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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청소년이 바라보는 낙태--낙태, '솔/까/말' 프로젝트⑨

낙태, '솔/까/말' 프로젝트*** 낙태를 범죄화 하려는 움직임들에 반대하며, 낙태는 여성의 삶과 건강에 관한 문제라는 것을 솔직히 까놓고 말해보기 위한 릴레이 글쓰기 액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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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 '솔/까/말' 프로젝트 ------⑨ 여성청소년이 바라보는 낙태

                                                                     쩡열(교육 공동체 나다)




                                                             (그림: 공기)

내 인생의 첫 임신공포

나는 낙태경험이 없는 여성청소년이다. 그러나 생리하기 전 낙태라는 단어를 머리 속에 달고 살고 있다. 낙태와 임신은 나에겐 거의 동의어로 존재하고 있으니까. 

사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난 낙태라는 건 정말 소수의 사람들이 어쩌다 하는 무언가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버스와 전철의 성추행이 아닌 강간의 위협을 느꼈을 때에 피임과 낙태 임신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박히기 시작했다. 16살 때 즈음 혼자 배낭을 메고 한 달간 터키를 다녀오게 됐을 때에 엄마가 나에게 혹시 위험한 일(아마 강제적인 성폭력 상황)이 생기게 되면 내밀라며 콘돔을 챙겨가란 말을 할 때는 됐다고 뭐 그런 일이 있겠냐고 이야기하기 한 달 뒤의 이야기였다. 지금 생각하면 뭐 챙겨가지 그까이꺼 하겠지만, 그 때에는 콘돔이라는 건 뭔가 흉측스러운 물건이었으니까 싫었다. 그리고 그 삽입 직전의 강간상황에서 내가 깨달았던 건 저런 놈들이 콘돔을 내민다고, 아 그렇군.. 하며 흔쾌히 나의 제안을 받아들여 콘돔을 착용하고 나의 피임을 걱정해줄 놈들은 아니겠구나 정도? 그 이후 내 인생의 첫 연애에서는 섹스까지 갈 위험이 있는 스킨십을 절대적으로 차단했었고, 그리고 얼마 뒤 곧 첫경험도, 섹스도 자연스러운 일들이 되었다. 

왜 여성청소년들은 사회에게 남성에게 성적자기결정권을 빼앗긴 거지?

하지만 피임에 무지했던 건 확실하다. 비청소년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청소년들은 임신에 대한 두려움, 낙태에 대한 두려움이 크지만 피임에 대해서는 거의 무지하다. 남자놈들이야 뭐 콘돔착용조차도 귀찮아하는 일이 태반이지만 여성청소년이 자기 손으로 할 수 있는 피임은 말 밖에 없다는 기분이 든다. ‘임신하면 안돼’ ‘콘돔 꼭 써줘’ ‘하지마’ 라는 말들. 

아직도 편의점에 가서 내 손으로 콘돔을 사는 일은 꺼림칙하다. 피임약을 사려고 약국에 가는 것도 차마 못하겠다. 피임약을 먹게 된다면 물어보고 싶은 것도 알아보고 싶은 것도 상담해보고 싶은 것도 많이 있다. 하지만 이 사회에서 성적자기결정권을 강탈당한 청소년이기 때문에 내가 부끄럽지 않아도 산부인과, 편의점, 약국 그 어느 곳에도 알리고 싶지도 묻고 싶지도 않다. 이 중 어떤 상황에서라도 그들이 나의 나이를 물어보고 민증을 요구하는 (물론 묻는 곳도 안 묻는 곳도 있겠지만 물어보았을 때의 나의 당황이 떠오른다.) 그 상황과 눈빛들이 끔찍하니까 아무리 임신을 걱정하고 낙태를 걱정해도 결국 우리들의 피임은 콘돔이 한계인 게 현실이다.

성욕은 청소년에게도 엄연히 존재한다. 그리고 연애도 존재하고 섹스도 존재한다. 인정할 걸 인정해서 덜 위험한 상황으로 만드는 게 맞지 무조건 막는다고 일어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사회에서 법으로 모든 시민의 섹스를 금지한다고 법을 만들고 돌을 던진다고 성욕이 존재하지 않아지는 것은 아닌 것처럼 말이다. 청소년들의 성적자기결정권 이야기에 그렇게까지 심하게 알러지 반응을 일으키는 건 그쪽의 정신건강에도 좋지 않고, 청소년들의 현실에도 전혀 도움되지 않는다.

물론 청소년들의 섹스를 인정하고 성적자기결정권을 인정한다고 하면 위험한 일들이 많이 일어날수도 있고, 더욱 자연스럽게 성폭력의 상황들이 일어날 수도 있다. 하지만 권리를 강탈당한 현재도, 비청소년들의 세계에도 성폭력의 상황들은 충분히 많다. 그런 성폭력들이 두렵다면 이 사회가 가지고 있는 남성중심주의라던지 성에 대한 비상식적인 시선들을 바꿀 수 있는 무언가를 해야 하는 게 더 옳지 않을까?

누구 맘대로 누구한테 뭘 강요하는 거지?

한 공부모임에서 페미니즘을 이야기 할 때에 낙태가 주제였던 적이 있다. 난 그 때 처음으로 낙태를 경험한 여성이 정말 이렇게 많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 그리고 태아의 생명권을 근거로 낙태를 반대하는 이들과 여성의 신체의 권리를 근거로 하는 이야기 사이에서는 갈 곳을 못 찾았었다. 그러게… 생명을 쉽게 죽이는 건 나쁜 거 잖아… 하며 흔들거리는 내 머리를 진정시킨 건 다름아닌 ‘왜 그 아이를 낳아서 한 사람의 인생을 책임지게 될 그 사람에 대한 생각은 아무도 해주는 않지?’ 였다. 

임신을 하게 되면 상대방 남성도 부담을 느낀다고 한다 (느껴야 한다 허허). 하지만 모를 것이다. 생리할 무렵이 되면 고작 하루 이틀 늦어지는 현상에 끊임없이 불안해 하며 피가 난자한 꿈을 꾸고, 꿈 속에서 피투성이의 작은 사람들이 시체에 붙어있는 장면을 보고 일어나서는 공포에 질려있는 것이 어떤 건지. 약국에 가서 임신 테스트기를 사서 당장이라도 근처 화장실에 가서 테스트를 하고 결과가 뜨기까지의 그 20초 가량의 시간 동안 머릿속에서는 몇 번씩 내가 아는 테스트기 사용방법을 점검하고, 두 줄이 임신인지 한 줄이 임신인지를 떠올리는지.

그들이 아 젠장, 어쩌지? 하고 있는 동안 뱃속에 아이를 갖게 된 한 청소년은 세상이 무너질 것이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을 것이고, 생리하기 전 내가 했던 섹스를 떠올리며 후회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내 인생의 앞길까지 주욱 펼쳐지겠지. 세상은 그녀한테 말할 것이다. ‘어린 게 발랑 까져서’ ‘다 큰 년이 자기 몸하나 간수 못하고’ ‘키울 자신도 능력도 없는 게 섹스는 왜 해?’ 수 많은 말들을 들으며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는 자신을 원망하고, 부모에게도 말할 수 없고,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현실을 원망하지 않을까? 

낙태를 한 여성들. 그리고 내 또래의 여성 청소년들이 임신중지를 쉽게 선택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충분히 아팠을 거고, 충분히 죄책감에 짓눌려 힘들었을 거다. 아이를 낳았을 때의 사회적 위치도 환경도 경제도 아무것도 부담해주지 않는 사회에서 출산을 선택할 수 없었던 그들에게 범죄자라는 낙인은 너무 잔인하다. 경제활동이 금지된 청소년들, 인생의 거의 모든 선택을 자신의 손으로 할 수 없이 살아가고 있는 청소년들이 이미 문제가 일어난 그 상황에서 그 데미지를 감수하면서까지 자신의 문제에 대해 했던 선택을 사회적으로 법적으로 경제적으로 그마저 하지 못하게 막게 되었을 때에는, 요즘 많아진 영아유기라는 일까지 벌이게 되는 것에 대해 한 번쯤은 고민해봤으면.

덧붙이자면 불법이 되어버려 수술을 받기도 힘들고, 금액도 점점 오르면서 가장 고통 받을 건 청소년이든 저소득층이든 사회 아래쪽의 여성들이 될 거라는 생각이 자꾸 들어 속상해지는 요즘이다.


솔직히, 당신도 하고픈 말 있잖아요~ 여자들의 목소리로 솔직히 말하기 시작한다면, 낙태를 둘러싼 지금의 혼란을 풀어낼 수 있을 것 같아서 시도한 꿍꿍이였습니다. 어쩌면 생뚱맞을지도 모를 우리의 말걸기가 과연 화답을 불러낼 수 있을까, 머뭇거리기도 했습니다. 이 프로젝트에 공감하고 또 함께 말하고 싶은 분들은 메일로 글을 보내주세요. 일기나 낙서면 어때요. 그림이나 사진, 영상, 음악 등 다양한 말하기를 환영합니다. 우리들의 말하기가 낙태에 대한 처벌과 낙인을 이겨낼 수 있도록 함. 께. 말. 해. 요.

http://www.glocalactivism.org _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NGA)에서는 <2011년 글로컬 페미니즘 학교 수강생>을 모집 중입니다. 관심 있는 분의 많은 지원 바랍니다. 문의: 02-593-5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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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 '솔/까/말' 프로젝트----⑧ 낙태, 죄인이라는 낙인에서 권리로...(김소영)

낙태, '솔/까/말' 프로젝트*** 낙태를 범죄화 하려는 움직임들에 반대하며, 낙태는 여성의 삶과 건강에 관한 문제라는 것을 솔직히 까놓고 말해보기 위한 릴레이 글쓰기 액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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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 '솔/까/말' 프로젝트----⑧ 낙태, 죄인이라는 낙인에서 권리로...


김소영


낙태, 죄인이라는 낙인


두 번의 낙태를 했었다. 첫 번째 낙태는 몹시도 고통스러웠고 두 번째 역시 그랬다. 임신사실을 확인하고 낙태를 결심하는 과정까지, 첫 번째, 두 번째 모두 똑같이 심리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고통스럽고 괴로운 과정이었다. 그나마 남자친구가 임신한 나를 외면하지 않고 함께 병원에 가주었으며 낙태를 위한 비용을 지불했다는 것 정도에서 남자친구의 책임은 끝나있었다. 나머지 고통은 온전히 나의 몫이었다. 나는 스스로를, 애까지 지우는 독한 년이라고 자학했고 누구라도 이 사실을 알까봐 직장에는 거짓말로 휴가를 냈다. 집에서는 그대로 직장을 다니는 것처럼 출근을 했고, 자취하는 친구 집에 잠깐씩 몸을 누였다. 영화에서나 보던 낙태를 한 이가 나였고 그런 나는 그냥 숨겨져야 하는 존재 같았다. 그 때까지 나는 그냥 그래야 하는 줄 알았다. 임신에 대한 어떤 대비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은 그냥 내가 혼자 감당해야 하는 줄로만 알고 있었다. 그로부터 최근까지 낙태사실에 대해 털어놓고 이야기한 적은 거의 없었다. 머리로 나는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이었으나, 가슴으로 나는 죄인이었으니, 생명을 죽인 죄인이었다. 그 생각을 떨쳐내기는 몹시도 힘들었다.




▶  여성이 “나는 낙태를 했습니다(I had an abortion)”는 문구를 담은 티셔츠를 입고 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미련한 짓이었다. 하다못해 누구한테든 털어놓아야 했다. 그랬다면 적어도 속은 후련했을 텐데. 그러나 나는 엄마나 여동생에게는 말을 꺼낼 생각도 못했고, 친구들에게조차, 사무실에서 함께 일하는 여성동료에게도 내 고통에 대해 조언 받을 생각을 못했다. 그나마 여자대학교를 다닌 여성들은 임신이나 피임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낙태를 선택할 때 이런저런 조언을 받는다는 건 아주 나중에서야 알게 된 사실이다.

중고등학교에서 하는 정말 형식적인 성교육 이후, 나는 피임, 임신, 낙태에 관한 정보를 가질만한 공식적인 기회가 거의 없었던 듯하다. 물론, 다시 한 번 소심하게 굴자면, 내가 똑똑하지 못해 그런 정보를 알고 찾아다니지 못한 것도 있겠다. 그러나, 실제로 과연 그런 기회가 있다 하더라도 미혼여성들 중 과연 임신, 피임, 낙태에 관한 일을 제 일처럼 여겨 정보를 득달같이 챙겨가는 이들이 몇이나 될까? 장담컨대, 임신테스트 막대기에 뜬 보라색 두 줄을 확인하고 나서야, 뒤늦게 자신의 무지를 자책하며 어찌 산부인과를 혼자서 갈 것인가, 허벅지를 찔러가며 후회하는 게, 임신을 알게 된 (특히 미혼) 여성들의 첫 표정일 것이다.




 ▶ 임신테스트 막대기, 2줄이 나타나면 임신을 뜻한다.
 

왜 그들은 피임을 하지 않았을까? 


나는 왜 그렇게 무식했을까? 라고만 생각하다가 문득 억울해졌다. 두 번의 낙태를 경험하면서 나는 충분히 고통스러웠다. 주위사람을 모두 속이는 것 같았고, 엄마에게 죽도록 미안했고, 미래에 생길 내 아이에게 뭔가 잘못하는 것 같았고, 내가 다시 임신을 할 수 있을까, 걱정에 시달려왔다. 지금에 와서 나의 무식과 무지를 다시 통탄하며 다시 나를 죽일 수는 없다. 왜 나만 아파해야 하나? 왜 나만 죄를 저질렀고 잘못이라는 건가? 왜 나만 이렇게 고통스러워야 하고, 왜 나만 이렇게 죄를 지어야 하나? 정작 피해와 상처, 고통으로 몸부림친 건 나였다. 고스란히 아파하고 몸져누워있던 건 온전히 나 혼자였다. 그러니 질문을 돌려보자. 도대체 왜 그 남자는 피임을 하지 않은 건가? 나보다 나이도 많던 그 남자친구는 왜 피임을 안 했나? 왜 남성들은 피임을 하지 않는 것인가? 

그들이 대답할 선택지가 많지는 않다. “(피임방법을) 몰라서”, “(피임도구가) 없어서”, 또는 “(피임하기가) 싫어서”. 여기서 “피임도구가 없었다”는 대답은 “피임방법을 알았으나 도구가 없었다”는 뜻으로 해석되거나 피임의 의지문제로 치환(사오면 될 일이다!)될 수 있다. 혹은 백번 양보해서 “피임도구가 그것뿐인 줄 알았다(설마... 정말?)”로 해석될 수 있겠다. 그러니, 결국 그들의 대답은 “몰랐다” 아니면 “싫었다” 둘 중의 하나가 되는 셈 아닐까.

그나마 “몰랐다”는 대답이 “싫었다”는 대답보다 더 많기를 바라야 할까... 책임회피를 위해 “몰랐다”고 둘러댈 가능성을 생각하더라도, 그게 ‘교육을 통한 개선의 여지’는 클 수 있으니 말이다. 아니면, “싫었다”가 더 많기를 바라야 할까... “몰랐다”에서 “싫었다”로 넘어간다는 건 적어도 성관계에서 피임의 책임이 자신에게도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고, 성관계에서 여성이 주도적으로 피임협상을 해내기는 몹시도 힘든 일이니까. 

이래저래 재보고 추측해 봐도 마지막까지 억울한 것은, 남성들은 피임을 하지 않았다고, 여자 친구가 낙태를 하게 했다고 욕먹고 범죄자 취급을 당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성관계는 함께 해도, 범죄자로 낙인찍히는 것은 대다수 여성이다.




▶ 콘돔을 통한 성교육의 한 장면



몰랐던 거 알면 되나, 중요한 건 교육인가

지금도 의문스러운 것은, 첫 번째 낙태를 한 후, 왜 그 의사는 ‘우리’에게 피임법을 가르쳐주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다. 피임법에 대해 최소한이라도 환기시켜주고 강조했다면, 어찌됐든 두 번째 낙태를 막을 가능성이 조금은 높아질 수도 있었다. 당장 낙태를 받은 산부인과 의사조차 피임법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불법낙태라는 사실을 지적해주지도 않는 마당에, 낙태를 하는 여성들만 사후에 범죄자 취급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임신과 피임, 낙태에 대해 얻는 정보경로가 ‘경험과 체험’ 조금 더 나아가 ‘인터넷’ 말고는 딱히 의지할 곳 없는 이 한국 사회에서, 저출산에 낙태율이 높다고 일부 의사들이 개탄만 할 일이 아닌 것이다. 

