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택] 황사 환경문제 불교철학

2007/04/12 14:50
 

- 자연의 무서운 복수-환경오염 문제


황사주의보가 발령되었던 날, 하늘은 평소보다 더 낮게 가라앉은 듯 보였고,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마음껏 크게 숨 한 번 들이마실 수도 없던 공기. 인간 생존의 필수적인 조건이자, 건강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공기가 어쩌다 이 지경까지 온 것일까?



어떤 사람들은 중국의 무분별한 산림개발을 저지하거나, 중국을 상대로 국가적 손해배상청구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근본적인 원인에 대한 해결책은 될 수 없다. 우리나라 역시, 1960년대 이후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를 겪으며 무분별한 개발을 일삼았으며 그 결과 심각한 환경문제에 부닥치고 있다. 황사문제는 중국에라도 그 책임을 돌릴 수 있다지만, 그 외 우리가 자초한 환경문제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처해야 한단 말인가? 자연은 마치, 복수라도 하듯 시시각각 인간에게 그 악영향을 되돌려주고 있는데 말이다.


- 환경운동의 패러다임, 불교


불교를 환경운동의 패러다임으로써 주목하는 사람들은 생태계 파괴의 원인을 인간중심주의, 인간의 절제되지 못한 욕망이라 보고 그 대안을 불교적인 사유에서 찾는다. 불교의 자연관은 서구의 이성중심적 사고에서 바라 본 자연관과 확고한 차이를 보인다.


초기 불교의 자연관‘불살생(不殺生, ahimsa)'의 계율. 생명이 있는 것을 죽이거나 해치는 것은 불건전하고 비도덕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다. 이는 나쁜 업을 쌓는 것이기 때문이다. 고대 인도에서는 사람과 동물 뿐 아니라 식물, 종자, 심지어 물과 흙까지도 정식(正識)이 있다고 간주했고 비구와 비구니들은 식물과 종자를 해치는 것조차도 명확히 금지했다.


대승불교의 자연관대승불교의 입장에 따르면 각각의 존재는 어떤 방식으로든 다른 모든 존재에 대해서 책임이 있다. 어떤 한 존재가 무엇을 하건 간에 그것은 다른 모든 존재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불교의 생태 이해는 연기와 자비의 관점 위에서 상생의 생태학을 지향한다.


- 환경운동은 참회와 반성을 통한 전향의 의지로!


환경위기는 자원을 무한하다고 단정하고 정복과 지배를 통해, 바로 앞날의 풍요만을 좇기에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불교적 용어로 말하자면, 인간은 끊임없이 업보를 쌓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 업보는 오늘날 고스란히 되돌아와 환경오염과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 따라서 환경운동은 이 모든 것에 대한 참회와 반성을 토대로 한 전향의 의지를 담는 것이어야 한다.


환경운동은 다른 운동과는 달리 저항하고 저지하는 운동을 전개함과 동시에 자신이 어떻게 살 것인가를 결심하고 살피는 운동이다. 또한 수행을 통해 자연의 근본을 통찰하며 생활양식과 행동을 변화시키는 것이어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불교는 환경운동의 상당부분에 걸쳐 도움을 줄 수 있다.


수많은 생태학자들이 동양의 깊이 있는 사상과 개인의 수행을 중시하는 불교의 가르침에 큰 비전과 가능성을 걸고 있다. 황사 심한 도심 속에서 무조건 중국 탓을 한다고 황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나 자신부터 환경문제를 해결할 작은 실천들을 해보자. ‘불살생의 계율’, ‘상생의 생태학’과 같은 불교철학의 자연관을 자주 상기하면서.


-조성택의 <불교철학입문1>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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