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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7/05/30
    까칠이의 귀환!!(3)
    라울-1
  2. 2007/05/23
    She is
    라울-1
  3. 2007/05/10
    모짜르트에 빠지다.(2)
    라울-1
  4. 2007/05/10
    성장보고 23(2)
    라울-1

까칠이의 귀환!!

원래 야구를 아주 구체적으로 좋아하게 된 계기는 BK 때문이었다. 2001년 월드시리즈 양키제국과의 전쟁때 홈런 두방으로 원흉으로 몰릴뻔 하던 바로 그때부터였다. 지금은 갑자기 저 세상으로 가버린 송인득 아저씨(올봄 이봉달 선수의 화려한 복귀식도 멋지게 그려줬던 그분)의 아~ 이럴수가요... 라는 멘트는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를 더욱 확실하게 각인하며, 굉장히 협동적이며 지극히 개인적인 스포츠인 야구를 좋아하게됐던건 극성스러운 빨간양말 팬들을 향해 빨간양말 유니폼을 입고 가운데 손가락을 들었던 그의 기개와 한국에 돌아와 싸가지 없는 사진기자를 향해 주먹을 날리며 경찰서 앞에선 '한국 언론 각성하시요!!'라고 일갈했던 2003년... 바로 지독히도 세상살기 힘들고 싫었던 바로 그때부터였다. 물론 페드로나 이치로, 카브레라, 레이에스, 델가도등의 선수들도 많은 감동을 주긴 했지만, BK처럼 (인간이면서)노동자다이며 선수다운 선수를 보지 못했다. 그런 BK, 까칠이가 오늘 귀환했다. 새벽경기를 꼭 보리라 작정을 하고 일어나 그림같은 리글리필드도 구경하며 그의 '닌테도커브'를 맘껏 구경했다. '닌텐도커브'란 닌텐도사의 파워풀 프로야구라는 게임 속에나 나올법한 각이 큰 변화구를 말하는데 오늘 바로 BK의 공이 그러했다. 오른쪽 타자 바깥쪽 무릎 높이에 빠른 직구를 쏘고 그 다음에 똑같은 코스로 흘러나가는 슬라이더를 쏜다면 제 아무리 돌부처라도 들고 있던 배트를 휘두룰 수 밖에 없다. 그런 게임에서 본 듯한 공의 궤적을 오늘 티비에서도 본 것이다. 게다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플로리다 유니폼을 입은 BK를 통해 승을 따내는 모습을 보니 괜시리 맘이 편안해지고 별 이유없는 자신감이 마구 생기는 그런 하루였다. BK 그를 상징하는 단어는 '고집'이다. 콜로라도 산골 시절 구단의 부당한 처사에 항의하고 다른 팀으로 트레이드를 요구하는 발언을 서슴치 않았던 그를 보면 언젠가 한 자락하는 기록을 남기지 않더라도 뒷끝 많은 미국문화(그 덕에 그는 쓸데없이 긴 마이너 시절을 보냈다)에서 자존을 지키며 스스로의 자리를 만들어가는 선수로 그를 기억해도 괜찮으리라. 또한 BK는 '꿈과 변화'라는 목적에 충실한 가장 선수다운 선수이다. 아리조나 시절 마무리로서 맹위를 떨쳤지만 얼마지나지 않아 선발을 고집했고 무려 5년이 되가는 시점인데도 그 고집을 꺽지 않고 자신의 꿈을 위해 아주 조금씩 전진해 나가고 있다. 예를 들어 퀵모션의 불안때문에 주자 통제를 잘 못해 위기를 자초하는, 선발로서는 아주 치명적인 약점을 하나씩 고쳐갔고 왼손 타자와의 높은 피안타율에는 백도어 슬라이더라는 새로운 구질을 계발해 대응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니까 천부적인 자질을 타고난 완벽한 영웅상이 아니라 가다가 넘어지면 툭툭 털고 다시 일어나 다른 길을 찾으며 원래의 꿈을 향해 전진해 나가는 긴 시간동안 지켜보기에 딱 맞는!! 바로 그런 선수다운 선수이다. 오늘 하루 치루어내기에 급급했지만 그의 공 궤적을 머리 속에 그리며 즐거워했다. 비록 또 세상과 불화하며 때론 지쳐서 홈런도 펑펑 얻어 맞겠지만 무표정하게 다시 공을 들고 장난칠 그에게 다시 올 하루를 기대해 보는것도 나쁘지 않다. 힘내라! 까칠이... 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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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e is