그래, 나도 몰랐고 너도 몰랐다면 아는 게 힘이겠지. 그렇다면 가장 쉽게 떠오르는 해결책은 남녀를 불문한 교육의 실질적인 시작일까. 중고등학교, 아니 요즘은 어린이집, 유치원에서도 성교육을 한다지만, 그 과정은 일 년 중 일회성으로 진행되는 의무적 요식행위로 보인다. 그러나, 무엇보다 교육의 힘은 일관성 있는 태도를 유지하는 데 있다. 성에 대한 지속적인 교육과 토론은 애들이 말귀를 알아들을 때부터 시작해서, 초경, 첫 성관계, 임신, 출산할 때까지, 꾸준히 지속적으로 그리고 비중 있게 구축되어야 할 인프라 중의 인프라다. 의무교육기관의 정기적인 커리큘럼 제공, 교육기관 내 교사들을 위한 재교육프로그램 실시,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상담프로그램 확보 등은 당연히 전제되어야 할 조건인 것이다. 교육 하나만 놓고서도 할 일은 엄청나다. 

여성과 건강, 교육과 보건의료의 만남 

그러나 교육만 시작한다고 문제가 해결되길 바라는 건 무리다. 교육을 한다 해도, 당장 여성들이 임신했을 때 누구를 만나고,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는 또 다른 문제다. 여중생이 임신했을 때, 그녀 주위에 도움을 받을 사람이 있는가? 교육을 백날 해봐도, 실제로 성관계를 가질 때 남성이 감촉 떨어진다고 콘돔 끼기 싫다고 버티면, 여성은 어째야 하는가? 임신한 여성이 사회경제적인 이유로 낙태를 원할 때 의사가 거절하면 어째야 하는가? 실제로 어린이, 청소년기, 가임기여성들이 자신의 몸에 변화가 생길 때 적절하게 대처하고 있는가? 이 모든 질문들은 하나도 녹록한 것이 없다. 

그러나 내 권리를 알고 내 권리를 일상적으로 누릴 때 정치적 경험은 성장해갈 수 있다. 건강할 권리로서 나의 권리. 시도 때도 없이 병원과 친하게 지내라는 말이 아니다. 적어도 산부인과가, 남들 눈치 보면서 못 갈 데 가는 것처럼 쉬쉬하며 다닐 곳은 아니지 않냐는 말이다. 솔직히, 산부인과는 여성과 가장 친밀해야 하는 공간이자 기관이지만, 미혼여성들에게 산부인과는 선입견과 편견, 미지의 대상일 뿐이다. 임신을 바라는 기혼여성이 아니면 그닥 반가운 곳도 아니다.



여전히 멀게만 느껴지는 산부인과, 우리는 보다 당당하게 산부인과에 드나들 수 있어야 한다.

사실, 산부인과에서 가임기 미혼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피임, 임신, 낙태, 출산에 대한 일련의 프로그램들이 일상적으로 진행되고 여기에 참가하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아야 한다. 초경 시작한 여자어린이부터 대상으로 피임교육과 실습을 시키고 산부인과 연계해서 피임-낙태상담센터도 만들어야 하지 않나. 불임클리닉도 있는데 낙태클리닉이 없으란 법 없다.


내 몸의 상태를 잘 알고 원하는 임신을 할 때 여성은 건강하게 출산할 수 있다. 피임, 임신, 낙태, 출산, 그 어떤 것이든 이 기본적인 내 몸의 상태를 알고 나의 임신의지를 묻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이를 위한 교육과 일상적인 보건의료서비스가 맞물려갈 때, 최소한 여성이 건강할 수 있는 피임, 임신, 낙태, 출산의 조건이 마련되는 것이다. 나를 돌아봐도, 산부인과에서 상담프로그램이라도 해줬으면 그렇게 피폐하고 힘들게 그 시절을 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물론 기혼여성들을 위해서는 임신, 유산, 낙태, 불임, 출산, 신생아 돌봄에 대한 일상프로그램이 필수적이겠다. 이렇게 되려면, 당연히도 국가적 차원에서 보건의료시스템과 산부인과의 역할과 위상에 대해서도 고려를 해야 될 것이다. 얼마 전에 임신했다 출산한 내 후배도 비싼 산후조리원 다닌 이후에, 애를 어떻게 돌봐야 할지 몰라, 산후 몸조리하기에도 바쁜 나날을 쪼개가며 좌충우돌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 도대체가 임신한 여성들을 위해, 출산지원금 달랑 던져주는 것 이외에 그 흔한 예비엄마아빠 교육도 무료로 안 해주면서, 애는 낳아서 누가 키우나? 출산보조금 20만원이 키워주나? 그것도 같은 서울에서도 지역구마다 지원금 액수도 다르던데. 이 경제위기 시대에, 없는 집에 애 생기는 걸 어떻게 감당하라는 것이며, 구립어린이집도 안 늘리고, 영유아예방접종 예산도 깎아먹으면서, 누구 보고 범죄자라고 질러대는 건가.

 

 


▶출산을 강조하는 정부의 지하철 광고에 한 시민이 “정말 무책임한 말이에요, 누가 키우는데...”라고 의견을 적었다.



저출산의 뿌리는 낙태가 아니다

낙태율을 낮춘다고 저출산이 해결되는 게 아니다. 저출산은 남한사회가 가진 총체적인 경제위기상황과 저열한 사회복지정책의 결과, 여성차별적인 노동시장정책 등이 복합된 문제다. 제발 저출산을 빌미로 여성들을 희생양 삼지 말라. 경제위기라고 가장 먼저 잘려나가고 비정규직 파트타임으로 일하면서도, 때로는 결혼을 포기하며, 때로는 출산을 미루어가며, 여성들은 자신들의 삶을 치열하게 이끌어가고 있다. 70년대, 80년대는 아이를 낳지 말라고 제한하더니, 이제는 아이를 낳으라고 여성들을 범죄자 취급하는 당신들의 변덕스러움에, 여성들의 건강이 해를 입을 수는 없다.

우리는 누구보다 건강하게 살 권리가 있다. 위에서 언급한 제안들은 여성의 건강을 전제로 한 피임, 임신, 낙태, 출산과정을 실현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할 뿐이다. 저출산 문제는 지금의 상황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총체적인 분석으로 사회구조를 변화시킬 때, 그 실마리를 풀어갈 수 있다.

덧붙여, 적어도 저출산 대책이라며 낙태율 감소에 힘쓰는 사람들은 적어도 최소한의 자료는 확보하는 있는 건지 궁금하다. 낙태율은 미혼여성이 높은지, 기혼여성이 높은지, 그들이 왜 낙태를 선택했는지, 성관계를 하는 남녀들이 피임에 대한 정보는 어떻게 얻는지, 최소한의 자료를 통해 그들의 인식과 결정을 변화시킬 수 있는 근본적인 방향을 모색하고는 있는지 참으로 궁금하다. 물론 어렵겠지, 낙태가 불법이라 자료파악이 안 될테니. 그 자료를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낙태는 합법화되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 마지막으로 든다. 낙태를 불법으로 낙인찍을수록 여성들의 불법적인(!) 낙태는 더욱 음성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그 길에는 더욱 더 추락하는 출산율과 악화되는 여성건강만 있을 뿐이다.



솔직히, 당신도 하고픈 말 있잖아요~ 여자들의 목소리로 솔직히 말하기 시작한다면, 낙태를 둘러싼 지금의 혼란을 풀어낼 수 있을 것 같아서 시도한 꿍꿍이였습니다. 어쩌면 생뚱맞을지도 모를 우리의 말걸기가 과연 화답을 불러낼 수 있을까, 머뭇거리기도 했습니다. 이 프로젝트에 공감하고 또 함께 말하고 싶은 분들은 메일로 글을 보내주세요. 일기나 낙서면 어때요. 그림이나 사진, 영상, 음악 등 다양한 말하기를 환영합니다. 우리들의 말하기가 낙태에 대한 처벌과 낙인을 이겨낼 수 있도록 함. 께. 말. 해. 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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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 솔/까/말 프로젝트 -⑦ 임신중지를 둘러싼 우리 얘기

 


낙태, '솔/까/말' 프로젝트*** 낙태를 범죄화 하려는 움직임들에 반대하며, 낙태는 여성의 삶과 건강에 관한 문제라는 것을 솔직히 까놓고 말해보기 위한 릴레이 글쓰기 액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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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 솔/까/말 프로젝트 -⑦ 임신중지를 둘러싼 우리 얘기


명숙(여성주의 수다모임 살롱,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


* 이 글은 여성주의 수다모임에서 오갔던 임신중지(낙태)에 대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제 생각을 정리한 것입니다.


# 수다로 푸는...


여성주의로 생활을 돌아보자는 ‘여성주의수다모임 살롱’에서는 한 주제로 이것저것 수다를 떤다. 아직은 미숙하지만 여성주의의 삶을 꿈꾸며 매달 모여 이야기를 나눈다. 수다가 주는 맛이란 다양한 측면을 요리조리 본다는 것, 내 생활을 솔직하게 비추어본다는 것이다. 물론 자주 삼천포로 빠질 때가 많다는 흠이 있지만...6월 주제는 ‘임신중지(낙태)’였다. 낙태라는 용어 자체가 태아를 떨어뜨리다라는 뜻이어서 태아를 중심으로 한 시각에 갇혀있기도 하고, 결국 태아의 생명권 논쟁으로 이어지게 되는 시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또 임신한 여성이 자기 몸에 대한 결정권이라는 측면에서, 임신중지가 더 나은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수다모임의 성원은 다양하다. 성적지향도, 성별도...


# 실천윤리학자 피터 싱어가 본 낙태... 생명권과의 오래된 논쟁


철학을 전공하는 한 사람이 낙태에 관한 피터싱어의 입장을 요약 발제했다. 피터싱어는 임신중지에 대한 윤리적 논란은 인간존재의 생성이 점진적인 과정임을 간과하기 때문에 생긴다고 보았다. 원하지 않는 수정란의 자의적인 제거가 문제가 되는 이유는 인간-생명에 대한 고전적 정의(인간이라는 종에 대한 집착)때문이라고 했다. 수정란을 잠재적 인간으로 보고, 수정란 제거는 죄 없는 인간을 죽이는 것과 같다는 등식이 우리에게 있다고 했다. 이어서 그는 수정란-태아와 성인을 구별할 명확한 경계선이 있지 않기 때문이며, ‘어디서부터 인간이냐’ 라는 질문에 답한다. 그는 태아를 인간으로 보는 것은 단지 인간 종에 속하느냐가 아니라 사회적 관계에서 인격체 유지여부로 보아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인간생명임은 쾌락과 고통을 느끼는 정도에 따라 결정될 수도 있으며 나아가 배아는 고통을 느낄 수 없으므로 생명이 아니라고까지 말한다. 

그는 ‘생사판단의 도덕적 기준’이라는 글에서 “다른 것들이 동등하다면, 한 존재가 자신이 생명을 갖고 있음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사실로 인해 그 생명을 끝내는 것이 진정으로 나쁜 일이 되는 것이다. ..중략... 가령 신생아들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다. 똑같은 이유에서 나는, 인간 태아가 모든 확률에 있어서 유일무이하고 합리적이며 자의식적인 존재가 될 것이라는 사실이 낙태에 반대할 이유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더구나 그는 미숙아로 태어난 태아가 체외 생존가능성이 낮고, 장애인으로 태어났을 때 불행한 가능성이 높은 사회현실에서 낙태를 불법시해서는 안 된다며 낙태를 인정해야 한다고 했다.


# 임신한 여성은 사라진 윤리학


“ 인간이냐, 아니냐, 생명이냐, 아니냐라는 논쟁으로 낙태를 인정하냐, 마냐로 이어질 수 없다” 
“ 임신한 여성의 시각이 전혀 없어”
“ 여성을 부수적 도구로 보는 시각 아니야”


잠깐 목소리들이 커졌다. 발제한 사람이 놀랄 정도로...... 참가한 사람들은 피터싱어의 논리구도를 동의하기 어렵다고 했다. 피터싱어가 낙태를 동의하는 입장이다 하더라도 말이다. 피터싱어의 논리에는 여성은 거의 보이지 않기 때문이었다. 누구 입장에서 임신중지를 바라보아야 하는지, 주체가 빠졌다. 임신이 여성의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이기에 출산이든 임신중지이든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여전히 임신중지의 주체인 여성은 사라지고 태아만을 주체로 사고하고 있다. 임신의 전 과정-수정란부터 체외수정까지 다 다뤄지지만 임신한 여성이 어떤 마음이고, 어떤 상황에서 낙태를 결심하는지는 제대로 다뤄지지 않은 채, ‘생명이냐, 아니냐라는 구도’를 중심으로 할 때 빠지는 함정은 여전히 존재한다. 초점이 여성이 아닌 태아에 맞춰진 상태에서 임신중지권에 대한 논의는 한계적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보수주의자들이 말하듯이 여성을 ‘태아를 낳을 몸으로 대상화’하며, 이는 ‘생명권’논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으니까.


더구나 어느 누구도 어디까지의 생명은 인간이고, 어디까지의 생명은 인간으로 볼 수 있다고 정할 수 없다. 더구나 생명권에 대한 논의가 인간이 아닌 자연-생태계로 확장되고 있는 현시점에서 더욱 그렇다. 피터싱어의 말처럼 체외수정이나 칠삭둥이의 생존가능성만으로 인간여부를 판단한다면, 과학의 발전에 의존하는 생명에 대한 논의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더구나 장애아에 대한 낙태허용은 장애인의 재생산권을 제한하는 것으로 차별이다. 임신중지권은 여성이 자기 몸에 대한 결정권을 인정해달라는 것이고, 원치 않는 임신을 중지할 권리를 인정해달라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접근은 임신중지와 여성의 건강권이라는 측면은 건드리기도 어렵다.


# 임신중지가 여성들에게 남기는 피해


“원치 않는 임신은 과실 치상 아닐까?”
“임신중지를 하는 여성들이 고통을 겪으면서도 결정하는 이유를 생각해봐야해.”
“낙태를 처벌하려는 논리는 임신(한 여성의 몸)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는 거랑 같아.”


임신중지를 하는 여성들이 고민 없이, 판단능력이 없어 임신중지를 결정하는 것일까? 아니다. 이 사회는 임신중지를 하는 여성 중 기혼여성의 비율이 높은 현실은 외면한 채, 여전히 임시중지를 한 여성들은 쾌락에 빠진 무책임한 여성으로 묘사하고 취급한다. 여성은 성욕이 없는 존재여야 한다는 논리에도 반대하지만 여성의 성욕을 안전하게 하기 어렵게 하는 지금의 ‘남성중심적 성규범’이 판치는 세상이라서, 콘돔을 비롯한 피임기구를 제대로 사용하기도 어렵다. 누가 챙겨주지 않아도 본인이 챙겨야 할 피임기구들을 쉽게 들고 다니기도 어렵다. 여성이건 남성이건 항상 콘돔을 상비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은 말로는 권장할 일이지만 여성이 가방에 콘돔을 상비하고 다니면 ‘넘 밝히는 거 아니냐’라는 식으로 치부되는, 창피한 일이 되기 일쑤인 현실이다. 가방에서 피임약이 떨어지자 어머니가 매우 놀라며 다그쳤던 경험 등은 여성들이 한번쯤 겪었을 일들이다. 이런 현실을 고려한다면, 낙태는 처벌하면서 피임 실패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는 것은 균형감조차 없는 거 아닌가라고. 그런 식으로 따지면 원치 않는 임신은 과실치상 아니냐고. 그런데 왜 그에 대한 논의는 없냐고 말이다.


이로 인해, 여성은 원치 않는 임신으로 자기 몸에서 일어나는 변화에 놀라고 걱정하며 고통에 시달린다. 더구나 임신중절 수술을 하게 될 때 신체 손상을 겪는다. 현행 법에서 임신중절이 가능한 경우는 “본인(임부)이나 배우자가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나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로 한정되어 있어서, 그렇지 않은 경우는 불법수술이란 딱지가 붙으면 더욱 병원에 가기 힘들다. 아이를 키울 수 없어 임신중지를 해야 하는 사회경제적 임신중지를 인정하지 않고 있으니 역설적으로 사회경제적 약자의 비용부담은 더욱 크다. 주변의 시선도 걱정이고, 수술 후 제대로 된 몸조리조차 어렵다. 게다가 사회적 편견으로 인해 죄책감에 시달리기도 한다. 사회적 편견이 보이지 않더라도 고통-자책감으로 힘들어한다. 이렇게 고통과 피해에 시달리면서도 여성이 임신중지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현실과 그로 인한 피해-고통을 사람들은 외면하고, 깊이 이해하려 들지 않는다. 지금처럼 임신중절-낙태 수술만을 부각시키는 지금의 논의는 임신중절후의 여성의 삶과 신체적 정신적 변화를 전혀 다룰 수 없다.


