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School of activists "글로컬페미니즘학교" 2012년 수강생 모집

 

 

이론과 운동, 노동,환경.생태,여성(적녹보라), 지구지역 행동이 만나는 공간인 글로컬 페미니즘학교가

2012년 수강생을 모집합니다. 현재 활동가나 활동가로 살기를 희망하는 사람은 문을 두드려 보세요.

자신을 소모시키는 활동방식이 아니라 스스로를 새롭게 형성할 수 있는

실천적, 감성적, 철학적 활동방식을 여기서 같이 만들어가요.

 

3월 8일 개강합니다. 모집기간(2/1~15일까지)

홈피 : http://www.sfseoul.org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홍보영상]"글로컬페미니즘학교에서" No.3 손영이야기

 

현재 "글로컬페미니즘학교"의 액티비즘 프로그램에서 공부하고 있는 손영,

학교오기 전 자신 활동과 페미니즘학교에서 만난 사람들, 공부,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에 관해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홍보영상]"글로컬페미니즘학교에서" No.2 고정갑희 이야기

 

글로컬페미니즘학교의 주도적 창립멤버이면서 주요 강사인 고정갑희 선생님이 학교를 만든 동기, 올해 3기의 의미, 작년 펴낸 저서 "성이론"과 강의내용과의 연관성, 올해 주요한 커리큘럼, 예비수강생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 등이 담겨 있습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홍보영상]"글로컬페미니즘학교에서" No.1 쥬리이야기

 

현재 "글로컬페미니즘학교"의 액티비즘 프로그램에서 공부하고 있는 쥬리, 

청소년 , 섹슈얼리티, 인권 활동가로서의 자신의 삶, 활동, 학교생활, 계획에 관해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낙태,솔/까/말]열네번째이야기, 참을 수 없는 ‘생명존중’의 가벼움: 장애여성의 선택에서 드러나는 재생산 정치

참을 수 없는 ‘생명존중’의 가벼움: 장애여성의 선택에서 드러나는 재생산 정치


 

  장애여성공감(부설 성폭력상담소) 활동가 황지성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우월한 유전자’라는 말은 누군가(종종 그 사람의 집안 내력을 포함해)의 평범하지 않은 외모나 학벌 등을 가리키는 말로, 이와 비교해 너무나도 평범한 나 자신을 위안하는 일종의 유머였던 것 같다. 하지만 현재 ‘우월한 유전자’는 평범한 사람들 누구나가 보편적으로 추구하는 ‘삶의 질’과 같은 개념으로 자리 잡고 있다. MB정부 집권 하에 냉혹한 신자유주의 분위기가 위세를 떨치면서 아무런 사회적 보호망 없는 세계에 내던져진 사람들에게 남은 것은 자기 몸 하나 뿐이다. 키와 외모는 물론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모든 것은 돈만 있다면 철저히 관리되고 변형될 수 있다. 미래는 변형 가능하다. 여기에 인간 재생산이란 것은 그 자체로 미래와 결부된다.


 

우리나라는 낙태를 처벌하지만, 임신의 지속이 모체나 태아의 생존을 심각하게 위협할 정도로 심각한 의학적 손상이나 질병이 있을 시 예외적으로 임신중지를 허용하고 있다(모자보건법 제14조). 그런데 신체 ‘건강함’이나 ‘정상성’이 곧 자본이나 경쟁력으로 등치되는 오늘날의 상황에서, 장애나 질병의 개념 또한 유동적이 되고 있다. 하나의 예로, 구순열(선천적으로 입술이 갈라지는 안명장애로 일명 ‘언청이’)은 요즘같이 발달한 성형수술 기술이면 비교적 간단한 수술만으로 완치 가능하지만, 산전검사(초음파시술)로 5개월 무렵 태아시기에 발견 가능해지면서 대부분 낙태로 이어지고 있다.


 

아무리 ‘저출산 시대’, 아이가 귀한 시대라지만 태아의 장애나 질병 여부에 따라 생명에도 계급이 매겨지고, 여기서 ‘장애’ 혹은 ‘건강함’의 개념은 신자유주의 문화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필자가 활동하는 장애여성성폭력상담소에서 2011년 상담했던 한 신체장애여성의 사례는 충격적이다. 그 여성은 성폭력으로 임신한 상황에서 임신주수와 장애로 인한 신체적 위험 때문에 낙태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할 수 없이 수많은 입양기관을 알아봤지만 번번이 거절당했다. 입양시설들은 저출산에 따른 국가정책 상 해외입양을 자제하고 있으며, 국내입양가족은 장애가 있는 부모의 아이를 입양하지 않는 다는 것을 이유로 들었다. 여기서 장애의 유전가능성 여부나 실제 태아가 장애를 가졌는지 여부는 물론 중요하지 않다. 국내 입양하는 부모들로부터 선택을 높이기 위해 입양기관은 산모의 IQ, 학력, 기타 사회적 배경과 장애의 유무 등을 까다롭게 심사하며(일부 기관들은 성폭력으로 인한 임신임을 거부 이유로 들었다), 국내 입양부모들이 입양조건으로 가장 중요하게 따지는 것은 다름 아닌 아이의 ‘건강함’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장애여성의 임신, 출산, 그리고 낙태 등을 둘러싼 제반환경 역시 급격히 달라지고 있으며, 실제 장애여성 개개인은 더욱 더 첨예하게 그것들과 갈등하기도 하고 모순을 겪고 있기도 하다.

