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내가 먼저일까? 관계가 먼저일까?

 

 

- 관계란 무엇일까?

 

관계(Relation)라고 하는 것은 철학적인 사고를 하는데 있어서 빼 놓을 수 없는 중요한 개념이다. 관계는 있다가도 없어지는 독특한 성격을 가졌다. A라는 사람과 B라는 사람이 결혼을 하면 부부관계가 생기지만, 이혼을 하면 관계가 없어진다.

 

관계라고 하는 것은 어떤 실체적으로 존재 한다 라기 보다도 두 개 내지 여러 개 항이 일정하게 모이면 성립되었다가 흩어지면 없어지는 재미있는 성격을 가졌다.관계가 성립하려면 관계를 맺는 항들, 개별자들이 있어야 한다. 만약 개별자들이 사라지면 관계도 사라진다.

 

그래서 개별화(individualize)가 안 되어 있으면 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물이 흘러가면 흘러가는 물 안에서는 관계라는 개념이 성립하지 않는다. 반드시 어떤 구분, 개별화가 있어야 한다. 물과 강둑의 관계, 물과 바닥의 관계, 하다못해 물결이 있어서 물결들끼리의 관계라는 것이 있어야 한다. 한 마디로 개별화가 되어서 여럿(多)이 성립을 해야, 관계라고 하는 것이 가능하다.


-정체성이 깨져야 관계다.

 

그런데 개별화가 되어 있고 여럿(多)이 성립돼 있어도, 이 여럿과 여럿이 완전히 즉자적(卽自的)으로 오로지 타자에게 열리지 않고 자기에게로만 닫혀 있으면 관계가 성립되지 않는다. 개별자들의 정체성(identity)이 깨져야 관계가 성립한다. 만약 어떤 사람이 완벽하게 자기 정체성을 보존하면 관계라는 것이 생길 수 없다. 왜냐하면 관계를 맺으면 자기 정체성도 변하게 되기 때문이다.

 

예컨대 탁자가 완벽하게 자기의 정체성을 보존하면 다른 어떤 것과도 관계를 맺을 수가 없다. 그런데 A가 탁자에 음료수 병을 놓으면 압력을 받게 되고 탁자가 변하게 된다. 정체성에 변화가 오는 것이다. 그래야 관계가 성립한다. 그런데 완벽하게 즉자적(an-sich) 존재들만 있는 곳에는 관계가 없다.

 

타자와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어떤 연속성이 도래하는 것이다. 그럴 때에 관계가 성립한다. 즉 완벽하게 닫힌 동일성이 열리고 타자와의 연속성이 있을 때에 관계가 성립한다. 그래서 관계라고 하는 것은 항들에 연관이 있다고 볼 수 있다.


- 관계 속에서 나와 네가 태어난다

 

그런데 어떤 생각에 따르면 반대로 관계가 먼저 있고 그 다음에 항들이 의미가 있게 된다고 한다. 즉 관계가 존재하고 개별자들이 그 항들을 채운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A는 B의 선생이다.’라는 것이 하나의 관계이다. 이 관계, 추상적인 관계가 더 기본적이고, 더 먼저고, 그 다음에 여기에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공자와 자하 등의 항들이 들어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관계가 먼저, 더 우선(primary)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항들이 있어서 관계가 성립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관계가 이 세계를 이루는 더 근본적이 구조고 개별적인 항들은 항상 그 관계의 어느 한 항으로만 들어갈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 하는 생각이다.

정리해보면, 앞의 생각은 개별자 중심이다. 개체들이 존재론적으로 우선하고, 관계라고 하는 것은 그 개체들 사이에서 생겨나기도 하고 또 없어지기도 하는 묘한 것이란 생각이고, 두 번째 것은 우리 눈에 직접 보이지 않아서 그렇지 존재론적으로 더 심오한 것은 관계들이고, 개별자들은 그런 관계들 속에서 태어난다는 생각이다.

 

예컨대 한국 사회를 보면 철수, 영희, 민수 등 그런 개별자들이 있고, 그런 개별자들이 부부관계를 맺고, 선생과 학생관계를 맺고, 부모 자식의 관계를 맺고, 가게 주인과 단골손님의 관계를 맺지만, 뒤집어서 생각해 보면 한국 사회라고 하는 것을 구성하는 관계들의 체계가 있고, 즉 한국 사회를 구성하는 관계라는 어떤 거대한 시스템이 있고, 그 시스템 속에서 우리가 태어나서 살다가 죽는다라고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 실존주의와 구조주의 근본문제: 문제

 

20세기 중엽을 장식했던 실존주의와 구조주의도 결국 이 문제이다. 실존주의는 어떤 개별자의 주체성, 어떤 개별자의 내면의식에서 출발해서 다른 것을 구성하는 사유라고 한다면, 구조주의는 이 관계의 발견이다.

그 문화가 무의식적으로 혹은 당장 눈에 안 보이지만 사람들이 거기에 따라 살아가고 있는 그런 관계들과 체계를 발견한 것이 구조주의이다. 실존주의와 구조주의 대립은 바로 이 관계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문제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히로마쓰 와타루(1933~1994 일본 현대 철학자)라는 철학자는 ‘형성적 관계(形成的 關係)’와 ‘존립적 관계(存立的 關係)’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생겼다가 사라졌다하는 관계를 ‘형성적 관계’라고 하고, 좀처럼 쉽게 변하지 않는 더 근본적인 관계, 예를 들어 삼각형의 내각의 합이 180도라는 사실과 같은 그런 관계를 ‘존립적 관계’라고 한다.

 

이상으로 간략히 관계에 관한 중심적 논의의 틀을 살펴봤다. 관계에 대한 관심은 뛰어난 철학자들에게도 커다란 관심이었다. 그들은 관계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했을까? 그들이 생각한 관계의 개념을 조금 더 살펴본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이해하고 성찰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 이정우(철학자) 아트앤스터디 지식메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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