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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태 장관의 '도덕성' 기준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이 연금법 개정을 하지 않는 것은 부도덕하다고 했다고 한다.

연금재정의 지출의 확대로 이후 세대의 부담이 획기적으로 늘어날 것이 뻔히 눈에 보임에도 불구하고 연금지출을 줄이는 법을 개정하지 않는 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는 것이다. 지금 이대로 두면 이후 세대의 사회보험료 부담이 소득이 30%까지 확대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 정기국회에 정부와 여당은 급여는 줄이고 보험료는 올리는 연금법 개정안을 반드시 통과시킬 태세인 것처럼 보인다. 정권의 '부도덕성'까지 거론했으니 더 할말이 있으랴?

 

이른바 민주개혁세대의 대표주자라고 일컬어지는 김근태 보건복지부장관이 취임하면서 뭔가 나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진 적은 없지만, 그가 취임하고 나서 발표되는 정책을 보면 그를 이전의 장관이나 '잔여적 복지'를 이끌던 역대 정권의 장관과의 차별점을 발견하기 힘들다. 담배에 부과되는 국민건강증진기금의 인상을 통한 재정을 애초의 취지대로 국민건강증진사업에 투입하기 보다는 건강보험의 재정을 메꾸는데 사용하겠다는 것이나, 노동자의 퇴직 이후 대책에 쓰이는 퇴직금을 '퇴직연금'의 도입과 연기금의 주식투자 확대를 통해 금융시장을 떠받치는 자원으로 활용하겠다는 것이나, 현재도 의료기관이 영리추구 경향을 강하게 띠고 있기 때문에 영리법인 허용은 할 수 밖에 없는 것 아니냐 등 신자유주의적 시장화, 개방화 정책의 수정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유보 정도를 기대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부도덕이라는 말은 일종의 윤리적 기준이지, 정치적, 정책적 가치를 표현하는 말이 아니다. 신자유주의자의 눈에는 '고액 연봉'을 받으면서도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정규직 노동자들의 요구가 부도덕하고 '이기주의'에 사로잡힌 행태처럼 보일 지 모르겠지만, 노동자의 입장에서는 전체 노동자의 소득 수준을 '상향평준화'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노동자의 입장에서 보면 급여를 줄이고 부담을 늘리는 연금개정의 내용이나, 퇴직 이후의 소득을 금융자본을 떠받치는 자원으로 활용하겠다는 발상이 오히려 더 부도덕 하다. 왜냐하면 그렇게 금융시장으로 투여된 노동자의 '돈'은 또 다시 노동자의 목을 옥죄는 사슬과 무기로써 작용하기 때문이다. 김근태 장관의 '도덕성'의 기준은 정확하게 '자본의 눈과 시야'에서 판단하고 있다. 

 

그러면 그가 걱정하는 바대로 후세대의 부담을 늘리지 않으면서, 전국민의 노후를 안정적으로 보장하는 현행 국민연금제도의 개선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나?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하는 것은 연금제도가 '보편적'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지금도 지역연금 가입자 중 50%에 달하는 영세노동자층이 연금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기초연금'을 도입하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으나, 이런 주장의 이면에는 일종의 불순한 의도가 깔려 있음을 의심할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기초연금을 도입하자고 주장하면서 재원의 확보나 대상층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는 면이 많기 때문이다. 기초연금은 최저생활보장연금이 아니며, 또한 그 대상자 층도 일부에 국한되서는 안된다는 점이 처음부터 못박아 놓지 않으면 이후 그것이 현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최저생계비 급여'와 다를 것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의 방향은 현행 '적립식' 연금제도를  점차 바꾸어 나가는 것이다. 현재 연기금에는 100조원이 넘는 돈이 적립되어 있다. 총자본의 입장에서는 이에 대해 군침을 흘릴 수 밖에 없다. 사실 '퇴직연금'을 도입하려는 직접적인 목적도 이 제도의 도입을 통해 형성되리라 예상되는 100조원 이상이 되리라 예상되는 적립금을 금융시장에 쏟아부으려는 것에 있다. 금융자본의 투기적 목적의 시장운영에 노동자의 손으로 되돌려져야 할 소득이 사용되는 것이다. 이러한 메카니즘을 깨뜨리기 위해서는 현행 적립식 연금제도를 바꾸어나가는 방향에서 이를 구체화시키는 과정을 밟아 나가야 한다.

  

그리고 연금보장수준의 '평등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지금 국민연금제도를 통하여 향후 노후소득을 얻게 되더라도 소득이 적은 이는 적게, 소득이 많은 이는 많게 받도록 설계되어 있다. 따라서 그 차이를 줄여 나가야 한다. 그래서 노동자 평균 소득의 70-130% 정도의 수준에서 급여가 배분되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최근 신용불량자관련하여 이를 구제하는 제도가 잇따라서 발표되고 있다. 개인워크아웃, 배드뱅크, 신용회복위원회 등에 이어 '개인회생제'를 도입하겠다고 천명하였다. 기실 400만에 육박하는 그리고 그들의 가족까지 합치면 1000만을 넘어서는 이들이 사회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 정부와 자본도 그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제도들이 시행된다고 해서 그들의 삶의 고통이 해결되고, 또 그러한 이들이 양산되지 않을 가능성은 없다. 왜냐하면 이들이 생겨나는 것은 세계화, 금융화와 노동시장의 유연화 등 신자유주의적 전략에 기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신자유주의 전략이 정지되지 않는 한 '밑빠진 독에 물붇기'마냥 새로운 제도들이 지속적으로 발표될 것이다. 이들의 존재는 이 체제를 위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본은 '자신의 무덤을 스스로 판다'라는 고전적 문구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이미 신자유주의 전략은 '사회를 파괴하는 기계'임이 증명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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