재생산을 둘러싸고 지속되는 불안


 

 장애여성은 임신과 출산을 하지 않을 것을 선택하거나 아예 가능하지 않을 거라는 것이 아직까지 일반적 통념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장애라는 몸의 차이가 ‘의존성’ 및 ‘독립할 수 없음’으로 의미화 되고, 사회적 체계가 그들의 독립을 전혀 지원하지 않는 상황에서 장애여성이 혈연가족이나 공동거주시설로부터 독립할 수 있는 빠르고 안전한 방법은 많은 경우 결혼이다. 그리하여 실제 수많은 장애여성에게 결혼, 임신과 출산은 삶에서 매우 절박한 과정이고, 이는 일반적 통념을 위반하는 것이다.


 

결혼 후 임신과 출산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장애여성이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인정을 받거나 가족 역할로 부과된 임무를 실천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하지만 여기엔 지속적 불안이 따라온다. 장애가 있는 내 몸에서 ‘정상적’ 아이가 태어날 수 있을까 혹은 내가 아이를 ‘정상적’으로 기를 수 있을까와 같은 미래에 대한 전망이 예측불가능성 속에서 불안을 야기한다. 장애가 있는 아내이자 며느리, 그리고 어머니로서 태어난 아이의 장애여부는 자신의 가족구성원으로서 지위를 더욱 위협할 수 있다. 역으로 장애인 어머니를 두는 것이 아이에게 상처가 될까봐 두렵기도 하다.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지원책이 거의 부재한 상황에서 (특히 장애가 있는)아이 양육은 현재 삶의 고통을 더욱 가중시킬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 자신과 아이 모두의 존재 자체를 위협하는 위험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임신 중의 많은 장애여성이 산전검사에 더 강박적으로 매달리고, 산전검사 결과 태아에게 조금이라도 이상이 있을 시 십중팔구 임신중지를 선택하고자 한다. 태어나는 아이의 ‘정상성’, ‘장애/질병’의 문제는 역설적으로 장애여성에게 ‘낙태 선택권’을 더욱 요구하게 만드는 것이다. 여기서 ‘선택’의 맥락은 다시 말해, 장애여성이 독립적 사회구성원으로 인정받기 위해 사회적으로 거의 ‘강제’ 되다시피 하는 결혼과 출산, 양육(장애아동의 사회적 존재가치 문제를 포함해)의 문제가 실상 사회적 책임은 없고 오로지 장애여성 개인의 ‘선택’의 문제로만 귀결되는 모순에서 구성되는 ‘유일한/선택지’인 것이다.


 


 

‘맞춤아기’ 기술과 정상/비정상의 기제 재생산


 

임신과 출산을 위해 병원을 이용하는 과정에서 장애여성은 어떤 경험을 하게 될까? 의료기술과 장애를 가진 몸의 역동은 ‘정상성’에 대한 가치판단 문제와 결부돼 매우 첨예해진다. ‘생명을 살린다’는 명목으로 발달한 의료기술은 한편으로 장애나 질병을 가진 사람들에게 더 나은 삶을 보장받으리라는 희망을 제시하고, 일정정도 그러한 기대에 부응해왔다. 그러나 오늘날 질병과 건강의 개념이 급진적으로 변화됨과 동시에 질병의 치유, 건강한 생명의 탄생 등과 같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도 자유로운 소비와 선택의 장으로 포섭됐다. 그리하여 철저한 자기계발의 사명을 띤 개개인은 미래와 결부된 재생산의 문제 역시 의료기술을 이용해 적극적으로 선택하고 소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나날이 발달하여 보편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산전검사 또한 이러한 정치경제․문화적 현실과 결코 무관하지는 않다(그러나 산전검사를 통해 태아에게 이상이 발견됐을 시 치료할 수 있는 기술은 거의 전무한 실정이라는 것은 생각해볼 지점이다). 소위 ‘맞춤아기’ 기술로 알려진 착상전유전진단(Preimplantation Genetic Diagnosis, PGD)은 체외수정을 통해 생성한 배아를 유전자검사를 통해 선별해 내는 기술이다. 배아단계에서부터 유전적 장애나 이상이 발견됐을 시 ‘폐기’ 가능하다는 면에서 태아의 낙태와 같은 성격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전적 성격의 장애를 가진 여성에게 재생산적 선택지가 넓어졌다고 진단하기엔 아직 이르다. 태어나는 아이의 ‘정상성’을 둔 장애여성의 선택은 이미 자발적 선택이 아닌 강제적 횡포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골이형성부전증이라는 유전적 장애를 가진 한 여성은 비싼 유전자검사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 PGD기술을 사용하지 않고 결국 골이형성부전증장애를 가진 아이를 낳았다. 이에 병원은 기술이 있는데도 이를 이용하지 않고 장애아를 낳는 ‘선택’을 한 그 장애여성을 비난했다. 임신 중에는 태아보험 가입도 허락되지 않았다. 어머니의 장애를 지표로 아이가 장애를 가질 확률이 높다는 근거를 들어 보험회사로부터 태아보험 가입을 거절당한 것이다. 더구나 골이형성부전증 장애는 진단․치료기술 또한 거의 계발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어서,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아이가 살면서 온전히 감당해야 할 몸의 고통은 더욱 끔찍한 것일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이 결국 발달한 의료기술은 정상/비정상의 기제를 강력하게 재생산하면서 동시에 ‘정상성’의 선택을 사실상 ‘강제’하고 있다. 장애아 출산을 예방할 수 있는데도 이를 선택하지 않는 것은 스스로 영원한 ‘비정상’이 되어 사회적 차별과 고통을 감당하겠다는 ‘선택’으로 구성된다.
 