# 임신중지로 달라지는 관계들


“ 낙태를 경험한 연애가 더 기억에 남아.”
“ 그 경험이 그 파트너에 대한 자꾸 집착을 이어지는 이유는 뭘까?”


남성이든, 여성이든 낙태를 경험한 연애관계는 무책임한 일을 한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나 피해의식과 실망, 파트너에 대한 집착 등이 마음에 남았다고 한다. 여성이 임신중절 수술로 인해 겪게 되는 손상들을 생각한다면 파트너 남성이 그에 대해 미안함을 느끼는 것은 당연할 수 있다. 수술 당사자인 여성이 피해감을 느끼는 것도 당연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파트너에 대한 집착으로 이어지는 건 조금 다를지 않을까?


대부분 여성들에게 강요하는 순결이데올로기는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임신중지경험을 쉽게 말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자기만의 기억에 대한 불안감이 ‘집착’으로 나타나는 것일 수 있다. 지금은 새로운 관계-만남에서 임신중지의 경험을 말하는 게 쉽지 않은 현실이다. 남성의 경우도 ‘관계’, ‘섹스’가 삶의 문제와 동떨어져 있다가 삶의 문제가 되면서 고통스런 문제를 회피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그 회피의 방식중 하나가 결혼인 경우도 많다. 그 고리에 남성은 ‘책임감’이라는 가부장적 감수성, 다시 말해 관계에 대한 책임감을 넘어선, 태아의 아버지라는 책임감을 걸려 있는 것은 아닌지, 여성은 ‘아이가 주는 모성성’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를 낳고 가정을 이루는 것으로 이어지는, 남성파트너에 대한 종속을 일으킨 건 아닌지는 따져보아야 하지 않을까. 둘의 관계가 특별해서가 아니라 ‘임신과 임신 중지’를 했기에 특별한 관계로 여겨지거나 집착이 일어난다면 흔쾌한 일은 아닐 것이다. 임신이라는 여성의 몸에 일어나는 변화가 주는 새로운 경험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그것이 관계에 대한 집착으로 이어진다면 결국 여성을 재생산의 도구쯤으로 여기는 가부장사회의 시각에 갇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임신한 여성은 모두 결혼해야 하는 것으로 여겨진다면 비혼 여성의 재생산권은 발디딜 틈이 없을 것이다.


임신이 어느 한 사람에 의해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니 임신중지를 경험한 남녀사이에서도 변화를 주는 건 당연할 수 있다. 더구나 그 감정이 이 사회에서 임신 중지를 죄악시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 아닐 수 있으면 좋겠다. 물론 우발적 상태 임신이 생기지 않도록 연애도, 섹스도 조심해야겠지만 말이다.


# 성에 대한 권리와 피임


“섹스가 좋기는 한데, 임신할까봐 무서워 못 하겠어”


원하지 않는 임신의 공포는 섹스에 대한 기피로 이어지기 쉽다. 정말 운 없이 한 번의 관계가 임신으로 이어진다면 섹스는 안정적인 관계에서만 할 수밖에 없고, 서로를 책임질 수 있는 관계에서만 할 수밖에 없다면, 여성에게 사실상 성에 대한 권리는 제한되는 거나 마찬가지가 아닐까? 그런 점에서 피임은 매우 중요하다. 피임기구를 사용했지만 임신이 되는 경우도 있으니 이를 위한 섹스 후 72시간 내에 복용하는 ‘응급피임약’의 접근성도 높아져야 할 것이다. 인공수정 등 임신가능성을 높이는 기술이 발전하는 것만큼 피임기구 및 피임약이 발전한다면 ‘임신중지’에 대한 논란도 많이 사그라들지 않을까. 물론 우선적인 것은 섹스를 하면서도 함부로 상대 남성에게 피임기구 사용을 적극적으로 말하기 어려운 문화, 콘돔 사용을 ‘성적 쾌감의 반감’으로 여기며 남성들의 사고가 바뀌어야 하겠지만....적어도 임신과 임신중지가 여성의 삶을 선택하는데 장애물로 등장하지 않기 위한 예방책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래서 여성들이 원하고 행복한 선택으로서 임신, 출산이 이루어졌으면 한다. 동시에 임신중지의 선택권이 얼른 우리에게 주어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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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 '솔/까/말' 프로젝트 ⑥ "당신의 낙태는 안전하십니까?"

 

낙태, '솔/까/말' 프로젝트*** 낙태를 범죄화 하려는 움직임들에 반대하며, 낙태는 여성의 삶과 건강에 관한 문제라는 것을 솔직히 까놓고 말해보기 위한 릴레이 글쓰기 액숀~ 

연대 필진 환영! 무한 링크, 스크랩, 펌, 배포 권장!! 

glocal.activism@gmail.com | http://www.glocalactivism.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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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 '솔/까/말' 프로젝트  "당신의 낙태는 안전하십니까?"
 
윤정원 ㅣ 건강과 대안
 
의학도일 때부터 풋내기 의사인 지금까지, 주변 친척들이나 지인들로부터 가장 많이 질문 받은 건, 뭐니뭐니해도 산부인과 관련 질문들입니다.  자궁경부암 백신을 맞으면 성병이 안 걸리는 건지, 생리통이 심한데 산부인과 가면 꼭 내진을 받아야 하는 건지, 산부인과 가서 대뜸 “결혼 하셨어요? 낙태 하신 적 있으세요?” 질문을 받고 붉으락 푸르락 하다가 박차고 나왔는데 이거 인권침해 아닌 건지까지. 낙태에 대해 솔직히 까놓고 말하려다 보니, 먼저 이것부터 이야기 하지 않으면 안되겠습니다.
 
낙태가 의료행위일까
 
의료행위라는 범주를 따지는 건 넘지 못할 것 같은 높은 벽 앞에 서있는 기분입니다. 가장 흔히들 생각하는, 질병 상태를 정상 상태로 고치는 행위를 의료행위라고 한다면, 낙태를 의료행위라고 말하기는 힘들죠. 낙태를 편도선이나 맹장을 떼어내는 것과 비교하는 것은 분명 조심스러운 일임엔 틀림없어요. 하지만 고식적이고 비과학적인, 안전하지 못한 낙태로 연간 6만 7천명이 사망하고 낙태 관련 합병증을 앓는 여성만 800만 명인 것을 생각한다면, 의료행위의 범주에서, 보건의료체계 내에서 낙태가 공식적으로 논의되어야 한다는 것은 자명합니다.
 
낙태는 의료행위인가를 따지기 위해서 먼저 임신과 출산이 의료행위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네요. 물론 임신과 출산은 질병이 아닙니다. 하지만 근대의학과 산과학이 권위를 가지게 되면서 임신과 출산이라는 자연적인 과정이 의학적 개입이 필요한 병리적 상태로 인식되게 된 점, 그로 인해 거의 대다수가 정상임신임에도 불구하고 99%이상의 출산이 병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그 과정에서 전문가와 환자라는 위계적 관계 속에서 여성의 몸에 대한 자기결정권이 침해될 여지가 생기는 것에 대해 비판적 목소리가 있는 것도 사실이구요. 하지만 대부분의 모성사망이 의료혜택을 받을 수 없는 개발도상국과 가난한 여성들에 집중되어 있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저는 인권으로서 의료서비스에의 접근권을 먼저 이야기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일단 먼저 안전하고 위생적인 의료서비스를 받을 권리, 현대적이고 과학적인 피임법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를 모두가 누릴 수 있는 상황에서, 언제 어떻게 임신하고 출산할 것인지를 결정할 수 있는 거죠.
 
낙태권은 건강권입니다.
 
보건의료 관련 분야에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들어보았을 말이 있어요. 건강은 질병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안녕이라는 WHO(세계보건기구)의 건강에 대한 정의입니다. 우리가 낙태권에 대해 고민하는 지점도 여기서 시작하면 되지 않을까요. 개인마다 낙태에 대해 갖는 생각이나 감정은 다양할 것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인생을 좌우하는 무게감일 수도, 누군가에게는 혹을 떼내는 것처럼 여겨질 수도 있을거에요.  중요한 건 임신과 출산, 낙태와 관련된 모든 과정에서,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안녕 상태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우리의 목표를 상정하는 거에요. 100% 성공률의 피임방법이 존재하지 않는 이상, 낙태시술은 필요할 수 밖에 없고, 거기에 있어서 건강과 안전은 보장받아야 하는 권리입니다. 그리고 그게 세계적으로도 ‘대세’이구요.
 
안전한 낙태에의 접근권
 
여러분은 약으로 낙태가 가능하다는걸 아시나요? 저도 사실 학생때 산부인과를 공부할 때 피임 단원 한귀퉁이에서 언급되었던 임상연구중이라는 RU-486이라는 이 약물이, Mifepristone이라는 성분명으로 상용되고 있다는 사실은 자료를 찾아보기 전까진 몰랐어요. 이 약은 자궁 경부를 열고 조기유산을 진행시키는 기전(mechanism)으로 작용해요. 프랑스의 제약회사에서 처음 개발 된 후, 1989년 처음 시판되었고 전세계적으로 44개국에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가장 처음 상용화된 프랑스에서는 2007년 인공임신중절의 49%가, 핀란드와 스웨덴 같은 북유럽에서는 70%가 이 방법으로 시행된 것이라고 해요. 이 약물을 통해 감염, 천공과 같은 낙태관련 합병증이 드라마틱하게 줄어들었고, 또 개발도상국과 같은 환경에서는 숙련된 의료진이 부족하기 때문에 이 약에 대한 요구는 증가할 수 밖에 없었고, 마침내 WHO에서도 2009년 Mifepristone을 필수의약품에 등재하게 됩니다. (물론, ‘지역적으로 인류학적 사회적 수용도를 고려해 판단할 것’이 라는 단서는 붙어 있어요.)
 
그래도 선진국이나 개방적인 나라들만 가능하겠지 싶으신가요? 네덜란드의 여성액티비스트단체인 Women on waves(파위의 여성들)은 아일랜드, 폴란드, 포르투갈 등 낙태가 불법인 나라들을 찾아다니며, 여성들을 싣고 공해상으로 나가 이 약물로 인공임신중절시술을 시행해 주는 활동으로 유명합니다. 이들의 선박은 임신중절 시술보다 여성의 건강과 낙태권에 대한 논란을 일으키는 것을 목적으로 해요. 2004년 포르투갈에서는 군함 두 대가 본디엡호의 입항을 저지해 충돌을 빚었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포르투갈에서는 낙태 논쟁이 촉발되었고, 이는 이듬해 사회당의 선거 승리로 이어집니다. 사회당 정권은 07년 4월 국민투표를 통해 여성에게 낙태권을 부여했고, 같은 해 Mifepristone도 시판되기 시작합니다. 아. 눈물나게 고무적입니다. 배를 사야겠어요.  
 
 
약 뿐만이 아니에요. WHO 발간자료와 산부인과학 매뉴얼에는 안전한 낙태시술방법에 대한 분명한 임상지침(clinical guideline)이 존재해요.  5주-12주에는 MVA(흡입술)가 가장 안전하고, ~9주, 14주~22주 사이에서는 Mifepristone을 이용한 약물요법도 안전합니다. 2분기 이후에는 D&E(경부확장 후 흡입술)가 권고되어 지구요. 반면 우리나라에서 낙태는 ‘불법’이기 때문에 산부인과 커리큘럼에서도, 임상실습에서도, 수련과정에서도 의료인들에게 교육되어지지 않습니다. 가장 안전하고 간단하기 때문에 교육을 받은 간호사나 산파와 같은 1차의료진의 수준에서도 가능하다고 설명되는 시술(MVA)을, 의학교육현실에서 배울 기회가 없었을 뿐 더러 공론화될 논의의 장도 없었던 환경에서, 임상의들은 선배들에게 배운 고식적이고 위험한 D&C(경부확장 및 소파술)나 D&E를 시행해 온 거에요[1].
 
  <임신 주기별로 보는 안전한 낙태 시술 방법>
 
이 글을 쓰는 도중에, 낙태한 여성을 처벌한 판결을 뉴스에서 봤습니다. 낙태 시술 의사와 여성이 처벌받는 상황에 낙태 약물을 소개하는 글을 쓰고 있는 게 깝깝하긴 하지만, 뜬구름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합법화 노력과 함께 안전한 시술방법에 대한 논의와 Mifepristone 도입에 대한 공론화까지 병렬적으로 함께 해야 하고, 할 수 있어요.
 
의료화된 낙태에 있어서 그 외의 문제들
 
사실 어떤 방법이 도입되어 있고, 어떤 신기술/신약이 있는지보다 더 실질적이고 중요한 문제는, 문자 그대로 ‘접근성’입니다.  우리나라는 법의 테두리 안이건 밖이건을 차치하고, 적어도 산부인과전문의에 의해서 위생적이고 안전한 시술이 행해지는 편이죠. 하지만 어디서 시술받을지, 시술의 부작용 및 고려사항은 무엇인지 등 정보 제공 및 상담 체계가 전무하고, 산부인과 병의원이 도심에 몰려 있는 등 의료기관도 부족합니다. 프로라이프 의사회와 같은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더라도, 낙태에 대한 윤리적 거부감 때문에 시술을 거부하는 의료인도 많구요. 비용문제 역시 불법 낙태 단속 후 수백만원으로 뛰어오른 것을 볼 때, 공식적 의료보장체계 내에서 의료서비스가 행해지지 않는 경우 결국 사회경제적 불평등에 따라 낙태에 대한 접근권도 제한될 수 밖에 없습니다.
 
낙태가 합법화 되어있는 나라들의 경우 공공의료체계에서 그 비용부담을 맡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국가가 조세로 의료 서비스를 공공적으로 제공하는 NHS(National Health Service) 시스템인 영국, 덴마크, 독일, 루마니아에서는 무료이며, 핀란드는 병원입원비만 자가부담합니다. 프랑스는 공공의료보험에서 80%의 비용을 부담하고, 미성년과 저소득계층에서는 100% 부담합니다. 보편적 복지가 상식인 사회에서는, 건강권이라는 가치와 인식을 사회구성원들이 공유하는 가운데 이런것도 가능하다는 거죠.
 
피임에의 접근권
 
피임에 대한 접근권을 빼놓고는 낙태를 말할 수 없습니다. 이 논의의 장 역시 아주 복잡해요. 원하지 않는 임신은 언제나 있어왔습니다. 피임기구의 사용 거부나 준비되지 않은 섹스, 강간 과 같은 상황 이외에도 적절한 피임을 했음에도 자연적인 실패율(콘돔 10~12%, 피임약 3~7%)도 존재하거든요.  섹스를 하게 되는 상황에서 주도권이 없는데다, 콘돔의 사용법도 모른 채, 콘돔을 손에 쥐고 있어도 쓰자고 말을 못하고, 개념있는 파트너와 함께 콘돔을 쓴다고 썼지만 찢어지거나 새서 피임에 실패하지는 않을지, 여성이 임신공포를 내려놓을 수 있는 순간은 생리기간 밖에 없다는 말이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다행히 피임에 대한 인식이 많이 확산되어 지난 10년간 우리나라 기혼여성의 피임실천율이 54% à 63%으로 증가함에 따라 의도하지 않은 임신이 69/1000 à 55/1000로 감소했습니다. 따라서 피임법을 더 많이 보급하고, 성교육을 통해 피임에 대한 인식을 확산시키고 더 효과적인 피임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게 필요합니다. 어떤 피임법이 더 효과적인지,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여성 스스로가 알고 선택할 수 있는 것도 중요해요. 경구피임약의 경우 피임성공률은 높은 편이지만 호르몬제제이다 보니 간종양이나 혈전색전증과 같은 부작용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거든요. 물론 가장 기본적인 전제는 상호 대등한 성관계에서 자연스럽게 피임을 요구할 수 있어야 하는거겠죠.
 

