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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벽이 무너지기 직전. 베를린 알렉산더플라츠에 모인 50만명의 군중 앞에 그가 있었다.
동독 정부의 자문역이었고, 포츠담의 영화학교 교수이기도 했던 한 50대 지식인이 차분하게 연설을 했다.
"저의 잘못, 우리 세대의 잘못은 다시는 반복되지 말아야 합니다."
그는 이후 그레고르 기지, 디트마르 바츠취와 함께 장벽 해체 이후 스탈린주의적 당-국가 기구의 해체와 "민주적인 사회주의"를 주창하며 집권 통일사회당의 내부 개혁, 그리고 마침내 민주사회당 창당에 참여했다.
격정적인 연설가도, 카리스마적인 정치인도 아니었던 정치인 로타 비스키. 하지만 그는 독일 좌파 안에서 '경청하는 사람'(Zuhörer)이었다. 그의 지도 아래에서 민주사회당은 지속적으로 성장해 나갔고, 마침내 사민당에서 갈라져나온 서독 좌파들과 함께 좌파당을 건설하고 초기 당 건설의 임무를, 그리고 당내 갈등이 벌어졌을 때 구원투수의 역할을 맡았다. 그의 마지막 시기에 그는 유럽 좌파당과 유럽의회 좌파/녹색당 교섭단체의 대표를 맡아 일했다.
8월 13일. 독일 사회민주당 창건자인 아우구스트 베벨의 기일에, 독일 좌파당의 창건자 로타 비스키 영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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