 


 


 


 

장애여성의 선택에서 진정한 ‘생명존중’의 의미 되새겨야


 

임신중지와 여성 재생산권에 대한 사회적 담론이 각축할 때마다 재생산권리 그리고 생명의 범주를 어디까지 말할 수 있을지와 같은 문제가 매번 난관에 봉착하는 듯하다. 특히 임신중지 논의에서 항상 대립하는 양상을 띠는 것은 ‘여성의 임신중지를 선택할 권리’와 ‘태아의 생명권’이다. 재생산과 관련해 여성의 인격, 선택권을 완전히 무시하고 태아의 지위를 임의로 재단하는 보수적 생명론자의 논리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장애여성의 입장에서 (‘비장애’ 여성 중심의) 여성재생산권 운동이 불편한 것만도 아닌데 또 그렇다고 적극 한 목소리를 내기가 선뜻 어려운 지점이 있어왔다.


 

여성재생산권운동이 오늘날 끊임없이 재구성되고 변화하는 몸의 ‘정상성’, ‘건강함’에의 욕망, 그리고 그것과 교차하는 신자유주의적 ‘선택’, ‘자유’에 대한 더 깊은 성찰로 나아가고 있는지 의문이다. 오늘날의 정치경제․문화 논리는 더 많은 개개인들의 몸에 다양한 방식으로 침투해 들어가 자발적으로든 타율적으로든 ‘정상성’의 통제를 가하며, 이러한 통제의 기제는 ‘선택’과 ‘자유’라는 수사 아래 은폐되고 있는 현실을 진지하게 돌아볼 때다.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경험과 인식 범위에 따라 ‘정상성’을 판가름하며, 때문에 태아나 신생아의 ‘정상성’을 판단하는 기준은 상이할 수 있다. 특히 요즘과 같이 ‘정상성’의 기준이 나날이 높아지고 새로워지고 있는 추세에서 개인들의 자발적인 재생산 통제 역시 유동적이며 심각한 수준으로 치달을 것이다. 이와 관계된 모든 선택, 즉 장애를 가진 태아를 태어나게 할지 여부에 대한 선택이나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아이를 살게 할지 여부에 대한 선택 모두의 책임은 오직 여성 개인의 ‘선택/결정권’이란 이름으로 짐 지워지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태어나는 아이에게 장애로 인한 고통을 대물림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그렇지 않게 할 선택권을 엄마가 과연 가지고 있는가, 태아 단계에서 낙태를 선택하는 것과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신생아를 죽게 내버려두거나 유기하는 것 사이에 어떤 본질적 차이가 있는가... 이러한 문제들에 개별 장애여성은 스스로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그녀들은 적극적으로 산전검사를 받고, 장애아를 낳았다고 비난하는 병원에 저항감을 드러내고, 태어난 아이가 장애를 가질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죽게 내버려두라고 하는 주변 사람들과 맞서 치료해 살리는, 이와 같은 일견 모순된 선택들을 하고 있다.


 

추상적이고 선언적인 생명론자의 논리는 오히려 우리사회 장애여성을 포함해 모든 여성을 억압하고 심지어 그들의 생명마저 위협하고 있다. 진정한 ‘생명존중’의 의미를 되새길 필요가 제기되는 이 시점에서 우리사회가 기본적 몸 경험과 선택에서 다양하게 모순을 겪고 있는 취약한 여성들의 구체적 현실에 이제라도 귀 기울여야 할 것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모집요강] NGA 페미니즘 학교 2012 수강생 모집 안내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강좌공지]리우스의 알기 쉬운 자본론 강좌 첫번째-자본의 생산과정

자본은 어디서 어떻게 생산되고 어떻게 움직이나?