<다양한 피임기구들>
 
응급피임약에 대한 공론화도 더 이루어져야 합니다. 대부분의 여성들은 자신의 임신가능성을 과소평가하여 응급피임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임신공포(임신하면 안돼)가 잘못된 상식(배란일 이틀 뒤니까 괜찮겠지)과 부정(콘돔이 살짝 빠지긴 했는데 설마 아니겠지)과 결합되는거죠. 처방전을 받아야만 응급피임약을 살 수 있는것과, 72시간 내에 복용해야 하는 것도 역시 접근성을 떨어뜨리는 원인이구요. 물론 응급피임약 역시 고용량 호르몬제이기 때문에 부작용이나 주의사항에 대한 교육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한 달간의 월경주기 내에 두번 이상 복용하면 안되고, 메스껍고 간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다른 피임방법들과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상담하는 과정이 필요하죠. 그래서 애초에 시판될 때 의사의 처방을 받은 후 살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든 걸 테구요. 하지만 주말에 여는 산부인과를 찾아 헤매다, 접수 간호사에게 “의사선생님 상담 하시고 처방전 받으시려면 얼마구요, 그냥 처방전만 받으실수도 있어요.” 라고 들은 후, 약국에서 약을 받자마자 복약지도를 받을 새도 없이 도망치듯 나오는 것과 ‘전문적인 의학 상담과 복약지도’ 와는 좀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현재 응급피임약이 출시되어 상용화되는 38개국 중 24개국에서 일반의약품(OTC : Over-the counter : 처방전 없이 살 수 있는 의약품)으로 판매되고 있어요. 중요한건 응급피임약에 접근성이 높아지는 것, 정확한 정보와 지식을 알고 확실하게 피임을 하는거지, 의사 얼굴을 한 번 더 보는게 아닙니다.
 
몸에 대한 지식, 정보에의 접근권
 
과거에 비해 의료 지식과 정보의 대중화로 병원 문턱이 많이 낮아진 것은 사실입니다. TV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건강정보 프로그램이나 같은 질병을 가진 환자들의 온라인 커뮤니티도 몸에 대한 주권찾기에 기여하고 있구요. 하지만 왜 여기서도 유독 성에 대한 정보는 19금이고, 산부인과의 문턱만 높을까요. 왜 생리대는 까만 비닐봉지에 담아주고 왜 항문이나 질은 부끄러운 부위가 되었을까요.
 
의사 – 환자관계에서 어쩔 수 없이 권력불균형이 존재하는 가운데, 산부인과는 남성 중심의 의학과 여성 환자라는 이중의 억압이 존재합니다. 의학 교과서가 대부분 남성 중심으로 쓰여져 있고, 여성의 정상적인 생리과정을 병리적으로 받아들이는(폐경, 생리전증후군 등) 현대의학의 패러다임 안에서 여성의 몸과 성과 경험이 오롯이 받아들여지는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성에 대한 유교적 터부와 유명무실한 성교육 – 의료인들조차도 제대로 된 성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을 정도로 – 은 말할 것도 없구요.
 
산부인과 내의 경험들도 이런 문턱을 더 높이는데 한 몫 합니다. 혼인여부, 성관계 유무, 산과력(임신과 출산, 유산을 몇번 했는지) 등이 산부인과 진료를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알아야 할 개인’질병정보’지만, 환자들의 입장에서는 조심스럽고 비밀유지가 필요한 ‘개인’질병정보입니다. 이런 정보를 공개적으로, 다른 환자들 앞에서 이야기 해야 하는 상황이 빈번히 발생하거든요. 내진이나 초음파를 위한 쇄석위자세도 민망함이나 수치심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환자의 긴장을 풀어주고 조명을 낮추는 등의 배려가 필요하지만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게 사실이구요.
 
낙태와 관련해서 산부인과에서의 경험을 이야기하자면, 민망을 넘어 공포의 수준입니다. “금식하고 내일 몇시까지 오세요.” “링겔은 2만원, 영양제는 3만원이에요.” 라니요. 시술에 따른 부작용이나 주의사항, 자궁 감염이나 자궁벽의 협착이 생길 수 있고 그게 불임의 원인이 되기도 하니 앞으로는 꼭 피임을 하시라는 설명을 기대하는 건 드라마에나 나오는 희망일까요. 사실 산부인과에서 행해지는 낙태시술은 법이 규제하는 가운데 실제적으로는 일상화되어 있었습니다. 높은 출산율을 떨어뜨리고자 했던 국가 주도의 산아제한 드라이브와, 출산 수가가 낮은 상황에서 주요 수입원으로 낙태시술을 한 의료기관의 암묵적인 동맹 덕분에요. 낙태권을 한번도 여성이 주장해서 얻어낸 적이 없었고, 인권이나 건강권을 고려해본 적은 더더욱 없습니다. 이런 낙태권은 부차적으로 주어진 제한적인 것일 수 밖에 없고, 언제든지 사회적 상황 변화에 따라 여성의 낙태권을 규제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지금, 우려했던 그 지점에 있는거죠. “낙태를 허용해 출산율을 감소시켰으니, 이제 낙태를 금지해 출산율을 올려보자.”
 
낙태에 있어 선택권이란 단지 낙태할 자유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연애, 성경험, 피임, 임신, 출산 등 여성의 몸과 관련된 경험들이 여성 자신이 주체일 때야 비로소 낙태의 선택권을 가졌다 말할 수 있습니다. 소위 연애 매뉴얼에서, 성관계의 결정과 동시에 수반되는 피임의 결정은 여성의 몫이 아닌 경우가 절대다수입니다. 성과 피임에 대해 얼마나 많은 지식을 갖고 있는지가 문제가 아니라(사실 절대적인 지식도 부족하지만) 누가 결정을 어떻게 내리는가에 따라 운명이 결정되는 거에요. 이렇게 연애 과정에서 체화된 남성중심적인 성역할, 피임하자고 말 할 수 없게 만드는 이중성규범 때문에 항상 갖게 되는 임신공포는 임신과 낙태에 있어서도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칩니다. 원하지 않는 임신을 통제할 수 있는 다른 선택지의 부재와 낙태를 양산하는 구조 속에서, 여성은 강요된 결정을 하게 되지만, 낙태에 대한 사회적 통념 때문에 죄의식을 내면화하고 자신의 경험을 숨기는 이중의 고통을 겪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비사회화된 임신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가족이나 사회로부터 정서적 지지를 받을 수도 없구요. 과연 누가 출산과 낙태가 여성의 선택권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생명을 경시하는 이기적인 선택권도, 건강을 해쳐가며 죄의식에 고통스러워하는 선택권도 아닌, 출산도 낙태도 여성이 선택할 수 있는 양성평등한 환경을 말해야 합니다.
 
글을 다 쓰면서도 의료화에 대한 저항과 안전한 의료서비스의 접근권 사이의 가파른 줄타기를 하는 기분입니다. 건강권이라는 키워드는 하나지만, 개인적 empowerment와 사회적 대안, 국가에 대해 요구하고 투쟁해야 하는 부분까지, 하나하나 바꿔나가야 할 지점들이 너무 많기도 하구요 ㅜㅠ 궁극적으로 ‘솔까말’하고 싶었던 건 이거에요. 내 몸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더 많이 알고, 이상이 생기면 편하게 의사와 상담할 수 있을 때, 낙태를 둘러싼 상황과 실태에 대해 서로 경험을 나누고 이야기할 수 있을 때, 내 몸에 대한 권리를, 낙태에 대한 권리를 말할 수 있다는거요. 
 
 
[1] 2005년 산부인과의들을 대상으로 낙태시술방법을 조사했을 때,  MVA가 21%, D&C 47%, D&E 32% 를 차지합니다
 
솔직히, 당신도 하고픈 말 있잖아요~ 여자들의 목소리로 솔직히 말하기 시작한다면, 낙태를 둘러싼 지금의 혼란을 풀어낼 수 있을 것 같아서 시도한 꿍꿍이였습니다. 어쩌면 생뚱맞을지도 모를 우리의 말걸기가 과연 화답을 불러낼 수 있을까, 머뭇거리기도 했습니다. 이 프로젝트에 공감하고 또 함께 말하고 싶은 분들은 메일로 글을 보내주세요. 일기나 낙서면 어때요. 그림이나 사진, 영상, 음악 등 다양한 말하기를 환영합니다. 우리들의 말하기가 낙태에 대한 처벌과 낙인을 이겨낼 수 있도록 함. 께. 말. 해. 요.

http://www.glocalactivism.org _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NGA) 

 

  <임신 주기별로 보는 안전한 낙태 시술 방법>
 
이 글을 쓰는 도중에, 낙태한 여성을 처벌한 판결을 뉴스에서 봤습니다. 낙태 시술 의사와 여성이 처벌받는 상황에 낙태 약물을 소개하는 글을 쓰고 있는 게 깝깝하긴 하지만, 뜬구름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합법화 노력과 함께 안전한 시술방법에 대한 논의와 Mifepristone 도입에 대한 공론화까지 병렬적으로 함께 해야 하고, 할 수 있어요.
 
의료화된 낙태에 있어서 그 외의 문제들
 
사실 어떤 방법이 도입되어 있고, 어떤 신기술/신약이 있는지보다 더 실질적이고 중요한 문제는, 문자 그대로 ‘접근성’입니다.  우리나라는 법의 테두리 안이건 밖이건을 차치하고, 적어도 산부인과전문의에 의해서 위생적이고 안전한 시술이 행해지는 편이죠. 하지만 어디서 시술받을지, 시술의 부작용 및 고려사항은 무엇인지 등 정보 제공 및 상담 체계가 전무하고, 산부인과 병의원이 도심에 몰려 있는 등 의료기관도 부족합니다. 프로라이프 의사회와 같은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더라도, 낙태에 대한 윤리적 거부감 때문에 시술을 거부하는 의료인도 많구요. 비용문제 역시 불법 낙태 단속 후 수백만원으로 뛰어오른 것을 볼 때, 공식적 의료보장체계 내에서 의료서비스가 행해지지 않는 경우 결국 사회경제적 불평등에 따라 낙태에 대한 접근권도 제한될 수 밖에 없습니다.
 
낙태가 합법화 되어있는 나라들의 경우 공공의료체계에서 그 비용부담을 맡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국가가 조세로 의료 서비스를 공공적으로 제공하는 NHS(National Health Service) 시스템인 영국, 덴마크, 독일, 루마니아에서는 무료이며, 핀란드는 병원입원비만 자가부담합니다. 프랑스는 공공의료보험에서 80%의 비용을 부담하고, 미성년과 저소득계층에서는 100% 부담합니다. 보편적 복지가 상식인 사회에서는, 건강권이라는 가치와 인식을 사회구성원들이 공유하는 가운데 이런것도 가능하다는 거죠.
 
피임에의 접근권
 
피임에 대한 접근권을 빼놓고는 낙태를 말할 수 없습니다. 이 논의의 장 역시 아주 복잡해요. 원하지 않는 임신은 언제나 있어왔습니다. 피임기구의 사용 거부나 준비되지 않은 섹스, 강간 과 같은 상황 이외에도 적절한 피임을 했음에도 자연적인 실패율(콘돔 10~12%, 피임약 3~7%)도 존재하거든요.  섹스를 하게 되는 상황에서 주도권이 없는데다, 콘돔의 사용법도 모른 채, 콘돔을 손에 쥐고 있어도 쓰자고 말을 못하고, 개념있는 파트너와 함께 콘돔을 쓴다고 썼지만 찢어지거나 새서 피임에 실패하지는 않을지, 여성이 임신공포를 내려놓을 수 있는 순간은 생리기간 밖에 없다는 말이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다행히 피임에 대한 인식이 많이 확산되어 지난 10년간 우리나라 기혼여성의 피임실천율이 54% à 63%으로 증가함에 따라 의도하지 않은 임신이 69/1000 à 55/1000로 감소했습니다. 따라서 피임법을 더 많이 보급하고, 성교육을 통해 피임에 대한 인식을 확산시키고 더 효과적인 피임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게 필요합니다. 어떤 피임법이 더 효과적인지,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여성 스스로가 알고 선택할 수 있는 것도 중요해요. 경구피임약의 경우 피임성공률은 높은 편이지만 호르몬제제이다 보니 간종양이나 혈전색전증과 같은 부작용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거든요. 물론 가장 기본적인 전제는 상호 대등한 성관계에서 자연스럽게 피임을 요구할 수 있어야 하는거겠죠.
 

<다양한 피임기구들>
 
응급피임약에 대한 공론화도 더 이루어져야 합니다. 대부분의 여성들은 자신의 임신가능성을 과소평가하여 응급피임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임신공포(임신하면 안돼)가 잘못된 상식(배란일 이틀 뒤니까 괜찮겠지)과 부정(콘돔이 살짝 빠지긴 했는데 설마 아니겠지)과 결합되는거죠. 처방전을 받아야만 응급피임약을 살 수 있는것과, 72시간 내에 복용해야 하는 것도 역시 접근성을 떨어뜨리는 원인이구요. 물론 응급피임약 역시 고용량 호르몬제이기 때문에 부작용이나 주의사항에 대한 교육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한 달간의 월경주기 내에 두번 이상 복용하면 안되고, 메스껍고 간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다른 피임방법들과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상담하는 과정이 필요하죠. 그래서 애초에 시판될 때 의사의 처방을 받은 후 살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든 걸 테구요. 하지만 주말에 여는 산부인과를 찾아 헤매다, 접수 간호사에게 “의사선생님 상담 하시고 처방전 받으시려면 얼마구요, 그냥 처방전만 받으실수도 있어요.” 라고 들은 후, 약국에서 약을 받자마자 복약지도를 받을 새도 없이 도망치듯 나오는 것과 ‘전문적인 의학 상담과 복약지도’ 와는 좀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현재 응급피임약이 출시되어 상용화되는 38개국 중 24개국에서 일반의약품(OTC : Over-the counter : 처방전 없이 살 수 있는 의약품)으로 판매되고 있어요. 중요한건 응급피임약에 접근성이 높아지는 것, 정확한 정보와 지식을 알고 확실하게 피임을 하는거지, 의사 얼굴을 한 번 더 보는게 아닙니다.
 
몸에 대한 지식, 정보에의 접근권
 
과거에 비해 의료 지식과 정보의 대중화로 병원 문턱이 많이 낮아진 것은 사실입니다. TV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건강정보 프로그램이나 같은 질병을 가진 환자들의 온라인 커뮤니티도 몸에 대한 주권찾기에 기여하고 있구요. 하지만 왜 여기서도 유독 성에 대한 정보는 19금이고, 산부인과의 문턱만 높을까요. 왜 생리대는 까만 비닐봉지에 담아주고 왜 항문이나 질은 부끄러운 부위가 되었을까요.
 
의사 – 환자관계에서 어쩔 수 없이 권력불균형이 존재하는 가운데, 산부인과는 남성 중심의 의학과 여성 환자라는 이중의 억압이 존재합니다. 의학 교과서가 대부분 남성 중심으로 쓰여져 있고, 여성의 정상적인 생리과정을 병리적으로 받아들이는(폐경, 생리전증후군 등) 현대의학의 패러다임 안에서 여성의 몸과 성과 경험이 오롯이 받아들여지는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성에 대한 유교적 터부와 유명무실한 성교육 – 의료인들조차도 제대로 된 성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을 정도로 – 은 말할 것도 없구요.
 
산부인과 내의 경험들도 이런 문턱을 더 높이는데 한 몫 합니다. 혼인여부, 성관계 유무, 산과력(임신과 출산, 유산을 몇번 했는지) 등이 산부인과 진료를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알아야 할 개인’질병정보’지만, 환자들의 입장에서는 조심스럽고 비밀유지가 필요한 ‘개인’질병정보입니다. 이런 정보를 공개적으로, 다른 환자들 앞에서 이야기 해야 하는 상황이 빈번히 발생하거든요. 내진이나 초음파를 위한 쇄석위자세도 민망함이나 수치심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환자의 긴장을 풀어주고 조명을 낮추는 등의 배려가 필요하지만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게 사실이구요.
 
낙태와 관련해서 산부인과에서의 경험을 이야기하자면, 민망을 넘어 공포의 수준입니다. “금식하고 내일 몇시까지 오세요.” “링겔은 2만원, 영양제는 3만원이에요.” 라니요. 시술에 따른 부작용이나 주의사항, 자궁 감염이나 자궁벽의 협착이 생길 수 있고 그게 불임의 원인이 되기도 하니 앞으로는 꼭 피임을 하시라는 설명을 기대하는 건 드라마에나 나오는 희망일까요. 사실 산부인과에서 행해지는 낙태시술은 법이 규제하는 가운데 실제적으로는 일상화되어 있었습니다. 높은 출산율을 떨어뜨리고자 했던 국가 주도의 산아제한 드라이브와, 출산 수가가 낮은 상황에서 주요 수입원으로 낙태시술을 한 의료기관의 암묵적인 동맹 덕분에요. 낙태권을 한번도 여성이 주장해서 얻어낸 적이 없었고, 인권이나 건강권을 고려해본 적은 더더욱 없습니다. 이런 낙태권은 부차적으로 주어진 제한적인 것일 수 밖에 없고, 언제든지 사회적 상황 변화에 따라 여성의 낙태권을 규제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지금, 우려했던 그 지점에 있는거죠. “낙태를 허용해 출산율을 감소시켰으니, 이제 낙태를 금지해 출산율을 올려보자.”
 
