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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06/09
    달리는 기차위에 중립은 없다 -마지막이야기
    미도미도
  2. 2006/06/03
    달리는 기차위에 중립은 없다 두번째이야기.
    미도미도

달리는 기차위에 중립은 없다 -마지막이야기

  경영 200310283 문미선

풍경과 변화

한때 너도나도 잘살아 보기 위해 다들 미국으로 이민을 가던, 이민이 유행인 시절이 있었다. 미국은 기회의 땅이고 돈이 넘쳐나니까 일만하면 더 잘살수 있는 기회가 제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워드 진은 매우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성장한 사람이다. 대학교수라는 성공한 사람이 되기까지 빈민가에서 태어나 조선소 노동자, 군인으로 산전수전을 겪으며 공부했던 그가 성격상 노동운동에서도 가만히 있었을 턱이 없었다. 하워드 진이 경험한 어린시절, 젊은 시절은 참으로 비참했었던 시절의 이야기였다. 그는 책을 사볼 돈이 없어서 쿠폰을 모아 책을 읽었던 어린시절을 지나 힘든 조선소 노동자 생활을 겪고 결국엔 교수가 되었지만 자기가 처한 현실에 안주하지 않았다. 대학 내의 여성교수 차별이며, 총창의 권력 하에 부당한 대우에 당당히 맞서는 사람이었다.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우리가 자신이 가진 것을 잃어버릴지 모르는 두려움을 가지고 그렇게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것인지 안다면 그의 행동은 지금껏 그가 해왔던 일들처럼 의미 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을 모두 읽고 그의 용기있는 실천 운동이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인지에 대해서 느꼈지만 제목이 뜻하는 바는 도무지 알 길이 없어서 인터넷의 힘을 빌려 보았다. 중립이란 일종의 침묵을 뜻하며 부정에 대한 중립은 침묵, 허용을 뜻한다는 것이었다. 모든 것이 좋아 보이고 평등해 보이는 미국도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평등과 자유를 얻기 위해 엄청난 피와 땀을 흘렸음을 인정한다. 그리고 달리는 역사위에 선 그들이 중립을 말하기 보다는 옳은 편에 서서 옳은 방향으로 이끌어 가고자 했던 것을 알게 해주었던 책인 것 같다. 지은이의 말처럼 역사는, 사회는 소수의 사람일지라도 그들이 이끌어 가고자 하는 옳은 방향으로 이끌려 간다고 했다. 아무리 사소한 운동이고 작은 행동일지라도 하지 않는 것보다 해야 하는 것이 옳은 일이다. 그리고 하워드 진의 사회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도, 전 세계 어떠한 나라, 지역에서도 하워드 진의 생각, 그의 실천이 큰 의미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미국인 모두를 부정적인 시각으로만 봤던 내 생각에 하워드 진과 같이 정의를 위해 행동하고 실천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일깨워준 책이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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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기차위에 중립은 없다 두번째이야기.

  경영 200310283 문미선

예전부터 힘있는 국가들이 그 힘을 지키고자 하는 야망은 끝이 없었던 것 같다.  부시 대통령의 경우를 보아도 그러하다. 그가 말하는 전쟁의 이유는 국제사회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국가들. 악의 축이라 불리우는 나라로부터 인류를 구원하기 위함이라는 다소 정당해 보이는 이유를 대고는 있지만, 결국 내가 생각하기에는 미국의 권력에 해가 되는 장애를 없애고 지속적으로 인류의 선두를 유지하고자 하는 욕망에서 그 이유를 들어야 한다고 생각되어진다. 전쟁은 그 명분이 무엇이든 간에 도덕적으로 정당화 될 수 없다. 나는 전쟁세대는 아니지만 발달된 대중매체와 인터넷을 통해서 전쟁이 얼마나 황폐하고 잔인한 것인지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직접 겪어 보지 않았다고, 우리나라의 일이 아니라고 쉽게 생각한다는 것이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 북한과 분단되어 있고 미국이 지속적으로 북한을 압박하고 있는 이때 한반도도 결코 전쟁의 위험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워드 진은 베트남 반전운동을 해왔고 또한 2차대전에 참전한 사람이었다. 그는 비행기를 타고 상공에서 폭탄을 투하하는 폭격수였지만 그 당시 그가 하는 행동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어떤 모습을 죽어갔는지에 대해서 생각하진 못했다고 했다. 그의 행동이 얼마나 잔인하였는지는 전쟁이 끝난 후에야 알게 되었던 것이다. 전쟁을 하는 동안에는 사람들의 비명소리도 토막난 시체도 그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는 하워드 진의 말을 통해 전쟁이라는 것이 사람에게 생명의 존엄성을 얼마나 무참히 상실케 하는지를 잘 알 수 있었다. 

이처럼 잔인한 전쟁을 한민족끼리 하다 결국 둘로 나누어진 분단국에 살고 있는 우리를 생각하니 마음한쪽이 시려오는 듯 하다. 이렇게 잔인한 행동을 한 형제끼리 하게 되었다니 말이다. 지금도 지구촌 곳곳에서 이런 전쟁들이 끊이지 않는다. 사람들은 도대체 무엇을 위해 이런 무모한 짖을 하는 것일까,, 전쟁의 정당성에 대한 명확한 설명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것이 사람의 생명보다는 중요치 않을 것이니 말이다. 이런 명분 없는 전쟁들이 세상에서 이젠 그쳤으면 하는 바람이다. 잠깐의 권력다툼보다는 그로인해 얼마나 무고한 생명들을 해치게 되는 지를 더 간절히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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