자본론을 읽어봐야 겠다고 생각했던 분들은 누구라도 오세요~
 

리우스의 자본론 강좌에서 알기 쉽고 재미있게 풀어 드립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낙태,솔/까/말][13]임신과 낙태, 내 몸에 대한 나의 권리 그리고 굴레

임신과 낙태, 내 몸에 대한 나의 권리 그리고 굴레


 

  설화


 

임신을 원하는 나


 

며칠 전 이사갈 집을 보러 갔는데 아이들 세 명이 우르르 달려 나와 얼굴도 모르는 나를 반겼다. 아이의 엄마는 내 또래의 젊은 여성이었다. 지친 일상에 아이들이 주는 웃음들로 집안은 꽉 차 있는 듯 했다. 예전에는 마냥 남의 이야기인 듯 했던 출산과 양육이 어느 새 내게 가까이 있는 일처럼 느껴졌다.


 

나는 남성과 결혼을 했고 5년이나 지났지만 아직 아이가 없다. 연애 초반에는 이러다 결혼하면 나는 덜컥 애부터 갖겠구나 하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실제 살아보니 아이를 가져서 키울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나질 않았다. 한 동안 ‘내가 무성애자인가?’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우리는 거의 섹스를 하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은 나에게 ‘배란일에 딱 맞춰 성기결합섹스를 하고 수정란이 내 자궁에 안착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굳이 섹스가 없이도 괜찮은 일상을 살고 있기 때문에 나는 그 말들이 보통 성가신 게 아니었다. 임신이 안 되고 있는 상황, 그 원인이 나에게 있다는 듯 주변 사람들은 나를 재촉했다.


 

내 삶 속에 가족 관계가 깊이 들어와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래서 남성과 결혼한 기혼 여성으로 정체화하는 것에 대하여 인정하며 타협하는 부분들이 많아지고 있음을 느끼기도 한다. 임신과 출산, 양육을 계획하는 문제도 그렇다. 아이에 대한 생각이 아예 없지는 않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준비가 충분히 되었을 때 임신과 출산을 계획하자는 생각은 서로 공유해왔다. 그럼에도 출산에 대한 나의 결정과 선택은 주변을 둘러싼 압력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다. ‘아이만 낳아 키우면 가족의 완성’이라는 후진 통념 속에서 나와 남편의 삶은 비뚤어진 것이었다.


 

몇 년 동안 이에 대해 무시해왔지만 지금은 다소 지쳐있는 것 같다. 솔직히 아이가 예뻐 보이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여러 힘든 일들을 겪었을 때 주변의 선배 여성 활동가들이 아이를 권유한 적이 있었다. 한없이 나만 바라보는 존재가 내 곁에 있다는 것, 그게 엄청난 부담일수도 있지만 때로는 마냥 주기만 하는 사랑을 할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종종 주변에서의 출산 소식을 들을 때, 조카나 친구의 아이들이 활짝 웃는 얼굴로 나를 반길 때면 솔직히 아이와 함께 하는 삶도 나쁘지는 않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현재의 나는 아이를 원하며, 마땅히 여성 스스로 임신을 선택할 수 있는 사회가 오기를 간절하게 바라고 있다.


 

맴도는 이야기들


 

몇 달 전 친한 동생의 낙태 이야기를 들었다. 덤덤하게 이야기를 꺼내던 동생의 얼굴을 떠올리며 나의 경험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도 너와 같은 경험을 했다는 말을 너무도 해주고 싶었다. 찌질하게 울지 않으리라 다짐했으면서도 우리는 손을 꼭 붙잡고 울었다.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조건으로 몰아넣고 아이를 지우면 범죄자 취급하는 세상이, 새삼 여성들에게 너무 냉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이슬람 사회에서 돌로 쳐 맞아 죽는 여성들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우리는 서로에게 “괜찮다, 다 괜찮다”라는 말을 하면서 위로했다. 낙태를 전면적으로 불법화하고 있는 지금, 터무니없이 비싼 수술비에 놀라기도 했지만 친구가 한 동안 받고 있을 심리적 고통이 걱정되었다. 그리고 다시금 내 모습을 떠올렸다.


 

현 지점에서 과거를 반추하는 것, 아이를 원하는 현재의 내가 덜컥 임신이 되었던 과거의 나를 돌이켜봤을 때, ‘혹’과도 같던 내 몸의 일부를 떼어내는 일과 그 ‘혹’에서 자라날 어떤 인간의 모습을 그리며 고대하는 일이 이렇게 종이 한 장 차이였는지 생각도 못했다. 내가 처한 상황과 맥락에 따라 임신, 출산은 다른 의미일 수밖에 없다. 원치 않는 임신을 하는 여성들이 많다는 것, 임신을 원해도 낳아서 키울 조건 자체가 되지 않는다는 것, 사회 경제적 사유에 의한 낙태는 허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해도 그것이 낙태하는 여성들의 고통을 온전히 경감시켜주지는 못 한다. 나에게 그 고통은 몸에서 오는 게 아니라 ‘말을 할 수 없는 것’에서 왔다.
 