낙태에 있어 선택권이란 단지 낙태할 자유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연애, 성경험, 피임, 임신, 출산 등 여성의 몸과 관련된 경험들이 여성 자신이 주체일 때야 비로소 낙태의 선택권을 가졌다 말할 수 있습니다. 소위 연애 매뉴얼에서, 성관계의 결정과 동시에 수반되는 피임의 결정은 여성의 몫이 아닌 경우가 절대다수입니다. 성과 피임에 대해 얼마나 많은 지식을 갖고 있는지가 문제가 아니라(사실 절대적인 지식도 부족하지만) 누가 결정을 어떻게 내리는가에 따라 운명이 결정되는 거에요. 이렇게 연애 과정에서 체화된 남성중심적인 성역할, 피임하자고 말 할 수 없게 만드는 이중성규범 때문에 항상 갖게 되는 임신공포는 임신과 낙태에 있어서도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칩니다. 원하지 않는 임신을 통제할 수 있는 다른 선택지의 부재와 낙태를 양산하는 구조 속에서, 여성은 강요된 결정을 하게 되지만, 낙태에 대한 사회적 통념 때문에 죄의식을 내면화하고 자신의 경험을 숨기는 이중의 고통을 겪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비사회화된 임신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가족이나 사회로부터 정서적 지지를 받을 수도 없구요. 과연 누가 출산과 낙태가 여성의 선택권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생명을 경시하는 이기적인 선택권도, 건강을 해쳐가며 죄의식에 고통스러워하는 선택권도 아닌, 출산도 낙태도 여성이 선택할 수 있는 양성평등한 환경을 말해야 합니다.
 
글을 다 쓰면서도 의료화에 대한 저항과 안전한 의료서비스의 접근권 사이의 가파른 줄타기를 하는 기분입니다. 건강권이라는 키워드는 하나지만, 개인적 empowerment와 사회적 대안, 국가에 대해 요구하고 투쟁해야 하는 부분까지, 하나하나 바꿔나가야 할 지점들이 너무 많기도 하구요 ㅜㅠ 궁극적으로 ‘솔까말’하고 싶었던 건 이거에요. 내 몸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더 많이 알고, 이상이 생기면 편하게 의사와 상담할 수 있을 때, 낙태를 둘러싼 상황과 실태에 대해 서로 경험을 나누고 이야기할 수 있을 때, 내 몸에 대한 권리를, 낙태에 대한 권리를 말할 수 있다는거요. 
 
  <임신 주기별로 보는 안전한 낙태 시술 방법>
 
이 글을 쓰는 도중에, 낙태한 여성을 처벌한 판결을 뉴스에서 봤습니다. 낙태 시술 의사와 여성이 처벌받는 상황에 낙태 약물을 소개하는 글을 쓰고 있는 게 깝깝하긴 하지만, 뜬구름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합법화 노력과 함께 안전한 시술방법에 대한 논의와 Mifepristone 도입에 대한 공론화까지 병렬적으로 함께 해야 하고, 할 수 있어요.
 
의료화된 낙태에 있어서 그 외의 문제들
 
사실 어떤 방법이 도입되어 있고, 어떤 신기술/신약이 있는지보다 더 실질적이고 중요한 문제는, 문자 그대로 ‘접근성’입니다.  우리나라는 법의 테두리 안이건 밖이건을 차치하고, 적어도 산부인과전문의에 의해서 위생적이고 안전한 시술이 행해지는 편이죠. 하지만 어디서 시술받을지, 시술의 부작용 및 고려사항은 무엇인지 등 정보 제공 및 상담 체계가 전무하고, 산부인과 병의원이 도심에 몰려 있는 등 의료기관도 부족합니다. 프로라이프 의사회와 같은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더라도, 낙태에 대한 윤리적 거부감 때문에 시술을 거부하는 의료인도 많구요. 비용문제 역시 불법 낙태 단속 후 수백만원으로 뛰어오른 것을 볼 때, 공식적 의료보장체계 내에서 의료서비스가 행해지지 않는 경우 결국 사회경제적 불평등에 따라 낙태에 대한 접근권도 제한될 수 밖에 없습니다.
 
낙태가 합법화 되어있는 나라들의 경우 공공의료체계에서 그 비용부담을 맡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국가가 조세로 의료 서비스를 공공적으로 제공하는 NHS(National Health Service) 시스템인 영국, 덴마크, 독일, 루마니아에서는 무료이며, 핀란드는 병원입원비만 자가부담합니다. 프랑스는 공공의료보험에서 80%의 비용을 부담하고, 미성년과 저소득계층에서는 100% 부담합니다. 보편적 복지가 상식인 사회에서는, 건강권이라는 가치와 인식을 사회구성원들이 공유하는 가운데 이런것도 가능하다는 거죠.
 
피임에의 접근권
 
피임에 대한 접근권을 빼놓고는 낙태를 말할 수 없습니다. 이 논의의 장 역시 아주 복잡해요. 원하지 않는 임신은 언제나 있어왔습니다. 피임기구의 사용 거부나 준비되지 않은 섹스, 강간 과 같은 상황 이외에도 적절한 피임을 했음에도 자연적인 실패율(콘돔 10~12%, 피임약 3~7%)도 존재하거든요.  섹스를 하게 되는 상황에서 주도권이 없는데다, 콘돔의 사용법도 모른 채, 콘돔을 손에 쥐고 있어도 쓰자고 말을 못하고, 개념있는 파트너와 함께 콘돔을 쓴다고 썼지만 찢어지거나 새서 피임에 실패하지는 않을지, 여성이 임신공포를 내려놓을 수 있는 순간은 생리기간 밖에 없다는 말이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다행히 피임에 대한 인식이 많이 확산되어 지난 10년간 우리나라 기혼여성의 피임실천율이 54% à 63%으로 증가함에 따라 의도하지 않은 임신이 69/1000 à 55/1000로 감소했습니다. 따라서 피임법을 더 많이 보급하고, 성교육을 통해 피임에 대한 인식을 확산시키고 더 효과적인 피임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게 필요합니다. 어떤 피임법이 더 효과적인지,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여성 스스로가 알고 선택할 수 있는 것도 중요해요. 경구피임약의 경우 피임성공률은 높은 편이지만 호르몬제제이다 보니 간종양이나 혈전색전증과 같은 부작용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거든요. 물론 가장 기본적인 전제는 상호 대등한 성관계에서 자연스럽게 피임을 요구할 수 있어야 하는거겠죠.
 

<다양한 피임기구들>
 
응급피임약에 대한 공론화도 더 이루어져야 합니다. 대부분의 여성들은 자신의 임신가능성을 과소평가하여 응급피임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임신공포(임신하면 안돼)가 잘못된 상식(배란일 이틀 뒤니까 괜찮겠지)과 부정(콘돔이 살짝 빠지긴 했는데 설마 아니겠지)과 결합되는거죠. 처방전을 받아야만 응급피임약을 살 수 있는것과, 72시간 내에 복용해야 하는 것도 역시 접근성을 떨어뜨리는 원인이구요. 물론 응급피임약 역시 고용량 호르몬제이기 때문에 부작용이나 주의사항에 대한 교육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한 달간의 월경주기 내에 두번 이상 복용하면 안되고, 메스껍고 간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다른 피임방법들과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상담하는 과정이 필요하죠. 그래서 애초에 시판될 때 의사의 처방을 받은 후 살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든 걸 테구요. 하지만 주말에 여는 산부인과를 찾아 헤매다, 접수 간호사에게 “의사선생님 상담 하시고 처방전 받으시려면 얼마구요, 그냥 처방전만 받으실수도 있어요.” 라고 들은 후, 약국에서 약을 받자마자 복약지도를 받을 새도 없이 도망치듯 나오는 것과 ‘전문적인 의학 상담과 복약지도’ 와는 좀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현재 응급피임약이 출시되어 상용화되는 38개국 중 24개국에서 일반의약품(OTC : Over-the counter : 처방전 없이 살 수 있는 의약품)으로 판매되고 있어요. 중요한건 응급피임약에 접근성이 높아지는 것, 정확한 정보와 지식을 알고 확실하게 피임을 하는거지, 의사 얼굴을 한 번 더 보는게 아닙니다.
 
몸에 대한 지식, 정보에의 접근권
 
과거에 비해 의료 지식과 정보의 대중화로 병원 문턱이 많이 낮아진 것은 사실입니다. TV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건강정보 프로그램이나 같은 질병을 가진 환자들의 온라인 커뮤니티도 몸에 대한 주권찾기에 기여하고 있구요. 하지만 왜 여기서도 유독 성에 대한 정보는 19금이고, 산부인과의 문턱만 높을까요. 왜 생리대는 까만 비닐봉지에 담아주고 왜 항문이나 질은 부끄러운 부위가 되었을까요.
 
의사 – 환자관계에서 어쩔 수 없이 권력불균형이 존재하는 가운데, 산부인과는 남성 중심의 의학과 여성 환자라는 이중의 억압이 존재합니다. 의학 교과서가 대부분 남성 중심으로 쓰여져 있고, 여성의 정상적인 생리과정을 병리적으로 받아들이는(폐경, 생리전증후군 등) 현대의학의 패러다임 안에서 여성의 몸과 성과 경험이 오롯이 받아들여지는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성에 대한 유교적 터부와 유명무실한 성교육 – 의료인들조차도 제대로 된 성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을 정도로 – 은 말할 것도 없구요.
 
산부인과 내의 경험들도 이런 문턱을 더 높이는데 한 몫 합니다. 혼인여부, 성관계 유무, 산과력(임신과 출산, 유산을 몇번 했는지) 등이 산부인과 진료를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알아야 할 개인’질병정보’지만, 환자들의 입장에서는 조심스럽고 비밀유지가 필요한 ‘개인’질병정보입니다. 이런 정보를 공개적으로, 다른 환자들 앞에서 이야기 해야 하는 상황이 빈번히 발생하거든요. 내진이나 초음파를 위한 쇄석위자세도 민망함이나 수치심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환자의 긴장을 풀어주고 조명을 낮추는 등의 배려가 필요하지만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게 사실이구요.
 
낙태와 관련해서 산부인과에서의 경험을 이야기하자면, 민망을 넘어 공포의 수준입니다. “금식하고 내일 몇시까지 오세요.” “링겔은 2만원, 영양제는 3만원이에요.” 라니요. 시술에 따른 부작용이나 주의사항, 자궁 감염이나 자궁벽의 협착이 생길 수 있고 그게 불임의 원인이 되기도 하니 앞으로는 꼭 피임을 하시라는 설명을 기대하는 건 드라마에나 나오는 희망일까요. 사실 산부인과에서 행해지는 낙태시술은 법이 규제하는 가운데 실제적으로는 일상화되어 있었습니다. 높은 출산율을 떨어뜨리고자 했던 국가 주도의 산아제한 드라이브와, 출산 수가가 낮은 상황에서 주요 수입원으로 낙태시술을 한 의료기관의 암묵적인 동맹 덕분에요. 낙태권을 한번도 여성이 주장해서 얻어낸 적이 없었고, 인권이나 건강권을 고려해본 적은 더더욱 없습니다. 이런 낙태권은 부차적으로 주어진 제한적인 것일 수 밖에 없고, 언제든지 사회적 상황 변화에 따라 여성의 낙태권을 규제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지금, 우려했던 그 지점에 있는거죠. “낙태를 허용해 출산율을 감소시켰으니, 이제 낙태를 금지해 출산율을 올려보자.”
 
낙태에 있어 선택권이란 단지 낙태할 자유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연애, 성경험, 피임, 임신, 출산 등 여성의 몸과 관련된 경험들이 여성 자신이 주체일 때야 비로소 낙태의 선택권을 가졌다 말할 수 있습니다. 소위 연애 매뉴얼에서, 성관계의 결정과 동시에 수반되는 피임의 결정은 여성의 몫이 아닌 경우가 절대다수입니다. 성과 피임에 대해 얼마나 많은 지식을 갖고 있는지가 문제가 아니라(사실 절대적인 지식도 부족하지만) 누가 결정을 어떻게 내리는가에 따라 운명이 결정되는 거에요. 이렇게 연애 과정에서 체화된 남성중심적인 성역할, 피임하자고 말 할 수 없게 만드는 이중성규범 때문에 항상 갖게 되는 임신공포는 임신과 낙태에 있어서도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칩니다. 원하지 않는 임신을 통제할 수 있는 다른 선택지의 부재와 낙태를 양산하는 구조 속에서, 여성은 강요된 결정을 하게 되지만, 낙태에 대한 사회적 통념 때문에 죄의식을 내면화하고 자신의 경험을 숨기는 이중의 고통을 겪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비사회화된 임신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가족이나 사회로부터 정서적 지지를 받을 수도 없구요. 과연 누가 출산과 낙태가 여성의 선택권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생명을 경시하는 이기적인 선택권도, 건강을 해쳐가며 죄의식에 고통스러워하는 선택권도 아닌, 출산도 낙태도 여성이 선택할 수 있는 양성평등한 환경을 말해야 합니다.
 
글을 다 쓰면서도 의료화에 대한 저항과 안전한 의료서비스의 접근권 사이의 가파른 줄타기를 하는 기분입니다. 건강권이라는 키워드는 하나지만, 개인적 empowerment와 사회적 대안, 국가에 대해 요구하고 투쟁해야 하는 부분까지, 하나하나 바꿔나가야 할 지점들이 너무 많기도 하구요 ㅜㅠ 궁극적으로 ‘솔까말’하고 싶었던 건 이거에요. 내 몸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더 많이 알고, 이상이 생기면 편하게 의사와 상담할 수 있을 때, 낙태를 둘러싼 상황과 실태에 대해 서로 경험을 나누고 이야기할 수 있을 때, 내 몸에 대한 권리를, 낙태에 대한 권리를 말할 수 있다는거요. 
 
  <임신 주기별로 보는 안전한 낙태 시술 방법>
 
이 글을 쓰는 도중에, 낙태한 여성을 처벌한 판결을 뉴스에서 봤습니다. 낙태 시술 의사와 여성이 처벌받는 상황에 낙태 약물을 소개하는 글을 쓰고 있는 게 깝깝하긴 하지만, 뜬구름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합법화 노력과 함께 안전한 시술방법에 대한 논의와 Mifepristone 도입에 대한 공론화까지 병렬적으로 함께 해야 하고, 할 수 있어요.
 
의료화된 낙태에 있어서 그 외의 문제들
 
사실 어떤 방법이 도입되어 있고, 어떤 신기술/신약이 있는지보다 더 실질적이고 중요한 문제는, 문자 그대로 ‘접근성’입니다.  우리나라는 법의 테두리 안이건 밖이건을 차치하고, 적어도 산부인과전문의에 의해서 위생적이고 안전한 시술이 행해지는 편이죠. 하지만 어디서 시술받을지, 시술의 부작용 및 고려사항은 무엇인지 등 정보 제공 및 상담 체계가 전무하고, 산부인과 병의원이 도심에 몰려 있는 등 의료기관도 부족합니다. 프로라이프 의사회와 같은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더라도, 낙태에 대한 윤리적 거부감 때문에 시술을 거부하는 의료인도 많구요. 비용문제 역시 불법 낙태 단속 후 수백만원으로 뛰어오른 것을 볼 때, 공식적 의료보장체계 내에서 의료서비스가 행해지지 않는 경우 결국 사회경제적 불평등에 따라 낙태에 대한 접근권도 제한될 수 밖에 없습니다.
 
낙태가 합법화 되어있는 나라들의 경우 공공의료체계에서 그 비용부담을 맡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국가가 조세로 의료 서비스를 공공적으로 제공하는 NHS(National Health Service) 시스템인 영국, 덴마크, 독일, 루마니아에서는 무료이며, 핀란드는 병원입원비만 자가부담합니다. 프랑스는 공공의료보험에서 80%의 비용을 부담하고, 미성년과 저소득계층에서는 100% 부담합니다. 보편적 복지가 상식인 사회에서는, 건강권이라는 가치와 인식을 사회구성원들이 공유하는 가운데 이런것도 가능하다는 거죠.
 