사실 영화중간까지는 몇년 전에 보았던 이주노동자 옴니버스 작품이 떠올랐다. 쟁점이 뭔지는 잘 모르겠는데 뭔가 고민은 한 덩어리 짊어지고 이리저리 동남아를 부유하는 카메라를 보면서 느꼈던 울렁증이 떠올랐던 것이다. 하지만 사실... 그 막~ 울렁증이 시작될 부분부터 서서히 이 작품이 가지는 힘은 발휘되기 시작한다. 오호~ 그럴줄 알았어 이래도 울렁거려? 하면서 만드는 사람의 문제의식은 점점 깊이를 더해가고 보는 사람의 감동요구 바이러스의 흥분도 보기 좋게 가라앉혀주면서 자기 이야기를 묵묵히 밀고 나간다.  개인적으로 가장 감명 깊었던 장면은... 임신 후 화질은 떨어지지만 자그마한 카메라를 만들었다면서 그 카메라를 풀샷으로 보여주면서 마이크도 샀다 하면 점프 컷으로 그 카메라에 뿅~ 마이크가 달려 있는 장면이었다. 우습지만 그 장면을 통해 비로소 아하~ 이 작품을 만드는 이의 고민과 욕망을 조금이라도 이해했다고나 할까?

 

몇 년전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란 작품이 있었다. 지금 우리사회가 어떻게 변화하여야 하는지와 그것의 어려움, 그래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이야기했던 작품이었는데... 이 작품 역시 '노동자 민중의 국제적 연대'라는 거창한 구호보다 그것이 가능하려면 지금 우리는 무엇을 바라 봐야 하며 그래서 그 다종다기한 현실의 어려움을 어떻게 헤쳐나아가야할지에 대한 진중한 물음이 담겨있기에 작품 말미, 난 그 작품을 떠올리며 감동했다. 사람을 각성케 했다는 것. 이것만으로도 충분치 않을까? 감독은 언듯 '인간에 대한 예의'라는 말을 대화시간에 꺼내면서 스스로 이런 말랑한 이야기를 하는것에 쑥쓰러워 했다. 하지만 그런 것이 지금 현실의 모순을 극도로 고착화시키는 구실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어찌보면 그것은 하나의 이슈를 접근해 들어가는 작가의 다양한 입장중 가장 훌륭한 입장일 것이다. 소화도 시키지 못하면서 이슈의 A부터 Z까지 불안정하게 쫓아가다 결국 똑 같은 이야기를 되새김질 하는 지금의 독립다큐의 행태보다야 몇배는 좋지아니한가? 물론 가혹하지만 몇가지의 질문은 가능하다. '작가 개인의 임신이라는 경험이 없었다면 그들의 용기를 어느 부분에서 발견하고 표현할 생각이었는지'와 '그 지긋지긋한 모성 논쟁에서 이 작품이 자유로울 수 없음을 예상하지 못했는지'와 '진정성에 비해 메세지를 전달하려는 노력이 부족하다고 느낀건 혹시 본인 스스로 메세지가 밀도 있게 정리되지 못했기 때문은 아닌지'등등... 하지만 질문의 성격이 다른 면으로 보면 영화가 우리에게 던져 준 질문일수도 있기에 거꾸로 당황스럽고 띵하다. 너 같으면??? 이 작품은 나에게  '무엇을, 어떻게 이야기 할 것인가?'에 대한 '입장과 견지'의 모델을 제시했다.

 

햇살 가득했던 종로바닥의 매연을 맡으며 느꼈던 상념과 아이를 재우고 새벽녘에 다시 일어나는(수밖에 없는) 부모들의 먹먹한 현실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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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짜르트에 빠지다.

하루종일 모짜르트 음악을 들어도 질리지가 않는다.
헤드폰과 귀사이에 땀이 차도 빼고 싶은 생각이 안 든다.
덧분에 많은 전화를 부러, 또는 몰라서 안 받는다.
한가롭다기 보다는 점점 더 흐릿해지는 시선을 고정시키기 위한
무의식적인 반응의 일종이라고 자위하자.

저 바람에 흔들리는 푸른 나뭇잎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어도,
길거리 한 가운데 마이크를 들고 어색하게 소리지르는 노동자들에게 연대의 시선을 던지기에도,
이치로나 추신수나 브랜든 인지의 레이저 송구를  가만히 쫓아가는 긴장된 시선에도,
모짜르트 음악만 있으면 뭐하나 빠짐없이 뚱뚱하고 충만한 화면이 된다.

마지막, 저물어가는 감수성의 끝일거라는 위기의식은 들지만
도피라도 좋으니 수백년전의 천재가 만들어낸 선율에 더 깊이 빠져들고 싶다.


Sonata in F, K377  II. Andante _ Jos van Immerseel, Midori C Sei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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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보고 23




가온이와 대화를 하면 할수록
생활 속에 감추어져 있던
음습한 생각들이 자연스럽게(?) 들추어진다.

덩치가 크다고,
말을 더 잘할 수 있다고,
다 어른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한다.

이야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가온이가 성장하는건지
내가 퇴보하는 건지 알수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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