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우] 탐독-유목적 사유의 탄생

2010/12/21 07:13

•  이정우, 2006, [탐독-유목적 사유의 탄생], 도서출판 아고라.  (소제목은 임의 작성임)

 

 

[책]

새 책을 구입했을 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들 중 하나이다. 나는 책장을 넘기고 새로운 세계로 들어간다. 거기에서 내 영혼과 사유에 영향을 끼칠 글들을 발견한다. 내가 쓰는 글들에는 어느새 그런 글들의 흔적이 묻어 나온다. 책을 통해서 내 영혼은 다른 영혼들을 만나다. 그들과 대화한다. (388쪽)

 

[타인의 고통과 사랑]

추상적인 사랑은 쉽게 말할 수 있다. 고통 받는 타인들을 신문이나 TV에서 보면 누구나 분노와 연민을 느낀다. 그래서 사람들은 도덕이나 윤리, '인류에 대한 사랑' 같은 고귀한 가치들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 타인들이 그 가장 적나라한 모습으로, 그 가장 추한 모습으로 자기 앞에 나타났을때, 자기에게 손을 내밀었을때, 그의 손을 덥석 잡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아니, 바로 그 타자들이 자신과 떨어져 있기에 마음 놓고 고귀한 가치들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가. 이반의 말처럼 "추상적으로라면, 그리고 때때로 멀리 떨어져 있다면 가까이 있는 사람도 사랑할 수 있지만, 바로 곁에 두고서는 거의 절대로 사랑할 수 없어."([까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V, 4) (29~30쪽)

 

[공간과 시간 그리고 장소]

인간은 시간 앞에서는 무력하지만 공간 앞에서는 무한한 능력을 발휘한다. 시간은 털끝만큼도 건드릴 수 없지만 공간은 오리고 붙이고 변형시키는 등 거의 무한에 가까운 조작을 행할 수 있지 않은가. 공간 앞에는 조작하는 인간이 있지만, 시간 앞에는 명상하는 인간이 있다. 과학이 공간과 더불어 사유해왔다면, 인문학은 시간과 더불어 사유해왔다는 생각이 든다.

공간(좁은 의미)과 장소는 다르다. 장소는 사물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공간은 사물들을 담고 있는 무엇이다. 장소에는 인간관계, 의미와 가치, 역사가 묻어 있지만, 공간은 그저 빈 터일 뿐이다. (188쪽)

 

[곡선이란 참 매력적인 존재다]

직선으로 된 도형들은 어떻게든 분할해서 면적을 구할 수 있다. 그러나 곡선의 경우는 다르다. 곡선이란 참 매력적인 존재다. 얼마나 많은 화가들이 인체 특히 여체女體의 신묘한 곡선을 재현하기 위해 노력했던가. 곡선은 '매순간' 계속 구부러진다. (192쪽)

 

[사유한다는 것은 구체와 추상을 끝없이 오르내리는 것이다]

사유한다는 것은 구체와 추상을 끝없이 오르내리는 것이다. 아마 이것은 내가 소은 선생에게서 배운 핵심적인 사유 방식인 것 같다. 가장 구체적인 것(개체들, 사건들, 마주침들)에서 추상적인 것(존재, 우주, 생명) 사이를 끝없이 왕복 운동하기. 그 사이에 분포되어 있는 어떤 분야, 전공, 영역, 사조에 정주定住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의 한쪽 끝에서 다른 한쪽 끝까지 가로지르면서 사유하기. 이 오르내림, 가로지르기, 유목에의 깨달음으로부터 철학자로서의 내가 탄생했다. (320쪽)

 

[사회과학과 역사]

사회과학은 현실을 이해하기 위한 형식적 틀이고 역사는 현실 자체의 기록이다. 형식적 틀은 어디까지나 틀일 뿐이다. 그것이 현실에 딱 들어맞지는 않는다. 복잡하고 우발적이고 생성하는 현실을 이론적 틀이 온전하게 포착하지는 못한다. 반면 역사는 현실을 충실히 기록해주지만 현실을 꿰뚫어보는 이론적 깊이가 없는 경우가 많다(또 사실 '기록' 그 자체가 이미 어떤 이론적 틀을 전제한다). 두 담론의 수준 높은 통합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통합은 또한 치밀한 철학적 사유를 요청한다. (3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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