피임에의 접근권
 
피임에 대한 접근권을 빼놓고는 낙태를 말할 수 없습니다. 이 논의의 장 역시 아주 복잡해요. 원하지 않는 임신은 언제나 있어왔습니다. 피임기구의 사용 거부나 준비되지 않은 섹스, 강간 과 같은 상황 이외에도 적절한 피임을 했음에도 자연적인 실패율(콘돔 10~12%, 피임약 3~7%)도 존재하거든요.  섹스를 하게 되는 상황에서 주도권이 없는데다, 콘돔의 사용법도 모른 채, 콘돔을 손에 쥐고 있어도 쓰자고 말을 못하고, 개념있는 파트너와 함께 콘돔을 쓴다고 썼지만 찢어지거나 새서 피임에 실패하지는 않을지, 여성이 임신공포를 내려놓을 수 있는 순간은 생리기간 밖에 없다는 말이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다행히 피임에 대한 인식이 많이 확산되어 지난 10년간 우리나라 기혼여성의 피임실천율이 54% à 63%으로 증가함에 따라 의도하지 않은 임신이 69/1000 à 55/1000로 감소했습니다. 따라서 피임법을 더 많이 보급하고, 성교육을 통해 피임에 대한 인식을 확산시키고 더 효과적인 피임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게 필요합니다. 어떤 피임법이 더 효과적인지,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여성 스스로가 알고 선택할 수 있는 것도 중요해요. 경구피임약의 경우 피임성공률은 높은 편이지만 호르몬제제이다 보니 간종양이나 혈전색전증과 같은 부작용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거든요. 물론 가장 기본적인 전제는 상호 대등한 성관계에서 자연스럽게 피임을 요구할 수 있어야 하는거겠죠.
 

<다양한 피임기구들>
 
응급피임약에 대한 공론화도 더 이루어져야 합니다. 대부분의 여성들은 자신의 임신가능성을 과소평가하여 응급피임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임신공포(임신하면 안돼)가 잘못된 상식(배란일 이틀 뒤니까 괜찮겠지)과 부정(콘돔이 살짝 빠지긴 했는데 설마 아니겠지)과 결합되는거죠. 처방전을 받아야만 응급피임약을 살 수 있는것과, 72시간 내에 복용해야 하는 것도 역시 접근성을 떨어뜨리는 원인이구요. 물론 응급피임약 역시 고용량 호르몬제이기 때문에 부작용이나 주의사항에 대한 교육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한 달간의 월경주기 내에 두번 이상 복용하면 안되고, 메스껍고 간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다른 피임방법들과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상담하는 과정이 필요하죠. 그래서 애초에 시판될 때 의사의 처방을 받은 후 살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든 걸 테구요. 하지만 주말에 여는 산부인과를 찾아 헤매다, 접수 간호사에게 “의사선생님 상담 하시고 처방전 받으시려면 얼마구요, 그냥 처방전만 받으실수도 있어요.” 라고 들은 후, 약국에서 약을 받자마자 복약지도를 받을 새도 없이 도망치듯 나오는 것과 ‘전문적인 의학 상담과 복약지도’ 와는 좀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현재 응급피임약이 출시되어 상용화되는 38개국 중 24개국에서 일반의약품(OTC : Over-the counter : 처방전 없이 살 수 있는 의약품)으로 판매되고 있어요. 중요한건 응급피임약에 접근성이 높아지는 것, 정확한 정보와 지식을 알고 확실하게 피임을 하는거지, 의사 얼굴을 한 번 더 보는게 아닙니다.
 
몸에 대한 지식, 정보에의 접근권
 
과거에 비해 의료 지식과 정보의 대중화로 병원 문턱이 많이 낮아진 것은 사실입니다. TV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건강정보 프로그램이나 같은 질병을 가진 환자들의 온라인 커뮤니티도 몸에 대한 주권찾기에 기여하고 있구요. 하지만 왜 여기서도 유독 성에 대한 정보는 19금이고, 산부인과의 문턱만 높을까요. 왜 생리대는 까만 비닐봉지에 담아주고 왜 항문이나 질은 부끄러운 부위가 되었을까요.
 
의사 – 환자관계에서 어쩔 수 없이 권력불균형이 존재하는 가운데, 산부인과는 남성 중심의 의학과 여성 환자라는 이중의 억압이 존재합니다. 의학 교과서가 대부분 남성 중심으로 쓰여져 있고, 여성의 정상적인 생리과정을 병리적으로 받아들이는(폐경, 생리전증후군 등) 현대의학의 패러다임 안에서 여성의 몸과 성과 경험이 오롯이 받아들여지는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성에 대한 유교적 터부와 유명무실한 성교육 – 의료인들조차도 제대로 된 성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을 정도로 – 은 말할 것도 없구요.
 
산부인과 내의 경험들도 이런 문턱을 더 높이는데 한 몫 합니다. 혼인여부, 성관계 유무, 산과력(임신과 출산, 유산을 몇번 했는지) 등이 산부인과 진료를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알아야 할 개인’질병정보’지만, 환자들의 입장에서는 조심스럽고 비밀유지가 필요한 ‘개인’질병정보입니다. 이런 정보를 공개적으로, 다른 환자들 앞에서 이야기 해야 하는 상황이 빈번히 발생하거든요. 내진이나 초음파를 위한 쇄석위자세도 민망함이나 수치심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환자의 긴장을 풀어주고 조명을 낮추는 등의 배려가 필요하지만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게 사실이구요.
 
낙태와 관련해서 산부인과에서의 경험을 이야기하자면, 민망을 넘어 공포의 수준입니다. “금식하고 내일 몇시까지 오세요.” “링겔은 2만원, 영양제는 3만원이에요.” 라니요. 시술에 따른 부작용이나 주의사항, 자궁 감염이나 자궁벽의 협착이 생길 수 있고 그게 불임의 원인이 되기도 하니 앞으로는 꼭 피임을 하시라는 설명을 기대하는 건 드라마에나 나오는 희망일까요. 사실 산부인과에서 행해지는 낙태시술은 법이 규제하는 가운데 실제적으로는 일상화되어 있었습니다. 높은 출산율을 떨어뜨리고자 했던 국가 주도의 산아제한 드라이브와, 출산 수가가 낮은 상황에서 주요 수입원으로 낙태시술을 한 의료기관의 암묵적인 동맹 덕분에요. 낙태권을 한번도 여성이 주장해서 얻어낸 적이 없었고, 인권이나 건강권을 고려해본 적은 더더욱 없습니다. 이런 낙태권은 부차적으로 주어진 제한적인 것일 수 밖에 없고, 언제든지 사회적 상황 변화에 따라 여성의 낙태권을 규제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지금, 우려했던 그 지점에 있는거죠. “낙태를 허용해 출산율을 감소시켰으니, 이제 낙태를 금지해 출산율을 올려보자.”
 
낙태에 있어 선택권이란 단지 낙태할 자유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연애, 성경험, 피임, 임신, 출산 등 여성의 몸과 관련된 경험들이 여성 자신이 주체일 때야 비로소 낙태의 선택권을 가졌다 말할 수 있습니다. 소위 연애 매뉴얼에서, 성관계의 결정과 동시에 수반되는 피임의 결정은 여성의 몫이 아닌 경우가 절대다수입니다. 성과 피임에 대해 얼마나 많은 지식을 갖고 있는지가 문제가 아니라(사실 절대적인 지식도 부족하지만) 누가 결정을 어떻게 내리는가에 따라 운명이 결정되는 거에요. 이렇게 연애 과정에서 체화된 남성중심적인 성역할, 피임하자고 말 할 수 없게 만드는 이중성규범 때문에 항상 갖게 되는 임신공포는 임신과 낙태에 있어서도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칩니다. 원하지 않는 임신을 통제할 수 있는 다른 선택지의 부재와 낙태를 양산하는 구조 속에서, 여성은 강요된 결정을 하게 되지만, 낙태에 대한 사회적 통념 때문에 죄의식을 내면화하고 자신의 경험을 숨기는 이중의 고통을 겪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비사회화된 임신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가족이나 사회로부터 정서적 지지를 받을 수도 없구요. 과연 누가 출산과 낙태가 여성의 선택권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생명을 경시하는 이기적인 선택권도, 건강을 해쳐가며 죄의식에 고통스러워하는 선택권도 아닌, 출산도 낙태도 여성이 선택할 수 있는 양성평등한 환경을 말해야 합니다.
 
글을 다 쓰면서도 의료화에 대한 저항과 안전한 의료서비스의 접근권 사이의 가파른 줄타기를 하는 기분입니다. 건강권이라는 키워드는 하나지만, 개인적 empowerment와 사회적 대안, 국가에 대해 요구하고 투쟁해야 하는 부분까지, 하나하나 바꿔나가야 할 지점들이 너무 많기도 하구요 ㅜㅠ 궁극적으로 ‘솔까말’하고 싶었던 건 이거에요. 내 몸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더 많이 알고, 이상이 생기면 편하게 의사와 상담할 수 있을 때, 낙태를 둘러싼 상황과 실태에 대해 서로 경험을 나누고 이야기할 수 있을 때, 내 몸에 대한 권리를, 낙태에 대한 권리를 말할 수 있다는거요. 
 

<다양한 피임기구들>
 
응급피임약에 대한 공론화도 더 이루어져야 합니다. 대부분의 여성들은 자신의 임신가능성을 과소평가하여 응급피임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임신공포(임신하면 안돼)가 잘못된 상식(배란일 이틀 뒤니까 괜찮겠지)과 부정(콘돔이 살짝 빠지긴 했는데 설마 아니겠지)과 결합되는거죠. 처방전을 받아야만 응급피임약을 살 수 있는것과, 72시간 내에 복용해야 하는 것도 역시 접근성을 떨어뜨리는 원인이구요. 물론 응급피임약 역시 고용량 호르몬제이기 때문에 부작용이나 주의사항에 대한 교육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한 달간의 월경주기 내에 두번 이상 복용하면 안되고, 메스껍고 간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다른 피임방법들과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상담하는 과정이 필요하죠. 그래서 애초에 시판될 때 의사의 처방을 받은 후 살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든 걸 테구요. 하지만 주말에 여는 산부인과를 찾아 헤매다, 접수 간호사에게 “의사선생님 상담 하시고 처방전 받으시려면 얼마구요, 그냥 처방전만 받으실수도 있어요.” 라고 들은 후, 약국에서 약을 받자마자 복약지도를 받을 새도 없이 도망치듯 나오는 것과 ‘전문적인 의학 상담과 복약지도’ 와는 좀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현재 응급피임약이 출시되어 상용화되는 38개국 중 24개국에서 일반의약품(OTC : Over-the counter : 처방전 없이 살 수 있는 의약품)으로 판매되고 있어요. 중요한건 응급피임약에 접근성이 높아지는 것, 정확한 정보와 지식을 알고 확실하게 피임을 하는거지, 의사 얼굴을 한 번 더 보는게 아닙니다.
 
몸에 대한 지식, 정보에의 접근권
 
과거에 비해 의료 지식과 정보의 대중화로 병원 문턱이 많이 낮아진 것은 사실입니다. TV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건강정보 프로그램이나 같은 질병을 가진 환자들의 온라인 커뮤니티도 몸에 대한 주권찾기에 기여하고 있구요. 하지만 왜 여기서도 유독 성에 대한 정보는 19금이고, 산부인과의 문턱만 높을까요. 왜 생리대는 까만 비닐봉지에 담아주고 왜 항문이나 질은 부끄러운 부위가 되었을까요.
 
의사 – 환자관계에서 어쩔 수 없이 권력불균형이 존재하는 가운데, 산부인과는 남성 중심의 의학과 여성 환자라는 이중의 억압이 존재합니다. 의학 교과서가 대부분 남성 중심으로 쓰여져 있고, 여성의 정상적인 생리과정을 병리적으로 받아들이는(폐경, 생리전증후군 등) 현대의학의 패러다임 안에서 여성의 몸과 성과 경험이 오롯이 받아들여지는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성에 대한 유교적 터부와 유명무실한 성교육 – 의료인들조차도 제대로 된 성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을 정도로 – 은 말할 것도 없구요.
 
산부인과 내의 경험들도 이런 문턱을 더 높이는데 한 몫 합니다. 혼인여부, 성관계 유무, 산과력(임신과 출산, 유산을 몇번 했는지) 등이 산부인과 진료를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알아야 할 개인’질병정보’지만, 환자들의 입장에서는 조심스럽고 비밀유지가 필요한 ‘개인’질병정보입니다. 이런 정보를 공개적으로, 다른 환자들 앞에서 이야기 해야 하는 상황이 빈번히 발생하거든요. 내진이나 초음파를 위한 쇄석위자세도 민망함이나 수치심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환자의 긴장을 풀어주고 조명을 낮추는 등의 배려가 필요하지만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게 사실이구요.
 
낙태와 관련해서 산부인과에서의 경험을 이야기하자면, 민망을 넘어 공포의 수준입니다. “금식하고 내일 몇시까지 오세요.” “링겔은 2만원, 영양제는 3만원이에요.” 라니요. 시술에 따른 부작용이나 주의사항, 자궁 감염이나 자궁벽의 협착이 생길 수 있고 그게 불임의 원인이 되기도 하니 앞으로는 꼭 피임을 하시라는 설명을 기대하는 건 드라마에나 나오는 희망일까요. 사실 산부인과에서 행해지는 낙태시술은 법이 규제하는 가운데 실제적으로는 일상화되어 있었습니다. 높은 출산율을 떨어뜨리고자 했던 국가 주도의 산아제한 드라이브와, 출산 수가가 낮은 상황에서 주요 수입원으로 낙태시술을 한 의료기관의 암묵적인 동맹 덕분에요. 낙태권을 한번도 여성이 주장해서 얻어낸 적이 없었고, 인권이나 건강권을 고려해본 적은 더더욱 없습니다. 이런 낙태권은 부차적으로 주어진 제한적인 것일 수 밖에 없고, 언제든지 사회적 상황 변화에 따라 여성의 낙태권을 규제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지금, 우려했던 그 지점에 있는거죠. “낙태를 허용해 출산율을 감소시켰으니, 이제 낙태를 금지해 출산율을 올려보자.”
 
낙태에 있어 선택권이란 단지 낙태할 자유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연애, 성경험, 피임, 임신, 출산 등 여성의 몸과 관련된 경험들이 여성 자신이 주체일 때야 비로소 낙태의 선택권을 가졌다 말할 수 있습니다. 소위 연애 매뉴얼에서, 성관계의 결정과 동시에 수반되는 피임의 결정은 여성의 몫이 아닌 경우가 절대다수입니다. 성과 피임에 대해 얼마나 많은 지식을 갖고 있는지가 문제가 아니라(사실 절대적인 지식도 부족하지만) 누가 결정을 어떻게 내리는가에 따라 운명이 결정되는 거에요. 이렇게 연애 과정에서 체화된 남성중심적인 성역할, 피임하자고 말 할 수 없게 만드는 이중성규범 때문에 항상 갖게 되는 임신공포는 임신과 낙태에 있어서도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칩니다. 원하지 않는 임신을 통제할 수 있는 다른 선택지의 부재와 낙태를 양산하는 구조 속에서, 여성은 강요된 결정을 하게 되지만, 낙태에 대한 사회적 통념 때문에 죄의식을 내면화하고 자신의 경험을 숨기는 이중의 고통을 겪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비사회화된 임신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가족이나 사회로부터 정서적 지지를 받을 수도 없구요. 과연 누가 출산과 낙태가 여성의 선택권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생명을 경시하는 이기적인 선택권도, 건강을 해쳐가며 죄의식에 고통스러워하는 선택권도 아닌, 출산도 낙태도 여성이 선택할 수 있는 양성평등한 환경을 말해야 합니다.
 
