러니까 쫓겨난 이들, 공간없는 이들, 부유하는 이들의 편에서 보면 정의롭고 즐거운 것이었다. 두리반이라는 불법과 폭력 — 두리반은 어떠한 인간도 해치지 않았지만, 이제는 저들의 것이 된(그러나 이전엔 두리반의 것이었던) 재산을 마음대로 전유하고 형태를 바꾸어 놓았다는 점에서 — 의 공간은, 동시에 이 사회의 몫없는 이들의 해방구와 만남의 장이 되었다. 한국전력은 이들의 불법점거와 폭력을 이유로 한 여름에 전기를 끊었고, 시공사 GS건설은 용산참사 현장의 바로 그 용역회사 삼오진을 고용하여 끊임없이 치안적 개입을 시도했지만, 점거하는 이들이 만들어낸 문화적 생산물들과 상징의 힘은 결국 그들을 굴복시켰다. 결국 농성이 450일 가까이 진행될 무렵 저들은 협상을 제의했고, 531일째 되는 날 아침에 최종적으로 "두리반이 기존상권과 유사한 상권에서 재개할 수 있도록 영업손실 배상금을 지급하고, 민형사상 소송을 취하하고, 농성기간 동안 사용한 기초 에너지 요금과 벌금을 시행사가 대납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합의가 이루어젔다.
이것은 철거민들의 요구가 거의 대부분 받아들여진 승리였지만, 어떠한 잡음도 없는 승리는 물론 아니었다. 비판은 크게 두 가지 목소리로 집약되는데, 하나는 법적 근거도 없는 권리금 등을 보상받는 것이 무슨 정의로운 일이냐는 것이고, 또 하나는 두리반의 승리는 단지 하나의 투쟁사업장의 승리일 뿐 정작 법을 바꾸지 못한 무력함을 전시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것이었다. 이 두 비판은 각각 법보존적 시각과 법정초적 시각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전자는 두리반의 요구가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사유재산제도의 근간을 흔들며, 이러한 경우가 보편화될 경우 무수한 선의의 피해자 — 이를테면 애써 모은 재산으로 건물 하나를 겨우 소유한 영세한 소 건물주 — 가 발생할 수 있으며, 엄청난 규모의 업장을 가진 프렌차이즈 세입자 같은 경우에도 저런 방식의 영업보상을 해줘야 하느냐는 비판을 했고, 후자는 두리반에 모인 잉여들이 입법적(법정초적) 역량이 없으며, 보편적인 사회운동이나 정치운동의 시각이 결여되어 있다는 비판을 내놓았다.
이들의 비판은 시민사회가 앞으로 분명하게 의제로 삼아야 할 문제들을 제시하고 있지만, 두리반의 투쟁과 승리가 갖는 법철학적 쟁점에 관하여는 절대적으로 오해하고 있다. 두리반은 단지 법 안에서, 법에 의해 내어 쫓긴 사람들이었을까. 앞서 이야기했듯 오늘날 지배의 작동은 법보다 치안권력에 의해 이루어진다. 법은 땅주인에게 세입자에게 새로운 가게를 내어 주어야 한다는 의무를 지우진 않지만, 그렇다고 세입자와 협의를 통해 합당한 보상을 해주지 말아야 한다는 의무를 지우지도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어떠한 합의 대신 용역회사를 고용하여 ‘사유재산을 무단점유하고 있는 도시의 위험요소’에 대한 치안적 개입을 단행한다. 법은 이 경우 치안권력 아래에 실질적으로 종속된다.(그리고 이것은 억압받는 이들 대부분이 겪는 사태이다.)