 


 


묻어둔 기억


 

묻어두었던 기억들을 다시 하나 하나 꺼낸다. 페이지를 집어서 넘기고 싶은 과거이지만 애써 그러지 않기로 한다. 벌써 8년이나 흘렀다. 학생 운동하며 지냈던 너무 바쁘고 지쳤던 나날들, ‘임신’ 자체는 내 삶에서 없는 단어였다. 그렇게 생각해야 했다. 운동을 정리하는 선배들이 많았기에 개인적으로 악감정이 받쳐 있던 지라 연애는 그냥 섹스만 즐길 수 있는 통로 정도로만 여겼다. 연애 당시에 했던 섹스가 진정 나의 욕구였는가 하는 질문도 던져보지만, 그 때는 그냥 나의 욕구라고 규정해야 했다. 아무런 준비 없는 섹스를 한다고 순진하고 멍청하다고 타박할 겨를조차 없었다.


 

정확히 난 두 번의 임신중지 경험이 있었다. 첫 번째는 응급피임약을 복용했다. 배란일에 관계를 가졌고 피임을 하지 않았던 터라 매우 불안했다. 당시에는 여성들이 임신이 된다면 응급피임약을 복용하거나 낙태수술을 하는 것은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지만 ‘내 일이’ 될 거라는 생각은 미처 못 했다. 나는 바로 산부인과로 달려갔다. 여성 의사를 찾아 달려갔는데 당시 여성 의사는 임신이 아닌 것 같다고 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약을 복용해보자고 했다. 나는 주의사항에 대해 제대로 듣지도 못했고, 바로 노레보 약을 복용하였다. 헌데 약을 먹은 당일 밤새 잠을 못 이루었다. 질염에 걸린 듯 가려웠고 통증이 이어졌다. 임신을 하지도 않았는데 괜히 약까지 먹었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내가 참 바보 같구나 하는 신세 한탄을 했다. 당일에 밤새 써야 할 글이 있었다. 죽치고 컴퓨터 앞에 앉아 약 먹은 사실을 잊기 위해 애썼다.

두 번째는 산부인과에서 낙태시술을 받았다. 그 때는 생각지도 못한 임신이었다. 당시 애인은 나에게 ‘칼처럼 냉정했다’고 말했는데 나는 생각 이상으로 침착하고 냉정했었다. 그렇지만 매 순간마다 나에게 각인된 기억은 또렷하다.


 

학교 화장실에서 임신테스트기에 양성 반응이 나왔을 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바로 학교 앞 산부인과로 달려갔을 때
엄지만한 아기집이 내 자궁에 있는 것을 봤을 때
딱딱할 줄 알았던 의사가 의외로 친절하여 마음이 놓였을 때 - 학교 앞 산부인과였는데 그 때는 참 많은 사람들이 이 공간을 다녀갔구나 싶었다.
통증이 무서워 계속 아프냐고 질문했을 때
전신마취하면서 저항하기 어려운 뻣뻣함이 온 몸을 휘감을 때
기분 좋은(?) 꿈을 꾸었을 때
침대에 쓰러져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고 잠에 빠졌을 때
샌드위치와 주스를 먹으며 허기를 달래던 때
관절이 아파서 먹고 있던 약을 임신 중절 때문에 못 먹게 되었을 때
수술 당일에는 겨를이 없었는데 생각해보니 수술비는 학생회하면서 받았던 장학금으로 냈던 것임을 알고 경악했을 때
전신마취 수술을 받으면 깜빡한다던데 자꾸만 기억들이 정지되는 것 같아 불안했을 때
몸 추스릴 겨를 없이 농활대장으로 농활에 다녀와야 했을 때


 

낙태 합법화를 요구하며 싸웠던 나는 순간마다 무력해졌다. 잊고 싶었으나 잊혀지지 않아 괴롭기도 했다. ‘애써 잊어야 하는가, 내가 살면서 충분히 겪을 수 있는 거라 생각하자’며 긍정할 수 있는 나의 경험이라 여겨도 의외로 낙태의 기억은 나를 계속 짓눌렀다. 무엇보다 수술 이후 바로 농활대를 꾸려 농활을 가야 했을 시기에는 정말 절망적이었다. ‘내가 너무 힘들고 아프다’고 한 소절만이라도 입 밖으로 꺼내 말해보고 싶었다. 헌데 그럴 수가 없었다. 나는 나에게 돌아올 화살들이 두려웠다. 농활을 준비해야 하는 사람은 나와 동기 단 두 명이었고, 졸업한 선배에게 나의 사정을 알리며 도움을 요청하자 선배는 “왜 피임을 하지 않았느냐”고 동정어린 말들로 타박했다. 야속했지만 유일하게 내 말을 들어주어 고마웠다. 최소한 나라는 존재가 인정을 받을 수 있었던 시간 같았다.