글을 다 쓰면서도 의료화에 대한 저항과 안전한 의료서비스의 접근권 사이의 가파른 줄타기를 하는 기분입니다. 건강권이라는 키워드는 하나지만, 개인적 empowerment와 사회적 대안, 국가에 대해 요구하고 투쟁해야 하는 부분까지, 하나하나 바꿔나가야 할 지점들이 너무 많기도 하구요 ㅜㅠ 궁극적으로 ‘솔까말’하고 싶었던 건 이거에요. 내 몸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더 많이 알고, 이상이 생기면 편하게 의사와 상담할 수 있을 때, 낙태를 둘러싼 상황과 실태에 대해 서로 경험을 나누고 이야기할 수 있을 때, 내 몸에 대한 권리를, 낙태에 대한 권리를 말할 수 있다는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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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 '솔/까/말' 프로젝트 다섯 번째 - 레즈비언, 여성, 그리고 임신중지의 권리

 


낙태, '솔/까/말' 프로젝트*** 낙태를 범죄화 하려는 움직임들에 반대하며, 낙태는 여성의 삶과 건강에 관한 문제라는 것을 솔직히 까놓고 말해보기 위한 릴레이 글쓰기 액숀~ 연대 필진 환영! 무한 링크, 스크랩, 펌, 배포 권장!! glocal.activism@gmail.com | http://www.glocalactivism.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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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즈비언, 여성 그리고 임신중지의 권리

 

 

나영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NGA)

 

 

며칠 전 ‘낙태’, 'abortion' 을 키워드로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을 접했다.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 주의 10대들을 연구한 결과, 10대 레즈비언/바이섹슈얼 여성 중의 다수, 10대 게이 남성 중 거의 절반이 이성과의 섹스 경험을 가지고 있으며 그들 중에는 예기치 않은 임신을 경험한 이들의 비율도 매우 높다는 것이다.1) 심지어 이 연구에서는 10대 바이섹슈얼/게이 남성들이 또래 이성애자 남성들보다 거의 세 배 이상 많은 임신 관련 경험을 가지고 있으며, 10대 바이섹슈얼/레즈비언 여성들은 또래 이성애자 여성들보다 두 배에서 세 배 정도 많은 임신 경험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이성과 성관계를 가진 동성애자, 바이섹슈얼 10대들이 그렇게 많다는 것만으로도 놀라운데 이들의 임신 관련 경험이 이성애자 10대들보다 두, 세 배나 많다는 것은 그야말로 충격적인 일이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일까?

 

‘이성애 중심의 사회’에서 레즈비언으로서의 정체성을 찾는다는 것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동성애자들조차도) 동성애자는 (계획하지 않은) 임신이나 낙태의 경험과 상관이 없다고 생각한다. 레즈비언들은 종종 이성애자 친구들로부터 “넌 임신할 걱정 없어서 좋겠다.”는 푸념을 듣기도 한다. 하지만 정말 레즈비언은 낙태 경험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것일까? 사실 나 역시 레즈비언이지만 갓 스무 살이 되던 해에 남성과 성관계 경험을 가진 적이 있다. 아직 사랑이라는 감정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성적인 지식이라고는 어디서 주워들은 풍월 밖에 없었던 당시의 나는 20대가 되었으니 ‘당연히’ 남자를 만나야한다고 생각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꾸준히 여자아이들을 좋아했다는 사실은 나중에 내 정체성을 진지하게 탐색하는 과정에서나 인지하게 된 것이었다. 그 때까지 나는 그 경험들이 그저 ‘우정’이거나 여중, 여고를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익숙해진 하나의 문화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여고를 졸업하고 대학에 가면 자연스럽게 남자와 사귀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게 ‘자연스러운 것’이니까.

 

기타를 가르쳐 주겠다던 그 남자는 나보다 여섯 살이 많았고 몇 번 만나지도 않았는데 꽤 진한 스킨쉽을 시도했다. 나는 그야말로 무방비 상태였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혼란스러웠다. 학교에서 했던 성교육이나 영화에서 본 것들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나는 나의 감정이 무엇인지, 그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상태로 남자와의 첫 섹스를 치뤘다. 당연히 하나도 좋지 않았다. 처음이라 아파서 그런 것인 줄 알았지만 두 번째도 좋지 않았다. 내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 남자와의 성관계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몇 주 후, 한 여자 친구가 나에게 “너를 사랑하는 것 같다”고 고백을 해왔고, 나는 그 남자에게 “좋아하는 여자가 생긴 것 같다”는 고민을 털어놓았다. 그는 다시는 나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그 후 남겨진 고민은 임신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다음 생리가 시작되기까지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혼자 고민하던 시간은 혼돈 그 자체였다. 나는 ‘똑바로 처신하지 못했다’는 자책감과 ‘자기 감정도 모르는 채로 성관계를 가졌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혀 괴로운 시간을 보내야 했다. 물론 벗어나고자 했지만 쉽게 떨치기 어려운 ‘순결 이데올로기’도 그 혼란의 시간 속에서 한 몫 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 경험은 이후 내가 자신의 성 정체성을 탐색하고 인정하는 과정에 큰 영향을 미쳤다. ‘자기 자신을 인정하는’ 커밍아웃의 첫 관문에서 나는 ‘내가 왜 동성을 사랑하게 된 것인지’ 이유를 찾으려 애썼다. 어려서부터 집안에 압도적으로 여자가 많아서? 아버지가 외도를 해서? 여중, 여고, 여대를 다녀서? 혹은 선천적으로 그렇게 태어나서? ‘왜 이성애자가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누구도 고민하지 않지만 ‘왜 동성애자가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답을 찾아야만 하는 이성애 중심 사회에서,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그 모든 사건들이 내가 동성애자가 된 원인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와의 경험으로 여기에 더 많은 질문을 추가해야 했다. ‘남자가 두려운 것일까?’, ‘다른 남자와 다른 성경험을 또 해본다면 괜찮았을까?’, ‘임신이나 낙태가 두려워서 남자를 피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질문들.

 

물론, 그 후 꾸준히 여성들과 사랑을 나누고 그 안에서 안정을 찾으면서 그러한 질문들은 차차 삭제되어 갔다. 나는 남성이 아닌 여성을 사랑하고, 여성과의 성적 교감을 통해 행복한 감정을 느낀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으니까. 하지만 굳이 스스로에게 그러한 질문들을 해야 했던 그 혼란의 시간들은 결국 나에게 크고 작은 상처들을 남기고 말았다.

 

생각보다 많은 레즈비언 여성들이 나와 같은 경험을 한다. 결혼을 하고 아이까지 낳고 나서야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거나 부인해왔던 자신을 인정하게 되는 이들도 많다. 이성애만이 ‘정상’으로 인정되는 사회에서, 자신이 남들이 말하는 정상의 범주 밖에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과정이 쉬울 리가 없다. 끊임없이 정상의 범주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노력하거나 자신도 모르게, 또는 타의에 의해 그 범주 안에 있기를 강요당하는 과정에서 다수의 레즈비언 여성들이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배반하는 경험들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레즈비언 여성들은 특히 피임에 약할 수밖에 없다. 물론 남성의 성적 욕구가 당연히 우선시되는 이 사회에서 비단 레즈비언 여성들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여성들이 상대방에게 피임을 요구하거나 자신의 요구를 정확하게 표현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레즈비언 여성들이 특히 취약한 이유는 심리적으로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관계를 맺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 글의 서두에 언급한 캐나다의 10대 LGB 사례 연구를 분석한 한 칼럼2)은 그와 같은 결과가 나온 이유를 10대 LGBT들에게 상대적으로 피임 교육이 강조되지 않고, 의사나 건강관리사들도 이들에게는 임신에 대해 잘 이야기하지 않으며, 무엇보다 이들 자신이 임신의 위험이나 가능성에 대해 그다지 인식을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하지만 이와 같은 상황은 캐나다의 10대 LGBT들만이 아니라 자신의 성 정체성을 탐색하고 인정하게 되기까지의 과정에 있는 다수의 성인 LGBT에게도 해당되는 사실이다. 결국 이성애적 관계만이 ‘자연스러운 것’으로 인정되는 세상에서 ‘예기치 않은 임신’과 ‘낙태’는 LGBT에게도 엄연한 현실이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하는 것이다.

 

 

영화 <베이비 포뮬라>의 한 장면(사진 출처 :http://www.wffis.or.kr)

 

‘생산성을 요구하는 사회’에서 레즈비언의 임신과 임신중지의 권리가 의미하는 것

 

좀 더 나아가 레즈비언의 임신과 출산, 가족구성권의 문제를 낙태 반대 논란과 연관해 생각해보면 레즈비언이자 여성으로서 우리가 임신과 출산에 관한 자기결정권을 위해 함께 싸워야 하는 몇 가지의 중요한 이유들을 더 발견하게 된다.

 

우선 그 중 하나는 임신과 출산이 여성의 ‘생산성’을 가늠하는 중요한 척도로 기능하고 있는 가부장 체제-자본주의의 세상에서 레즈비언이란 ‘재생산이 가능한 성관계를 맺지 않는 여성’ 이라는 점이다. 얼핏 모순되는 것 같지만 ‘임신을 하지 않는 존재’로서의 레즈비언은 낙태 반대론자들에게 존재 자체가 문제가 된다. 100% 안전한 피임이란 존재할 수가 없으므로 낙태 반대운동은 궁극적으로 출산을 전제로 한 성관계만을 옹호하게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혼전순결에 대한 강조와 ‘남녀 간의 결혼을 통한 안정적인 가족 구성’이라는 보수적인 가족주의로 귀결된다. ‘쾌락을 즐기기 위한 성’, ‘출산을 전제로 하지 않는 성’은 인정되지 않는 것이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여성만이 ‘온전한 성인’이자 ‘제 역할을 다하는 시민구성원’으로서의 자격을 인정받는 사회에서 지금도 비혼 여성들은 자신의 사회적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불완전한 성인’ 내지는 ‘이기적인 존재’로 낙인찍히고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인식은 여성이 자신의 성적 쾌락을 온전히 즐기고, 자신의 성적 요구와 욕구를 분명하게 드러내는 것을 어렵게 만들 뿐만 아니라 사회․경제적, 성적으로 여성의 의사를 남성의 의사에 종속되게 만듦으로써 남녀 간의 불평등한 지위를 지속시킨다. 따라서 낙태 반대운동은 비단 임신을 했거나 임신할 가능성이 있는 여성에게만이 아니라 자율성을 가진 사회적, 성적 주체가 되고자 하는 모든 여성으로부터 그들의 자율성과 주체성을 빼앗는 일이 되는 것이다.

  

한편, 점점 많은 수의 레즈비언 커플들이 임신을 계획하고 아이들과 함께 새로운 가족관계를 만들어가고 있는 상황은 또 다른 논쟁의 지점들을 안고 있다. 레즈비언의 임신과 출산, 가족구성은 가부장 체제와 자본주의가 인정하는 ‘정상사람’, ‘정상가족’, ‘정상적인 재생산’의 기준에 균열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여기서 이들이 인정하는 ‘정상 사람’이란 곧 ‘생산성이 있는 사람’을 의미한다. 즉, ‘생산성 있는 신체와 정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 ‘생산성 있는 성관계를 맺을 수 있는 사람’만이 ‘정상 사람’의 범주에 들 수 있다. 따라서 장애인, 동성애자는 이 범주에서 제외되거나 소외되고, 가정과 회사 양쪽에서 이중의 부담을 지고 있는 여성, 원활한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있는 이주 노동자 등은 생산성이 떨어지는 ‘부차적인 사람’이 된다. 이러한 세상에서 원래는 ‘생산성 있는 성관계를 맺을 수 없는’ 레즈비언 커플이 임신과 출산을 하고 가족을 구성한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정상 사람’의 범주에 엄청난 혼란을 초래하는 행위인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레즈비언 여성 뿐 아니라 다양한 퀴어 주체들이 임신과 출산, 가족을 구성하는 상황도 포함된다.)

 

이제 앞으로의 가부장 체제와 자본주의는 이와 같은 현실에 새롭게 대응할 것이다. 한 편으로는 ‘비정상’의 잣대를 들이대며 LGBT의 가족구성을 끊임없이 억압하거나 차별하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는 저출산 상황에 대한 대응으로서 이들의 출산이나 가족구성을 인정하거나 묵인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실 이미 상당수의 국가들이 이와 같은 단계에 접어들었다. 우리에게는 아직 먼 이야기이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정자 기증이나 인공수정 등의 다양한 방법을 통해 ‘계획적인’ 임신을 하는 커플들이 늘어가고 있고, 동성결혼을 합법화한 나라에서는 이렇게 형성된 가족이 그 사회의 일원으로서 동등한 권리를 인정받는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이 ‘계획된’ 임신과정에서는 배아의 생성에서부터 출산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에 무수한 ‘실패’나 건강상의 문제 등으로 인한 '임신중지‘의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배아에서부터 생명이라고 주장하는 대다수의 낙태 반대론자들에게 이것은 실로 심각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지금은 ’이성애자 여성‘들에게만 해당이 되는 듯한 낙태 논쟁은 앞으로 레즈비언 여성들에게 더욱 심각한 문제로 다가오게 될 것이다. 현재의 낙태 반대론자들의 주장은 결국 레즈비언을 포함한 퀴어 주체들의 임신과 출산에 대해서도 통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여성의 몸에 대한 권리는 온전히 여성 자신에게 있으며, 임신과 출산은 누군가의 관리와 통제 하에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는 사실은 그래서 더욱 중요한 것이다.

 

낙태 비범죄화를 위한 레즈비언-페미니스트 연합 시위-부에노스 아이레스, 아르헨티나, 2009 ⓒwomenonwaves.org

 

낙태 범죄화 대신 여성의 자율성과 결정권을 존중할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을 마련하라

 

마지막으로 레즈비언이자 여성으로서 피할 수 없는 문제는 어느 순간, 누구에게 닥쳐올지 모르는 성폭력의 위협이다. 현재 ‘프로라이프 의사회’나 ‘낙태반대운동연합’은 강간을 당한 여성들조차 낙태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피해 당시의 기억이 자신의 몸 구석구석에서 계속해서 재현되고, 잊으려 해도 끊임없이 상기되는 것만으로도 끔찍한 고통인데 가해자의 흔적을 평생 안고 살아가라는 것이 그들이 말하는 ‘생명존중’인 것이다.

 

한편 그들 홈페이지의 제보 게시판에는 자신의 여자 친구 또는 옛 애인이 자신의 의사를 묻지 않고 낙태를 했다며 이를 고발하는 내용의 글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글을 읽어보면 이들 중 대부분은 여성이 낙태를 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자신이 그 여성과 아이 모두를 책임질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스스로도 책임질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 놓고는 상대 여성과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를 마치 자신의 ‘소유’인 양 온전히 자기 의지대로만 하려는 이들의 태도를 보면 앞으로 낙태 반대운동이 가져오게 될 끔찍한 결과가 충분히 예상된다.

 

안타깝게도 이 글을 쓰는 며칠 사이에 두 명의 친구로부터 임신중지에 대한 고민을 듣게 되었다. 한 명은 이미 헤어진 남자친구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다른 한 명은 자신과 상대방 모두 경제적 사정이 매우 어려운 상태에서 임신을 했다. 출산을 한다는 것은 그저 10개월의 시간 동안 뱃속에서 생명 하나를 만들어 꺼내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또 한 사람의 인생을 책임져야하는 일이기에 더욱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누구 하나 아무렇지도 않게 임신중지를 결정하는 사람은 없다. 자신의 몸 안에 새로운 생명이 될 수 있는 존재를 가지게 되었다는 건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결코 알 수 없는 감정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끔찍한 폭력과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존재하는 현실 속에서 이미 몸의 일부가 된 무언가를 자신으로부터 떼어내는 일을 결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재 여성들이 처한 상황인 것이다.

 

매년 7만 여명의 여성들이 안전하지 못한 낙태 시술로 사망하고 있으며, 500만 명의 여성이 합병증으로 인해 의료 서비스를 찾고 있다. 심지어 300만 명은 치료조차 받지 못하고 합병증에 시달려야 한다. 한편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경우, 낙태가 법적으로 자유화된 1996년 이후 낙태로 인한 감염이 반으로 줄어들었다고 한다. 서유럽과 북유럽에 있는 대부분의 국가들은 낙태가 전면적으로 허용되어 있지만 낙태율은 전 세계에서 가장 낮다.3) 

 

 

왜 이런 결과가 나오는가? 그것은 무조건적으로 낙태를 범죄화하고 처벌하기에 앞서 여성들의 자율성과 결정권을 존중하고 그것이 온전하게 발현될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을 만드는 일에 더욱 힘을 기울였기 때문이다. 생명은 혼자 만들고 혼자 책임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진정으로 생명 존중의 가치를 실현하고자 한다면, 먼저 여성이 사회․경제적, 성적으로 자신의 권리와 요구를 제대로 실행하고 자신의 몸에 대한 결정권을 가질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레즈비언이자 여성으로서 우리가 함께 싸워나가야 할 과제이다.