많은 사람들이 두리반의 승리를 즉각적으로 정의의 승리로 받아들이는 것은 단지 통쾌한 감정의 승리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법정립에 앞서는 권력의 정립의 논리, 신화적 폭력의 구조를 두리반이 비록 아주 작은 하나의 사업장에 불과한 수준에서라도 폭로하고, 그것을 무너뜨리는 신적 폭력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작은 승리는 오늘날 한국사회 안에서 새로운 정치적 주체를 만들어냈다. 두리반에 모였던 이들, 그리고 두리반의 투쟁과 승리를 지켜보던 또 다른 많은 ‘요즘 젊은 것들’은 두리반 투쟁이 끝날 무렵 시작된 명동의 철거농성장 ‘카페 마리’로 달려가 한 차례 시도된 용역의 침탈을 막아내고 또 다른 점거를 시작했다. 스스로 ‘명동해방전선이라는 이름을 붙인 이들은 ‘무단점거’라는 법 바깥의 싸움을 통해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공간에 대한 자신들의 권리를 요구하고 있다. 이 싸움은 이들 안에서 통용되는 유머처럼 “우리는 한 줌이고, 저들은 전부”인 싸움이지만, 벤야민의 말처럼 “이들에게는 이들에게 앞선 모든 세대와 마찬가지로 희미한 메시아적 힘이 주어져 있다.”(강조는 벤야민)
6.
그러나 이 신적 폭력은 오로지 이들 민중의 폭력이라는 관점에서만 사유할 수 있는 것일까? 나는 다시금 성묘의 풍경으로 돌아온다. 외조부모의 산소가 있던 영주의 낙동강 지류. 사실 그곳의 풍경은 내년이면 다시 볼 수 없다고 한다. 4대강 공사가 올해 끝나면 시작될 지류 정비 공사 구간에 그곳이 포함되어서 보가 건설되기 때문이다. 다행히 묘를 이장할 일은 없다 하지만, 묘가 자리한 언덕 바로 아래까지 물에 잠기게 된다고 한다. 그곳을 찾기 위해서는 이제 배를 타야만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아름다웠던 강가의 모래사장은 흔적도 찾아볼 수 없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 공사가 어떤 방식으로 토목건설을 제한하는 여러 법규들을 간단히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추진되었는지 잘 알고 있다. 문화재도, 환경영향평가도, 지역의 농민들의 외침도 일사천리로 밀어버리는 포크레인과 경찰, 그리고 역시나 용역들. 마치 강과 사람들을 향한 이 폭력은 어떤 목적보다도 지배 그 자체를 확인하기라도 해야겠다는 듯 하나의 치안행위로써 수행된다.
물론 이것은 이 정권 들어서 새삼스럽게 벌어지는 일은 아니다. 어쩌면 ‘자연’과의 주술적이고 신화적인 관계를 잃어버린 근대 세계에서 자연을 향한 인간의 이 개발 행위야말로 본래부터 치안적이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지난 정권 하에서 이루어진 새만금 물막이 공사나 천성산 고속철도 공사에서 법을 무기로 맞서려 했던 시도는 모두 철저하게 패배했다. 재판에서만 진 것이 아니라 패소와 함께 운동 역량까지도 무너져내렸다. ‘도룡뇽 소송’이라고 불린 천성산 소송은 더더욱 자연에 대한 지배가 법적인 것이 아님을 보여주었는데, 도룡뇽은 소송당사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법원은 명백한 판례로 남겼던 것이다. 자연을 향한 인간의 관계, 그것은 즉각적인 권력의 정립인 것이다.
따라서 자연은 오직 인간의 삶을 침식하는 파괴행위 — 물론 이것은 오로지 인간에게만 폭력적 행위인 것으로써 인지될 것이다. — 를 통해서만 이 권력의 관계를 뒤집는다. 오늘날 신화적이고 주술적인 자연과의 관계가 복원될 수는 없을 것이기에, 그것은 신화적 폭력에서 나타나는 권력관계의 형태로서가 아니라 오로지 신적 폭력에서 나타나는 심판의 형태로서만 나타나게 될 것이다. 이 몰락의 가능성 앞에서 억압받는 자들 역시 함께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진정한 비상사태를 도래시키는 것이 우리의 과제로 떠오를 것이다.”(「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8테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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