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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재성이란 외부에 의한 사유다.

이진경, <외부, 사유의 정치학> 144-146

 

 

…이를 위해서는 내재성이 '내부성 interiority'과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다는 점에 유념해야 한다. 철학에서 내재성이란 무엇보다 '초월성 transcendence'이란 개념과 대비되어 사용된다. 초월성이란 초월해 있는 것, 즉 초월자와 관련되어 있다. 초월해 있다는 것은 직접 주어져 있는 것을 초월해 있다는 것, 그것의 너머에 있다는 것이다. 나 자신을 포함해 현실 속에서 우리가 만나는 모든 것, 모든 존재자들을 넘어서 있는 것. 그 모든 존재자의 원인이지만 그 자신은 어떤 원인도 갖지 않는 것, 자신 이외에는 어떤 다른 것의 규정도 받지 않는 것(모든 규정을 초월해 있는 것), 그 모든 존재자를 관통하는 변화 내지 가변성을 넘어서 있는 불변의 실체 […] 그것이 초월자다. 단지 그것만은 아니다. 칸트가 진리를 근거짓기 위해 구체적인 경험을 넘어서 그 경험을 받아들이거나 분류하는 형식, 혹은 추론하는 형식으로 '선험적 주체'를 정의했을 때, 그리하여 인식을 가능하게 할 뿐 아니라 인식을 특정한 양상으로 규정하는 불변의 실체성을 주체에 부여했을 때, 그것 역시 또 하나의 초월자가 된다.

…내재성의 사유는 초월성의 사유와 반대로 어떤 초월자도 상정하지 않고 사유하는 것이다. 초월자 없이 사유하는 것, 모든 것을 구체적인 관계 속에서, 서로 규정하고 서로 규정받는 관계 속에서 사유하는 것이고, 그러한 조건이나 관계의 변화에 따라 항상 변화하는 것으로 사유하는 것이다. […] 그렇다면 내재성이란 외부없는 사유가 아닌가? 그렇지 않다. 내재성이란 어떤 것도 불변의 본성 같은 것은 없으며, 그것과 관계되어 있는 것, 관계되어 있는 양상에 따라, 다시 말해 그것의 외부에 따라 그 본성이 달라진다고 보는 것이란 점에서 모든 것을 외부에 의해 사유하는 것이다. 요컨대 "내재성이란 외부에 의한 사유다."

 

 

 

이러한 유물론적 사유와 '초월성'의 사유의 대표격인 '신학'을 어떻게 만나게 할 수 있을까.

스피노자의 방법과 벤야민의 방법이 있을 것이다.

초월적 사유를 내재성의 장 위에서 사유함으로써 스피노자는 신학을 넘어선 신학을 구상한다.

내재성의 장 위에서 신학이라는 초월적 '형식'을 발견함으로써 벤야민은 역사유뮬론의 파트너인 신학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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