   

<참고자료>

1) ‘Not yet equal : The health of Lesbian, Gay, and Bisexual youth in BC', The McCreary Centre Sociey, 2007

 

2) ‘Why Would a Lesbian Teen Need Birth Control?’, Ellen's LGBT Teens Blog, 2008, 6, 17 http://gayteens.about.com/b/2008/06/17/why-would-a-lesbian-teen-need-birth-control.htm

3) ‘Abortion Worldwide-A Decade of Uneven Progress', GUTTMACHER INSTITUTE, 2009

 

     낙태, '솔/까/말' 프로젝트 

 


 

솔직히, 당신도 하고픈 말 있잖아요~ 여자들의 목소리로 솔직히 말하기 시작한다면, 낙태를 둘러싼 지금의 혼란을 풀어낼 수 있을 것 같아서 시도한 꿍꿍이였습니다. 어쩌면 생뚱맞을지도 모를 우리의 말걸기가 과연 화답을 불러낼 수 있을까, 머뭇거리기도 했습니다. 그런 솔까말 프로젝트의 첫 메아리가 벌써 도착했습니다. 좋은 글 나눠주신 미류 님 고맙습니다. 이 프로젝트에 공감하고 또 함께 말하고 싶은 분들은 메일로 글을 보내주세요. 일기나 낙서면 어때요. 그림이나 사진, 영상, 음악 등 다양한 말하기를 환영합니다. 우리들의 말하기가 낙태에 대한 처벌과 낙인을 이겨낼 수 있도록 함. 께. 말. 해. 요.

http://www.glocalactivism.org _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N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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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 ‘솔까말’ 프로젝트 - ④ 피임, 임신 공포, 낙태, 산부인과...에 관한 이야기 (물꽃)


 

낙태, '솔/까/말' 프로젝트***낙태를 범죄화 하려는 움직임들에 반대하며, 낙태는 여성의 삶과 건강에 관한 문제라는 것을 솔직히 까놓고 말해보기 위한 릴레이 글쓰기 액숀~연대 필진 환영! 무한 링크, 스크랩, 펌, 배포 권장!! glocal.activism@gmail.com| http://www.glocalactivism.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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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임, 임신 공포, 낙태, 산부인과...에 관한 이야기

 

물꽃 /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NGA)


 

산부인과에 가다.

 

얼마 전 약간의 하혈기가 있어 산부인과에 들렀다. 하혈의 원인은 자궁 경부에 생긴 플립(일종의 혹) 때문이었다. 간단한 초음파 검사로 바로 발견되어서 그 자리에서 제거했다. 산부인과에 다녀온 이야기를 주위 친구들에게 하니 많은 이들이 '비혼' 상태인 내가 산부인과에 아무렇지도 않게 갔다는 사실에 다소 놀라는 표정을 지어 마치 내가 '용감한' 여자라도 된 듯한 기분이었다. 여전히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미혼/비혼 여성들에게 산부인과는 여간해서는 찾지 않는, 일반 병원이라기보다는 '임신한 부인들이 가는 특수 병원'인 듯 했다. 나 역시 그러한 분위기에서 자유롭지 않아서였는지 동네 병원을 곁에 두고 한 시간이나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한, 아는 의사가 운영하는 병원까지 찾아가는 부지런함을 보였다. 사실 산부인과에 가면 반드시 비혼/기혼 여부를 물어보고, 비혼인 경우 꼭 성관계 유무를 물어보는데... 단순 사실 관계에 대한 질문인 것도 알고, 왜 물어보는지도 뻔히 아는데도... 여전히 그런 질문들에 익숙해지지는 않는다.


산부인과를 다녀오면서, 그리고 그 이야기를 주변 친구들과 나누면서 잊고 있었던 질문들이 다시 찾아왔다. 왜 젊은, 특히 결혼하지 않은 여성들에게 여전히 산부인과는 이비인후과나 치과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드나들 수 있는 편한 병원이 아닐까? 여성의 생식기도 여성의 몸의 일부이니, 몸에 이상이 생기면 당연히 병원에 가듯 생식기에 문제가 있을 때 산부인과를 찾아가는 것은 당연한 일일 텐데, 여전히 많은 젊은 여성들에게 산부인과의 입구는 왜 여전히 턱없이 높게 느껴지는 걸까? 매년 30만 명이 넘는 여성들이 낙태 시술을 받는데, 그렇다면 이들은 모두 그러한 불편한 시선들을 매번 직면하면서 그렇게 병원을 찾아야 하는 것인가?


  

 -산부인과 '후문' 간판... 왜 '후문' 간판이 따로 필요할까?


 

피임에 관한 결정권을 가지는 것, 그것은 결코 한순간에 되지 않는다.


여성이 가져야 할 '재생산의 권리'라는 것은 여성이 자신의 몸에서 벌어지는 성관계, 임신, 낙태, 출산, 양육 등에 대해 스스로의 선택과 책임을 가지는 주체로서 '가져야 하는 권리'다. 권리가 권리로서 존재하려면 선택과 책임을 가지는 주체는 관련 행위들에 대한 정보와 지식들을 가질 수 있어야 하고, 또 관련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적절한 병원에서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 많은 비혼/미혼 여성들이 자신의 몸에 대해 얼마나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을까? 그리고 설령 지식을 가지고 있다 해도 나의 재생산 권리를 지키기 위해 파트너 남성에게 콘돔을 끼우라고 당당히 요구할 수 있는 여성이 얼마나 될까? 그리고 결혼 유무와 상관없이 산부인과에 다른 병원처럼 편안히 다닐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사실 고등학교 때 받은 성교육이 고작인 대부분의 한국 여성들은 첫 섹스를 할 때 피임하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만 난 운이 좋게도 그 섹스가 임신으로 이어지지 않았을 뿐이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난 계속 준비 없는 섹스를 하게 되는 상황에 놓였다. 그리고 다음 생리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는 공포스런 시간을 보내야 했다. 이처럼 피임에 미숙한, 혹은 피임에 대한 지식이 있어도 실제 그 지식을 실행할 수 없는 환경에 놓이는 대다수 비혼/미혼 여성들에게 임신은 예기치 않게 찾아온다. 임신은 지금까지 없었다고 안심할 수도 없고, 또 있었다고 해도 언제든 다시 찾아올 수 있다는 점에서 아이를 원치 않는 이성애자 여성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다. 


누군가는 반문할지 모른다. 철저히 준비하면 되지 않느냐고? 마치 준비를 못한 내 책임인양, 나를 추궁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많은 여성들이 경험했겠지만... 임신을 방지하기 위한 피임에 적극적이 되는 것은 쉽지 않다.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당당한 성관계를 하겠다고 결심에 결심, 그리고 또 결심을 한 이후, 한때 나는 콘돔을 가방에 넣고 다녔으나, 실제 그 콘돔을 꺼내서 씌우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 순간엔 왜 이렇게 약해지는지ㅠㅠ. 그리고 질외 사정이나 월경주기법이 실제 피임에 효과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런 방식에 자꾸 의존하게 된다. 피임에 당당해지고 적극적으로 요구한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 사회적 시선과 나를 둘러싼 기존 관습과 관념을 넘어서는 건 절.대.로. 한 순간에 되지 않는다.


나름의 경험 속에서 나와 그리고 상대방과의 끊임없는 타협의 과정들을 경험하면서 그래도 지금은 남성과의 관계에서 나름의 자율성을 획득했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때로 실패하고, 그래서 늘 임신에 대한 공포는 내 곁을 떠나지 않는다. 아마 내가 가임기에 있고, 아이를 원치 않는 마음이 변치 않는 한 그 공포는 평생 짊어져야 할 짐일지도 모른다. 그런 나를 보던 주변의 한 친구는 내게 루프를 제안했다(루프는 여성 몸 안에 장착하는 피임기구이다). 일단 몸에 장착하는 것은 그 무엇이라도 싫어하는 나는 루프에는 그다지 마음이 가지 않았다. 그리고 왠지 내가 루프를 끼고 나면 상대 남성이 100% 콘돔 사용을 거부할 거라는 생각이 들어 심리적 저항감도 생겼다. 뭐랄까...이성애 관계에서의 섹스는 남성과 여성이 함께 참여하는 것인데 왠지 루프를 하면 꼭 여자 혼자 피임을 준비하고 임신에 대비하는 것 같아 억울하게 느껴진달까?


100% 완벽한 피임법은 없다. 그러면 당신의 선택은?

 

어찌됐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루프를 사용해도, 또 설사 콘돔을 끼우는데 성공했다하더라도 현재 우리에게 100% 완벽한 피임방법은 없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이런 저런 피임을 다 시도했더라도 원치 않은 임신에서 완벽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결국 원치 않는 임신을 최종적으로 종결시킬 수 있는 방법은 낙태, 임신 중절 수술을 받는 길 뿐이다. 사후 피임약이란 것이 있지만 그 절차가 복잡하여 24시간 내에 먹는 것은 쉽지 않다(사후 피임약은 처방전이 있어야만 살 수 있다. 그럼 토요일엔 섹스를 하지 말라는 건가?). 그러면 남는 것은 임신중절, 즉 낙태뿐이다. 더욱이 현실에서는 많은 여성들이 피임뿐 아니라 임신의 과정 등에도 무지한 경우가 많아, 특히 청소녀들의 경우에는 산부인과의 문턱이 너무 높아서, 혹은 임신 등에 관한 정보에 무지해 임신 지속 기간이 길어지다보니 때로는 후기 낙태를 감행해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각 피임법의 성공률> 출처: 먹는 언니의 야후 블로그 : http://kr.blog.yahoo.com/fsplay/1686


 

 

<응급피임약 성공률> 출처: 먹는 언니의 야후 블로그 : http://kr.blog.yahoo.com/fsplay/1686


 

 여성들이 낙태를 선택하게 되는 과정은 복잡한 과정을 거쳐 이루어진다. 낙태는 하나의 독립된 행위라기보다는 피임, 성관계, 몸에 대한 지식 정도, 의료에 대한 접근권 등 다양한 사회적, 개인적 삶의 맥락 속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따라서 낙태 행위 그 자체만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그 행위를 한 여성을 처벌하는 현행법은 이러한 과정들을 생략하고 눈 감은 채, 도덕적, 형법적 잣대만을 여성의 몸에 들이대겠다는 것이다. 여성을 범죄화하여 낙태율을 줄여보겠다는 그 발상은 너무 비현실적이다. 결국 이런 범죄화로 인해 수많은 여성들은 기존 비용의 10배에 달하는 비용을 지불하며 중국으로 일본으로 원정 낙태를 가거나, 그럴 경제적 여유가 없는 여성들은 불법 시술소에서 건강을 담보로 시술 받게 된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낙태 불법화인가?


 

결코 끝나지 않는/않을 임신공포증, 그러면 우리는?


이번에 산부인과를 다녀오면서, 그리고 앞서 말했듯이 주변의 친구들로부터 예상치 않은 질문들을 받으면서 30대에 접어든 비혼 여성인 나는 다시 나의 삶에 대해 돌아보게 되었다. 무지 노력하고 있지만 여전히 난 성관계와 피임에서 100% 온전한 주도권을 갖지 못하며, 섹스 후 늘 임신 공포증에 시달린다. 콘돔 등의 다양한 피임법을 사용했다 해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나 개인이 노력해도 사회적 시선과 남녀/여남 간의 불공평한 권력관계가 존재하는 한 이 구도를 벗어나기란 쉽지 않을 것이란 걸 이제 안다. 그래서 내게 낙태는 늘 최후의 보루이자 마지막 선택지점으로 남아있다.

 

나 역시 낙태를 줄이자는 데 동의한다. 그.런.데, 그 줄이는 방법이 낙태를 범죄화하고 낙태 시술한 여성을 처벌하는 방식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많은 미/비혼 여성들에게 산부인과는 그리 편하게 찾을 수 있는 병원이 아니다. 그리고 아직도 성관계에서 온전한 주도권을 가진 여성들이 많지 않다. 또한 많은 여성들이 아이를 낳아서 키울 수 없게 하는 사회적 환경을 개선하는 것이 여전히 요원하다고 느끼고 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 대한 개선도 없이 무작정 마지막 피임 수단으로 낙태를 선택했다는 이유로 여성을 범죄자 취급하는 것은 너.무.나 부당하다.


낙태 범죄화를 외치기 전에 우리는 피임을 당당히 요구할 수 있는 관계의 평등성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피임에 실패했을 때 임신중지를 택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할까? 아주 빠르게는 응급피임약이라고 부르는 사후피임약의 시판을 보편화하는 것이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의사 처방전 없이는 살 수 없는 현재의 방식이 아니라, 약국에서 누구나 살 수 있게 만드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그리고 청소녀나 빈곤층 여성들이 시술 비용에 대한 부담으로 안전하지 않은 시술소에서 낙태 시술을 받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낙태 의료보험 적용 확대도 고려해볼만 하다.


임신중지(낙태)역시 임신이나 출산과 마찬가지로 한 여성의 몸에서 일어나는 재생산 과정의 하나일 뿐이다. 그 과정에 대한 선택은 분명 오롯이 그 여성에게 있다. 우리는 범죄자가 아니다.


 

 


 

낙태, '솔/까/말' 프로젝트 


 

 

솔직히, 당신도 하고픈 말 있잖아요~ 여자들의 목소리로 솔직히 말하기 시작한다면, 낙태를 둘러싼 지금의 혼란을 풀어낼 수 있을 것 같아서 시도한 꿍꿍이였습니다. 어쩌면 생뚱맞을지도 모를 우리의 말걸기가 과연 화답을 불러낼 수 있을까, 머뭇거리기도 했습니다. 그런 솔까말 프로젝트의 첫 메아리가 벌써 도착했습니다. 좋은 글 나눠주신 미류 님 고맙습니다. 이 프로젝트에 공감하고 또 함께 말하고 싶은 분들은 메일로 글을 보내주세요. 일기나 낙서면 어때요. 그림이나 사진, 영상, 음악 등 다양한 말하기를 환영합니다. 우리들의 말하기가 낙태에 대한 처벌과 낙인을 이겨낼 수 있도록 함. 께. 말. 해. 요.

http://www.glocalactivism.org _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N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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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상영회 [소똥]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정기상영회 '액티비즘 시네마천국'의 8월 상영작은 환경주의자 반다나 시바에 관한 다큐 [소똥]입니다.

여럿이 함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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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현대사와 정치.문화 운동, &quot;누에바 깐시온&quot;

안녕하세요!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입니다.

무더운 날씨가 연일 계속되고 있어 지치고 무기력해지네요.

잠시라도 쉴 수 있는 시간을 가지셨기를 바랍니다^^

 

이번 주 금요일에 제8회 <가나다 토론회>를 개최합니다.

토론의 열기로 이열치열 해보면 어떨까 싶네요!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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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 우리는 함께 말하기 시작했다

 
낙태, '솔/까/말' 프로젝트***
 
낙태를 범죄화 하려는 움직임들에 반대하며, 낙태는 여성의 삶과 건강에 관한 문제라는 것을 솔직히 까놓고 말해보기 위한 릴레이 글쓰기 액숀~ 연대 필진 환영! 무한 링크, 스크랩, 펌, 배포 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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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 들고 동네 한 바퀴| 신은영

 

나에게 낙태는 먼 나라 이야기이다. 오히려 아이가 안 생겨 엄청 고생한 경우였다. 나는 크리스천이지만 어쩔 수 없이 하는 낙태에 찬성한다. 나는 아이를 달라고 하나님께 눈물로 기도했지만 정말 낳을 수 없어 지워야 하는 경우에도 눈물로 기도하며 고민하게 될 것 같다. 문득 다른 엄마들은 낙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해졌다.

 

 

 말하기 어려움, 또는 낙태에 대한 작은 말하기| 미 류

 

어제 우연히 hrnet으로 솔까말프로젝트라는 제목을 보고 마음이 확 이끌리더군요. 어디까지 솔직히까놓고말할 수 있을지 참 어려운 일이기는 하지만... 저도 글을 하나 보탤까 해서 보냅니다. 무한링크, 스크랩, 펌, 배포를 권장하는 솔까말 프로젝트가 조금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잘 나눠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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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당신도 하고픈 말 있잖아요~

 

여자들의 목소리로 솔직히 말하기 시작한다면, 낙태를 둘러싼 지금의 혼란을 풀어낼 수 있을 것 같아서 시도한 꿍꿍이였습니다. 어쩌면 생뚱맞을지도 모를 우리의 말걸기가 과연 화답을 불러낼 수 있을까, 머뭇거리기도 했습니다. 그런 솔까말 프로젝트의 첫 메아리가 벌써 도착했습니다. 좋은 글 나눠주신 미류 님 고맙습니다.

 

 

이 프로젝트에 공감하고 또 함께 말하고 싶은 분들은 메일로 글을 보내주세요. 일기나 낙서면 어때요. 그림이나 사진, 영상, 음악 등 다양한 말하기를 환영합니다. 우리들의 말하기가 낙태에 대한 처벌과 낙인을 이겨낼 수 있도록 함. 께. 말. 해. 요. : )

 glocal.activism@gmail.com | http://www.glocalactivism.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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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추어의 반란 _ 7월 상영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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