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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큐핏, 포스트모던 이후 신앙의 세 유형에 대해...

아래 글은 영국의 포스트모던 신학자 돈 큐핏의 글이다. 이 글은 "예수 정신에 따른 기독교 개혁"의 11장에서 발췌한 것이다. 그는 60년대 이후 포스트모던과 새로운 세속주의적 경향이 도래한 이후 더 이상 이전의 계몽주의(자유주의)대 근본주의의 전투가 단순하게 벌어지지 않는다고 이야기하며 포스트모던 이후 교회와 신앙운동의 세 경향을 유형화해서 말하고 있다. 한국적 상황은 어떻게 볼 수 있을런지. 나 같은 사람은 굳이 이 유형에 우겨넣자면 3번일 텐데 영 마뜩찮다. 굳이 하나를 더 추가하자면 벤야민, 지젝, 바디우같은 유형도 가능하지 않을까. 기독교나 성서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취급해서 혁명적 정치로 나아가자는...



1) 복음주의자들 (혹은 근본주의자들)

복음주의자들은 아이러니를 거부한다. 그들의 방법은 앵글로 색슨의 반지성주의를 이제껏 꿈꿔보지 못한 높이로 올리는 것이다. 그들은 철학을 거부한다. 비판 이론을 거부하며, 그들의 언어가 한 소종파의 은밀한 언어처럼 들여진다는 것을 문제 삼지 않는다. 그들은 담대하게 그들의 내부적 은어들은 그들이 정말로 경험한 것들을 표현한 것이라고 선언한다. 그것은 내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만 모두가 진실이다. 따라서 우리가 만일 그들의 주장을 우리 자신의 경험 안에서 증명하기를 원한다면, 그들 편으로 건너와야 한다는 식이다. 즉, '개종'이 요구된다는 말이다. 


2) 포스트모던 우파 (혹은 '근본적 정통주의'[Radical Orthodoxy], 후기 자유주의)

포스트모던주의자들은 (실재론적) 형이상학의 종말이 이미 왔다는 것과, 이것은 허무주의로 우리를 위협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최근 영국에서 번성한 포스트모던 우파(그리고 미국의 근본적 정통주의도 - 인용하며 첨가)는 '옥스브리지' 신화의 인기를 행사하기를 즐기는 대학생들을 연상시키는 방식으로 처신한다.(옛날 명문대 스타일로 입고, 말하고, 돌아댕기는 애들 이야기인 듯... - 인용하며 첨가) 그들은 도발적인 신(new)전통주의자들이다. 그들은 단순히 표준적 라틴신학을 창백하고 아이러니칼한 상태로, 지적인 근거를 대지 못하는 방법으로 우겨댄다. 이러한 방법으로 그들은 바르트주의자들이나 부분적으로는 서구화된 이슬람 교도를 닮은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나는 그들이 이 두 집단보다도 의식적으로 더 심미적이기에, 그들을 그런 식으로 보는 것이 옳은가에 대해 회의적이다. 그들은 바로 이것이 우리가 살기를 원하는 '신화'이며, 놀기를 원하는 '게임'이라고 말한다. 이것이 또한 바로 우리가 입기를 원하는 '의복'이며, 그 위에서 뛰기를 원하는 '무대'라고 말한다. 우리의 쇼는 도시의 그 어떤 쇼보다도 더 오래 상연되고, 우리의 이야기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진다고 말한다. 실제로 그것은 우리의 이야기며, 최고의 이야기로서, 우리는 그 이야기에 집착한다는 식이다. 그러한 근거 위에서, 젊은 성직자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특별히 대도시에서, 흠잡을 데 없는 '정통'으로 쉽게 간주될 수 있다. 그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솔직하게 그들이 진짜 정통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런 생각은 나에게 두통을 일으킨다.


3) 포스트모던 좌파, 혹은 수정주의

그들은 현대 철학과 문화를 허무주의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포스트모던 우파의 진단과 왕구닥다리 자유주의적 심각성을 결합한 것으로 보인다. 포스트모던 좌파는 허무주의의 형이상학적 '진실'을 받아들여, 신학적 진술의 의미는 실재론적으로 이해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러나 이런 입장은 종교적 관념이 사람들을 규제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관점으로 통하는 길을 열어두고 있다. 즉 종교적 관념은 우리가 어떻게 우리의 세계를 건설해야 하며, 그 세계를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들고, 새롭게 가치를 부여하는 방법을 보여주며,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가 말하는 방식을 통해 허무주의를 정복하는 길을 보여준다는 식으로, 종교적 관념은 우리를 규제한다는 관점이다. 우리는 하느님을 위하여 하느님의 역할을 맡도록 되어 있다. 많은 포스트모던 좌파들이 불교를 찬양하며, 허무주의가 어떤 면에서 하나의 심오한 해방적 교리라고 생각한다. 최근에 그들은 자신들을 탈교회적 하느님 나라 기독교인들로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것들이 오늘날 진지한 종교적 믿음을 위해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들이다. 당신은 1)자신의 종교가 내부자들에게만 허락되는 경험에 의해 증명되기 때문에 컬트처럼 작동하는, 일종의 아이러니를 인정하지 않는 복음주의자가 될 수 있다. 당신은 또한 2)자신의 종교적 세계와 우리의 세속적인 포스트모던 세계 사이에 거리를 잘 알고 있지만 그런 아이러니와 더불어 살아가는 데 만족하는, 즉 아이러니를 느끼는 보수주의자, 혹은 '포스트모던 우파'가 될 수도 있다. 그들은 반항적인 기분으로 "이것은 나의 간증이다. 나는 여기에 목숨을 건다"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3)당신은 포스트모던 좌파가 되어, 모든 교리적 선언을 포기하고 교회를 방어하거나 개혁하려는 노력도 하지 않을 수 있다. 그 대신 포스트모던 좌파는 우리 시대의 서구문화와 공 안에서의 인도주의(이것은 서구적인 불교라 할 수 있는 해체주의, 유목주의, 과정 사상 등의 경향을 일컫는 듯하다. - 인용하며 덧붙임)를 하느님 나라가 (불완전하게) 세속적으로 실현된 것으로서 진단한다. 그들은 이런 서구문화를 부수려고 하지 않고, 그 발전에 종교적으로 기여할 수 있기를 추구한다. 


(중략)


(그런데 왜 교회를 떠나지 않느냐는 물음에 대해...)

 

교회중심적 사고와 하느님 나라 중심적 사고 사이의 상호작용에 관한 재미있는 예화로서 [...] 동성애자들은 매우 '하느님 나라'적("그 나라에는 남자도 여자도 없고....")인데, 왜 그들은 교회 안에서 완전한 승인을 얻으려고 애쓰는 것일까? 왜 그토록 이들은 열심히 양서류(양서류는 어류와 파충류의 성질을 모두 가지며 수륙 양쪽에서 생활)가 되려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종교개혁에 관한 답변을 준다. '개념 미술'은 그것이 예술로서 인정받을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주는 전통적인 미술관이 아직도 필요한 것이다.(개념미술이란 오늘날 '비재현'을 특징으로 하는 현대 미술의 경향을 말한다. 개념미술 작품들은 더 이상 이전의 미술관과 갤러리를 벗어나는 것이 이론적으로 타당할지 모르지만 여전히 거기에서 전시되고 있기도 하다. - 인용하며 덧붙임) 이와 유사하게, 새롭게 떠오르는 하느님 나라 종교는 그 혁신적인 종교적 의미가 가장 분명하게 읽혀질 수 있는 무대를 제공해주는 교회 배경이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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