 

아무런 생각조차 누구를 향한 원망조차 할 수가 없었다. 내 스스로 내 몸에 커다란 폭력을 저질렀다는 생각에 온종일 휩싸여 있었다. 제일 답답했던 것은 나 ‘이래서 아프다’고 말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봉인된 내 아픔을 말할 수가 없는 것, 자꾸만 기억이 깜빡거리고 관절이 아프고 뼈마디가 쑤셔도 왜 그런지 말할 수가 없었다. 나를 다그치며 더욱 운동에 매진해야 했다. 말하는 것 자체가 힘들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기 위해 후배들과 세미나하면서 내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었고 나름 학생운동을 한다고 자부하면서 ‘여성의 몸에 행해지는 통제에 저항하자’고 외치던 것도 생각이 난다. 그렇지만 어떤 것이 나를 계속 휩쓸고 있었다. 이야기가 통하지 않는 다수의 대중들(!)에게는 내 사연을 말할 수가 없었다. 사실 말할 필요도 없었지만, 너무도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서 더욱 결정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침묵을 강요당했다. 더욱 힘들었던 것은 자책이었다. 십대 때 나를 지배하던 기독교적 세계관으로 인해 자꾸만 죄책감에 시달렸다. 분명 ‘나에게 어떤 큰 고난이 올 것이다’라고 생각했고, 자살에 대한 충동과 우울증을 겪으며 병원을 드나들었다. 불행은 늘 겹쳐온다던데 나에게 ‘낙태’ 역시 당시 닥쳐 온 불행들 중 하나였다.
 


 


 

내가 듣고 싶은 낙태하는 여성들의 이야기


 

난 여전히 ‘낙태’에 대해 떠올렸을 때 냉정해진다. 프로라이프 의사회가 말하는 것처럼 ‘낙태’가 여성의 몸과 태아의 생명 둘 다를 위협하는 일이라면 나는 태아보다 나를 살리기 위한 선택을 할 것이다. 어느 여성이 그렇지 않겠는가. 임신과 출산은 단순히 ‘행위’자체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임신’을 할 ‘가능성’이 있는 여성들이라면 ‘아무하고나 섹스하고 다닌다는 낙인’과 ‘평생 누군가를 보호하고 책임져야 하는 노동’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본인이 임신을 선택한 것이라면 생애주기로 봐 줄만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즉 피임에 실패하거나 성폭행에 의한 임신을 하게 된다면 삶의 구성 요소 하나하나가 완전히 뒤바뀌게 되는 매우 ‘폭력적인’ 상황에 이르러야 한다. 하지만 법을 중시하는 사람들, 태아의 생명권을 중요시하는 사람들은 여성의 삶을 쉽게 또 철저하게 무시한다. ‘절대적인 생명론’에만 갇혀 있는 현재의 낙태 관련 쟁점은 실제 낙태의 주체인 여성들의 목소리들은 철저히 배제하고 있다. 임신과 낙태, 이 사이의 선택이 내 몸에 대한 나의 권리라 해도 결국 내 삶에 일어날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모든 문제들이 함축되어 있는 것이기에 쉽게 결정하기 어렵다. 아이를 원하는 현재의 내가, 아이를 낳을 생각도 키울 능력도 없는 당시의 내가 임신과 낙태에 대해 고민하는 것은 결코 같은 맥락 속에 있지 않은 것처럼. 아직까지도 그 불안과 혼돈 속에서 내가 내려야 할 선택을 한 큐에 정리해준 당시 산부인과 의사의 말들 하나하나가 기억난다. 그리고 안도한다. 붙잡을 사람이 없었으니 수술이라도 잘 되게 해달라고 빌 수 있는 대상은 그 뿐이었으므로. 나의 고통이나 경험을 말할 수 있는 대상이 그만큼 없었으므로.


 

 임신과 낙태라는 말 뒤로 숨어 있는 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태아를 지운다는 것, 그 수술을 해야 하는 것, 나의 고통을 알아주지 않는 것, 말할 수 없는 것, 지지와 공감이 너무도 필요한 것 등 여성들이 겪는 각각의 상황마다 너무도 여러 가지의 맥락들이 있다. 그렇지만 이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사회는 이 맥락들을 ‘생명에 대한 살해’로 삭제시켜버린다. 나는 ‘내가 죽인 생명’에 대해 ‘역지사지’를 할 수 없다. 그 때 그 엄지만한 태아가 어떻게 자라났을지 생각조차 하기 싫다. 이십대 초반, 한창 자유로울 나이에 아이가 내 몸 찢고 나오는 고통 겪으며 낳아서 입양시켜 괴로워 할 바에야 당연히 수술해서 없애는 게 낫다. 내가 하고 싶은 선택을 한 것이다. 시간을 돌린다 해도 불가피하게 선택했을 것이다. 사실 어느 것 하나 완벽한 피임이란 없기 때문에 더욱 안전한 낙태 환경, 그리고 여성들이 자유롭게 병원을 찾아 시술받을 수 있는 조건과 환경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게 현명한 것 아닌가.


