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자] 김승연 회장과 고려대 당국

2007/05/09 13:28
 

김승연 회장과 고려대 당국 | 만감: 일기장  2007/05/05 14:21 

 http://blog.hani.co.kr/gategateparagate/5849   

최근에 세상이 온통 한화재벌 총수의 "의리의 사나이"로서의 행각으로 떠들썩하더랍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저는 그 뉴스를 듣고 별로 놀라지도 않았습니다. 만약 국가가 지금처럼 세습적인 "왕조 경영"을 허용해주고, 노조의 경영 참여 등 독단적인 "제왕 경영"의 폐단을 좀 줄일 수 있는 "직장 민주주의" 제도 발전에 무관심만 보이고, 재벌 총수가 법을 어겨도 "국민 경제에 미칠 영향"을 고려한답시고 법에 정한 벌도 제대로 주지 않는다면 결국 재벌 회장이 괴거의 제왕들처럼 행동하기 시작하는 것은 뭐가 놀라운 일입니까?


천한 백성이 감히 왕태자의 옥체를 상하게 했으니 마마께서 직접 나서서 곤장을 친히 치신 셈인데, 21세기 벽두 서울의 한복판에 조성왕조의 가장 퇴폐적인 측면들을 재현시킨 것은 결국 재벌들의 행정 대행 회사로 전락하고 만 국가입니다. 경찰에 신고만 하면 문제의 주점의 직원들에게 경찰이 모범 케이스로 본때를 보여줄 줄을 잘 알았던 김 회장이 이렇게 친히 매를 드시고 천한 머슴놈에게 사형을 가하는 길을 택한 배경에, 국가가 자신에게 아무런 제재를 가할 수 없다는 굳은 믿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믿음은 과연 오산뿐이었을까요? 사실, 언론에 특별히 공개되어 공분을 일으킬 일만 없다면 재벌 회장이 홧김에 손을 좀 쓰다가 나중에 합의금 얼마 주어서 일을 무마시키는 것은 일상일 뿐이지요. 어떤 재벌 같으면, 노조를 만들겠다는 노동자를 납치하다싶이 차에 태워 며칠간 끌고 다니면서 "생매장시키겠다"고 협박하는 일도 있었다고 주장하는 노동운동가들이 있는데, 이들의 주장에 상당한 진리가 담겨져 있는 것으로 추측됩니다. 평소에 그 재벌이 어떤 방법으로 노조 결성을 막고 있는지 이미 어느 정도 알려져 있기 때문이지요. 그러니까 만인이 법 앞에 평등한 민주공화국에서 산다는 환상부터 버리시기를.


그런데, 이 번의 김 회장의 "싸나이다운" 행동, 야산에서의 "보복 활극"을 지켜보면서 한 가지 생각이 머리에 들었습니다. "눈에 눈, 이에 이"식으로 하다가는 김 회장이 놀랍게도 (!) 붙잡혔는데, 한 때에 이건희의 명예박사 학위 수여 반대 시위에 참여했던 몇 명 학생들을 "찜하여" 나중에 "교수 억류 사건"으로 그들을 제재할 기회가 오자마자 "대학가의 사형"이라고 할 "출교"로 그들을 중심으로 한 일군의 급진적인 학생들에게 "보복"을 가했다 싶은 고려대학교는 과연 법의 제재를 받을 일이 있겠습니까?


물론 고려대학교 당국의 조치 내용 그 자체만 본다면 "보복"이라는 생각이 안들 수도 있습니다. "교수 감금"이라는 충분한 빌미를 불행하게도 학생들이 스스로 제공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주로 이건희 반대 시위로 "찍혔던" 학생들이 결국 "사형수"가 된 점이라든가 시위를 주도했다는 특정 "외부 단체"가 그 뒤에 학교에서 "기피의 대상"이 되어 당국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아온 점이라든가 등을  종합해보면 이 번의 "출교"도 일종의 "보복 행위"이었다는 생각이 들지요.


무서운 것은, 학교 당국이 "하극상", "패륜" 등 봉건적이다 싶은 개념들을 동원하여 일부 "급진 분자"들을 최강력으로 징계했을 때에, 사회가 이를 당연지사처럼 받아들였다는 점입니다. 다수의 교수들이나 한총련과 같은 (제가 보기에는 제 역할을 전혀 제대로 못하고 있는) 학생 운동 단체들이 단순히 함구하고 있거나 한 발짝 앞서서 "스승에게 감히..."라고 "패륜아"들을 비난했고, 다수의 학우들도 자신의 문제가 아닌 것처럼 취급해온 듯하고, 사회가 전체적으로는 한 때에 약간의 관심을 보였다가 이제는 다 잊은 듯하고... "감히 윗분에게 무례하게 한 어린 것", 감히 힘센 사람에게 굴복하지 않았던 이들에게 냉혹한 사회이다 보니 각종의 "김 회장"들이 이렇게 용감하게 (?) 행동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요? 우리 모두가 힘과 사회적 지위, 나이 등 위계질서적 관념들의 노예처럼 일상적으로 행동한다면 "보스"들에게 쇠파이프를 들 유혹이 늘 강할 것입니다. 한 대 패도 무슨 문제가 생기는 것도 아니잖아요?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TAG

Trackback

Trackback Address :: http://blog.jinbo.net/nomad22/trackback/130

Comments

What's on your mind?

댓글 입력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