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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진, <자유의 의지, 자기계발의 의지> 中 09.12.27

"이데올로기적 담론이란 것의 핵심적인 특성 가운데 하나를 들자면 이는 언표를 발화하는 특정한 주체가 가진 의도와 입장을 "객관적인 현실 자체의 발언" 혹은 "사물의 말"로 치환displacement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의 생각을 바꿔야 한다"가 아니라 "변화된 세계의 말을 들어야 한다"는 식으로 발화될 때, 이런 언표야말로 가장 이데올로기적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미주 첨가) 이런 사고는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에서 빌려온 생각이다. 그는 이데올로기를 허위의식이나 주입된 사고와 같은 의식성의 모델로부터 떼어내어 그것의 객관적 물질성을 분석하고자 했다. 파스칼의 신학론과 라캉의 '구조주의적' 정신분석학을 참조하며, 그는 마르크스주의적인 이데올로기론의 핵심적인 주장 가운데 하나로 바로 의식의 물질성을 들었다. 이는 지젝같은 라캉주의적 마르크스주의자에 의해 "믿음의 객관성"이란 명제로 풀이되기도 한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데올로기를 허위적인 주관적 의식으로 간주하거나 혹은 의식을 가능케 하는 선험적인 도식 혹은 코드란 점에서 분석해서는 안 되며, 이데올로기란 나의 믿음이나 의식과 무관한 객관적 현실 그 자체의 '의식'이다. 예컨대 지식기반경제란 분명히 이데올로기적인 담론이지만 그것은 우리의 왜곡된 표상이거나 허위의식에 따른 오인의 결과가 아니라 그 자체 전적으로 객관적인 재현이다. 왜냐면 그것은 이데올로기적 지식 혹은 믿음의 객관성을 표현하는 전형적인 언표, "봐라! 사물(혹은 현실)이 그렇게 말하지 않느냐"란 언표의 형태로 수행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식기반경제에 관련된 담론적 실천 역시 경제적 실재를 표상하는 우리의 의식의 지향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개고간적 실재에 대한 "눈뜸", 정신분석학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데올로기적인 예속의 절차로서의 '전이transference'에 따른 결과로 간주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지식기반경제의 담론적 수행은 전형적인 이데올로기적인 언표를 수행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의 일차적인 언표수행의 방식은 바로 경제적 실재의 객관적 법칙 그 자체의 발견과 분석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지식기반경제론이 숨기고 있는 의도를 비판하는 명목에서 이뤄진 시장중심주의, 경제지상주의, 쾌락적 소비주의의 비판이 무력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p64)

 

"…신지식인 운동은 사농공상이라는 전통적 가치를 비판하는 것이든 아니면 학벌 중심의 엘리트주의를 비판하는 것이든 공통적으로 평등주의적 에토스를 강하게 주장한다. 물론 이를 두고 훈육사회의 국민을 대신해 주권적 소비자로서의 개인이라는 새로운 주체성의 모델이 맹위를 떨치게 된 것뿐이라고 간단히 일축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 신지식인은 더 이상 국민이 아니라 '자기'라는 주체를 향해 직접적으로 말을 건넨다. 이런 점에서 앞서 지적한 것처럼 신지식인운동은 이후 새로운 주체성 담론의 핵심적인 언표인 '자기계발' 담론 모델을 선취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p84)


오늘날 '자기계발'하는 주체-일반시민들이 갖는 '지식인'에 대한 반감은 "나도 이렇게 열심히 자기계발하고 있는데, 너네는 왜 내가 모르는 이야기를 하니?"일지도 모르겠다....

 

가령, 교사 노동의 "책무성", 교육재정의 "선택과 집중", 그리고 "학습자"의 "수월성", "자율성", "다양성" 같은 것은 모두 신자유주의의 세부적인 관리와 지배의 테크놀로지라 할 수 있다. … 그러므로 교육체제 재편 과정에서 대립하거나 갈등했던 사회 집단과 그룹들은 새로운 교육정첵이 실현하고자 했던 "주체성의 정치학"의 측면에서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단적으로 더 많은 자율성과 다양성, 자유와 선택의 기회 등 새로운 교육정책의 핵심적 언표들은, 전교조를 비롯해 신교육체제를 반대한 집단들 어디에서도 거부당하거나 이의를 제기받지 않았다.(p92)

 

신교육체제와 제7차 교육과정에 대한 격렬한 논쟁과 대립이 있었고, 또 그것이 한국사회 전체를 가르는 대립 공간을 만들었던 것처럼 보였어도, 실제 담론 공간 자체는 단일한 담론형성에 의해 규제되고 있었다.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새롭게 등장한 교육의 담론은 찬성과 반대로 분할된 언표의 공간을 만들어냈지만, 그런 갈등적인 언표들은 모두 새로운 담론형성의 정치학을 더 강화하면서 그것이 내포하고 있던 원리와 이념을 보편화했다고 볼 수 있다.(p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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