 

낙태 경험 이후에 우연히 길을 지나다가 중고생들이 반낙태 캠페인을 벌이는 모습을 봤다. 정말로 화가 치밀었다. 아이들에게 반낙태 캠페인을 시킨 자들이 어떤 쓰레기들일지는 뻔했다. 아이들은 캠페인에 동원되지 않아도 교육이나 학습 속에서 쓰이는 ‘생명론’에 길들여져 있다. 종교적, 윤리적 시선 속에서 ‘낙태’는 ‘범죄’다. 그렇지만 임신을 할 수 있는 여성들에게 ‘낙태’는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나중에 자신이 범죄자가 되었거나, 이 범죄에 연루(!)되었을 때 아이들이 느낄 당혹감은 단순히 아이들만의 것이어야 하는가. 그나마 페미니즘이나 여성운동을 만났던 나에게 낙태는 ‘있을 수 있는 일’로, ‘말할 수 있는 경험’으로 각인되지만 만약 내가 이러한 가치관을 갖지 못했다면 도를 넘어선 자책감과 자기기만으로 괴로워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는 자기가 자기 자신에게 하는 살인 행위다. 왜 이 ‘살인행위’를 부추기는가.


 

연간 100만건이 넘는 낙태시술이 이뤄지고 있다고 한다. 100만건이 넘는 생명이 죽어간다는 이야기보다, 여성이 아무 말도 못하고 겪어야할 100만번의 아픔이 더 크게 다가온다. 가리고 숨길수록, 자신을 범죄자로 만들수록 사회는 낙태를 선택한 여성들을 고립시킬 것이다. 이제는 낙인과 책임감에 두려워 봉인된 나를 끄집어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작업은 고립되고 있는 여성들의 목소리들을 조직하고 싶다는 욕구와도 맞물린다. 내가 겪은 고통을 공통으로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을 더 찾고 싶고 그것이 어떤 것으로부터 강제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임신이나 낙태에 대한 우리의 욕구나 생각들은 어떠한지 툭 터놓고 이야기해보고 싶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낙태,솔/까/말][12] 낙태는 한 인간으로서의 선택권

낙태는 한 인간으로서의 선택권


 


에 바 (간호사)
 


 

 


 

처음 낙태에 관한 글을 써달라는 제의를 받았을 때 여러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낙태=생명의 경시라는 우리 사회의 꼬리표도 그렇거니와 낙태라는 단어가 주는 부정적인 의미에서도 그러했다. 사실 낙태를 깊이 생각해 보기엔 내 주위 사람들은 평범(?)한 사람들 뿐 이었다. 미혼모 친구 라던지 원치 않은 임신을 한 사람들이 없었기에 낙태를 그저 먼 얘기로만 받아 들였다. (아니면 내가 주변인들 정보에 너무 무심했거나…)
간호사인 내 직업만 고려하면 낙태를 접할 법도 하건만 나이 어린 친구들의 임신과 출산은 봤어도 합법적으로 나 낙태하겠노라 병원에 온 케이스는 아직 보지 못했다. 내가 근무하던 병원에선 낙태시술을 행하지 않았다. 나에게 낙태란 그래서인지 몰라도 음지의 영역으로 다가왔던 거 같다.
 


 


 



낙태는 여성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의 선택권이다.

기존의 ‘솔까말’ 글들을 읽어 보았는데 나는 활동가나 학술인이 아니기 때문에 전문용어나 어려운 표현을 써가며 낙태를 지지하기 보다는 내가 느끼는 낙태에 대해 솔직히 쓰고자 한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내가 원하지 않는 임신을 한다면 어떨까? 라는 생각을 먼저 해보았다.
난 아이를 키울 생각도 없고 아이를 낳고 난 후의 상황을 감당할 자신도 없다. 한국사회에서 부모는 아이에게 정서적인 지지와 사랑, 경제적인 안정감 등 많은 것들을 부담해야 한다. 한데 원치 않은 아이를 어쩔 수 없이 낳았다면 이런 헌신적인 관계를 장담하기 어렵다. 원치 않은 아이를 낳은 부모나 그렇게 태어난 아이는 무슨 죄인가. 굳이 여성의 삶까지 깊이 들어가지 않더라도 한 인간으로서 자신이 원하는 관계를 만들 주체성과 자신의 신체 결정권과 삶을 좌우할 선택권 정도는 있어야 한다고 본다. 우리 사회에 낙태에 관한 담론은 여성으로서 그리고 더 나아가 인간으로서 자기 삶을 선택할 권리를 무시하고 있다.


 

현행법에 행복추구권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 라는 내용은 누구나 알 것이다. 정부는 탁상에서만 말할 것이 아니라 실제로 여성에게 출산과 낙태의 주체적이며 적극적인 권리를 부여하여 한 개인으로서의 권리와 행복을 추구할 제반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하지 않을까. 정부가 나서서 낙태를 금지하고 처벌하는 건 여성의 인권을 무시하고 개인의 행복을 침해하는 월권행위가 아닌가. 게다가 출산 후 복지정책조차 빈약한 상태에서 무조건 낙태를 금지하다니…낙태금지법은 모든 책임을 여성에게 전가하는 막무가내식 정책이란 느낌이다.


사랑과 안정 속에 보살핌 받을 권리가 있는 아이

나는 어릴 적 가정환경이 그리 좋지 않았다. 어렸을 때 불안한 가정환경과 부모의 이혼 등으로 정서적 아픔을 겪었기 때문에 가정의 사랑과 정서적 지지가 늘 그리웠다. 원치 않은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마음은 어떨까? 특히 그런 아이를 임신하면 그 책임을 여자에게 떠넘기고 나몰라라 하는 무책임한 남자들이 많다. 그 몫을 고스란히 감당해야 하는 여성은 이중의 삶을 책임져야 한다. 우린 무관심한 대상이나 원치 않은 것들을 감당해야 할 때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 대상이 인간이라면 잔인해지기 까지 한다. 환영없이 태어난 아이는 이 모든 상황을 감내하며 살아가야 한다. 우리는 여성뿐만 아니라 아이에게도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인지했으면 한다. 이왕이면 축복 속에서 탄생하여 환영받는 삶을 살도록 해줘야 하지 않을까.


 

 


 


 


여담으로 읽은 낙태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

최근에 ‘괴짜 경제학’이라는 책에서 낙태에 관한 재미있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미국 역사상 가장 중요한 범죄감소요인이 낙태라는 것이다. 미국은 건국초기 낙태를 허용했다가 1828년 뉴욕시가 최초로 낙태를 제한하였다. 60년대 들어서야 일부 주에서 강간과 근친상간, 산모가 위험할 경우에 한해서 낙태를 허용하게 되었다. 70년대 이후에는 ‘로 대 웨이드’ 판결이 계기가 되어 낙태가 미국전역에서 합법화 되었다.

이 판결 직후에 출생한 아이들이 10대 후반에 다다랐을 때 낙태가 금지됐던 이전시대의 10대들과 비교해 보니 범죄율이 감소했다는 거다. 낙태금지 시대에 원치 않게 태어난 아이들과 낙태 합법화 후에 태어난 아이들의 범죄율 사이에 유의미한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낙태 합법화 판결로 가장 큰 혜택을 받은 여성이 미혼모나 10대 임신부, 가난한 여성 혹은 세 가지 조건을 모두 갖춘 여성이라고 봤을 때 이러한 주장은 나름 의미가 있다. 특히 여성이 원치 않은 아이를 가질 경우는 아직 결혼전이거나 불행한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있거나 경제력이 좋지 않아 자식을 키울 여건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 부모조차 자기자신의 삶을 책임지기 힘들 때, 그 가혹한 환경에서 태어난 아이나 그 아이를 양육해야 하는 여성이나 살아갈 삶이 고되긴 마찬가지다.

그 어느 누구도 여성과 아이에게 고된 미래를 강요할 수 없다. 여성은 원치 않은 아이의 양육으로 정신적, 신체적인 부담과 고통을 받을 수 있다. 또한 그런 환경을 받아들여야 하는 아이 역시 정서적으로 불안하게 살아가긴 마찬가지다. 국가가 여성의 인권을 우선시하면서 출산과 양육을 보장하는 제도를 마련하기는 커녕 무조건 낙태금지라는 의무만을 강요한다면, 이는 출산과 낙태에 관련한 불합리한 부담을 여성과 아이라는 개인에게 전가하는 꼴이 된다. 이는 인권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속박일 뿐이다. 우리 모두 낙태와 낙태금지법에 관해 현실적으로 고민해 볼 일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공방포럼]11월 경제와 노동공방 포럼 술과 노동 : "주본주의"

글로컬 액티비즘 센터

2011_11월 경제와 노동 포럼 "술과 노동"

: "주"본주의(酒本主義)"에 초대합니다.

자본주의와 주본주의 사이에서 일상을 매일 허덕일 수밖에 없는 이 땅의 노동자들...

술은 노동 그리고 노동자의 일상과 어떤 관련이? 이 사회가 술에게 부여한 권력은?

정말 술은 술로만 끝나는 것일까? 그런데 일반적으로 회자되는 술의 담론 속에 늘 '여성'은 빠져 있다???

술 푸는 사람들과 술 고픈 사람들과 술 아픈 사람들이 엮어 내는 이야기 한 꾸러미를 안주 삼아,

중구난방으로 가을 밤 한 꼭지를 술과 더불어 나누어 봐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